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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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 〈UNDOIT〉: 행위와 움직임 사이에서REVIEW/Dance 2021. 9. 13. 21:52
행위가 어떤 목적성을 띤다면, 움직임은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있다―움직임은 움직이다의 명사화인 셈이지만 동시에 특정한 시간과 형태로 의미화한다. 행위가 목적에 따라 도구들을 수단으로서 사용한다면, 움직임은 도구를 만지는 몸짓까지도 목적으로 내세울 수 있다. 행위와 움직임 사이의 간극을 임시적으로 구성하는, 이러한 구분 도식에는 물론 예술이라는 지침으로부터 심미화되는 움직임이라는 전제가 있다. 반면 이 예술의 자리, 움직임에 행위를 집어넣는다면, 남는 건 행위임을 지시하는 움직임이다. 또는 행위로서의 움직임이다. 따라서 이 과정은 행위에서 움직임으로의 수렴을 낳는다. 최은진 안무가의 〈UNDOIT〉은 일견 행위의 움직임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행위의 변형과 해체를 통한 움직임의 확장으로 보인다. 행위와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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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문, 〈외로운 개, 힘든 사람, 슬픈 고양이〉: 시대를 말하거나 역사를 구성하는 연극의 언어REVIEW/Theater 2021. 9. 13. 21:33
예술인에 대한 비하 장면을 포함한다고 하는 〈외로운 개, 힘든 사람, 슬픈 고양이〉는 예술을 하나의 범주로 두며, 또 다른 정치의 한 범주로서 동물권이라는 의제를 다루고자 한다. 정확히는 그러한 의제를 다루는 사람들의 재현을 통해 예술에서의 새로운 의제로서 동물권을 내세운다. 여기서 예술은 보이지 않는 현실, 곧 동물권이 법으로 자리하는 데 역할을 했을 사람들의 말과 사유를 구성하고 보여주며, 법이 만들어진 절차와 과정을 인간 다시 배우의 그것으로 전유한다―동시에 법을 인간의 언어로 전유한다. 이러한 역할에는 배우의 기술과 개성이 반영되며, 정진새 연출이 함께해온 극단 문의 연기 양식 역시 살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가시화되지 않은 동물권의 법에 대한 역사의 시공이 그려진다. 이에 따르면, (진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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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기다란 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유동적 언어에서 단단한 언어로REVIEW/Dance 2021. 9. 9. 00:39
〈기다란 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은 언어와 움직임의 교환을 놀이처럼 시험하는 듯 보인다. 화이트보드와 의자, 양말 등 이들은 이미 놓여 있던 사물이나 착용하고 있던 의상을 수행의 근거들로 활용한다. 그리고 정방형에 가까운 공간 사이에 또 하나의 정방형에 가까운 벽이 놓여 통로를 구성하는 공간의 삼면을 이용해 이동의 반경을 그려나가는 퍼포먼스에서, 제목은 장소를 체현하고 있었다―장소는 제목을 구현하는 적합한 장소였다. 여기서 “단단히 고정하세요”는 움직임에 대한 정언명령으로서, 공연 전반을 지배하는 기호로서, 그 자체를 규칙으로서 그 둘이 지정한다는 점에서 재귀적으로 수렴한다―그 근거를 지정할 수는 없다. 첫 번째 장면인, 테이블을 중간으로 두고 서로 마주한 이종현과 유지영은 서로를 복제한다. 거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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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적, 〈햄릿의 비극〉: 독백, 무대, 수행의 조각들REVIEW/Theater 2021. 8. 30. 09:12
〈햄릿의 비극〉은 극 대부분 햄릿(박하늘 배우)과 거트루드(곽지숙 배우), 클로디우스(김은석 배우) 세 명의 인물 간의 발화로써 진행된다. 이는 첫째 마주하는 대신 시종일관 정면을 향한다. 특히 햄릿과 거트루드의 비중이 높다. 어느 정도의 대화가 있지만, 셋 모두 극 대부분에서 각자의 독백의 심리를 전개하는 것에 가깝다―이 셋의 말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독백을 가정하며, 따라서 특정한 수신자를 위한 발신으로 감각되지 않는다. 대화랄 것은 햄릿과 거트루드 둘 사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발생하며 이는 예외적으로 현실의 평면을 구성한다. 특히 햄릿과 다른 둘과의 발화의 간극은 하나의 평면에 이 셋이 속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오는데, 햄릿이 관객석에 더 가깝게 위치한다는 것, 거트루드와 클로디우스는 더 뒤에서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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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연, 《집으로》: 여정을 위한 의식으로서의 퍼포먼스-전시REVIEW/Visual arts 2021. 8. 29. 00:42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하차연 작가의 개인전 《집으로》는 쓰레기를 갖고 하는 행위, 작업, 쓰레기에 대한 관찰 등이 주를 이룬다. 행위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으로 주로 드러나는데, 이는 시각적인 차원과 시간적인 차원에서 퍼포먼스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쓰레기를 갖고 물리적으로 제작한 작업인 〈매트, 보트, 카펫-나의 매트, 가족을 실을 배, 모두를 위한 양탄자〉(1988, 2021)―이 작업의 경우 1988년에 작가가 시도했던 페트병들을 활용해 새롭게 만든 것이다.―는 업사이클링 아트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눈에 띄는데, 이는 심미화되지 않은 각각의 쓰레기를 고스란히 드러낸 바에 따른다. 쓰레기는 쓰레기로서 지시되고, 그 쓰레기라는 기표에 관점이 실리는 방식이다. 〈Balade de Carol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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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P合(힙합)》, 음악과의 관계에서 바라본 세 가지 힙합으로서의 현대무용REVIEW/Dance 2021. 8. 26. 08:04
김설진 〈등장인물〉, 김보람 〈춤이나 춤이나〉, 이경은 〈브레이킹〉의 순으로 진행된 세 개의 무용 공연인 《HIP合》은 모두 힙합을 모티브로 하며 국악을 접목한다. 그럼에도 각각의 다른 공연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모일 때 공연의 순서를 구성하는 건 기획의 예술적 묘가 전제된, 공연 외적인 차원의 언어, 하지만 관객의 경험과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무대 바닥을 하강시킨 상태에서 시작한 〈등장인물〉을 처음으로 한 ‘힙합’의 두 번째 무대는 빈 공간으로서 무대를 활용한 〈춤이나 춤이나〉가 뒤따르는 게 당연한 듯 보인다, 가장 많은 출연진 수와 천장 위의 무거운 투명 오브제 구성의 〈브레이킹〉이 가장 뒤에 와야 할 것임을 상정한다면. 그렇지만 이는 순전히 공연 준비의 효율적 차원으로만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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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람,〈the thin ( ) line〉: 극장이라는 전략과 유동하는 극장의 형식REVIEW/Dance 2021. 8. 25. 12:13
이 공연의 개별성, 구체적 지점들을 자세하게 다루는 대신, 이 공연의 프로세스가 전제한 구조의 동역학에 초점을 맞춰 이를 다뤄보려 한다. 이는 이 공연의 기존 극장 공연과 다른 전략과 그 특이성에 대한 차원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과 관련된다. 소극장은 객석을 치우고 평평한 바닥 공간을 확보하고, 객석 문과 무대 뒤편의 문을 개방해 관객의 들고남의 순환이 가능하게 구성된다. 각각의 퍼포머의 대기 공간은 중앙의 무대와 교환된다. 관객의 자리 역시 재배치된다. 여기서 세 시간의 긴 소요(所要) 시간이 소요(逍遙)를 요청한다는 점은 공연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하나의 축이다. 관객의 자리 유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건 드라마투르그(양은혜)의 몫이다. 극장 전반, 곧 극장 로비와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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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꼬부랑게하’(강영민), 인제를 구성하는 시공간REVIEW/Performance 2021. 8. 10. 00:48
‘꼬부랑’은 할머니의 세월이 각인된 특유의 몸짓이자 인제천리길의 구불구불한 길을 의미한다. ‘게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줄임말로, ‘꼬부랑게하’는 강원도 인제의 천리길로 뻗어나가기 위해 임시로 점유한, 세 곳의 숙소를 의미하며 동시에 세 곳의 숙소 역시 천리길의 일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꼬부랑게하는 작가들이 모여 창작의 모티브를 얻고 이를 자신의 창작으로 연장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고 지시하려는 강영민 작가의 아이디어와 실행으로 지어져 간 일종의 개념적이며 퍼포먼스적인 시공간이라 하겠다. 강영민 작가가 고안하고 제안한, 여러 인제의 트래킹코스는 인제천리길의 다양함에서 연원하는 한편 꼬부랑게하와 인제를 이으며 풍부한 인제에 대한 심상 지리를 구성하게 했다. 여기에 접경지역이자 (주로 군인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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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애도에 관하여REVIEW/Theater 2021. 7. 25. 00:49
‘살아갈, 사라진, 사람들: 2021 세월호’의 일환으로 열린 0set프로젝트의 〈거리두기〉는 4.16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오준영 군의 가족(오민영_오준영 군의 동생, 오홍진_오준영 군의 아버지, 임영애_오준영 군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 그리고 실제 등장한 오준영 군의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그 가족이 남긴 메모를 읽는 것, 그리고 극장 주변을 한 바퀴 도는 투어의 역순으로 구성된다. ‘세월호’라는 단어는 정치적으로든 미학적으로든 너무나도 강력하며 따라서 세월호를 언급하지 않고 그것을 다른 식으로 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곧 세월호를 다루는 작업의 과제는 궁극적으로 세월호와 현실의 틈을 언급하면서 공고한 우리, 곧 공고해질 수 없는 우리를 재정초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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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 코로나 바이러스를 中心으로〉, 효과는 의미를 초과하는가REVIEW/Theater 2021. 7. 22. 10:22
브레히트의 서사극 양식은 어떻게 현재의 연극 메소드로 활용될 수 있을까. 그것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획득하는가. 형식이 내용과의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라면, 그 내용은 순전히 전달을 포기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 내용을 토대로 또 다른 내용을 구성하기 위한 것일까. 비판적 거리는 내용과의 순전한 불화를 구성하는가, 내용 너머 진리의 주체라는 자리를 수여하는가. 물론 이러한 양자택일의 질문은 브레히트의 극작법이 다양한 매체 활용과 유희적인 요소를 근거 삼아 ‘재미’를 주려 했다는 점을 은폐할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 코로나 바이러스를 中心으로〉은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메소드로 활용해 동시대적 의제에 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할 것을 요청한다. 합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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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ŏnans〉, 라이브니스 안에 산포되는 협업의 형상REVIEW/Performance 2021. 7. 22. 08:33
〈sŏnans〉는 「오이디푸스 왕」 이라는 희곡이 가진 서사 전개는 희미한 가운데, 박한결의 여러 작업자와의 문어발식 네트워크의 실현이 공연을 이룬다. 또한 〈sŏnans〉는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음을 전시하는데, 이러한 현재성의 명백함은 그 중간마다 삽입되는 자막을 통한 주요한 「오이디푸스 왕」의 플롯을 일종의 고정된 뼈대로 지시하는 동시에 그 바깥으로 마구 튀어나오는 자신의 위치를 결정지으며 그 둘의 위계를 전도시켜 버린다. 「오이디푸스 왕」 안의 플롯들은 각 장의 창작자들이 등장하는 시공간 사이의 간주 구간이 된다. 실상 이런 어둠 속 자막은 창작자들의 극장 대기 공간에서부터 극장 안으로 그들 한 명 한 명이 등장할 때 카메라로 중계되는 형식인, 각 창작자의 동일한 등장 방식을 통한 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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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빵〉, 징후적 주체, 전윤환의 자기만의 방REVIEW/Theater 2021. 7. 16. 11:47
코인 열풍의 막차에 탑승해 전 재산을 투여한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실제 하루치 관객 수입의 동시 투자와 함께 진행하는 전윤환의 수행적 연극인 〈자연빵〉은, 전윤환의 삶의 불순물들을 매끄러운 짜임으로 구성하는 대신 단순히 시간을 축적하는 식으로 흘려보낸다. 달리 말해 전윤환은 여러 파편적 화두에 관한 자기 생각들을 본인의 의식의 흐름인 양 제시하는데, 이는 하나의 내러티브로, 완결된 인물로 구조화되지 않고, 단지 전윤환이라는 인물의 역사, 곧 개인사로 자리하게 된다. 따라서 전 작 〈전윤환의 전윤환_자의식 과잉〉(2020)은 오히려 혼자 무대를 누비는 〈자연빵〉에서 온전히 수행된다. 엔딩 크레디트는 올라가지 않지만 관객이 자리를 뜨게 하는 마지막 엔딩 곡, 허정혁의 ‘알지 못한 채’의 가사는 이 극을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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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의 ‘그 후 1년’, 팬데믹 이후 어떤 예술의 양상들REVIEW/Dance 2021. 7. 16. 11:34
국립현대무용단의 ‘그 후 1년’은 2020년 국립현대무용단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공연이 취소되고 일 년 후에 재개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제목은 팬데믹이 어느 정도 공연의 판도를 변경시키고 다르게 만들었는지, 1년의 경계가 얼마나 확연하게 관객되는지를 관객 역시 공유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각기 다른 세 개의 공연은 이러한 환경에 맞추어 그 매체 자체가 변경되거나(〈승화〉) 또는 직접적인 팬데믹 환경을 알레고리로 하거나(〈점.〉) 그것과 결부 지어 예술의 조건을 의제화하는(〈작꾸 둥굴구 서뚜르게〉) 등 그 대응의 정도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의 대응들을 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그 후 1년’을 보는 하나의 시점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랄리 아구아데+백종관, 〈승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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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예경에 대한 입장 및 사실 적시카테고리 없음 2020. 10. 15. 02:04
아트신 내 올라간 1월 1일 올라간 도용 원고 관련해 사실을 적시합니다. 해당 원고들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의 매체-평론가 지원사업을 통해 매칭된 이양헌 필자의 원고인 , , 를 2020년 1월 1일 이양헌 필자에게서 받아 당일, 매체 내에서 최종 승인하고, 예경에 보내 1월 7일 최종 승인된 원고들입니다. 이는 예경이 인증한 1차 원고이자 최종 원고입니다. 해당 원고들에 대해 9월 3일, 유운성 영화평론가에 의해, 본인을 포함한 세 평론가의 도용 원고들이라는 최초의 문제 제기가 있었고, 9월 15일, 예경에서 보낸 메일에 첨부된, 아트신이 예경에 보낸 1~3차 원고 중 1차 원고가 아트신이 1월 1일 예경에 보내 1월 7일 승인받은 원고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예경의 9월 21일 공문을 통해 예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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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신 최종 입장 및 사과문](9월 15일 부기)카테고리 없음 2020. 9. 14. 22:21
안녕하세요. 아트신 편집장 김민관입니다. 아래의 글을 통해, 최근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에서의 사실관계를 정정하고 바로잡고자 합니다. 아트신은 9월 14일,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와의 통화를 통해, 2020년 1월 1일 예경에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첫 번째로 제출해 최종 승인된 원고가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8월 21일 예경에서 받은 공문을 다시 살피는 중에, 1차 원고가 1월 7일에 승인이 되었다고 했고, 이는 1월 1일 아트신이 보낸, 원고가 포함된 메일에 대한 답변으로, 7일 아트신이 예경으로부터 받은 메일에는 지난번(=1월 1일) 보낸 원고 및 자료를 잘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으로 추정하건대, 1차 원고는 이양헌 평론가가 아트신과 예경에 보냈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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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실천+비평(오정은)REVIEW/Visual arts 2020. 8. 20. 16:43
술술+실천+비평(2019)오정은 (미술비평)blog.naver.com/aquablue_0 다른 개인나는 지금 문래동의 한 건물 앞에 서 있다. 「문래 술술랩」(이하 「술술랩」)으로 이름하게 된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건물의 문 앞이다. 용도를 다한 낡은 건물이 영등포문화재단의 으로 한 달여 동안 예술가의 공유지로 사용된 장소가 「술술랩」이다. 나는 한 기획자의 소개로 한 달 전 이 공간을 처음 만났다. 노래방 업소로 운영되던 흔적이 역력한 지하 1층, 남은 간판과 구조로 보아 작은 식당과 주차장이었을 지상 1층, 그리고 고시원이었을 2~5층이 집기류의 온전성과 청결, 수도와 전기를 잃고 예술이라는 국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2층부터 5층까지 기획자 네 명이 한 층씩을 맡아 창작자 몇 명을 공모하거나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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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반, ‘가변적 풍경을 직조하다’REVIEW/Visual arts 2020. 3. 16. 19:02
Intro ▲ 이해반, 한탄강(작업 세부), 2014. 리넨에 오일, 오리엔탈 잉크, 제소, 193.3×130.3cm. 서구/근대의 풍경(화의 탄생)은 대상과의 적당한/안전한 거리를 통한 시선의 지배를 전제한다(‘조망의 시선’). 반대로 동양/전근대의 풍경(화, 가령 산수화로도 불리는 그림)은 대상과의 마주침과 뒤섞임을 가정할 수 있었다(‘함입의 시선’). 풍경에 대한 이분법적 도식은 동시대에는 풍경과 주체의 복잡한 역학 관계, 곧 세계를 보는 또는 세계에 위치하는 특정한 주체의 방식으로 다시 성찰될 수 있다. 풍경으로부터 사라지는 주체(에 대한 비판)이거나 실재로서의 풍경이 주는 기호(에 대한 긍정)이거나 풍경은 이제 투명한 가시성이 아니라 세계를 보는 하나의 알레고리이자 당대(의 시각적 사유)를 일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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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19] 휴먼후드, <토러스>: '공간(에)의 체현'REVIEW/Dance 2020. 3. 16. 16:56
각자의 움직임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무리를, 대형을 그린다. '동류'의 움직임이 시공간의 지시 없이 지속된다. 어슴푸레한 공간에서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것, 가다가 한 번씩 멈추면서 속도를 느릿하게 분배하는 것, 이러한 집단적 에너지는 우주적 공간 외에 다른 메타포를 가리키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움직임 자체가 일종의 전자음악적 공명이 그리는 무한한 시공간의 체현으로 보인다. 일군의 무리는 반복된 동작을 선보인다. 먼 곳을 그리는 사람의 반대편에서 가장자리를 그린다. 이는 겹의 무늬로부터 이루는 간결한 선분(의 유동성)으로 축약된다. 공간은 이 단순한 선분들의 궤적 아래 떨리고 공명하며 여기에 의도적으로 바람을 의태한 사운드, 땅을 두드리는 소리 등 자연의 유사 효과음이 이 공연이 가리키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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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19] 파울라 킨타나, <환희>: 변환으로서 거울 공간REVIEW/Dance 2020. 3. 16. 16:56
어슴푸레한 공간, 밝아지는 스크린, 천장에 매달린 옷, 무엇보다 물을 채운 수조 위에 형체의 비침과 일렁거림 그리고 표층의 소리, 파울라 킨타나는 바닥에 흡착되어 움직인다. 다리를 찢은 채 몸을 땅에 붙여 이동하는데, 처음 어떤 벽이 긁히는 소리 같은 사운드는 물보라를 일으키는 몸과 기이하게 동기화된다. 어느새 더 밝아진 조명으로 인해 아래로 신체는 물에 비치게 된다. 이러한 일종의 스크린으로 기능하는 물의 반영은 신체를 깊이로 잇고 동시에 마주하게 한다. 여기에 미미한 이동이라고 볼 수 있을 동작은 거의 같고, 이는 거의 측정할 수 없는 속도의 양상을 띠므로, 관객이 확인하는 건 움직임의 순간들이라기보다 움직임의 지속이라는 사실 자체이다. 또한 순간의 변화이다. 똑같은 속도와 동작으로 정방형의 공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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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19] 프란체스카 포스카리니, 안드레아 코스탄초 마르니티: '탈얼굴의 타자성'REVIEW/Dance 2020. 3. 16. 16:53
프란체스카 포스카리니의 은 두 가지 차원에서 실험을 전개한다. 하나는 이들의 움직임이 공간 안에 몸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측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공간 측정적이라는 점인데, 순간의 심미적 기호의 발산이 아니라 공간을 어떻게 움직임이 반영, 반추하는지를 인지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처음 팔을 뒤로 보내는, 앞뒤로 대칭적인 두 번의 움직임이 가진 간결함(이 주는 심미성)을 제한다면, 대부분의 움직임은 따라서 대단히 재미가 없다. 이는 무미건조하게 공간을 이동하고 정위하며 또 배분하는 움직임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과정이다. 다른 하나는 사운드를 움직임의 물리적인 지지체로 두고 몸의 움직임과의 상관관계를 실험해본다는 것이다.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해 이들은 현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이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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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19] 아트프로젝트보라, <<무악舞樂> 보고, 듣다>: 재현의 지지체로서의 행위REVIEW/Dance 2020. 3. 16. 16:49
▲ 아트프로젝트보라 <<무악> 보고, 듣다>ⓒCreamart [사진 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상동) 는 춤이라는 형태를 지지하지 않는 듯 보인다. 동시에 어떤 사운드 장치를 재전유하여 다른 사운드를 구성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듯 보인다. 여기에 전제된 명제는 가령 이와 같은 것이다. '모든 소음은 '들을 만한 어떤 것'(음악적 사운드)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행위는 (춤이 아니라) 사운드의 일종이다. (움직임 역시 들을 수 있는 어떤 매질이다)' 결과적으로 사운드의 재구성으로서의 움직임은 행위 자체로 움직임을 확장하며 짜인 안무로부터 자유로움을 획득하는 동시에 그러한 움직임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듯 보인다. 그리하여 이 움직임은 사운드를 구성하기 위한 도구적 움직임(으로 귀결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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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19] 로베르토 카스텔로,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 강박에의 황홀REVIEW/Dance 2020. 3. 16. 16:48
▲ ALDES/로베르토 카스텔로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Park Sang Yun[사진 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상동) 일정하게 아래로 흘러내리는 방향성으로 인지되는 패턴 무늬의 무대 전면의 프로젝션 아래의 움직임. 일종의 스크린으로서 극장 안에서 그 무늬와 교접하며 동기화되는 움직임은 스크린의 연장으로 기능하며 마치 흘러내리는 스크린 같다. 여기서 몸은 준자율적이며 스크린에 복무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스크린은 이러한 생명력에 감화되어 움직임을 지시하며 신체적 움직임 자체가 된다. 여기에는 타악류의 일정한 사운드 리듬이 전제되는데, 이는 이 무한한 걸음으로 대변되는 움직임의 지속을 안으로 접히게 한다―만약 영상과 같이 사운드의 강박적 작동이 없었다면, 영상으로 인해 내부가 구성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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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19] 마리 슈이나르 무용단, <앙리 미쇼: 무브먼트>: 세계를 읽는 법REVIEW/Dance 2020. 3. 16. 16:47
하나의 게임의 법칙이 전제되고 이는 끊임없이 중첩된다. 양면으로 펼친 책의 도상을 띤 스크린에는 끊임없이 오른쪽 장에서 상형문자들이 뜨고 이를 퍼포머들은 표현하고, 다시 문자는 왼쪽 장에서 축소돼 쌓인다. '문자의 움직임 도해'로 볼 수 있는 공연은, 스코어 자체가 거의 동시적으로, 하지만 선제적으로 지시된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포즈 또는 움직임은 매우 파편적인 데다 구현과 동기화에 모든 게 맞춰 있으므로 공연은 매우 명확할 뿐더러 움직임에는 어떤 다른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듯 보인다. 개별의 2차원 시각적 기호들은 3차원의 움직임의 제약 조건이 되지 못하는데, 이는 무엇보다 3차원의 움직임이 움직임의 시각적 표상 (불)가능성을 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공연이 보여주는 건 매체 간의 번역(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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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 미술가의 미술가 게임REVIEW/Visual arts 2019. 9. 18. 19:28
오정은 *『Art in Culture』 8월 호에 한편의 픽션 에세이가 실렸다. 제목은 「존버의 일주일 -2019년 한국 젊은 미술가의 창작 분투기」. 말 그대로 존버세대 작가의 일상을 1인칭 시점의 픽션으로 쓴 글인데 작가로서의 입지를 찾기도, 안정적인 생계를 맛보기도 어려운 요즘 청년의 우울한 상황과 자조 섞인 한탄을 묘사했다. “세상엔 작업 잘 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리도 많은 걸까?”라는 문장에서, 어쩐지 포화상태로 분출구 없이 노오력하는 이 세대의 비극이 묻어난다. 그러나 ‘세대’라고 하는, 전 인류에 적용 가능한 생물학적 연령 개념을 들어 이들을 보편의 상에 묶기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내 작품만 보면서 한마디씩 해 주는 일이 없거든.”이라는 화자의 외로운 푸념에서 드러나는 애태움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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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Project BORA & Guests, <Silicone Valley>, <PARADISE>, <꼬리언어학> 리뷰REVIEW/Dance 2019. 8. 4. 21:51
샤하르 빈야미니, : ‘밀도를 지속하기’▲ 샤하르 빈야미니(Shahar Binyamini) 안무, [사진 제공=아트프로젝트보라] (이하 상동)샤하르 빈야미니(Shahar Binyamini)의 안무작, 에서 퍼포머들의 하나하나의 동작은 매우 강렬하게 인식된다. 음악의 강렬함과 고양된 움직임이 어떤 여지없이 펼쳐진다. 붉은색 조명의 레이브 파티에서 신체들은 음악과 스스로의 움직임에 전염, 도취된 것처럼 보인다. 관객의 몰입은 빵빵하게 스피커를 올린 음악이 갖는 공간 전체의 공명이 그 움직임으로 수렴하는 데서 비롯된다. 곧 몸이 체현하는 음악과 음악을 그 신체로 수렴시키는 시청각적 감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관객은 붙들린다. 퍼포머들은 허리는 꽂꽂하게 유지한 채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동작이나 리듬체조의 동작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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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Marcos Morau), <코바(Kova)>, <쌍쌍(Ssang-Ssang)>: ‘상상력을 구현하지 못할 때’REVIEW/Dance 2019. 8. 4. 21:31
▲ ⓒAiden Hwang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 는 수직 체계의 몸에서의 프로세스를 변경한다. 허리는 바닥에 닿는 일종의 두 발이 되며, 이러한 보행으로서 매체의 전환은 땅 자체에서의 유영을 가능하게 한다. 두 다리는 일종의 긴 팔이거나 허리로부터의 움직임이 되며 움직임의 궤적은 구불구불하거나 원형을 그리게 된다. 두 발이 곧 허리가 됨으로써 땅 위에서의 유영은 땅에 붙은 신체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고, 이에 따라 뭉툭하고 묵직한 신체로서 다른 존재가 가진 질서를 수여한다. 곧 기괴한 존재의 움직임을 만든다. 여기에 관절을 꺾는 움직임이 주가 되므로 몸의 분절들이 다른 속도와 궤적을 지닌 한 덩어리의 몸의 지층에서 출현한다. 이 신체 둘[로레나 노갈(Lorena Nogal), 마리나 로드리게스(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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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희, 《딜리버리》: ‘수렴’하지 않는 공간REVIEW/Visual arts 2019. 8. 4. 21:23
▲ 구동희, 《딜리버리》 전시 전경 [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이하 상동)전시는 배달 서비스가 일반화된 한국 사회의 물류 유통 체계를 일종의 알레고리로 가져왔지만, 실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나 해석이 아닌, 일종의 복잡한 구조 자체라는 형상과 체험만을 남겼다. 물론 입구를 인트로로 보자면, 조각은 피자에 들어 있는 여러 토핑을 비롯한 사물들의 일부가 겹겹이 쌓여 기괴한 형태의 구조물로 확장되어 있고, 그 옆의 영상에서 배달원이 아닌 피자의 시각에서 잡은 배달 과정이 나오는데, 이는 직접적인 사회 현상을 반영하기보다 각각 손과 그 밖의 일부 광경만 나오는 이미 해체된 시선과 추상화와 집적을 통해 재구조화된 의사-사물만이 있는 것이다.공간에 진입하면 실은 그 안과 바깥, 그리고 어느덧 입구와 출구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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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변방연극제,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김원영 x 0set프로젝트): 미학의 언어와 예술의 언어REVIEW/Theater 2019. 8. 4. 21:07
▲ 김원영 x 0set프로젝트) 공연 모습, ⓒ한민주 [사진 제공=서울변방연극제] (이하 상동)제목에서 드러나듯, 퍼포머 김원영은 장애를 가진 스스로의 신체가 타인의 시선을 방어하기 어려운 불리한 상황에 놓일 때 보지 말 것을 법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법의 항목들은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리스트를 이룬다. 그리하여 인격에 대한 보존의 욕망과 존중의 회피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직접적인 시선이 해체되는 합의가 형성된다. 하지만 관객은 중대한 기로에 놓인다. 이는 김원영이 한 개인이면서 퍼포머-주체이기 때문인데, 실은 이미 그러한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이를 예시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러한 장면은 기억의 증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순간에 이를 피해야 한다. 이런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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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구성하는 두 개의 안무: <미니어처 공간 극장>과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REVIEW/Dance 2019. 8. 4. 21:00
▲ 허윤경 안무, 공연 모습, ⓒ한민주 [사진 제공=서울변방연극제] 의 안무가 지시문을 수행하는 관객들의 즉흥적인 행위가 교차하고 축적되는 비선형적 과정으로 구성되는 가운데, 퍼포머로 위치한 안무가는 유일한 스포트라이트의 주체 대신에 현장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재생성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는 매개자가 되었다면, 의 안무는 안무가가 세 명의 퍼포머, 그리고 관객과 함께 원형의 관객석에 위치하고 세 명의 퍼포머는 미세한 응시를 통해 서로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기본적인 단위의 움직임들을 조금씩 확장하는 가운데 무대를 구성한다. 곧 관객석이 무대이고, 그 중앙은 비어두고 시작함으로써 관객은 (옆의 퍼포머로부터의) 직접적인 경험과 (퍼포머 옆에 앉은 다른 관객의) 매개된 경험을 동시적으로 하게 된다.이 관객을 퍼포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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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변방연극제,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안무가: 황수현): 통제된/되는 감각REVIEW/Dance 2019. 8. 4. 20:55
▲ 황수현 안무, 공연 모습, ⓒ한민주 [사진 제공=서울변방연극제] (이하 상동) 는 원으로 배치된 관객 사이사이에 피드백 루프로 미세하게 움직임을 확장하는 세 명의 퍼포머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감각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제목은 사실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에서 ‘나’는 관객을 그리고 ‘그 사람’이 퍼포머를 의미한다면, 퍼포머의 감각을 나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으로, 퍼포머와 관객은 일종의 거리와 지연을 반영한다. 이를 퍼포머와 퍼포머 사이로 바꾸어볼 수도 있겠지만, 세 퍼포머 사이에서는 지연에 따른 간극이 미세하게 반영되는 정도이다. 또는 그 간극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루프)을 형성하는 단위에 속하게 된다.구체적으로 아래로 떨어뜨린 머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