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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산조〉: 이미지가 갖는 구성적 힘REVIEW/Dance 2023. 8. 7. 00:22
〈산조〉의 시작은 무대 전면에 달린 지름 6m의 대형 바위 구조물과 한 명의 무용수의 대칭 구도로 시작된다. 어둑한 위쪽 부분에서 조금씩 밝아진 거대한 인공 바위의 질감은 그것이 결코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결코 무겁지 않을, 텅 빈 물질의 이미지임에도 그 부피에 대한 거대한 체감으로써 실제 흔들리는 움직임의 자장을 은폐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동시에 표면적으로는 촉지적인 감각으로 움직임의 흐름을 담지하며, 무용수의 부푼 치마는 이 바위에 대한 메타포이거나, 또는 그 바위에 대응하는 확장된 부피로 자리한다.
곧 무용수의 제자리에서의 부상과 그 무게감이 내는 정중동의 움직임은 줄에 매달려 멈춰진 사물로 수렴될 정도로 극도로 정제되면서 거꾸로 거대한 이미지의 질서에 속한 하나의 점이 되게 된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의 극단적인 미학은 이미지에 비해 움직임의 자율성과 유려함을 강조하기보다도 이미지의 한 장면으로서 감축되는 움직임의 질서 자체를 보게 만든다. 거대한 스펙터클의 질서를 보여준 1막에 이어, 원형 LED 등의 무대 장치가 흩어지고 모이며 무대 중앙의 전면을 계속해서 차지하고 그 밑에서 정면성이 강조되는 2막에서의 무용수들의 움직임 역시, 실은 거대한 이미지 장의 구획과 그에 따른 움직임 자체의 재편을 구성한다.
어쩌면 가장 집약적이고 온전한 방식으로 주제를 함축하는 막은 1막의 첫 부분이다. 여기서 물론 주제는 산조의 복잡도에 대한 제어와 조화로의 과정이 아닌, 이미지로서의 움직임이 갖는 힘이다. 그것은 가장 정제된 미학의 틀이다. 상대적으로 점점 무질서를 향하는 음악에 비해, 1막은 적막을 깬 장구와 거문고가 명징하게 들린다는 점에서 몰입을 강화한다. 한 명에서 군무로 확장되는 무대에서는 오히려 한 명의 존재감이 거대한 돌을 마주하며 상대하는 인상을 주는 것에서 벗어나서 온전히 거대한 질서에 순응된 방식의 몸짓을 보여주게 된다는 점에서 팽팽한 힘의 긴장은 해소되고 따라서 1막의 첫 번째 장면은 가장 압축적으로 힘을 상대하고 체현한다.
2막에서의 검은 색을 입은 군무 가운데서도 초록색을 입은 한 명의 무용수의 존재감이 강조되는데, 이는 물론 유려한 움직임의 극대화가 군무의 일체성으로 확장되기 어려운 물리적 차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군무 자체가 하나의 질서 속에서 은둔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파열음은 군무와 한 명의 선후적인(1막) 혹은 병치적인(2막) 대비 속에서 후자에게서 발생해야 한다. 그리고 3막은 그러한 파열음이 극단적으로 펼쳐진다. 군무가 가진 개별성의 증발 역시 3막 ‘중도(中道)’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해체되기에 이르는데, 시각적 장벽을 지움으로써 성사된다.
2막은 다양한 길이의 막대를 둘씩 짝지어서 잡고 움직이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그 자체로 제한적인 거리와 몸짓을 구성한다. 일종의 행위의 시각적 지표로의 연장은 자율적인 표현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산조〉는 움직임이 가진 역량을 하나의 시각 장, 신체 고정 장치, 일렬적인 배치 등을 통해 시각적 양상이 두드러지는 의상과 함께 움직임 자체의 자율적 역량을 재단하는데, 특히 1막에서는 커다란 이미지들이 전면에 자리함으로써 정면성을 갖게 된, 일종의 평면 스크린으로 전유된 무대에서 깊이를 최대한 지움으로써 곧 정면을 기준으로 X축과 Y축의 이미지 질서를 구성함으로써 Z축에서의 움직임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무대의 전면화는 한국적 이미지의 어떤 전형을 제시하려는 몸짓이다―또한 정구호라는 협업자의 이미지를 극단적으로 부상케 하려는 몸짓이기도 하다. 그것은 선사상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실은 통제된 이미지의 고답성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Z축을 소거한 3막에서 음악의 복잡도는 높아지고 군무의 생동감 역시 활발해진다. 사실 음악은 이를 중용의 상태로 만들기보다는 더 치솟게 만들며 엔트로피가 끝없이 활성화되는 상태 자체를 향해 간다. 군무에의 고유성이 갖는 차이는 각 무용수의 개별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실 군무가 갖는 폭력성과 인위적인 상태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이는 극단적 스펙터클이 갖는 강박적 미감을 향한 희생을 가져온다. 3막은 이에 대별되는 무질서함을 향해 가지만, 1, 2막이 제한한 에너지, 감축된 시각장에서 온전한 예열을 갖지 못한 채 복잡도의 극단적 결말을 향해 간다. 곧 음악은 제어보다는 그 스스로의 이념 자체를 달성하고자 하고, 마침내 움직임은 삐거덕거리며 풀려나지만 제대로 된 중심을 잡기는 어렵다.
〈산조〉는 인위적인 시각 장으로 움직임의 장 자체를 제한하고 감축하고자 하는데, 여기서 음악이 갖는 힘은 생각보다 미약하다는 인상을 준다. 〈산조〉는 ‘산조’의 음악적 힘보다는 어떻게 움직임의 과잉을 이미지의 질서 속에 통제할 수 있느냐에 대한 실험이며, 음악은 이 움직임의 과정적 진단으로서의 순전한 코드적 기표이며 독립된 매체 자체의 자족적인 결말 안에 희박한 주제를 감춘다. 곧 〈산조〉는 동시대 안에서 전통이 가진 역량을 어떻게 조직하느냐에 대한 응답은, 통제된 어떤 한국적 이미지의 전형적인 세련됨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곧 전통은 그것을 위해 재단되고 전유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통일까.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산조
공연 일시: 2023.6.23.(금)-6.25.(일) 금 19시 30분, 토‧일 15시(3일 3회)
공연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주요 제작진〉
예술감독: 김종덕
안무: 최진욱
연출 및 무대·의상·영상디자인: 정구호
협력안무: 임진호
작곡: 김재덕
음악프로듀서: 황병준
조명디자인: 주영석
분장디자인: 박효정
조안무: 장윤나
안무지도: 김미애·황용천
출연: 국립무용단, 객원 남진현
관람연령: 8세 이상 관람
소요시간: 60분 (휴식 없음)728x90반응형'REVIEW > D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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