REVIEW/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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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이민경 <운동장>, 극장 발생의 기각, 그리고 극장의 계몽REVIEW/Dance 2014. 12. 5. 00:12
움직임에서 움직임 바깥으로 ▲ [홍은]입주예술가창작발표-모모한 예술 [출처=운동장 페이스북] 우선 ‘운동장’이라는 움직임/시간의 실제적 은유의 (작품에 대한 콘셉트에 나오는) 제목-일상으로의 확장이라는, 너른 극장 발생 내지는 춤의 너른 범주, 곧 일상적 현재성을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은 멈춤의 태(怠)만한 업(業)무의 선언(드러냄)과 연대에의 감응의 빈 터전을 만드는 것으로 변용됐음에서 이 공연에 대한 설명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곧 은 달림의 순환적 반복(-강박)의 형벌을 기꺼이 자기 동력으로 껴안는(이 공연에 참여하는 자신들에 대한 성토와 공감의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동력과 속도로부터의 거리 두기의 측면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상적으로 가져간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적이자 이데올로기적인 부정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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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 <유용무용론>: 춤의 의미와 당위, 그 혼란으로부터REVIEW/Dance 2014. 10. 21. 17:41
▲ 최은진 [사진 제공=LIG아트홀] 최은진 은 유용한 것을 일상의 노동/행위로 두며 그 대척점에서 무용(舞踊)을 무용(無用)함으로 치환한다. 그리고 이 무용(無用)한 무용이 유용한 행위와 맞닿을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한다는 식으로 이 작품의 테제를 선언한다. 그에 따르면, 그 말 이전에 발생한, 위성희가 객석에 있는 의자를 옮기고, 윤상은이 안무를 소화하는 두 대립된 장면은 춤무용론을 입증하는, 그리고 춤과 노동이 분절됨을 보여주는 작위적인 재현의 장이며, 앞으로 춤유용론의 경계를 만들어질 것으로 보이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아니 그 당위 자체가 요구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노동과 춤의 유용함의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춤이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기에, 곧 유용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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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안무가 루이자 코르테시/미켈레 디 스테파노 공연 리뷰REVIEW/Dance 2014. 10. 21. 17:35
: ‘마법의 회전’으로서 안무의 마개 ▲ 연습 장면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 (이하 상동) 루이자 코르테시가 안무하고, 차진엽이 무용수로 출연한 은 각기 다른 뚜렷한 시공간을 상정하고 있는 가운데, 춤의 정면성을 내세워 일종의 윈도우로서의 프레임과 그와 맞닿은 표면에서의 신체적 감각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마우싱은 일종의 마우스를 가지고 윈도우를 작동시키는 행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상 세계, 그리고 그것과 상호 협응하는 인간 신체를 포괄적으로 지칭하기 위해 만든 조어에 가깝다. 그리고 사운드와 조명이 움직임과 긴밀하게 연관돼 시공간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그 장치(화)를 전면에 드러낸 것에 가깝다. 이로써 차진엽은 가상공간의 입자가 되는 셈이다. 차진엽은 우선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로봇처럼 팔다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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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 츄 (I will archive you)>, '자기 지시적 무용-텍스트의 저항과 망각'REVIEW/Dance 2014. 8. 23. 15:03
▲ 콘셉트 사진 [사진 제공=한국공연예술센터] 출연하는 세 명의 안무가(윤상은, 여민하, 최승윤)들은 각자의 작품들을 아카이빙하며 동시에 재현한다. 또는 그 두 개가 동시에 일어난다. 여기에 그 아카이브에 대한 발화가 더해짐으로써 정확히는 아카이브에 대한 시선과 이해의 지점을 만든다. 곧 예전의 작품들을 다시 보기re·view하며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서브 텍스트로서 동시적으로 포갠다. 작품은 이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갖게 되며 해석이 가능한 유동적 텍스트로서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는 보통의 유기체적 무대의 구성과 그 흐름, 극적 시간으로도 불릴 수 있는 무대의 끊임없는 시간을 해체시키고 작품을 텍스트로 현재를 대화의 장으로 바꿔 아카이브를 아카이브화한다. 곧 예전의 작품들이 차곡차곡 하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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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호 <유도>: '구상되는 이미지, 편집되는 순간의 파노라마'REVIEW/Dance 2014. 6. 4. 02:46
▲ 박순호의 [사진 제공=LIG아트홀] (이하 상동) 박순호의 는 유도를 재현한다기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도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데 더 가깝다. 이는 그 이미지의 (머릿속) 맺힘이자 어떤 구상이다. 손을 앞으로 뻗고 메치기 직전 내지는 매침을 하기 전의 포즈는 정적과 맞물려 있다. 이것이 어디서 시작되고 또 순식간에 끝이 날지 모른다. 그 긴장의 무한한 연장은 곧 정적을 지정한다. 곧 이 시작의 지점을 모르기에 그 급작스러움(의 끝)은 긴 여운으로 빚어진다. 어떤 파동으로 물결친다. 그런데 이 여러 군상의 매치거나 매침을 당하는 어떤 두 가지 패턴적 전형의 존재들을 체현하는, 개성 없는 존재자들은 무대를 마치 유령처럼 떠돈다. 그리고 그 손이 어느 순간 거대한 힘의 촉수가 되어 타인의 몸 전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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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MODAFE] DODOMOOV DANCE THEATER 이준욱, <No Response> '관계의 어떤 경계'REVIEW/Dance 2014. 6. 4. 02:34
▲ DODOMOOV DANCE THEATER 이준욱, [사진 제공=모다페] 몸을 사시나무 떨듯 가눌 수 없는 몸짓 언어를 가진 단독자(존재)와 그것과 유리되는 수많은 어둠의 빛 속에 존재자들이 있다. 이는 한 명의 여린 여자의 내면과 그 바깥에서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 사회에 있는 타자들의 환상물이 나타나는 형국으로 볼 수 있을까. 아님 그녀 이들을 무의식의 존재화되지 않은 무의식의 잉여 구문의 형상들로 봐야 하는 것일까. 한편 이 떨림의 주체는 말을 할 수 없다. 명확히 분절되는 언어의 성격을 구현할 수 없으며 단지 몸짓과 표정 등 온 몸으로 감각되길 요구하는 비언어적 언어만을 구사하는 것이다. 입을 벌린다는 것은 말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 정도의 충격과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는 히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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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MODAFE] 황수현, <소설화하는 몸> '순간의 클로즈업'REVIEW/Dance 2014. 6. 4. 02:27
▲ 황수현 © 옥상훈 세 사람은 처음 “인”, “아웃”의 지정에 따라 스톱모션처럼 장면들을 분절하고 그 장면을 이루는 몸짓들을 분절한다. 전자가 일화적 기억상에서 재현의 단위를 이루는 일종의 서사를 이루는 영상이라면 후자는 그 영상을 더 분절한 아니 포착한 사진들의 환유물이 된다. 이 분절된 영상·이미지는 프레임들의 축적과 변환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로 분절되어 현실을 이화시켜 보여준다는 점에서 스톱모션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인”하면 멈추고 “아웃”하면 시작한다. “아웃”에서는 달라진 장면이자 그 멈춤을 예비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면, “인”에서는 그 장면이 멈춘 채 마치 1초 단위를 미세하게 쪼갠 전체 몸이 움직이지 않고 팔을 조금씩 꺾어 내려가는 등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는 ‘순간(시간)의 클로즈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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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MODAFE] 블루 댄스 씨어터 김혜정, <The Song> '노래의 감상을 재현하다'REVIEW/Dance 2014. 6. 4. 02:23
▲ 블루 댄스 씨어터 김혜정, [사진제공=모다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들로 이어진, 이 무대는 그 노래가 갖는 다양한 감정의 양상을 선취하고자 한다. 이는 그 노래 자체를 체현하기보다 그 노래가 갖는 감응을 제시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그 노래의 힘을 고스란히 보여주되 그것에 다가서지는 못하게 된다. 피아프의 노래는 그 가사를 설사 다 이해하더라도 그 이전에 이미 그녀가 온몸으로 자신의 인생을 담아내며 부르는 목소리라는 점에서, 일종의 그녀 신체가 투영되는 환유이자 인생의 고귀한 에센스가 담긴 은유라는 기호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노래가 감응되는 것이다. 이 목소리는 철저히 신체적·물질적인 것이며 거기서 발생하는 (듣는 이의) 감정은 그에 뒤따르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움직임은 감정, 그 중에서도 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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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MODAFE] 김건중/하이디 비어탈러(하토 프로젝트), <Swift Shift>REVIEW/Dance 2014. 6. 4. 02:20
예전에 올랐던(이미 봤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시간이 조금 더 짧아진 듯한 느낌이다. 땅에 붙어 순간적으로 몸을 틀거나 해서 오브제적인 구문이 되거나 무대 곳곳을 오가며 자신의 내밀한 기억들을 가능케 하며 그것이 확장된 공간에서 어떤 기억을 체현하는 신체 자체가 되어 기억-신체로 배치되어 가는 광경이 매우 실제적이면서 홀연하게 느껴지는 바가 있다. 막은 관객의 타인을 보는 관음증적 위치로 재배치하는 한편 우리 자신의 눈이기도 하다. 이 막이 닫히며 영상에서 구십도 회전한 이미지의 카메라로 벽 내지 바닥에 기댄 그의 움직임을 비추고 움직임은 착시적으로 변용되어 감각된다. 공간을 절취하는 카메라의 감각과 회전한 방향의 달라진 결과의 현시에 맞춰 몸의 움직임도 사전에 구상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움직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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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MODAFE] 지경민/임진호, <불시착> '고블린 특유의 몸짓에 풍자를 더하다'REVIEW/Dance 2014. 6. 4. 02:17
▲ 지경민/임진호, [사진제공=모다페] 주체할 수 없는 몸의 떨림으로서의 두 벌거벗은 몸이 무대에 던져지는데, 이들의 움직임은 중심이 없는 해체되는 몸과 같다. ‘고블린’(Goblin Party)이라는 이들의 이름처럼 이는 도깨비를 나타내고자 한 것인가. 둘은 덜덜 떨다 둘이 덕석 서로를 껴안을 때 그 떨림은 멈춘다. 곧 서로에 대한 전적인 의지만이 이 외부적인 현상의 동력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듯. 이 두 사람의 감응적 연대는 몸의 부분들을 포개 부풀어진 변형된 하나의 몸으로 둔탁하게 몸을 내려놓으며 전개해 가는 조형적 이미지의 양상을 만드는 것으로 전환되고, 또 수류탄을 무대 뒤 문을 열고 던지고 터짐의 충격까지 재현하는 등의 부산스럽게 무대를 누비며 현실의 파편적 재현의 구문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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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MODAFE] 코타 키하라(Kota Kihara), <foot, foot step sound and step> '어둠이 스민 신체'REVIEW/Dance 2014. 6. 4. 02:08
▲ 코타 키하라(Kota Kihara), ©Kazuyuki Matsumoto 날벌레의 울음의 사운드와 으슥한 조명은 도시가 아닌 어느 시골, 숲과 가까운 자연 어느 곳을 환유케 한다. 어둠은 희미하고 그렇게 어둠으로서의 빛에서 어슴푸레하게 존재의 형상이 내비치며 시작되는데 움직임은 그 형상보다 형체로 또 소리화된 감각으로 더 드러난다. 반복된 쿵쿵거림과 이동, 구르기 등은 이 자연 안에서 홀로 내는, 홀로 있음을 드러내는 희미한 인광 그 자체다. 일종의 빛, 어둠이라는 공간에 뒤섞인 빛-형체로 등장해 그 안에 머무는 하나의 광경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곧 이 공간을 환유하며 신체는 그 일부, 그리고 독특하게 현시되며 자신의 환경 그 자체를 감각적으로 재배치하려는 어떤 시도들의 전개 양상으로서 드러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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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MODAFE] 안겸/주선희/최원석,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청춘의 맨 얼굴'REVIEW/Dance 2014. 6. 4. 02:04
▲ 안무가 주선희가 안겸, 최원석과 함께 결성한 창작 그룹 ‘모므로’ 이 셋은 청춘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지막 관객을 향한 채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는 얼굴의 현시에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중간에 한 번 더 앞을 향하는데 여기서는 어둠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있으며 어둠을 삶의 어려움, 특정 세대의 구체적인 어려움의 은유 자체에 직면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세 사람이 일렬로 하나의 움직임을 만드는 과정은 서로의 존재를 감지한 채 미약하게 발을 내딛거나 어떤 소극적 외양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엉클어져 그들이 마주하는 삶에서의 실질을 순간화한다. 곧 추상화된 형태와 리듬의 분배 대신, 삶이 개입된, 각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또 공존하며, 그 바깥의 절대적인 현실에 대한 소극적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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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MODAFE] 레브 샤론 에얄/가이 베하르(L-E-V Sharon Eyal/Gai Behar), <House> '몸-스크린, 분절되지 않는 몸'REVIEW/Dance 2014. 6. 4. 01:43
▲ 레브 샤론 에얄/가이 베하르(L-E-V Sharon Eyal/Gai Behar), © Christopher Duggan, courtesy of Jacob’s Pillow Dance 알몸으로 감각되는 군무는 순식간에 무대를 덮친다. 몸을 분절해 그 안에서 리듬을 만들고, 접은 몸을 두 번에 걸쳐 연속으로 펼치는 뒷다리의 차올림의 어떤 정점을 찍는 광경은 짧은 황홀경을 선사한다. 곧 음악은 밖에 있지 않고 그 안에 있다. 황홀경(extase)이 사실상 나를 바깥에 두는 것이라 한다면 여기서 밖은 음악적 풍광이 ‘비치는’ 어떤 신체 자체의 들림에 의한 것이다. 음악은 양분되어 둥근 초점과 그것을 둘러싼 커다란 배경으로 작용하는데, 여기에 따라 몸들은 양분되며 다음 음악과 맞물리기도 한다. 어떤 하나의 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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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MODAFE] 박근태, <Man's Diary> '기억에 종속되는 신체'REVIEW/Dance 2014. 6. 4. 01:37
▲ 박근태 안무작 [사진제공=모다페] 단독자와 그와의 등가물들 격인 세 쌍의 무용수가 나온다. 그리고 존재의 기억이 펼쳐진다. 한 명의 존재는 지난날 자신과 연인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내레이션으로 무대 뒤에서 목소리로 체현하고 세 쌍의 커플은 한 남자의 목소리를 재현하고 표현하는 일종의 부속물에 가까운 무용수들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럼에도 이 작품이 목소리와 움직임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하나의 공간감적인 시가 아니며, 이천 년대 이후 국내에서도 하나의 담론과 이슈가 된 다원예술적 움직임이라는 특징을 지닌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움직임(표현)이 목소리(텍스트)를 앞서기 때문이다. 물론 화자인 존재가 본격적인 춤이 펼쳐지는 동안 등장하지 않으며 시작과 끝에만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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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 <신체하는 안무>, ‘끊임없이 말-움직임으로부터 생겨나는 것들’REVIEW/Dance 2014. 2. 28. 14:29
▲ 최은진 포스터 우선, 공연의 각기 다른 무대를 선보인 세 무용수를 표피적으로 구성해 본다면, 첫 번째 무용수 윤상은이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자폐적인(autistique) 모습을 보인다면, 두 번째 위성희는 조금 더 관객에게 말이 움직임으로 전환되는 측면에 대한 설명이 표면적이다. 그러니까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에 있어 말과 움직임을 혼란스럽게 처리하는 것 모두를 하나의 연기 과정처럼 원활하게 선보이는 능수능란한 연기자(actor)의 모습으로, 곧 스스로를 드러내는 특별한 전개, 동시에 중계의 과정을 펼쳐내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최은진은 관객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이전에 그 드러냄의 벽에 스스로 부딪친, 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의 모습, 동시에 무언가를 계속 말해야 하는 거의 강박 자체를 다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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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2013] 전인정과 사이먼 바커 프로젝트 <문 없는 문>: '과정으로서 무대, 그리고 수많은 몸들'REVIEW/Dance 2013. 11. 7. 11:02
▲ 전인정과 사이먼 바커 프로젝트 [사진 제공=국제무용협회]빛은 어둠으로부터 출현한다. 비물질적 시각으로서 빛이 어둠을 안고 더듬더듬 출현하는 가운데 여전히 어둠은 물질적이고 촉각적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여기에 선 전인정은 무제한의 공간으로서 광야를 헤집는 눈 먼 이의 의식을 체현한다. 이 광야를 출현시키는 특정한 방식으로서 돎이 출현한다. 이 돎은 급작스럽고 동시에 멈출 수 없다. 돎의 현존은 막다른 막막한 길을 그 끝없음의 무한정의 잠재적인 영토로 바꾸며 몸은 최대치의 에너지를 발산하나 의식은 순일한 차원에서 명료함을 띤다. 이 회전으로부터 출발한 몸의 박동은 멈춤에서도 그 표정으로 그 힘찬 맥동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 펼쳐질지 모를 급박함의 진행을 충분히 내재하고 있으며 조임과 풂을 자유롭게 가능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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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핑 톰 무용단 <반덴브란덴가 32번지>: '던져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특이한 일상들'REVIEW/Dance 2013. 11. 7. 09:57
▲ 피핑 톰 무용단 [사진 제공=LG아트센터] (이하 상동) 구체적인 지명의 제목으로부터 출발하는 벨기에 ‘피핑 톰(Peeping Tom)’ 무용단의 는 산 중턱 눈보라가 간헐적으로 몰아치는 곳에 트레일러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낯설게 등장시킨다. 황량한 환경 속에 고립되어 있는 그들이 트레일러를 오가며 또한 트레일러 안에서 벌어지는 삶의 양태-그에 대한 시선은 객관적이며-는 구체적인 일상의 흐름 속에 파편적으로 드러난다. 반면 이는 그 단절적인 일상과 동시에 공간들의 불연속적 엮어짐의 이행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충분히 해명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는 다시 객관적인 시선이 갖는 하나의 의도적인 효과로 설명된다. 이는 존재들을 중심으로 하기보다 그들을 절대적인 환경 아래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 낮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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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F2013]<로튼애플(Rotten Apple)>(차진엽 안무): '시공간의 안무술'REVIEW/Dance 2013. 10. 25. 13:49
▲ (차진엽 안무) [사진 제공=한국공연예술센터] 극장 공간을 일종의 전시 공간이자 체험 공간으로 바꾼 것은 극장에서의 고정된(?) 관람을 당연히 탈피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아니 이는 탈피보다는 탈출구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더 이상 극장에서 최대의 것을 향한 최선의 몸짓이 정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 이를테면 최대의 것이 일회성을 띤 공연의 특성을, 최선의 몸짓이 단 한 번의 무대에 몸을 불사르는 노력이라면 정답은 그것이 관객에게 온전히 수용되어 감동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하나의 유토피아적 진단임이 확실해졌을 때 은 ‘공감각적 체험형 퍼포먼스 중심의 춤’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모색과 대안의 측면에서의 또 다른 절박한 시도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일종의 전시 공간에서의 움직임이 빚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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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2013] 라 베로날(La Veronal), <숏컷–세 도시 이야기 Shortcuts>: 말과 몸, 봄과 보임의 시차 속에서REVIEW/Dance 2013. 10. 18. 15:30
▲ 라 베로날(La Veronal), [사진 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외화면 목소리가 지정하는 묘사와 서술, 그 바깥에서 유희적인 캐릭터들의 파편적이고 반복적인 일상, 이 둘의 관계 내지 간극은 서로에 대한 완벽한 재현으로 작용하기보다 오히려 평행되며 나뉘는 차원에서 출현한다. 전체적으로 말은, 특히 첫 번째 도시 ‘레이캬비크’에서의 말은, 어둠의 공간에서 둘이 움직임을 쌓아 나가는 것에 그것에 순전하게 몰입하게 하지 않고, 모호한 서사의 일면에 재현되는 내지는 서술되는 측면에서의 부합되는 환상, 완전하게 파악될 수 없는 상황의 일부로 여겨지게 할 뿐이다. 이 말은 그래서 명확하게 현실을 만들기보다 (무)의식의 흐름으로 흘러가며 마치 주술처럼 내 안의 화자로 전이되며 파편들로써 현실을 불완전하게 파악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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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F2013] <스푸마토>: 현존을 만드는 방식의 안무REVIEW/Dance 2013. 10. 16. 13:15
▲ [사진 제공=한국공연예술센터] 배로부터 피어나며 위쪽으로 느리게 도달하며 무대를 장악하며 겹에서 또 다른 겹으로 펼쳐지는 안개, 이것을 자연 그 자체에 대한 환유이자, 비자의적인 안무 그 자체로 보지 않는다면 이 작품의 특질과 메시지 이전의 표현의 강력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그 안에서 안개에 뒤섞여 끊임없이 돎의 현존을 추구하며 이동하는 축을 가진 자동 회전 기계의 비인간의 형상으로 변해가는 여자 무용수의 몸짓으로 보이는 움직임은 그 은근하고 거대한 현존에 조응하는/맞서는 또 다른 생명의 현전이라는 서사 차원에서의 전개와 몸짓이든 수용의 측면에서건 인간으로서 어떤 가용 범위를 넘어서는 듯한 바로 그 부분에서의 현존이 맞물리고 있다. 후자는 그야말로 처음에는 느리게 도무지 믿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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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즉흥상설-고수푸리 '몸의 대화': '즉흥', 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자리REVIEW/Dance 2013. 9. 26. 14:57
즉흥은 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으로만 두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춤이 생성되는 순간 춤으로써 춤에서 미끄러지며 또 다른 춤으로써 춤이 되려는 시차적이고 불가능한 시도가 즉흥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는 다시 춤, 춤의 현전이 아닐까. 춤은 상대방을 의식한다. 그리고 그 몸에, 춤의 틈에, 춤의 드넓은 장에 들어가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아니 먼저 춤을 시작한 이로서는 상대방이 우발적으로 들어오기를 동시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를 바라며 틈을 벌리고 있다. 이런 절대적인 타자성과 조심스러움, 그리고 쫓고 쫓김으로 나타나는 이후 양상은 곧장 춤이 되지 않는 끊임없이 간극을 벌리는 시차에 다름 아니다. 유빈 댄스, 그리고 이나현의 춤이 갖는 실체적, 질료적 측면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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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녕, 마이 버터 플라이>: 연극의 현실로의 환원을 시도하기REVIEW/Dance 2013. 8. 18. 03:53
▲ 7/5(금)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프레스콜 장면(이하 상동) 시작은 실제 손숙의 극에 맞춰 공연 시작 전 진행 상황이 그려진다. 서은경과 김원해는 뒤늦게 등장하고 그것이 곧 시작될 것임을,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에서 시작된다. 공연 전 스태프가 공연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가상적으로 실제를 그리는 이 공연 시작 전의 모습은 이 공연이 ‘손숙의 인생과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공연’임을 그 바깥의 경계로부터 상정해 낸다. 이는 어떤 고전의 차용이 아닌, 현재의 삶과 역할 이전의 배우 자체로부터 출발하는, 어느 정도 그 자체로 손숙과 연극에 대한 것들이 현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손숙의 고유의 톤과 음색, 표정은 이제 어떤 ‘역할’로 건너가는 간극을 낳는 대신 손숙이 갖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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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리뷰REVIEW/Dance 2013. 8. 18. 03:21
김지원 & Emil Faski (독일 킬 발레단), 자신의 신체를 감싸자 내면의 표현이 되고 남자는 조명에 의해 환영으로 드러난다. 무겁고도 유연하게 곧 한 발로 중심을 잡을 때 역시 이는 고정된 순간보다 그 무게로 상대방과 한 덩어리의 신체를 이루며 그 무게중심이 드러나게 또 둔중한 자취로 가 버림을 드러내는 데 있다. 바람처럼 남자의 품을 맴도는 자취이거나 매우 가벼운 휘발의 표지에 일말의 황홀일 수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둘이 스쳐 지나가며 그리고 엇갈린 두 스텝으로 이 중간태의 두 순간 정도로 보인다. 윤전일 (함부르크 국립발레단), 윤전일은 바이올린 주선율과 피아노 구문의 단단한 중심을 잡는 선율에 이전됨의 시간에 감정의 밀도를 집약된 춤과 감정으로 군더더기 없이 보여준다. 이는 외떨어진 사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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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훈 <이웃>: '이웃으로서의 타자'REVIEW/Dance 2013. 8. 16. 02:48
▲ 박나훈 포스터[=박나훈 무용단 제공] 로비에서 박나훈과 김준기는 관객과 경계선을 긋지 않고 ‘어느새’ 출현한다. 이미 ‘정시’라는 관념과 그것을 둘러싼 침묵까지가 공연의 일부로 말려들어가고 있다. 영어 교육용 발음 청취 테이프의 무작위적인 재생은 그 자체의 리듬 패턴을 그리며 단속적인 출현의 텅 빈 기표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는 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도 춤이 가져가야 할 정서 역시 아닌 반면, 이 단어들과의 마주침은 이 두 남자가 각자의 영역을 그리며 맞닿고 떨어져 가는 단속적인 접속과 흩어짐과 같이 그저 나타남과 반복을 가능케 하는 순간적인 구성이라는 역량 아래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어깨를 맞대는 친밀한 인사와도 같은 제스처는 이 공연의 하나의 모티프이자 제사(題詞)이다. 이웃이기에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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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개와 그림자>: '하나의 사건', 뒤따르는 '잉여적인 것들'REVIEW/Dance 2013. 8. 16. 02:00
모나드, 사건, 푼크툼 ▲ 국립현대무용단 공연 사진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 (이하 상동) 칸막이 쳐진 큐브들, 이 모나드들이 이룬 하나의 거대한 프레임이 정면으로 들어온다. 그 속에는 솜이 담긴 것과 담기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상이한 양과 그 형태의 차이를 보인다. 전체의 프레임은 단 2-3초 만에 분해되며 인간의 네거티브 형태를 남긴다. 그리고 이 해체된 인간의 형상을 무대 전체 공간 구획을 만드는 것으로 이전된다. 곧 한 거대한 인간은 다시 수많은 개체의 유폐된 자아의 내면으로 치환된다. 이 칸막이 속 솜이나 간간이 띠는 붉은 실의, 일정하지 않은 양이 규정하는 큐브는 개별적인 것인 동시에 소통되지 않고 자족적이며 따라서 해석되지 않는 무엇을 의미한다. 미니멀리즘적인 이 단순함과 상이함의 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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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마로니에여름축제] 팩토리1+1+1 <Salon de Factory>: '춤의 메타적 리서치'REVIEW/Dance 2013. 8. 15. 20:32
▲ [2013 마로니에여름축제] 팩토리1+1+1 까페에서 먼저 일시적으로 체험한 이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으로 옮겨갔다 (이하 상동) 무용수만큼의 여러 흐름으로의 무용수들은 춤을 느슨하게 추며 넓게 퍼졌다. 관객 한 명씩과 네트워크하고 중앙의 무대로 끌어오기 위함이었다. 이는 곧 관객과 중앙의 경계를 허물며 하는 자와 보는 자의 경계를 역시 소멸시켰는데 이는 몇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의 무용수가 순환하며 갖가지 제스처를 취해 관객의 주의를 허물고 멈춰 있음의 긴장을 해소시켰다. “나는 지금 무대에 섰다”는 것을 전제하며. 어떤 놀람의 반응이 관객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다. 갖가지 상징적 기표들, 이는 어떻게 튀어나오는 것일까, 각종 의성어로부터 대사의 편린들은 어떤 근거로 튀어나오는 것일까. 이는 우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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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국립현대무용단 <개와 그림자>: '현실에의 다양한 표지들'REVIEW/Dance 2013. 6. 20. 09:55
분류된 구획 안 유희 ▲ 지난 5월 24일 국립현대무용단 리허설 장면 (언론 리허설 관람은 6월 5일)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 (이하 상동) 솜털 같은 흰 물체들을 층차를 둔 투명한 상자들의 합산이 무대 뒤쪽에 쌓여 있고, 무대 가를 두르고 있다. 색소폰 소리가 아련하게 한 더께 걸쳐 들어온다(참고로 리허설을 봤을 당시 음악은 완성되지 않았고 아직 준비 중에 있었다. 참고로 음악‧조명 등의 사용은 홍승엽 예술감독의 안무 이후 그에 맞춰 들어오는 게 통상적이라고 한다). 이들은 유영하듯 그 분위기에 침잠해 있고 그 안에서 논다. 누워서 헤엄치고 ‘각자의 내재적 시간을 갖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무엇보다 유아적이고 현실과 어떤 관계도 맺지 않는 듯 보인다. 개인적이고 비사회적인 인물들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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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발레 <이방인>: 숨 막히는 시공간 속 '이방인'의 존재REVIEW/Dance 2013. 6. 20. 00:38
사회, 이방인을 만들다 ▲ 2012 국립발레단 창작팩토리 선정작 연습실 장면 [사진 제공=이고은발레단] (이하 상동) 현대인(주인공 ‘뫼르소’를 비롯하여)의 복장, 한 명(뫼르소의 어머니)의 장례식과 측면에서의 고양된 음악에 인물들의 죽음을 재상기시키는 환영적 조각들로서 몸, 의자가 사용되어 스텝이 가능하지 않게 됨으로써 상체 위주의 움직임이 알 수 없는 표정과 함께 강조된다. 붉은 옷과 꽃-영상, 유혹의 기표는 ‘마리’의 자유분방함은 절정을 향하고, 의자로 둘러쳐진 공간의 변전과 함께 이후 명확하게 구획을 만들며, 그 안에 갇힌 한 명의 타자(다른 옷 색깔을 통해)가 된다. 이 안에 여러 존재자들을 지배하는 이의 등장과 함께 붉은 옷의 여자는 이방인이 된다. 적막한 공기 속 긴장은 발레의 정형적 몸짓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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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기 마랭 무용단 <총성(Salves)>: '지나감으로서 현현에서 열어젖힘의 정치로'REVIEW/Dance 2013. 6. 11. 09:53
'일상의 환영적 공간의 실잣기' ▲ 프랑스 마기 마랭 무용단 (안무가: 마기 마랭) [사진 제공=LG아트센터] (이하 상동) 릴 레코더 네 대, 널빤지들과 그 사이 열린 문들, 그리고 불 꺼진 객석, 곧 실잣기로 이어지는, 자신만의 내재적인 행동을 하는 이는 관객 한 명을 무대로 불러 세우며 그 실잣기의 네트워크적 층차를 만들어 간다. 이는 예상된 절차로서 반복된 행위로써 번져 나간다는 점에서, 사전에 약속된 ‘듯한’ 적확한 지정에 따르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모두(의 과정)는 무대라는 한계를 지우고 ‘일상의 환영’을 만든다. 곧 실제로 보이는 환영으로써 무대라는 환영을 인위적으로 지우고 동시에 지시한다. 이러한 ‘과도함’의 설정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무형의 실잣기는 실제적인 행위이자 다른 무엇도 지시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