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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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모, 〈끝이야 시작이야〉: 연극에 대한 극장의 언설REVIEW/Theater 2022. 6. 16. 18:59
〈끝이야 시작이야〉는 연극 이전에 자리하는 극장에 대한 거대한 언설이다. 또는 일상을 빌려와서 극장에 두는 작은 시도이다. 김은지, 송철호, 윤정로 배우 세 명은 매끄러운 서사의 당위를 갖지 않는, 일상의 파편들이 급격히 분절되는 상황 속에서 이전의 시간을 빌려온다. 그들은 서사의 중간에 위치하지 못하며 서사의 시작이자 끝인 어떤 모호함에 자리해야 한다. 분명하게 서사를 매개하는 대신 흐리멍덩한 서사에 적응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은 극장에 놓여 있으며, 그 놓여 있음에 대한 전사를 사유하는 것으로 연기를 대신해야 한다. 처음 송철호와 윤정로는 극장 바닥에 놓인 하얀 페인트를 부어 놓은 투명 플라스틱 통에 페인트를 묻혀 긴 롤러로 극장 벽을 칠한다. 아니 아무것도 안 묻은 롤러로 벽을 칠하는 행위를 정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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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극 《트랙터》: ‘희미한 연결들’REVIEW/Theater 2022. 6. 16. 18:40
청소년극 단만극 연작 《트랙터》는 세 명의 희곡 작가가 쓴 세 개의 작업이 하나의 작업으로 연결되어 있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한 명의 연출이자 동일한 배우들, 그리고 희곡 작가들의 교류가 접점에 대한 인지를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구성의 차원에서 세 작업의 특징과 그에 따른 순서의 지정은 세 다른 공연의 연결에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고 할 것이다. 〈7906번 버스〉(한현주 작)가 멈춘 버스의 장소, 곧 일종의 비-장소에서 고등학생 세영(신윤지 배우)과 은호(최상현 배우), 운전기사 자은(박은경 배우)은 재난과 사고에 대한 개인의 트라우마를 공유하게 된다. 처음 자신이 사는 곳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쓰러지며 자신이 탄 버스를 덮친 사고를 이야기하는 세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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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작/연출, 〈비둘기처럼 걷기〉: 도시(인)의 무의식을 탐사하기REVIEW/Theater 2022. 6. 7. 00:55
〈비둘기처럼 걷기〉는 공간 특정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존재를 뒤섞는 언어적 실험과 공간을 맵으로 설정하고 그에 따라 공간에 부착하는 언어들로써. ‘비둘기처럼 걷기’는 알레고리가 아닌 환유적인 기호가 되며 판타지를 물질화한다. 이는 비둘기에게 눈을 쪼아 먹힌 사람이 자신의 눈을 먹은 비둘기가 걸어가는 장면과 그에 해당하는 내레이션이 나올 때 극적으로 고양된다. 비둘기는 휴대전화에 작은 휴대용 삼각대를 연결한 것으로, 이 ‘비둘기’는 자신의 조종자의 바깥을 함입하며 그의 시선을 대리하거나(이 ‘비둘기’를 보는 조종자의 시선은 바깥을 온전히 향하지 못한다.) 또는 카메라 방향을 그 조종자가 돌림으로써 조종자를 함입한다. 곧 비둘기와의 형태적 유사성을 전제하고 있으며 비둘기로 초점화하는 순간적인 발화 행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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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개인전 《스키드》 : ‘변경되는 감각의 지도’REVIEW/Visual arts 2022. 6. 7. 00:44
장서영 작가가 아마도 예술공간에서 선보인 지난 개인전 《눈부신 미래》(2021. 아마도 예술공간, 서울.)가 여러 공간에서 작업들이 분절되어 있었다면, 이번 전시 《스키드》는 상대적으로 작은 폭에 비해 기다랗게 일자로 펼쳐진 복도 공간을 따라 일점투시의 빈 시공간으로 수렴한다. 이는 전시의 ‘속도’와 ‘흐름’과 같은 키워드와 맞물리며, 관람객의 동선과 작품 간의 밀접한 연결에 있어 순환의 체계를 ‘매끄럽게’ 구성한다. 일점투시의 끝에는 얼굴 혹은 빨대가 있다. 〈드링크미드링크〉(2022. 단채널 영상, 흑백, 2분 51초.)가 그것이지만, 너무 그것과의 거리가 멀어 관객의 시선은 빈 공간의 떠 있는 파편적 작업들의 양상으로 가라앉는다. 장서영 작가의 개인전 《스키드》(2022. 신도문화공간, 서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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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환 작/연출,〈기후비상사태: 리허설〉: 리허설의 과제REVIEW/Theater 2022. 6. 3. 01:18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이하 〈리허설〉)은 기후 위기에 얽힌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다른 한편 이는 전윤환이라는 해당 작품의 작가가 그러한 내용을 고민하며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여러 경험과 그에 동반되던 궁핍함을 함께 드러낸다는 점에서, 곧 이를 여러 배우로 분화시켜 상연함 자체를 연출한다는 점에서 〈리허설〉은 그의 지난 〈전윤환의 전윤환 - 자의식 과잉〉과 결을 같이 한다. 이 후자의 차원은 그가 기후 위기에 대한 예술가의 역할이나 그러한 내용 자체에 대한 표현 형식을 탐구하는 데 따르는 고민보다는 작가로서 그 주제와 나 사이의 거리를 계속해서 확인하면서 글을 데드라인 안에 퇴고해야 하는 조급함과 피로도, 체념 등의 일련의 작가로서 받는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자의식으로 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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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구 극작/이연주 연출, 〈당선자 없음〉: 역사의 균열을 추적하는 주체REVIEW/Theater 2022. 6. 3. 00:48
〈당선자 없음〉은 제헌헌법이 창립한 경위를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추적해 나가며, 현재를 구성하는 이념의 한 구조적 토대가 되는 헌법의 계보를 가시화함으로써 소수의 자의적인 입법 과정과 그 이후를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현재로 연장한다. 곧 헌법의 계보학을 좇는 〈당선자 없음〉은 법의 기원을 본질적인 정의의 이념으로 구성하는 대신 외설적인 흔적을 누출한다. 그것은 물론 당대의 영향 아래 있으며, 나아가 자의적이고 우연적이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법 관련한 전문가는 전자의 친일파에 속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를 무대로 상연하는 자리에서, 그들―최상영_배우 이윤재과 그를 돕는 윤길상_신강수 배우―은 새로운 해방 정국에서 잔뜩 움츠러든 채 죄인으로서, 입법의 예외적인 역량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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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민 개인전 《RE:RE》: 연약한 자아의 주체로서의 선언REVIEW/Visual arts 2022. 5. 31. 01:44
리혁종이라는 울타리 혹은 그늘 “개성을 강조하고 남과 차별화된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가상을 기르고 그로부터 전제된 일관성 있는 개념 및 양식의 작품 생산을 배양하려는 대학(과 대학원)에서의 미술 전공 과정. 양식적 새로움에 대한 경합의 무대를 위한 감각의 투여는 내게 어떤 동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어지러움을 준다.”_황규민, 「작가 노트: 대학 미술 출구 및 우회로를 찾아서」 황규민 작가의 개인전 《RE:RE》는 리혁종 작가의 작업을 참조자료로 동원한다. 여기에는 작가의 작업의 다음 경로를 모색하는 데 따르는 곤경, 작업 방법론의 미결정 상태의 곤궁 모두 작용한다. . 여기서 리혁종 작가 자체가 모델―〈넝마 철학 조각가 RE:〉(2022. 캔버스에 유화, 162.2×260.6cm.)―이 되기도 하지만,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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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수유 〈공포가 시작된다〉: 연대의 몫을 구성하는 ‘진실성’의 무대REVIEW/Theater 2022. 5. 22. 12:19
〈공포가 시작된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대한 컨텍스트를 배경으로 쓰인 일본 희곡을 국내 무대로 옮긴 것이다. 한국적 맥락을 결합하거나 차용하는 대신, 본래 희곡을 최대한 그대로 가져가려 했다고 보인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결과는 일본의 배경이 상대적으로 일본에서는 쉽게 상기되고 이해될 수 있을 반면, 한국에서는 그러한 맥락이 공연으로부터 이격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어쩌면 그대로의 번역이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인 번역이 필요하지는 않았을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공연 브로셔에는 공연에서 메타적으로 지시할 수 없는 일본 목욕 문화나 토로로 소바같이 일본적 컨텍스트에 대한 소개를 실어놓았다. 이를 한국적 컨텍스트와 결부 짓는다면 어떤 것들이 들어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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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지영,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 극장을 구성하는 바깥에 대한 알레고리들REVIEW/Theater 2022. 5. 22. 12:00
원지영의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은 알레고리로 극장을 구축하려 한다. 김보경 배우는 처음에 플래시를 들고 바닥을 비추며 길을 낸다. 플래시 색에 따른 갈색을 띤 그의 맨발이 밟히는 바닥은 마치 모래사장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는 사실 뒤에 등장하는 “바다”라는 기호가 결부되며 분명해진다. 하지만 이를 바다로 직접 지칭하는 건 아닌데, 실재하는 대상의 물리적 속성을 판타지로 뒤덮는 대신 오히려 가상의 이미지를 경유해 현재의 이미지로 도달하는 프로세스가 그 안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이미지화된다. 이러한 가상의 이미지는 ‘어떤’ 서사의 조각들이고 온전한 서사의 한 ‘조각’으로만 머문다. 온전한 서사는 구성될 수 없고, 다만 떠도는 기억의 잔상으로 맺힌다는 인상을 준다. 김보경은 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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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김경화, 〈2014년 생〉: 예외적 주체의 탄생REVIEW/Theater 2022. 5. 22. 11:55
제목인 “2014년생”인 백송시원과 이나리 배우가 출연한다. 공교롭게 2014년생이다. 백송시원은 본 작품의 연출을 맡은 송김경화의 딸이다. 이러한 배경은 세월호 참사가 연출에게는 탄생과 죽음의 전이 지대로서 위치 지어졌음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게 한다. 어른으로부터 독립적인, 어른과 같이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집요하게 질문하는 배우 시원은 보호받아야 할 아이로 세월호 희생자를 위치시키는 ‘어른들’의 인식을 전복한다. 수동적이고 성숙하지 못하며, 따라서 의사 결정을 어른으로부터 위임받아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어린이에 대한 주체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연스러운 어떤 질문을 듣는 것은 이나리 배우에 의해 매개된다. 우리는 듣는 위치에 처한다. 시원이 설명하는 ‘시민이 아닌 어린이’. 공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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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룸 〈세월호 학교〉: 타자에 대한 어떤 교육REVIEW/Theater 2022. 5. 22. 11:45
엘리펀트룸의 〈세월호 학교〉는 세월호 참사를 원점에서 복기한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혜화동1번지가 꾸준히 기획해 온 세월호 시리즈의 하나로서, 메타적으로는 그 기획 자체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 공연은 진상 규명(이 되지 않았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국가의 의미를 검토하고, 새롭게 국가의 모습을 재요청하는 민주주의 시민의 몫에 관객의 자리를 대입하고 있다. 따라서 어린이를 상정한 교육의 형식은 관객의 계몽을 구성하기보다는 계몽된 관객의 시점에서 교육이라는 형식 자체를 검토하게 하는데, 이러한 방식이 복기라는 형식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곧 〈세월호 학교〉는 교육의 내용 자체를 전달하기보다는 ‘교육은 왜 필요한가.’ ‘교육은 무엇을 향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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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오브 포겟팅〉: 표현으로서의 재현REVIEW/Theater 2022. 5. 22. 11:36
음악의 전개와 움직임의 긴밀한 협응으로 진행되는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음악이 공간을 장악하며 이미지적인 장면들을 만드는 것으로 점철된다. 이러한 충만한 무대로의 입력은 최소한의 대사를 ‘나지막한’ 또는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로 치환한다. 피지컬 씨어터라는 장르로 명명되는 작업으로, 배우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음악의 거센 파고에 몸을 싣는다―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퍼커션, 루프 스테이션 등의 2인조 밴드―김치영, 조한샘―가 악기를 다룬다. 참고로 영국 프로덕션 ‘시어터 리(Theatre Re)’의 기욤 피지 연출과 알렉스 저드 작곡가 등이 만든 오리지널 공연이 2019년 외국 배우들의 출연으로 같은 장소인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오른 바 있으며, 이번에는 한국 프로덕션의 협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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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짝 프로젝트 〈툭〉: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에 개입하는가REVIEW/Theater 2022. 5. 10. 04:27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꾸준히 ‘세월호’를 주제로 매년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아마 이는 이를 어떤 서사로 연장할 수 있을 것인가의 차원에서 소재 고갈 같은 극작술의 시련, 그리고 지속하는 것이 옅어지고 무력화되는 가운데 작업 자체가 더 이상 가능한지에 대한 자기 윤리에 대한 의구심에 대항해야 함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를 포기할 수 없는 곧 지속해야만 하는 제도적 차원에서의 상징적 위치 역시 작용할 것이다. ‘세월호는 직접 드러나서는 안 된다.’ 또한 ‘세월호에 대한 알레고리가 단순히 죽음과 슬픔으로 치환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이 같은 두 개의 원칙은 아마 세월호를 신중하게 다루는 기본적인 전제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세월호’와 ‘나’, 그리고 ‘사회’의 어떤 긴장 어린 관계항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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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더블빌》, 맞춤옷의 어떤 설기들REVIEW/Dance 2022. 5. 10. 04:13
국립무용단의 《더블빌》은 색채가 다른 젊은 외부 안무가를 초대해 하루에 두 다른 무대를 선보이는 식으로 기획되었으며, 활발하게 동시대 무용 신에서 활동 중인 고블린파티와 차진엽 안무가가 각각 안무한 〈신선〉과 〈몽유도원무〉 두 작업으로 구성됐다. 공연이 오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은, 중극장 규모로서 그리 크거나 깊지 않게 보였는데, 이는 두 공연 모두 많은 무용수가 출연하고 움직임이 많고 다양하며 무대의 동선을 활발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무대의 특징이라면, 움직임을 연장하는 글로시한 바닥 자체에 있는데, 〈몽유도원무〉의 경우 두 개의 막을 순차적으로 활용해 단조로운 무대에 변화를 준다. 외부의 동시대 안무가와 국립무용단의 결합은 현대무용의 개념과 전통무용의 기본기가 전통의 변화와 갱신을 꾀할 수 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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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져 있지 않은 거주지: 오드라데크》: 의미화의 전략과 수렴되지 않는 의미 사이에서REVIEW/Visual arts 2022. 4. 14. 02:14
《정해져 있지 않은 거주지: 오드라데크》라는 전시는 도시의 빈 공간을 잠재적 실천의 장소로 재인식하고 나아가 재규정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작가/팀은 실천 전략으로서의 작업을 선보이는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1949~)을 경유해 실재계로 옮겨질 수 있을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오드라데크”는 인식하기 어려우며 규정 불가능한 대상의 성질을 띠는데, 이 전시는 이를 도시의 버려진 곳이나 빈 장소, 쓰레기가 모이는 등의 장소로 상정한다. 이러한 장소가 상징계의 잉여 또는 그림자를 보여주는 곳에서 나아가 제도 바깥의 상상력이 틈입할 수 있다는 전제가 곧 이 전시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도시 빈 공간의 재인식으로서의 실천은 사실 공고한 사회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질문을 생성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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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엽 연출 〈커뮤니티 대소동〉: 하나의 커뮤니티를 가설하기란…REVIEW/Theater 2022. 4. 14. 01:48
접촉을 통한 우리의 형성 〈커뮤니티 대소동〉은 접촉에 대한 감각을 강화한다. 안대를 쓰고 들어간 어둠으로 뒤덮인 극장에서 안대를 벗으며 시작된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감각은 무언가를 보지 못한다는 감각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곧 어둠을 보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시각적으로 판별되지 않는’ 세계에서 목소리와 타자를, 무엇보다 발 디딜 공간에서 그것들을 예측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커뮤니티 대소동〉은 이진엽 연출이 속한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몸의 윤리〉(2015)의 재판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몸의 윤리〉가 보이지 않는 곳이 우리의 변화를 시도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함을 의도하고 동시에 다른 우리의 감각을 활성화하고자 했다면, 총 아홉 명 중 과반수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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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조 이야기〉, ‘부채의식을 떠안고’REVIEW/Theater 2022. 4. 14. 01:28
〈금조 이야기〉는 한국전쟁 당시 딸을 잃어버린 채 딸을 찾아 나서는 금조의 여정을 주된 서사로 하되, 거기에 그 주변의 여러 역사적 맥락을 교차 편집한다. 여기서 여러 이야기는 역사에 대한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시각보다는, 동시에 그 모든 인물의 내적 동기를 형성하며 그들 간의 관계를 구성하기보다는 전쟁 안에서 비이성적인 인간으로의 형질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수렴하며, 결과적으로 정주할 수 없는 금조의 삶, 그의 지연되는 도착을 더욱 강조한다고 보인다. 관객에게 그 고통은 곧 다른 시간만큼 더 유예된다. 금조는 그와 여정을 함께하는 들개 아무르와 함께 유일하게 거의 모든 곳을 경유하며 존재들을 스쳐 지나갈 뿐 그 모든 서사가 그와 온전히 결부되거나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안을 점유하지 못하고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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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애순 안무(국립현대무용단 제작), 〈몸쓰다〉: 부재하는 몸‘들’의 생채기적 몽타주, 그리고 박유라라는 전사(前史)REVIEW/Dance 2022. 4. 5. 23:39
터널같이 펼쳐진 넓은 공간에는 한 존재가 뒤돈 채 이동한다. 그의 움직임은 유려하다가도 결정적으로 엉덩이를 긁는 제스처로 옮겨 간다. 하나의 정동으로 기꺼이 수렴되지 않으며 하나의 이미지에서 분화되는 종래 균열을 일으키는 움직임의 한 초상은, ‘몸을 쓰는’ 것을 다양하게 기술하는 것이 안무의 초점임을 역설하는 듯하다. 여기에 한두 무용수가 무대에 진입할 때 등장과 함께 이전의 무용수와 동기화가 이뤄지며 무대는 쌓여 나간다. 여기서 전략은 한 존재의 이중적 분화를 각 존재의 병치를 통해 각 존재를 다초점으로 ‘분쇄’하는 것으로 옮겨 간다. 안애순 안무가의 〈몸쓰다〉는 각 무용수 고유의 몸의 무늬와 흔적을 다중 레이어의 사운드 평면 속에 배치하는, 비교적 간략한 전술을 펼친다. 가장 큰 구조적인 분기는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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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그,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문명 이후에 대한 어떤 태도REVIEW/Theater 2022. 4. 5. 22:55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윤영선의 7쪽짜리 초고로 된 동명의 원작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2012년 윤영선 연극제에서 초연된 작업이다. 당시 공동 창작 과정과 전성현 작가의 참여로 단편들이 더해지며, 원작이 새롭게 재구성, 연장되었고, 이번 공연은 현재의 시점에서 일부 갱신되었다. 2012년 작이지만, 현재 시점에 조금 더 부합하며 동시에 전위적이다. 이 단편들은 물리적으로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총 4개의 에피소드 각각은 “신발”이라는 모티브를 반복하며, 마지막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편에서 원숭이탈을 쓴 배우가 탈을 벗고 대사를 하면서 원전의 시점으로 돌아감―초고 일부와 초고가 쓰인 시점을 명시한다!―으로써 각 에피소드의 연관성은 언어적으로 정립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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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파구,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활극과 정치적 주체의 변경 사이에서REVIEW/Theater 2022. 3. 24. 00:43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이란 제목은 세 명의 등장인물들이 소유한 각각의 주요한 오브제다. 즉물적이고 감각적인 사물에 대한 지시처럼, 작품은 현실에 기반을 두며, 역할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동시대와 공명할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역할이 갖는 보편적 특정성은 시대적 생산양식으로서의 주체들로서 배우들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 역할을 입는 것임을 소개하며 시작하는 출발 지점에서부터 드러난다. 이는 이 연극의 유일한 메타-연극의 연출 지점이라는 데서 특기할 만한데, 통상 전제된 희곡에서 연극으로의 번역을 지시함으로써 이를 한 번 더 꼰 또는 내파하는 시점을 제시한다. 곧 연극을 희곡으로 되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데, 오로지 수행적으로만 이것들이 앞으로 놓일 수 있음을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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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구성·연출,〈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 ‘대화를 위한 재현’REVIEW/Theater 2022. 3. 23. 23:41
박지영 배우는 수어로만, 이원준 배우는 수어에 대사를 섞지만, 음성 언어의 비중이 크다. 박지연은 핸드스피크 소속 배우이며, 이원준은 작년까지 국립극단의 단원이었던 연극 배우이다. 이러한 정보는 공연 도중에 나온다.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이하 〈실패담〉)은 처음부터 수어를 하는 박지영을 중앙에 두며―그 바깥의 음성 언어로 출발함에도 그의 자리는 유지된다.―, 〈실패담〉은 박지영의 수어의 공간에 음성 언어를 동시적으로 작동시키지 않고 그의 온전한 무대로 위치시킨다. 부가적으로 음성 언어가 따라붙지만,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주변의 위치에서만 작동한다. 이는 어떤 시차를 통한 번역, 더듬거리며 그 말을 따라가는 행위로서 성립한다. 언제나 음성 언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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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연 작, 동이향 연출, 〈밤의 사막 너머〉의 시공간: 참조 체계의 문학적 글쓰기의 공간REVIEW/Theater 2022. 3. 23. 21:51
핍진한 현재 〈밤의 사막 너머〉는 몇 개의 플롯들을 반복하며 강화한다. 주인공은 현실과 이격된 터전 없는 세계를 부유하며, 끝이 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는 것. 세계의 종착지는 ‘지구는 둥그니까’의 논리로 지정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걷기는 끝이 없는 것이며, 단지 그 끝이 (있다면) 죽음뿐임을 지시하기 위한 알레고리다. 동시에 이 걷기의 땅은 현실의 어떤 시공간도 제대로 설명하거나 재현하지 않는다. 이 땅은 엄밀히 빈 무대도 아니며, 현실 바깥에 어떤 틈으로 현실이 뒤집힐 수 있음을 예시하는 정도로 현실을 벗어난다. ‘땅’은 비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게 아니라 현실에서 이격되는 신체, 가령 “우울”을 겪고 있는 존재의 여백 같은 것이거나 현실이 어떤 참조 체제로만 들러붙는 글쓰기의 상상적 공간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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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배꼽불》: 신체(와)의 관계성을 조각하기REVIEW/Visual arts 2022. 3. 12. 16:25
《배꼽불》은 2018년 이후 최근까지 진행해온 〈뱃봉우리〉 작업을 비롯해, 비교적 최근까지 다년간의 여러 작업이 뒤섞이는 가운데, 매체의 분화와 주제/시점의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직관과 감각에 의한 직조의 기술로써 이를 종합하는 전시이다. 각 작업이 갖는 힘은 각 작품에 머물기도 하고, 곧 다른 작업과 다른 이질성을 간직하기도 하고, 나아가 다른 작업과의 어떤 감각적인 연결을 추동하기도 한다. 《배꼽불》은 작가의 방대한 작업에서의 어떤 정수를 볼 수 있는 가운데, 주제를 언어로써 정교하게 시현하지는 않는 전시이다. 소위 작업은 작가의 정념과 작업력을 보여준다. 이는 아마도 작가의 작업이 감각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매체로 연장된다는 것과 그러한 감각적인 차원이 작가의 힘과 사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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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기운, 〈콜타임〉: 균열의 시점, 공고한 일상과 혁명의 틈REVIEW/Theater 2022. 2. 28. 23:50
호랑이기운의 〈콜타임〉은 공연 전 무대 위에 펼쳐지는 상황을 노출한다. 조연출 은호와 배우 범순 두 여성 간 발생하는 이야기는 현장의 급박함 속에 페미니즘, 퀴어, 예술의 동시대성, 남성 중심의 정전 등 다양한 화두를 담아낸다. “공연에 참가하는 출연진과 스태프가 공연 전 극장에 모이기로 정해놓은 시각”을 가리키는 연극 용어인 “콜타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급격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꽤 여러 번의 끈적한 키스 이후에는 급격한 논쟁으로 나아간다. 페미니즘에서, 결혼으로, 예술, 삶에 대해. 은호의 시선에 의해 이항 대립적으로 그 개념들은 분화된다는 점에서, 〈콜타임〉의 대화는 구체적인 차원보다는 이념적인 차원이 크다. 은호의 말 부분 부분은 퀴어에 대한 기초적인 그리고 이론적인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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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동인고물, 〈꼭두각시〉: 음악과 움직임은 어떻게 맞물리는가, 또는 그렇게 보이는가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2. 2. 16. 19:23
무용(고블린파티_임성은, 이연주, 임진호)과 음악(음악동인고물_대금 고진호, 25현금 홍예진, 해금 소명진, 장구 정준규, 피리 배승빈)의 어떤 기묘한 동거 관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꼭두각시〉는 여러 질문을 낳는다. 결과적으로, 백스테이지에 위치한 연주자를 무대 오른쪽에 배치하고, 연주 행위를 움직임으로 연장하며, 무대에 난입하며 무용수와 뒤섞이기에 이른다. 〈꼭두각시〉의 첫 번째 장면은 음악동인고물(이하 ‘고물’)의 연주 행위로서의 수행성과 고블린파티의 안무의 움직임 영역을 ‘절합’한다. 곧 고블린파티의 등장 직전에, ‘고물’은 춤을 추면서 연주를 하는데, 두 개의 움직임이 하나의 신체로부터 나온다. 움직임은 연주를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이러한 움직임은 그 자체로 안무의 영역으로 연장된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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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연출, 〈김수정입니다〉: 예술은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REVIEW/Theater 2022. 2. 16. 18:19
효과로서의 종결과 의미로서의 종결 사이 〈김수정입니다〉는 김수정이라는 연출을 극단 신세계의 연출로서 극단의 시계열에, 그리고 극단 이전에 김수정의 연극사 안에 배치한다. 김수정의 실제 서사를 전면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나아가 이를 인터뷰 영상의 서술을 동원하는 가운데, 극단 연출이 실제 극 전반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극 형태가 아니라 뉴다큐멘터리 연극이라 할 수 있다. 김수정의 등장은 서사의 핍진성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김수정의 전면적인 자기 고백이 수행적 발화로 나아가는 데 필요하다. 이 등장 전에 김수정의 시상식 주인공으로서의 모습, 디렉션을 하는 연출로서의 역할이 극 안에 어정쩡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이후 김수정은 그 바깥에서 단독자의 형상으로 발화한다. 곧 김수정의 마지막 발화가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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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Y, 〈탈피〉: ‘바깥의 언어’REVIEW/Theater 2022. 2. 6. 21:34
인간의 부정성 연극 〈탈피〉는 사회의 부정과 억압의 피해 당사자 간의 유폐된 언어를 맞물리는 접점을 구성한다. 자신에게 성폭력 가해를 저지른 남성 교수가 있는 학교에서 동물의 열악한 환경과 조처를 방관하는 동물원으로 탈주한 소진(강서희 배우)은, 탈피하는 중에 멈춘 뱀(알비노 비단 버마 구렁이, 이하 뱀)에게 온 신경을 쏟는 존재로 출현한다. 멈춘 뱀의 움직임을 언어로 소생시킬 방법은 처음 출현한 동물 의학적 지식을 갖춘 전문가인 수의사(정대용 배우)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지식이 없는 그에게도 없다. 다만 이 뱀의 닫힌 시간을 자신의 폐쇄된 시간으로 번역할 수는 있다. 이것은 뱀의 언어를 매개할 수 있음―거꾸로 뱀의 언어가 매개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그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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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명작옥수수밭, 〈메이드 인 세운상가〉: 현재의 그림자로서의 과거REVIEW/Theater 2022. 2. 6. 21:15
왜상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 효과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메이드 인 세운상가〉(이하 〈세운상가〉)는 1986년 북한 수중 공격에 대한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평화의 댐 모금 운동의 정부 선전이 한창이던 시기에서 출발한다. 거북선도 만들 수 있다는 풍문의 세운상가 주인들은 북한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는 잠수함을 만드는 데 머리를 모은다. 국가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1. 국가가 있고 내가 있다. 2. 북한은 주적이다.―에 부속하는 소시민의 맹신은, 실제 500톤 규모의 잠수함을 만드는 데 이른다. 목선을 주조하고 이를 타고 월북하려는 ‘믿음’을 지닌 주인공을 다룬 그린피그의 〈목선〉(2019)은 〈메이드 인 세운상가〉보다 빨리 왔지만, 〈메이드 인 세운상가〉의 지속하는 미래를 선취하고 있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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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재, 〈검은 눈〉에 대하여: 표면과 접촉의 시각적 기술REVIEW/Visual arts 2022. 2. 6. 21:10
조경재 작가는 자투리, 부스러기 같은 주로 목적성을 상실한 이름 없는 사물들을 조합, 배열하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해 왔는데, 나아가 이를 다시 설치로 구성하고, 다시 사진을 이 공간에 배치하는 확장과 수렴의 유희를 수행하는 식으로 전시 공학의 특이한 경로를 구성해 왔다. 먼저 사진의 경우, 완전한 결착이 아닌 (아마도 애드호키즘적 작업 방식에 따른) 패치워크, 임시적인 사물들의 절합들, 곧 사물과 사물, 틈새와 빈 공간을 구성하는 임시적인 구조물이 지닌 입체적인 공간성이, 평면의 매체 안에서 압축되면서 그 안의 사물들은 이미지의 틀어짐과 착시로 나타나는 한편, 다중 레이어의 초점화되지 않은 자리들, 곧 비가시적인 초점들이 겹쳐져 있는, 어느 하나의 온전한 초점을 구성할 수 없는, 기이하고 정리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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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진 극작, 〈머핀과 치와와〉: ‘인간을 가로지르는 무엇’REVIEW/Theater 2022. 2. 6. 21:07
〈머핀과 치와와〉는 미래 문명의 단면을 ‘라이카’라는 인공지능의 통제 아래 작동하는 단일한 시스템―사각형의 가를 두른 검은 고무판을 하나같이 종종걸음으로 이동하는 배우들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하는 시스템의 부속으로서 자리한다.―으로 전제한다. 문학적 인간과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의 변이는 이 시스템으로부터 삐져나온 인간적인 무엇, 문학적인 무엇을 보여주지만, 이 같은 존재들은 반동적이거나 체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체제의 예외적 존재로 자리할 때 그 체제로부터 읽히지 않거나 증발하거나 죽는 존재에 그친다. 시스템에 대한 독해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뿐더러 작업의 초점을 벗어난다. 시스템은 일종의 기능적인 표면에 불과하다. 라이카는 강력한 통치 장치 역시 아닌데, 타자가 아니라 자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