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아트센터 제작/이오진 연출,〈댄스 네이션〉: 다양성의 몸들이라는 수행성, 그리고 이야기되지 않은 주체들의 발화

두산아트센터 기획, 제작, 윤색/연출: 이오진, 안무: 이소영, 드라마투르그: 장지영, 〈댄스 네이션〉[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댄스 네이션〉은 댄스 학원에 다니는 일곱 명의 10대 청소년들의 춤 경연대회를 전후로 한 삶의 변화를 다루는데, 춤 자체보다는 춤을 경유한 세계의 확장에 초점이 맞춰진다. 춤은 그 자체로 감각되기보다 내용의 일부가, 사유의 매개가, 공연 바깥의 메타적 기호가 된다. 경연대회를 나가기 위한 연습과 경연대회에서의 춤, 그리고 발화의 연장에서 순수한 무대 표현으로서의 춤까지 춤은 많은 시간 무대를 잠식하지만, 이 같은 춤은 연극에서의 통상적인 움직임이 움직임 그 자체의 심미적 자족성을 갖기보다는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기능적 차원으로 이해되는 것과 같이, 일견 발화의 연장선상에서 장면을 구성하는 과정 안에서 이해되는 측면이 크다. 〈댄스 네이션〉에서 춤은 존재들의 본질이고 내면인 반면, 춤의 표현성은 전문성과 완성도의 차원에서 측정되지 않는다. 

(사진 왼쪽부터) 마에브 역 홍윤희 배우, 코니 역 이미라 배우, 소피아 역 황미영 배우, 애슐리 역 부진서 배우, 아미나 역 윤현길 배우.

10대라는 특정 세대에 관한 초점은 성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증폭되는 이들의 일상을 전면화한다. 곧 춤과 관련된 일련의 사회, 춤이 구성되는 무대를 향한 공적 수행의 장소로서의 사회 바깥에서 일어나는 은밀하고도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경험의 공유, 그리고 그러한 성적 경험의 리얼타임의 옹알이 또는 전의식적 발화는, 사회적 금제와 억압 이전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이며, 사실상 그러한 금기를 전복한다기보다는 그러한 혐의를 건너뛴다. 여기서 〈댄스 네이션〉은 엄밀히 사회적인 성별의 결정과 정상 가족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 자리하기보다는 퀴어성―가령 유일한 남자 배우인 백우람은 소개에서 “남자 아이로 보이는” 아이로서, 그 성별을 특정하지 않는다.―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무한한 긍정의 차원을 ‘10대’의 내밀하고도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화로써 보여주기 때문이다. 

〈댄스 네이션〉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성의 목소리‘들’ 자체로 초점화되며, 그 같은 다성부의 병렬적 구성은 소수의 중심인물이 가진 캐릭터로부터의 심리적 몰입을 강화하지 않을뿐더러 좀처럼 캐릭터들 간의 관계가 갖는 밀도로도 연장되지 않는다. 곧 존재는 그 자체로 무한하게 긍정되며, 그 발화의 의미와 메시지는 부차적인 것에 이르게 된다. 또는 그러한 메시지는 캐릭터에 귀속되기보다 〈댄스 네이션〉이 꿈꾸는 무한한 긍정의 자유로운 미래에 대한 갈망쯤으로 환원된다. 

따라서 발화와 존재들과 웅얼거림이 혼재되고 미끄러지는 가운데 〈댄스 네이션〉이 10대의 존재들이 갖는 발칙함이든 악이든 미숙함이든 간에 도덕적 판단으로 갈음할 수 없는 개성의 특질보다는 다양성 자체의 긍정의 차원에서 이러한 특성들이 오히려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댄스 네이션〉이 춤이라는 하나의 매체를 더하는 가운데 이를 형식 자체보다는 내용에 대한 부분으로 체화해 냈다고 하더라도, 또한 〈댄스 네이션〉의 꿈꾸는 세계가 가진 자유로운 (성적) 발화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상징계로부터의 바깥을 꿈꿀 수 있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독특하고 특별한 지점을 선사하는 것인지라는 의문이 생겨난다. 결국 특별한 존재의 발화는 그 존재를 향하는 것도 존재를 넘어 세계를 정확하게 타격하는 것 역시 아니라면, 그러한 발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 주체가 10대를 상정한다면, 10대의 자리에서 구체적이고 적확한 발화를 구사하는 것인가. 대신에 10대의 이름을 빌려 세계를 재설정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런 차원이 동시대에서 유효한 언어로 발신하고 있는 것인가.

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춤을 매개로 한 세계의 확장을 기도하는, 사라지는 매개체에 가까운데, 가령 코러스의 자리에서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집단 최면이 걸린 듯 하나의 언어를 발화하는 장면에서, “춤을 춰서 세계의 기아가 사라진다면, 여성 혐오 폭력이 사라진다면, 반려 동물이 버려지지 않는다면”으로 연속되는 정치한 것들을 향한 이상적 바람은, 우선 춤의 매체 특정성과는 전혀 상관없으며, 동시대의 정치한 이슈‘들’의 종합으로 환원되어 버린다. 춤은 하나의 명목일 뿐이며, 나아가 정치를 간직하는 구체적 언어들은 파편처럼 내재하지도 않는다. 

(사진 왼쪽부터) 애슐리 역 부진서 배우, 소피아 역 황미영 배우, 코니 역 이미라 배우.

미래의 대통령을 꿈꾸며 자신의 재능을 열거하고 내세우는 에슐리(부진서 배우)의 거침없는 과격함의 발화와 루크의 비가 오는 어느 밤에 드라이브하는 것 자체의 긴 멜랑콜리의 구절들, 아미나(윤현길 배우)의 섹스에 대한 상상, 주주(장호인 배우)의 미래의 배우자와 사랑 등은 그 자체로 자신의 고유한 자리로서 발화되며 존중된다. 이것들은 뒤섞이지 않고 캐비닛 안에 보존된다. 그렇다면 관계의 양상은 어떻게 펼쳐지는가. 
배우들은 10대를 연기하면서도 그중 몇몇 배우들은 그들의 엄마를 동시에 연기한다. 마에브이자 루크와 소피아 엄마를 맡은 홍윤희 배우, 코니이자 마에브 엄마 역을 맡은 이미라 배우, 바네사이자 주주 엄마를 맡은 강보람 배우 등 엄마와 딸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마치 배경처럼 이들은 자신의 아이를 감싸고 있고, 홀연히 나타나 사라지며 그 어렴풋한 경계를 잠시 나타낸다. 10대 모두와 관계 맺는 패트(마두영 배우)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현실의 법칙을 이들에게 제시한다. 주주의 엄마는 패트에게 주주를 향해 무조건적으로 용기를 북돋아 달라고 요청하지만, 기각당한다. 대신 패트는 만년 주역을 맡은 아미나를 대신해 주역을 맡은 주주에게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아미나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볼 것을 주문한다. 

(사진 왼쪽부터) 패트 역 마두영 배우, 소피아 역 황미영 배우, 아미나 역 윤현길 배우.

결과적으로, 〈댄스 네이션〉의 춤은 사실 각 캐릭터의 몸짓들, 더 정확히는 그 캐릭터를 나타내는 배우들의 몸짓들이다. 10대를 연기하는 10대의 배우가 없을뿐더러 사실상 연령층을 고루 분배한 극작술의 선택은 〈댄스 네이션〉을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다양성을 지닌 10대의 존재성은 10대를 경험했지만 현재는 그 간극을 좁혀 나가야 할 배우들의 진정성이 쓰인 수행성을 촉발한다. 그들의 몸짓은 온전한 춤보다는 허우적거림이나 애씀으로도 느껴지기도 한다. 〈댄스 네이션〉에서 춤의 기호는 완성도나 전문성의 영역으로 측정되는 대신, 그것을 수행하는 배우의 노력과 의지, 땀의 어떤 정동이며, 이러한 부분은 사실상 춤이 춤 그 자체로서의 기호를 갖는 것처럼 캐릭터와 배우의 경계 사이에서 발신한다. 춤은 비로소 드라마를 벗어난 잉여의 부분으로 성립한다.

〈댄스 네이션〉이 다양성의 분배적 실천을 하는 것과 별개로, 아미나와 주주는 드라마의 현실에서 주목받는 인물들인 동시에 입체적인 변화를 겪는, 주인공으로서의 자리를 갖는다. 드라마적 갈등의 차원에서 만년 1등의 아미나와 만년 2등의 주주의 관계는 흥미로운 설정이고, 이러한 자리가 뒤바뀌는 건 큰 전개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댄스 네이션〉에서 이러한 갈등을 처리하는 데 있어 현저히 그 강도를 낮추는 방식이 더 독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등의 자리에서 내려온 아미나는 연습 과정에서 극렬하게 자신을 몰아세운다. 그리고 경연대회에서 주주가 쓰러진 공백을 자신이 메우고 성공적으로(?) 경연을 마친다. 대신에 도덕적 지탄이 아미나에게 가해지고, 주주는 아미나와 대화하는 대신 자기 스스로의 환상을 좇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암에 걸린 어머니를 낫게 하는 의미를 담은 기존 춤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벗어난다. 아미나는 노력과 의지로써 자신의 원래 자리를 지키는 것의 현실에 패트의 말처럼 다가서며 주역의 자리를 향하고 윤리적 공백을 대체한다. 아미나의 반성은 또는 회의는 그로써 무력화되며, 아미나의 우발적 행위는 욕망의 자연스러운 자리로 수렴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진 왼쪽부터) 아미나 역 윤현길 배우, 주주 역 장호인 배우.

결국 관계의 공간보다는 각자의 자리가 있고, 다른 이들과 달리 지양의 과정을 통해 주체의 자리를 획득하는 둘에게서 그 ‘지양’은 긍정적인 것일까. 실재를 향한 열정이라 할 수 있을까. 아미나의 자리는 현실적으로 당연한 것이고, 따라서 그의 욕망은 의심당할 여지가 없는 것이며, 춤추는 것을 그만둔 주주의 미래에 관한 공상은 그의 꿈에 닿아 있는가, 또는 그 꿈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구멍 마개 같은 것은 아닐까. 이러한 판단을 모두 유예하게 하는 건 그것이 10대의 시절이라는 설정이다. 곧 윤리와 판단에 대한 규칙과 정합성을 부여하기보다는 지난날의 시점에서 그것들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요청된다. 그럼에도 회고의 관점으로 〈댄스 네이션〉을 보는 것 자체가 실은 편견과 선입견을 절대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아미나 역 윤현길 배우, 코니 역 이미라 배우, 애슐리 역 부진서 배우, 마에브 역 홍윤희 배우, 루크 역 백우람 배우, 소피아 역 황미영 배우 외.

결과적으로, 〈댄스 네이션〉은 존재에 대한, 차이에 대한, 욕망에 대한 무한한 긍정에서 시작된다. 이는 희곡과 무대 모두에서 상호 교차되어 구성되는 부분이며, 퀴어와 장애 등의 이슈를 다루는 동시대 국내 연극의 일정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에 10대라는 청소년이라는 하나의 키워드가 더해진다. 이는 30대에서 60대의 배우라는 설정으로 대체되는데, 이는 나이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는 더 급진적 차원에서의 발화이기도 하지만, 이는 10대의 목소리가 아니라 10대를 ‘향한’ 목소리라는 차이는 사실상 희곡을 뛰어넘어 당도하는 수행성이며, 이는 다시 무대 바깥의 목소리와 언어를 요청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어쩌면 10대 모두가 연기했다면, 그들의 목소리로서 〈댄스 네이션〉이 재현될 수 있었을까. 어떤 차원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재현의 주체를 다양성의 주체로 전유하는 것은 엄밀히 희곡과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일까. 오히려 10대가 연기했다면 조금 더 급진적이지는 않았을까. 〈댄스 네이션〉의 다양성이 사실 10대의 고유성들을 이야기한다면, 이러한 다른 세대의 10대에 관한 전유는 다른 몸들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는 물론 흥미롭기는 하지만, 다양성의 몸들이 반영되어야 하는 사회의 연장선상에서의 무대가 필요함과 동시에 다양성의 몸들이 투여되는 것의 극의 정합성 역시 요구됨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양한 몸들은 그 자체로 긍정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이상적인 것이거나 그 바깥의 몸이 갖는 시선에 윤리적인 차원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10대의 몸들이 국내 연극에서 잘 드러난 적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10대에도 역시 다양한 몸들이 물론 자리한다. 다양한 몸들, 다양한 세대의 몸들은 〈댄스 네이션〉을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게끔 한다. 그렇지만 결국 10대에 관해 어떤 지점에서 구체적으로 발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3년 5월 2일(화) ~ 5월 20일(토), 화수목금 8시/토일 3시 *월 쉼 (총 17회)
공연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기획·제작: 두산아트센터
작: 클레어 배런
번역: 함유선
윤색/연출: 이오진
안무: 이소영
드라마터그: 장지영
출연: 홍윤희, 이미라, 윤현길, 마두영, 황미영, 백우람, 강보람, 부진서, 장호인
무대/소품: 장호
조명: 신동선
음악: 단편선
음향: 배미령
의상: EK(이은경)
분장: 정지윤
접근성 매니저: 이청
수어번역/수어연출: 공인수어통번역 잘함 김홍남
수어통역: 김동미, 박미소, 안강숙, 이은미, 조유나
무대감독: 김영주
관람연령: 14세 이상
러닝타임: 120분(인터미션 없음)

문의/예매   두산아트센터 02) 708-5001 doosanartcenter.com 
인터파크 1544-1555 ticket.i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