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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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Lump of rice〉: 트랜스라는 파편들REVIEW/Dance 2023. 11. 6. 15:24
임은정의 〈Lump of rice〉는 서울남산국악당 극장이 아닌 야외 남산골한옥마을 마루에서 진행되었다. 세 명의 무용수는 의식을 지운/비운 상태로 누워 있고, 트랜스 상태를 예비한다. 임은정은 엄밀하게 동작을 구조화하기보다는 분위기의 구조를 구성하려 한다. 그 안에서 퍼포머의 역량은 제각각의 개성과 고유의 시간성을 띠고 드러나게 된다. ‘쌀더미’라는 뜻의 제목은 이런 뭉뚱그려진 몸이 파편적으로 차이의 몸으로 확산되어 갈 수 있음을 잠재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에 맞춰 영상 작업인 〈우리세계〉(임은정, 〈우리세계〉, 2023,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2분.)가 야외에서 상영되고 있었는데, 죽은 듯한 더미와 나지막한 움직임과 사운드를 광각의 배경 아래 얹힌다는 점에서, 그것은 다분히 숭고함과 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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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틀리스 무용단(Restless Dance Theatre), 〈노출된(Exposed)〉: 재현 불가능한 혹은 재현 너머의 현존REVIEW/Dance 2023. 11. 6. 15:00
테크닉은 신뢰와 직결된다. 자연스러움과 매끈함이 동시에 충족될 수 있으며 하나의 계열이라는 믿음이 그것에 따라붙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있는 레스틀리스 무용단의 〈노출된〉은 그러한 전제로부터 요동친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몸짓 자체를 추종하거나 그 몸짓이 향하는 의미의 계열을 구성하기 위해 몰입하지만, 그 몸짓을 의심하지는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레스틀리스 무용단에서 움직임은 그런 차원에서 몸짓에 선행하는 것, 곧 몸 혹은 감정이 몸짓 앞에 있다고 선언한다, 또는 드러낸다(exposed). 따라서 극단적으로는 몸은 멈추거나 해서 강조되고 감정은 연기되는 데서 나아가 폭발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몸은 몸짓에 선행하고 감정은 몸짓을 앞지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무용수가 옷을 걷어붙이고 맨몸을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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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동 안무, 〈리듬의 측〉: 움직임이 곁에 머무는 방식REVIEW/Dance 2023. 9. 12. 00:35
〈리듬의 측〉은 하나의 평면에 속한 ‘사회’적 존재들을 가시화한다. 이는 개인을 초과하는 거대한 배경을, 이를 부분으로 축소하고 해체하는 개인의 주체적 역량을 동시에 지시한다. 이는 그 사회가 유기적인 질서와 통합된 풍경으로서 존재하거나 긴밀한 관계들의 연속으로 진행되는 곳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존재는 우연적이며 우연에 의해 존재가 탄생한다. 무작위성이라는 ‘원칙’은 질서와 규칙, 상승과 하강의 흐름이 부재함을 의미하며, 단지 움직임의 차이와 반복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환경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가장 평평하고 창발적인 장이 된다. 그렇다면 이는 동작에 대한 충실도를 요청하는가. 아님 그것이 하나의 환경이라는 명제를 내세우는가. 곧 형식으로 그치는가. 아니면 어떤 이념을 내포하는 것인가. 〈리듬의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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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숲우화-짐승의 세계〉: 연극을 만들어 나가는 힘의 요체란REVIEW/Theater 2023. 9. 12. 00:24
〈이숲우화-짐승의 세계〉(이하 〈이숲우화〉)는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솝우화’의 여러 서사를 언어 유희적 농담으로써 전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이솝이란 남자’. 뒤이어 ‘여우와 두루미’,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배짱이’, ‘달에 간 까마귀’로 이어지는 네 개의 에피소드는 마지막 막에 이르러서야 파생 서사의 일단락을 짓는다. 곧 서사의 유희로써 유희적인 서사를 갈음하는 실험이든 유희이든 그 형식은 서사의 내용을 명확하게 만들기보다는 서사를 이렇게 간단하게 작동시킬 수 있다는 차원을 보여준다. 곧 서사와 유희 사이에 무수한 서사‘들’이 자리한다. 반면, ‘달에 간 까마귀’는 앞선 작업들을 일종의 예열 작업으로 두면서 사이의 서사로서 위치하는 게 아닌, 서사 자체의 동력을 가시화한다.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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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옥 연출, 〈혁명의 춤〉: 구조는 완결되는 것인가REVIEW/Theater 2023. 9. 12. 00:09
〈혁명의 춤〉은 혁명의 이념을 혁명의 이미지로 대체한다. 여기서 혁명의 이미지는 작품 전체의 이미지는 아니다. 짧은 대사들, “이쪽이야!”, “뭐지?”, “기다려!”, “들려?”, “그들 거야!”, “누가 오고 있어” 등, 위치를 지정하는 지시 대명사, 하나의 동사이거나 두세 개의 단어로 이뤄진 구문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맺으며, 각기 다른 여덟 개의 장면으로 반복된다. 이 여덟 개의 장면에서 엄밀히 혁명의 이미지를 수여하는 건 마지막 단계 직전에 이르러서이며, 그 전의 이미지들이 혁명을 위한 모종의 단계로 적용되는 것 역시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혁명의 이미지는 작품 전체의 이미지가 아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둘러싸고 있는 건 긴장과 긴박함의 정서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는 그것을 그 자체로 두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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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변방연극제: 연극을 파훼하기REVIEW/Theater 2023. 8. 18. 11:37
변방연극제는 “취약하고 오염되고 더러운 것들의 축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이는 “변방”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면서 연극제 안의 작품들의 다양한 코드로 분화하게 된다. 오염과 더러움이 같은 의미라면, 취약함은 조금 다른 양태의 단어라 하겠다. 전자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의 부정적 규정을 뜻한다면, 후자는 어떤 부분의 구조적인 결여나 미비함 따위를 지시하지만 전자에 비해 그 자체가 절대적인 부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는 말 그대로 하나의 유기체적인 전체의 구조가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일컫기 때문이다. 내적인 차원에서는 후자가 연약함과 맞닿는다면, 전자는 그런 부정적인 규정에 대한 저항으로 전복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이번의 변방연극제는 세상의 원칙을 파훼하는 형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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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슬픈 나의 젊은 날》: 세계와 접면하는 현존재들REVIEW/Visual arts 2023. 8. 13. 15:13
《슬픈 나의 젊은 날》은 부산 지역 출신의 작가 세 명이 참여한 전시로, 물론 부산이라는 지역의 언어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곧 다른 범주가 요청된다. 이를 묶는 건 큐레이팅의 언어(안대웅 학예연구사)이자 그것의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설치로의 구현이다. 세 명의 작가에 맞춘 전시장은 “가속”, “에너지 흐름”, “인상”의 키워드와 함께 세 공간으로 구획되었고, 작가의 작업은 어느 정도 섞이며 조정환, 김덕희, 오민욱의 순으로 이어진다. 인상적인 건 핸드아웃을 대신하는 서문과 모든 개별 작품의 캡션과 설명을 담은 팸플릿이다. 그런 차원에서 어쩌면 《슬픈 나의 젊은 날》은 큐레이팅의 이념을 분명하게 언어화하고 그 주체를 투명하게 만들며 매개의 몫을 이전하지 않으려는 독특한 전시일 수 있다, 그것이 드물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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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광주비엔날레: 명확한 전형의 미래를 향해 투사된 전통과 차이의 존재들REVIEW/Visual arts 2023. 8. 13. 15:05
2022 부산비엔날레가 비좁고 결과적으로 불편한 환경 제공했다면, 2023 광주비엔날레는 어찌 됐건 공간이 작품과의 유격을 적절하게 또는 그 이상으로 확보한다―둘은 일 년의 간격을 두고 서로를 마주한다. 이는 큐레이팅의 차원보다는 어느 정도 아웃소싱된 설치의 영역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흥미로운 건 그러한 전시 환경이 발전된 도시와 상대적으로 낙후된 도시 환경을 체현한다는 것이다. 부산비엔날레가 도시에 대한 은유, 그것도 무의식적인 차원이 응결된 것이라면, 광주비엔날레는 기조성된 광주비엔날레관 전시관이든 무각사와 같은 문화유산이든 갖춰진 하드웨어에 적절한 관람 환경의 동선을 확보했다. 반면, 광주비엔날레의 주제관인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 비해 부산비엔날레의 주제관인 부산현대미술관은 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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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호 안무, 〈갈라〉: 밀도를 구성하는 방법REVIEW/Dance 2023. 8. 7. 02:16
〈갈라〉는 대상에 대한 강렬한 사로잡힘을 의도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매우 과격하며, 급속하게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이러한 움직임은 갈라 공연에 관한 어떤 환영이다. 〈갈라〉는 백스테이지의 광경을 소환하며 무대의 시간과 그 바깥의 시간을 혼합하며 ‘갈라’로서의 실재를 이미지로 연장한다. 막이 걷히기 전 정면을 향한 두 남녀 무용수의 모습은 막이 올라가며 본격적인 무대가 펼쳐지는 가운데, 흩어진다. 그 둘은 하나의 무리에 속하며, 그 둘의 이전의 모습은, 그리고 행위에서 움직임으로 변화하는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실상 가장 전면의 무대가 백스테이지였다는 점에서 관객의 시선은 전도된다. 관객은 그 둘의 뒷모습에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며, 순간적으로 관객의 신체는 무대 바깥의 장소를 체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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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온(연출: 김상훈), 〈연극 안 하기 - 영화관 가기〉: 균열적 극장REVIEW/Theater 2023. 8. 7. 01:41
〈연극 안 하기 - 영화관 가기〉(이하 〈영화관 가기〉)는 극장에 커다란 스크린을 가설하고, 연극이 상연된다는 설정을 전복하고자 한다. 극장을 영화관으로서 지시하고 스크린을 둘러싼 환경에 연극적 시공간을 삽입한다. 그럼에도 감축되고 은폐된 연극의 언어를 구성하는 이러한 위치 바꿈 혹은 위치 교란은 연극을 지우기보다 그제야 성립되는 연극의 위치를 검토하게 만든다. 연극은 외화면의 잉여로서 부상하고, 거꾸로 영화는 사라진 연극을 지지하는 매체가 된다. 두 개의 영화 사이의 전환은 시공간을 재정의하는 결정적인 자국을 남긴다. 먼저 첫 번째 영화는 제목 없는 일종의 반복되는 이미지-계열체라면, 두 번째 영화는 〈Runaway Train(폭주 기관차)〉(1989)이라는 실제 영화다. 첫 번째 영화는 중력이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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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안무: 뭎), 〈캐스케이드 패시지〉: 극장이라는 서사REVIEW/Dance 2023. 8. 7. 01:25
〈캐스케이드 패시지〉는 극장 공간의 변용에 초점을 맞춘다. 〈캐스케이드 패시지〉 역시 극장이 무수한 장비와 장치의 계열체로 인지되는 건 바텐이 천천히 내려오는 것과 같은 일종의 실험적 장면으로서의 클리셰에 의한다. 극장의 변용은 이 같은 수직 구도의 오르내림과 함께 관객의 분류와 배치, 마지막으로 문학적 서사의 도입에 의한다―극장에 들어서기 전 매표소에서 준 공연 프로그램과 굿즈가 담긴 바인더의 사전 정보 역시 이에 포함된다. 엠유피 여행사(M.U.P. Travel)를 전유한 뭎은 다크투어리즘 역시 전유한다―“캐스케이드 패시지는 체르노빌 다크 투어와 더불어 미래의 중요한 관광산업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실제 재난과 상흔, 흑역사에 대한 고찰이 부재하는데, 가상의 시공간을 전사로 내세우고 이후 감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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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김광보 연출),〈벚꽃 동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REVIEW/Theater 2023. 8. 7. 01:11
사실주의 연극으로 알려진 체호프의 작업 중 〈벚꽃 동산〉이 갖는 현재의 함의는 무엇일까. 물론 이는 의미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고전이라 불리는 것의 관성적 도입에 대한 우려와 회의의 반문이다. 그것이 갖는 사실성은 표현의 층위와 함께 컨텍스트의 차원에서도 유효한가. 일종의 사실주의라는 지지난 기표를 어떻게 재인지할 것인가. 무엇보다 김광보 연출의 〈벚꽃 동산〉은 원작을 무대 위의 시점 속에서 재편하며 인물들이 가진 역량을 새롭게 구성해 낸다. 러시아 혁명 이후의 시대 상황에서, 혁명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는 서로를 마주하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시대정신은 응결된 양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벚꽃 동산〉이 혼란과 격변의 불안정함을 투사하고 있다면, 오히려 이는 새로운 시대와의 조응에서가 아니라 그 반대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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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임도완 연출),〈우리 읍내〉: 고전은 유효하게 현재에 기입되는가REVIEW/Theater 2023. 8. 7. 00:43
〈우리 읍내〉는 원작, 손턴 와일더의 희곡 「아워 타운(Our Town)」의 1900년대 미국 뉴햄프셔주를 배경을 1980년대의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로 설정하는데, 이는 가장 비슷한 인구수를 가진 지역이라고 한다. ‘자동-결정’에 따른 이러한 설정은 표면적으로는 원작에 대한 엄밀한 고증의 명목을 띰에도 실은 원작이 가진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국내 현실에 대한 합목적적 유인 역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이브하다. 게다가 1980년대의 현실은 오늘날의 현실과는 꽤나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는 시대에 대한 재현의 과제뿐만 아니라, 재현이 향하는 이념의 새로움이 요구된다. 〈우리 읍내〉는 활발하게 국내 무대에 올라왔었지만, 어느 순간 이후에는 소강상태로도 보인다는 점에서, 이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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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산조〉: 이미지가 갖는 구성적 힘REVIEW/Dance 2023. 8. 7. 00:22
〈산조〉의 시작은 무대 전면에 달린 지름 6m의 대형 바위 구조물과 한 명의 무용수의 대칭 구도로 시작된다. 어둑한 위쪽 부분에서 조금씩 밝아진 거대한 인공 바위의 질감은 그것이 결코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결코 무겁지 않을, 텅 빈 물질의 이미지임에도 그 부피에 대한 거대한 체감으로써 실제 흔들리는 움직임의 자장을 은폐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동시에 표면적으로는 촉지적인 감각으로 움직임의 흐름을 담지하며, 무용수의 부푼 치마는 이 바위에 대한 메타포이거나, 또는 그 바위에 대응하는 확장된 부피로 자리한다. 곧 무용수의 제자리에서의 부상과 그 무게감이 내는 정중동의 움직임은 줄에 매달려 멈춰진 사물로 수렴될 정도로 극도로 정제되면서 거꾸로 거대한 이미지의 질서에 속한 하나의 점이 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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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 제작/이오진 연출,〈댄스 네이션〉: 다양성의 몸들이라는 수행성, 그리고 이야기되지 않은 주체들의 발화REVIEW/Dance 2023. 6. 1. 00:18
〈댄스 네이션〉은 댄스 학원에 다니는 일곱 명의 10대 청소년들의 춤 경연대회를 전후로 한 삶의 변화를 다루는데, 춤 자체보다는 춤을 경유한 세계의 확장에 초점이 맞춰진다. 춤은 그 자체로 감각되기보다 내용의 일부가, 사유의 매개가, 공연 바깥의 메타적 기호가 된다. 경연대회를 나가기 위한 연습과 경연대회에서의 춤, 그리고 발화의 연장에서 순수한 무대 표현으로서의 춤까지 춤은 많은 시간 무대를 잠식하지만, 이 같은 춤은 연극에서의 통상적인 움직임이 움직임 그 자체의 심미적 자족성을 갖기보다는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기능적 차원으로 이해되는 것과 같이, 일견 발화의 연장선상에서 장면을 구성하는 과정 안에서 이해되는 측면이 크다. 〈댄스 네이션〉에서 춤은 존재들의 본질이고 내면인 반면, 춤의 표현성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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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놀이클럽 제작,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 핍진한 재현과 서사 너머의 공터REVIEW/Theater 2023. 6. 1. 00:05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이하 〈버건디〉)는 긴박하고도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말들의 섞임과 침투, 존재의 투여와 재투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가속도는 역할과 역할을 섞고 말과 말의 자리를 바꾼다. 이는 관계의 갈등과 역할의 존재감이 툭툭 불거져 나옴을 의미한다. 동시에 중간중간 삽입되는 이미지나 전환 음악 등을 통해 감각적 편집의 효과가 현실에 적용된다. “버건디 무키”라고 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들의 현실을 다룬 〈버건디〉의 일상은 채널 송출의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하며, 이러한 이미지들로 수렴되는 이미지, 곧 메타-이미지로서 스크린이 그 일상을 되비추며 잠식하고 있다. 참고로 “버건디”는 색상의 이름, “무키”는 이들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으로 여러 단어의 조합이 이룬 채널명과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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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황수현 안무), 〈카베에〉: 소리-신체의 어떤 결박REVIEW/Dance 2023. 5. 31. 23:56
소리를 내는 몸을 독립적인 움직임으로 파악하는 것, 또는 이를 기존의 움직임이 갖지 못하는 움직임을 담지한다고 인지하는 것. 〈카베에〉의 독특한 지점을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면 크게 그런 두 가지 차원이 도출될 것이다. 소리-신체의 배치들, 전경들, 흐름들로 이야기될 만한 〈카베에〉는, 커다란 소용돌이의 몸짓을 형성하며 그 속에서 소리를 피어 올리기 전까지 대부분 소리를 공명하는 신중한 신체들의 바통 터치로 지속된다. 이런 신체들은 접근 불가능하고 신비하며 타자의 시원적이고도 원초적인 상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심미적인 차원의 위상을 갖는다. 그것들이 갖는 커뮤니케이션의 지형은 형식적 배치를 위한 게임의 규칙인 동시에 그러한 신비한 원형적 집단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에 속한다. 전자와 후자는 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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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드(적극 연출), 〈다페르튜토 쿼드〉: 연극을 정의하는 놀이REVIEW/Theater 2023. 5. 31. 23:46
〈다페르튜토 쿼드〉는 어떤 말이 있고, 그것을 수행하는 순서를 가져간다. 프롬프터의 말이 무대로 흘러나오고, 그것이 규칙이 되고 표현의 근거가 된다. 곧 각각 연출의 말과 배우의 수행이 그것이다. 그 말에 따라 관객은 빛과 어둠의 경계를 분별하며 어둠에 자리해야 한다. 마지막에 어둠과 빛의 경계를 무력화하는 것 역시 말이다. 쿼드 극장을 말(제목)과 공간으로 전유한, 〈다페르튜토 쿼드〉는 불, 물, 흙, 공기의 4막으로 태초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기원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또는 기원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롭다. 순차적으로 흐르는 말과 움직임 또는 말과 이미지, 곧 언제나 이미지에 앞서 선행하는 말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공연 바깥의 어떤 말을 따르는 것일 수도 있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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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송주원 안무), 〈20▲△(이십삼각삼각)〉: 고립으로서의 매체REVIEW/Dance 2023. 5. 31. 23:33
〈이십삼각삼각〉은 ‘중간에’ VR 영상이라는 형식을 도입한다. 단순한 외삽 나아가 전시와 퍼포먼스의 종합―곧 퍼포먼스 사이에 전시를 끼워넣기 또는 전시라는 형식을 퍼포먼스로 확장하기―과 같은 장르의 분별로만은 보기 힘든데, 그 앞, 뒷부분은 VR에 대한 질문이거나 반응의 요소로서의 움직임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립’에 대한 의미와 그로부터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움직임의 요소가 어떤 의미 지층을 지니는지는 또 서사를 구성하는지는 사실상 부차적인 것일 수 있다. 이는 그 앞뒤에 자리하는 현장에서의 무용에 관한 단순한 보족이라기보다 기존의 무용을 재매개하는 역량으로 자리한다. 1층과 2층으로 나뉜 객석은 각각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퍼포머들과 한 공간에서 자리하는 것과 이를 위에서 부감하는 것으로 연장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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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들,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공간’에 대한 신체적 탐구REVIEW/Dance 2023. 3. 14. 01:33
걸작들의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이하 〈당신의 이웃〉)는 안무를 맡은 윤예은의 집을 근거로 한다. 신동아3단지아파트 111동 경비실에 모인 관객들이 아파트 1층에 들어서면 공연이 시작된다. 층마다 각기 다른 장면이 펼쳐지며, 좁은 공간에서 분산돼 움직이던 퍼포머들은 옥상에서 최종적으로 하나의 그룹을 이룬다. 관객은 이들을 따라가며, 몇 발짝 앞서 나간 퍼포머들을 지켜본다. 움직임은 시작되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움직임에 동반되는 자전적 내러티브가 이동식 스피커를 통해 ‘은근하게’ 퍼져 나온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새로운 자리를 위해 ‘5명’의 관객은 기본적으로 앞선 이가 자신이 곧 이를 경로임을, 그리고 장면에 대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하나의 계단에 한 명 정도의 점유라는 최소한의 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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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페이스 타임〉: 부재를 현상하기REVIEW/Theater 2023. 3. 14. 01:10
창작집다 ‘여기에 있다’의 〈페이스 타임〉은 박세련 연출의 사라지지 않은 어머니의 번호로부터 영상 통화—“페이스 타임”—가 걸려 온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전화번호라는 흔적은 부재를 현재로 기입하고 있으며, 이를 눌렀을 때 뜨는 빈 화면은 과거를 미래로 위치시킨다. 물론 이 화면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결말에는 정대진과 이진경 두 배우의 얼굴이 대체한다. 배우들의 발화와 극중극으로 투여되는 인형극 형식의 교차로 진행되는 극에서, 가상의 차원에서 이뤄진 현전은 후자와 관련되는 듯하다. 해와 바람의 다툼,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구름으로 인해 비가 내리고 제어되지 않고 홍수가 나서 생물들이 죽고 무덤으로 뒤덮인 세상이 된다. 이제 세상의 수많은 구멍은 갖은 생명체의 무덤이 된다. 또는 세상은 구멍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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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직,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 애도라는 놀이의 효과REVIEW/Theater 2023. 3. 13. 23:37
이성직의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는 개인의 사적 추모 혹은 애도에 대한 몇 가지 형식을 구성한다. 이성직의 친할머니, 1933년생 이명숙을 이야기하고(1막) 그가 잘 담갔다는 물김치를 대신 담그고, 또 그를 대리하게 하며, 그를 대리한 이의 친구를 대리(2막)한 이가 꽃꽂이(3막)를 하는 일련의 행위가 그것이다. 1막의 이명숙에 관한 상기가 실상 그에 관한 비평적 해부에 가깝다면, 2막과 3막의 수행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명숙을 재현하는 차원으로 전개된다. 물김치 담그기는 이명숙이 구성했던 맛에 다가가려는 시도로 시작되지만, 그 맛은 공연이 끝나고 별도로 약속을 잡아야지만 실행되는 사후적인 증거로만 남는다. 곧 이명숙의 물김치와 그것을 구현하고자 한 이성직의 물김치와의 관계는 후자를 통해 전자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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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집단 세사람, 〈노스체(NOSCE)〉: 재난을 상상하기REVIEW/Theater 2023. 2. 23. 01:47
프로젝트집단 세사람의 〈노스체(NOSCE)〉(황정은 작가, 윤성호 연출)는 원전 폭발 후 25년째 고립된 채 살아가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할머니 옥(김은희 배우)과 20대 두 친구인 현(윤정로 배우), 희(김민주 배우)과 살아가는 이 마을에, 재난 구조 로봇 노스체(최희진 배우)라는 비인간 타자와 연(박윤정 배우), 필(선명균 배우)이 차례차례 찾아오며 마을에는 혼란과 균열이 생겨난다. 각종 빈티지한 가구와 집기로 촘촘하게 쌓아놓은 무대는 다른 일상의 시간과 세계의 환경을 강렬하게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양식이며, 나아가 외부와 분리된 게토화된 공간이자 폐허의 잔해로서의 시공간임을 드러낸다. 멧돼지의 침입으로 벽을 쌓는 일상의 시간이 지리하게 이어지던 이곳은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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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가슴에, 〈태양〉: 서사의 도입이 갖는 어떤 효과REVIEW/Dance 2023. 2. 23. 01:25
시나브로 가슴에의 〈태양〉은 마에카와 도모히로의 동명의 희곡 『태양』을 모티브로 한다. ‘태양’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동그란 철조 구조물이 무대 전면에 자리하고, 여기에는 촘촘이 무대 조명이 달려 있다. 이러한 조명에 대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전기선은 무대 안쪽을 파고드는 가운데 높이를 달리하며 띄워져 있다. 하나의 강력한 무대 디자인은 이렇게 보통의 위에 달린 조명의 재분배로 완성되며, 희곡상의 태양 아래 존재 가능한 기존의 인간 집단―녹스에게는 “큐리오”로 불린다.―과 태양에 극도로 취약한 새로운 인류인 녹스 집단은, 조명의 암전과 밝아짐 사이에서 차이화된다. 주요한 서사는 다른 시공간, 곧 태양 아래와 어둠이라는 다른 양식 아래 그 두 집단의 양태적 차이, 그리고 기승전결의 극적 흐름 정도로 인지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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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컴퍼니, 〈On the Rock〉: 구조를 향한 힘REVIEW/Dance 2023. 2. 10. 15:26
막이 걷히기 전에 퍼포머들은 한 명씩 무대 좌측에서 우측으로 지나간다. 중앙에서 정면을 바라보기 위해 멈추는데, 그 전에 서로는 시선으로 맞물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독립된 행동이다. 정면을 응시하는 이러한 시선은 관객을 직접 응시하기보다 마주할 수 없는 거리를 발화한다. 곧 그것은 허공에서 대상을 찾지 못하며 미끄러진다. 관객이 보는 막과의 거리감이 퍼포머들의 시선을 통해 체현된다. 〈On the Rock〉의 무대는 바닥이 아니라 그 막의 깊숙한 이전으로 연장된다. 곧 무대를 세워 놓은 전면의 바닥에는 시계나 책상, 창문, 의자와 같은 일상의 사물이 달려있는데, 여기서 의자는 거꾸로도 또 옆으로도 누워있으며, 이 모든 사물과 판은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뉘어 있거나 거꾸로 뒤집힌 것들이 된다. 모든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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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큐브 프로젝트, 〈Recall; 불러오기〉: 서커스를 불러오기REVIEW/Dance 2023. 2. 10. 15:21
무대 오른쪽은 움푹 파여 있다. 반듯이 잘려 나간 네모난 구멍은 어떤 ‘근원’으로서의 세계라는 메타포를 설계하기보다는 ‘근원 없는’ 실재의 감각을 유도하는 매개물이 된다. 음수의 구조물에는 기계적 증폭 장치가 숨겨져 있는데, 이는 트램펄린이다. 극단적인 조명의 켜짐과 꺼짐의 극단적 대비 속에 정성태가 등장한다. 먼저, ‘그’는 일상 너머가 아니라 일상에서 출발한다. 다른 이들과 대별되는 후줄근한 복장은 그가 일상에서 나온 존재임을 각인시키기 위한 설정이다. 전적으로 패션을 수용하거나 움직임이 쉬운 옷을 입거나 하는 다른 퍼포머들과 비교해서, 곧 그들이 작위적으로 멋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연극적인 양상을 그와 마찬가지 차원에서 조금 다르게 연장하거나 단순히 퍼포머로서의 기능적인 차원을 가져가는 것과는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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댑댄스프로젝트 〈> "hello world" ;〉: 몸의 자율성 vs 이미지 이후의 몸REVIEW/Dance 2023. 1. 24. 22:56
댑댄스프로젝트의 〈> "hello world" ;〉(이하 〈hello world〉)의 무대는 몸 이외의 것들로 채워지고 변화한다. 무대를 채우는 몸의 엔트로피를 확인하는 빈 공간의 미학이 꽤 잘 활용될 수 있는 무용의 어떤 향상적인 전제는, 여기서 조금 다른 궤도를 그리게 된다. 매체의 추상성과 구체성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공존하는 무대는, 디지털 이미지의 반영성을 몸으로 재조합하는 행위로 변환된다. 무대 중앙에는 브로콜리 하나를 비추는 영상이 박혀 있고, 이후 이는 몸의 형상들을 은유하는 것으로 재가시화된다. 태블릿 PC에는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이미지는 추상적이지 않은, 어떤 형상을 띤 ‘이미지’들로서, 이는 상징의 한 표식이 되어 현실의 개념들을 각인시키거나 신체의 한 부분을 대체하는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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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비밀기지,〈라이더〉: 두꺼운 미시사의 표면들REVIEW/Theater 2023. 1. 24. 22:52
아마 현실을 다루는 대부분의 연극은 현실을 인지하게 하는 메타-현실의 관점을 창안하고자 할 것이다. 물론 이는 전적인 형식이 되지는 않더라도/않겠지만 일부분 그러한 지점에서 ‘현실’을 반향하는 바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라이더〉의 물리적이고 형식적인 차원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자신의 장면이 끝나고서도 그 무대를 떠나지 않는 배우들에 있다. 이들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바라보며 의도치 않은 개입에 적잖이 당혹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의 연장선상에서 이 연극과도 같은 현실에 부가적으로 동기화되어야 한다.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주로 무용 공연의 일종의 워크숍적 순환의 차원으로 종종 등장하는 이러한 구도가 〈라이더〉에서는 조금 더 지나친데, 이들의 존재가 무대로 함입되기 때문이다. 이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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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Jin Jang Dance, 〈당신이 그런 것을 입게 될 줄 알았어〉: 반향과 굴절의 언어REVIEW/Dance 2023. 1. 24. 22:36
〈당신이 그런 것을 입게 될 줄 알았어〉(이하 〈당신이〉)는 퍼포머와 관객의 일 대 이의 만남을 전제로/통해 진행된다. 두 명의 퍼포머가 무대를 양분한다. 무대로 내려온 관객들은 글러브라는 신체 보족 장치를 끼고 매트에 누워 자기 몸을 맡긴 채(?) 공연 내내 이끌려 다닌다―그 전에 무대 진입 지점 전에 종을 칠 것이 요청되고, 이를 수행한다. 속삭이는 말들은 관객 한 명 한 명을 직접 향하고, 두 퍼포머는 간헐적으로 몸을 올려서 열린 하나의 공간에서 말을 섞는다. 이러한 말들은 커뮤니케이션의 의지를 갖지 않는 대신, 프로그래밍된 언어 설계 아래 수행 자체의 어떤 모듈로서의 성격을 확인하게 한다. 〈당신이〉가 내세우는 가장 주요한 단어는 이것이 “리허설”이라는 것이다. 정식 오픈 이전에 시험적인 차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