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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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프로젝트보라, 〈유령들〉: 현상학적인 비-신체REVIEW/Dance 2022. 10. 26. 16:57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유령들〉은 옷과 누드 사이의 경계를 이야기한다. 처음에 하나의 옷을 입고 벗는 행위, 이것을 연이어서 반복하는 퍼포머들의 행위가 쌓이면서 옷을 입고 벗는 건 무용한 것이 아니라 제의적인 차원으로 변화되어 간다. 이는 의식적이지 않지만 하나의 규칙이며 동시에 모두에게 적용된다. 여기에 저마다의 다른 외계어를 내뱉는 퍼포머들에 의해 언어의 차원이 강조된다. 이는 기표의 흔적을 간직하면서―그러니까 언어에서만 비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다―동시에 그 기표가 기의로 치환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기의에 종속되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기의가 주어지지 않을 것임을 말할 뿐이다. 사실 이것은 어떤 말이다. 그 뜻을 알 수 없는. 하지만 그 뜻이 있으리라는 가정을 버릴 수는 없다. 곧 그 말의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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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미컴퍼니, 〈디어 누산타라: 잘란잘란〉:(다른) 문화와 지역의 잠재된 시간성REVIEW/Dance 2022. 9. 9. 01:35
안은미컴퍼니의 〈디어 누산타라: 잘란잘란〉(이하 〈잘란잘란〉)은 “누산타라”라는 수도 이전을 준비하는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수도 이름이며, “잘란잘란”은 인도네시아 말로 ‘산책하다’를 뜻한다. 곧 인도네시아의 근미래에 보내는 인사로, 기본적으로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의 협업에서 산책이라는 기본적인 움직임으로부터의 출발을 움직임의 형상적 차원과 교류의 방식적 차원 모두에서 중층적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보인다. 여기에는 어떤 민족적인 원형을 그 자체로 재현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모습과 형태들의 다양성을 일종의 알레고리 차원으로 선보일 것임을 전제한다고도 보인다. 먼저 한국과 인도네시아 각각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출현하는 〈잘란잘란〉은 안은미컴퍼니가 2015년 이후 선보인 ‘땐스 3부작’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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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재 작/연출,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비)인간을 상상하는 법REVIEW/Theater 2022. 9. 9. 01:04
현재를 향한 미래의 구상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이하 〈A·I·R〉)이 그리는 2060년대는 사실상 오늘날의 사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체감된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몇몇 사회의 이념형을 분할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며 과학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 시티의 미래상이 1구역인 국가라면, 동등하고 평등한 공동체의 자율적 역량을 신망하는 곳이 2구역 “네크”이며, 선주민이 살며 국가 바깥의 통제되지 않는 자연이 곧 3구역이다. 이러한 구분은 사실상 그 안에 각기 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재현되지 않으며, 비로소 이 세 구역을 횡단하는 등장인물들에 의해 정치체제와 사회 현실, 그리고 제도 바깥의 삶과 기후 위기 이후의 삶이 혼합―거꾸로 〈A·I·R〉는 이를 분할하여 횡단 불가능한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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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작/연출, 〈들뜬〉: 촉각의 연극REVIEW/Theater 2022. 8. 29. 21:10
떠도는 이야기들을 쓸어 담는 공간-신체 〈들뜬〉은 짐을 다 뺀 황량한 집에서 시작한다. 이는 물론 소극장의 검은 바닥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물론 방이 아닌 다른 공간은 아니다. 남자의 맨발은 그것을 지시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우의 현존은 장소로부터 체결된다.’ 아마도 이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남자는 오랜만에 아내인 여자를 맞는다. 여자의 머리 위에 센서 등이 깜빡인다. 남자(최태용 배우)는 한참 동안 여자(김정아 배우)를 마주하지만 그를 응시하지는 않은 채 그 자리에 있다. 그는 허공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공간 안의 한 점을 보고 있다. 이 짧은 순간을 비교적 길게 늘이며 공간이 그의 몸에 담긴다. 시간이 멈추고 멈췄던 시간이 몰려온다. 〈들뜬〉은 발화를 통한 배우의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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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 발화하며 현재화되는 경계로서의 ‘극’REVIEW/Theater 2022. 8. 29. 20:46
1인극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표방하며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으로 규격화되는 것으로 보이는《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이하 《코미디캠프》)에서, ‘코미디’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건 연극(인) 바깥의 다양한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는 적당한 포장으로도 보인다. 안담을 제외한 김은한, 배선희, 신강수 세 명 모두 평소에는 코미디 바깥에서 연극을 한다―《코미디캠프》에서는 안담이 유일하게 마이크를 사용한다면, 이 셋은 마이크 없이 무대에 선다. 반대로 이들은 《코미디캠프》에서 연극이 아니지만 연극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미디캠프》가 상대하는 건 일종의 연극이고, 《코미디캠프》가 지향하는 건 오히려 연극의 잔여이며 연극 바깥의 존재하지 않는 어떤 연극일지 모른다. 이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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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경, 〈피부와 공간의 극작술 연구: 장면 둘〉: 신체-이미지의 유령적 탐구REVIEW/Dance 2022. 8. 12. 11:03
〈피부와 공간의 극작술 연구: 장면 둘〉(이하 〈피부와 공간〉)은 극장 전반에 들고나는 통로로 공간의 구멍을 만들고 마주 보고 어긋나게 객석을 배치하고, 앞뒤로 너울거리는 커튼 위에 투사되는 흐릿한 글자들과 그 글자들을 비집고 나오며 말과 움직임 사이에 위치하는 신체 형상들을 통해 ‘틈’과 ‘간격’의 공간으로 극장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틈과 간격의 안무는 신체와 신체, 신체와 이미지, 신체와 스코어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여기서 ‘극작술(dramaturgy)’은 신체 자체보다는 신체가 작동하는 방식이나 과정, 신체를 구성하는 인지를 시험하려는 기술로 보인다. 공간 구조화로서의 시노그라피에서 시작되는 극장은 등장과 퇴장의 구멍과 공간 사이의 틈을 내버려 두고 우발적으로 몸이 그 구멍과 사이에서 시작되는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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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프로젝트 Tan Tanta Dan, 〈Down the Rabbit Hole - 정화된 밤〉: 음악이 되기 위한 움직임REVIEW/Dance 2022. 8. 5. 00:38
〈Down the Rabbit Hole - 정화된 밤〉(이하 〈정화된 밤〉)은 쇤베르크(Arnold Sch nberg)의 동명의 곡 ‘위’에 펼쳐진다. 말 그대로 움직임은 음악에 얹어지며 음악에 ‘감염’된다. 음악은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미디어로, 몸은 그것을 지지한다. 또는 그 몸을 지지하는 것이 음악이기도 하다. 이러한 음악에 감염된 주체를 위해 최진한은 특별한 움직임 메소드를 창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몸은 음악의 파동과 같이 진동하는 것이자 음악의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감염’은 이러한 두 매체 간의 상호 접촉과 전이의 상태에서 움직임에 해당하는 한 측면을 가리킨다. 걷기의 변형태로서 존재하는 기본 단위의 움직임은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한껏 가슴을 뒤로 젖힌 채 두 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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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지 연출 〈누구와 무엇〉: 현실은 이념을 장악한다!REVIEW/Theater 2022. 7. 28. 23:11
그린피그의 박현지 연출이 연출한 연극 〈누구와 무엇〉은 미투 이후 지금 여기의 차원에서 보면 가부장적인 가정에 복속된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관념이 어느 정도 형해화되었는지 또 그것을 뚫고 나오는 현재의 목소리가 어떻게 여전히 지난 관념과 타협하거나 병렬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실적이고 또한 비판적이고 메타적인 시선의 규준을 마련하며 유의미한 지점을 구성한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 에이아드 악타(Ayad Akhtar)는 서구 근대와 아시아 전근대의 경계에 위치한 동시대인의 질문을, 〈누구와 무엇〉에서 파키스탄계 미국인 무슬림 가족, 곧 절실한 무슬림 신자인 아버지 아프잘과 페미니즘을 경유해 선지자 무함마드와 그에 대한 상을 재구성하는 소설 작가인 딸 마위시의 관계 속에서 던진다. 종교에 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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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편입생〉: 진리를 향한 질문들REVIEW/Theater 2022. 7. 28. 23:08
연극 〈편입생〉은 면접을 앞둔 두 인물의 모습에서 시작해, 이들이 면접을 거치고 어떤 삶의 변화로 수렴하는지를 보여준다. 인물의 전사와 이 인물들이 외부의 시선을 통과하며 한 개인들의 삶은 사회적 실재의 한 예시가 된다. 닫힌 공간에서 인물의, 또는 인물 간의 발화는 매우 집중력 있게 진행된다. 뉴욕 슬럼가에서 자란 두 인물이 장학생 추천을 받고 명문대 편입생 후보가 되어 시민단체 직원 데이비드 데산토스(조의진 배우)와 모의 면접을 치루가 되기 위해 한 모텔 방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편입생〉이 ‘편입생’이 되기 위한 클라런스 매튜(김하람 배우)와 크리스토퍼 로드리게스(최호영 배우)의 살아온 환경과 트라우마와 같은 강렬한 기억에 의존해 그 둘의 고유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한다면, 이후 조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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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플라스틱 파라다이스〉: 비말처럼 터지는 언어와 몸짓 들REVIEW/Theater 2022. 7. 16. 02:24
소외된 존재들의 여정 〈플라스틱 파라다이스〉는 두 다른 플라스틱―플라스틱병(“플라스틱”)과 에나멜구두 한 켤레(“에나멜구두”)와 그의 자리를 대신하는 플라스틱 봉지―가 파라다이스―바다―를 좇아가는 여정을 실제 배다리 일대를 이동하는 것으로 전유한 연극이다. 두 배우를 통해 의인화된 플라스틱은 인간에 의해 규정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하고 독립된 주체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바다를 선택한다. 이때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바닷속 어떤 존재가 플라스틱을 바다를 오염시킬 수 있음을 주지함으로써 좌절되는 플라스틱병의 여정은 극적으로 다시 완성되는데, 이는 에나멜구두 한 짝과 헤어진 플라스틱병이 새롭게 등장한 비닐봉지(“검은 사물”)와 만남으로써 가능해진다. 김아영 배우가 역할을 맡은 플라스틱병 앞에 출현하는, 에나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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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안무, 〈메커니즘〉, 움직임을 구성하는 독특한 셈법REVIEW/Dance 2022. 7. 12. 12:34
〈메커니즘〉은 분절된 단위로 움직임이 구성됨을 쌓아가며, 사운드와 함께 서서히 증폭시키는 구조를 취한다. 〈메커니즘〉이 보여주는 건 일견 안무의 경로인 것으로 보인다. 하나하나 분절된 몸짓을 통한 결과는 움직임의 느리게 감기를 통한 일종의 시각적 클로즈업이 아니라, 곡선의 흐름과 그 흐름을 추동하고 있는 인간의 정념이 삭제된다는 것이다. 레슬러의 복장을 한 무용수들은 동작 하나하나를 섬세하고 강력하게 이행한다. 춤은 마치 스포츠의 효율과 훈육된 신체의 퍼포먼스 역량 자체를 전시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 같다. ‘힙합’을 전유한, 국립현대무용단의 프로그램 제목 ‘HIP合’은, 그 이름만 놓고 보면 힙합과는 직접적인 친연관계를 지양하는 듯 보인다. 하위문화의 일종으로서 저항의 코드를 지니며 여러 장르/매체를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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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로 사리넨 안무, 〈회오리〉: 본질주의와 전승 사이에서의 전통REVIEW/Dance 2022. 7. 12. 12:20
테로 사리넨이 안무한 〈회오리〉는 한국 무용의 전통적인 것을 추출, 전유한 작업이다. 이는 통상 오리엔탈리즘적으로 표상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고유한 어떤 것이 어떻게 굴절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거꾸로 우리의 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 체계와 재현 질서를 인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우리 고유의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정위되어 있지 않다고 전제하는 한에서. 〈회오리〉는 ‘회오리치는’ 유사성의 움직임 계열체를 만드는 것, 흑백의 양분된 ‘색감’에 따른 상징 구도 위에 샤먼이라는 예외적인 존재가 자리하고 있음, 그리고 음악이 끊임없이 합성되고 있는 실시간성의 수행성이 강조되는 것으로 집약된다. 첫 번째로 움직임의 형태는 사실 스텝을 너르게 잡고 크게 굴신하며 팔을 벌려 나무가 바람에 휘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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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이지 않는 손〉: ‘세계에 관한 이념 변경을 위한 심리학적 실험’으로서 서사REVIEW/Theater 2022. 7. 12. 12:10
〈보이지 않는 손〉은 사실주의적 양식에 기반을 두며, 급박한 현실 정세를 소수의 인물 관계의 변화 양상으로 집약한 일종의 심리 드라마라 할 수 있다. 파키스탄 무장 단체의 바시르와 이맘 살림, 그리고 미국 투자 전문가 닉을 주축으로 하며, 미국과의 협상이 결렬되며 무장 단체 측에 생존 가치를 잃은 닉은 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몸값을 투자를 통해 회수할 수 있음을 피력하고, 이를 수용하면서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좁힐 수 없는 이념 대립을 인물들로 육화하는 데 그치기보다는 선물 경제의 자본이 개입되며 어떻게 그 이념이 파열되고 굴절되는가에 집중한다. 이는 ‘스마트’하고 합리적인 닉을 주인공으로 두며 자본의 힘을,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명백한 승리를 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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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기이한 연결의 정동’REVIEW/Theater 2022. 7. 12. 11:51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목격된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이하 〈작은발톱수달〉)는 통합적인 장, 통약 불가능한 존재들의 공-현존과 그 연결에 주목한다. 비인간 생명과 인간 생명 외에도 기계와 인간의 관계, 여러 다른 시공을 겹쳐 놓는다. 하나의 시간에 다른 시간이 파고든다. 동시에 모든 존재는 그 시간 안에서 다른 시간을 향해 열려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의 시간만이 주어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이는 하나의 존재가 시간을 옮겨 다니며 두 시간을 간신히 통합하면서 하나의 의식을 구성하거나 다른 시간으로 발신을 하는 존재와 소통하는 식의 시간 여행 서사 장르물의 일반적인 성격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수많은 존재가 각자의 멀티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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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소프루〉: 유령적 현존을 통한 연극에 대한 기술REVIEW/Theater 2022. 6. 20. 02:10
연극 〈소프루〉는 프롬프터를 쓰던 지난날을 현재로 복각한다. 40년 동안 프롬프터로 일한 크리스티나 비달을 인물들 곁을 맴돌게 함으로써 현재에 달라붙은 역사의 그림자는 실재적인 잉여가 되어 착종된다. 드러나서는 안 되는 프롬프터의 속삭이는 말들과 존재가 대사에 미세하게 비벼지고, 실제 ‘들리는’ 대사는 연극에 대한 메타 레퍼런스로 비달을 향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배우들 뒤에서 비달은 앞서서 이야기를 전한다. 비가시적이고 동시에 무대 바깥의 물리적인 위치에서 연유하는 그의 위상은 언급되고 끊임없이 확인된다. 그의 존재는 이 이야기들의 내부이며 이 이야기들을 바깥으로 만든다. 프롬프터가 갖는 대사의 원본성에 대한 지시는 〈소프루〉의 배우들을 연기하고 있음으로 구성한다. 배우들은 재현의 경우를 제하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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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웰킨〉: 얼굴과 잡음의 몽타주REVIEW/Theater 2022. 6. 20. 02:09
연극 〈웰킨〉은 아동 살해죄로 교수형을 받은 피고 샐리 포피와 그의 처형 보류 혹은 감형 여부를 결정하는 임신 여부 판정을 위해, 배심원으로 임명된 열두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다. 일정 정도 마을에 같이 사는 사람들로서 공유되는 컨텍스트가 끼어드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은 각자의 입장과 견지에서 임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데, 전원 합치된 의견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따라 의견은 하나로 모여야 하며, 따라서 이들은 마치 직접 민주주의의 주체로 부상한다. 그것은 대부분 적당히 무심하고 또 상대방의 말에 부화뇌동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가운데, 하층계급의 언어적 전략이라는 표면 아래 극은 오히려 민주주의에서 우민의 통치라는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연출하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도 같다―이 극이 현대를 이야기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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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남장신사〉(드랙바이남장신사): 수행성, 발화, 매개의 지층들REVIEW/Performance 2022. 6. 16. 20:24
〈드랙×남장신사〉는 실제 여성 퀴어의 발화와 무대를 고스란히 극장에 투여한다―무대 위의 수행성이 또 관객의 참여적 몫이 어떻게 효과를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인상적인 예시를 제공한다. 처음 이십 년째 퀴어들을 대상으로 한 ‘레스보스’라는 바를 운영 중인 바지씨 윤김명우에 대한 생애사 재현에서 레스보스 시절 퀴어들의 만남으로 ‘바지씨’에 대한 정의를 탐구할 때까지 어느 정도 재현의 틀 안에서 극을 구성하려 했다면, 이후 〈드랙×남장신사〉는 윤김명우의 노래―〈세월이 가면〉―와 이하 독보적인 세 명의 출연으로 계속 판을 갈아엎고 쇄신하기에 이른다. 〈드랙×남장신사〉는 당사자의 장을 열어주는 것으로 “드랙”을 대신한다. 그건 법적 성별에 전략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는 의상과 분장을 바탕으로 한 노래와 춤/움직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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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아시스〉: ‘혁명적으로 연극 하기’REVIEW/Theater 2022. 6. 16. 19:47
〈오아시스〉는 끝없는 언어 유희를 통해 세계를 해체하고 다시 가설하기를 반복한다. 사막 한가운데 생긴 호텔 오아시스에 숨겨진 오아시스선을 타고 소행성 충돌을 피하기 위해 차원이동선인 오아시스선을 또 옮겨타야 한다. 이 오아시스는 오아시스 밴드가 좋아하는 모종의 술과 같은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한다. 전자가 현실 세계의 구조적 서사라면, 후자는 이에 대한 자유로운 배우들의 사유 영역에서 나온 것이다. 〈오아시스〉는 어쨌거나 하나의 언어에 올라타고, 그 언어를 다른 언어로 전치시키고, 이를 반복한다. 연속되는 언어 유희를 통한 문법의 생성은 어떤 시대와 어떤 시간에도 얽매이지 않는(재현하지 않는) 연극을, 동시에 그러한 시대와 시간을 지시할 수 있는(참조하는) 연극을 가능하게 한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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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모, 〈끝이야 시작이야〉: 연극에 대한 극장의 언설REVIEW/Theater 2022. 6. 16. 18:59
〈끝이야 시작이야〉는 연극 이전에 자리하는 극장에 대한 거대한 언설이다. 또는 일상을 빌려와서 극장에 두는 작은 시도이다. 김은지, 송철호, 윤정로 배우 세 명은 매끄러운 서사의 당위를 갖지 않는, 일상의 파편들이 급격히 분절되는 상황 속에서 이전의 시간을 빌려온다. 그들은 서사의 중간에 위치하지 못하며 서사의 시작이자 끝인 어떤 모호함에 자리해야 한다. 분명하게 서사를 매개하는 대신 흐리멍덩한 서사에 적응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은 극장에 놓여 있으며, 그 놓여 있음에 대한 전사를 사유하는 것으로 연기를 대신해야 한다. 처음 송철호와 윤정로는 극장 바닥에 놓인 하얀 페인트를 부어 놓은 투명 플라스틱 통에 페인트를 묻혀 긴 롤러로 극장 벽을 칠한다. 아니 아무것도 안 묻은 롤러로 벽을 칠하는 행위를 정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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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극 《트랙터》: ‘희미한 연결들’REVIEW/Theater 2022. 6. 16. 18:40
청소년극 단만극 연작 《트랙터》는 세 명의 희곡 작가가 쓴 세 개의 작업이 하나의 작업으로 연결되어 있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한 명의 연출이자 동일한 배우들, 그리고 희곡 작가들의 교류가 접점에 대한 인지를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구성의 차원에서 세 작업의 특징과 그에 따른 순서의 지정은 세 다른 공연의 연결에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고 할 것이다. 〈7906번 버스〉(한현주 작)가 멈춘 버스의 장소, 곧 일종의 비-장소에서 고등학생 세영(신윤지 배우)과 은호(최상현 배우), 운전기사 자은(박은경 배우)은 재난과 사고에 대한 개인의 트라우마를 공유하게 된다. 처음 자신이 사는 곳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쓰러지며 자신이 탄 버스를 덮친 사고를 이야기하는 세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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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작/연출, 〈비둘기처럼 걷기〉: 도시(인)의 무의식을 탐사하기REVIEW/Theater 2022. 6. 7. 00:55
〈비둘기처럼 걷기〉는 공간 특정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존재를 뒤섞는 언어적 실험과 공간을 맵으로 설정하고 그에 따라 공간에 부착하는 언어들로써. ‘비둘기처럼 걷기’는 알레고리가 아닌 환유적인 기호가 되며 판타지를 물질화한다. 이는 비둘기에게 눈을 쪼아 먹힌 사람이 자신의 눈을 먹은 비둘기가 걸어가는 장면과 그에 해당하는 내레이션이 나올 때 극적으로 고양된다. 비둘기는 휴대전화에 작은 휴대용 삼각대를 연결한 것으로, 이 ‘비둘기’는 자신의 조종자의 바깥을 함입하며 그의 시선을 대리하거나(이 ‘비둘기’를 보는 조종자의 시선은 바깥을 온전히 향하지 못한다.) 또는 카메라 방향을 그 조종자가 돌림으로써 조종자를 함입한다. 곧 비둘기와의 형태적 유사성을 전제하고 있으며 비둘기로 초점화하는 순간적인 발화 행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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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개인전 《스키드》 : ‘변경되는 감각의 지도’REVIEW/Visual arts 2022. 6. 7. 00:44
장서영 작가가 아마도 예술공간에서 선보인 지난 개인전 《눈부신 미래》(2021. 아마도 예술공간, 서울.)가 여러 공간에서 작업들이 분절되어 있었다면, 이번 전시 《스키드》는 상대적으로 작은 폭에 비해 기다랗게 일자로 펼쳐진 복도 공간을 따라 일점투시의 빈 시공간으로 수렴한다. 이는 전시의 ‘속도’와 ‘흐름’과 같은 키워드와 맞물리며, 관람객의 동선과 작품 간의 밀접한 연결에 있어 순환의 체계를 ‘매끄럽게’ 구성한다. 일점투시의 끝에는 얼굴 혹은 빨대가 있다. 〈드링크미드링크〉(2022. 단채널 영상, 흑백, 2분 51초.)가 그것이지만, 너무 그것과의 거리가 멀어 관객의 시선은 빈 공간의 떠 있는 파편적 작업들의 양상으로 가라앉는다. 장서영 작가의 개인전 《스키드》(2022. 신도문화공간, 서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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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환 작/연출,〈기후비상사태: 리허설〉: 리허설의 과제REVIEW/Theater 2022. 6. 3. 01:18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이하 〈리허설〉)은 기후 위기에 얽힌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다른 한편 이는 전윤환이라는 해당 작품의 작가가 그러한 내용을 고민하며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여러 경험과 그에 동반되던 궁핍함을 함께 드러낸다는 점에서, 곧 이를 여러 배우로 분화시켜 상연함 자체를 연출한다는 점에서 〈리허설〉은 그의 지난 〈전윤환의 전윤환 - 자의식 과잉〉과 결을 같이 한다. 이 후자의 차원은 그가 기후 위기에 대한 예술가의 역할이나 그러한 내용 자체에 대한 표현 형식을 탐구하는 데 따르는 고민보다는 작가로서 그 주제와 나 사이의 거리를 계속해서 확인하면서 글을 데드라인 안에 퇴고해야 하는 조급함과 피로도, 체념 등의 일련의 작가로서 받는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자의식으로 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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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구 극작/이연주 연출, 〈당선자 없음〉: 역사의 균열을 추적하는 주체REVIEW/Theater 2022. 6. 3. 00:48
〈당선자 없음〉은 제헌헌법이 창립한 경위를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추적해 나가며, 현재를 구성하는 이념의 한 구조적 토대가 되는 헌법의 계보를 가시화함으로써 소수의 자의적인 입법 과정과 그 이후를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현재로 연장한다. 곧 헌법의 계보학을 좇는 〈당선자 없음〉은 법의 기원을 본질적인 정의의 이념으로 구성하는 대신 외설적인 흔적을 누출한다. 그것은 물론 당대의 영향 아래 있으며, 나아가 자의적이고 우연적이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법 관련한 전문가는 전자의 친일파에 속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를 무대로 상연하는 자리에서, 그들―최상영_배우 이윤재과 그를 돕는 윤길상_신강수 배우―은 새로운 해방 정국에서 잔뜩 움츠러든 채 죄인으로서, 입법의 예외적인 역량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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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민 개인전 《RE:RE》: 연약한 자아의 주체로서의 선언REVIEW/Visual arts 2022. 5. 31. 01:44
리혁종이라는 울타리 혹은 그늘 “개성을 강조하고 남과 차별화된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가상을 기르고 그로부터 전제된 일관성 있는 개념 및 양식의 작품 생산을 배양하려는 대학(과 대학원)에서의 미술 전공 과정. 양식적 새로움에 대한 경합의 무대를 위한 감각의 투여는 내게 어떤 동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어지러움을 준다.”_황규민, 「작가 노트: 대학 미술 출구 및 우회로를 찾아서」 황규민 작가의 개인전 《RE:RE》는 리혁종 작가의 작업을 참조자료로 동원한다. 여기에는 작가의 작업의 다음 경로를 모색하는 데 따르는 곤경, 작업 방법론의 미결정 상태의 곤궁 모두 작용한다. . 여기서 리혁종 작가 자체가 모델―〈넝마 철학 조각가 RE:〉(2022. 캔버스에 유화, 162.2×260.6cm.)―이 되기도 하지만,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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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수유 〈공포가 시작된다〉: 연대의 몫을 구성하는 ‘진실성’의 무대REVIEW/Theater 2022. 5. 22. 12:19
〈공포가 시작된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대한 컨텍스트를 배경으로 쓰인 일본 희곡을 국내 무대로 옮긴 것이다. 한국적 맥락을 결합하거나 차용하는 대신, 본래 희곡을 최대한 그대로 가져가려 했다고 보인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결과는 일본의 배경이 상대적으로 일본에서는 쉽게 상기되고 이해될 수 있을 반면, 한국에서는 그러한 맥락이 공연으로부터 이격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어쩌면 그대로의 번역이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인 번역이 필요하지는 않았을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공연 브로셔에는 공연에서 메타적으로 지시할 수 없는 일본 목욕 문화나 토로로 소바같이 일본적 컨텍스트에 대한 소개를 실어놓았다. 이를 한국적 컨텍스트와 결부 짓는다면 어떤 것들이 들어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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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지영,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 극장을 구성하는 바깥에 대한 알레고리들REVIEW/Theater 2022. 5. 22. 12:00
원지영의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은 알레고리로 극장을 구축하려 한다. 김보경 배우는 처음에 플래시를 들고 바닥을 비추며 길을 낸다. 플래시 색에 따른 갈색을 띤 그의 맨발이 밟히는 바닥은 마치 모래사장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는 사실 뒤에 등장하는 “바다”라는 기호가 결부되며 분명해진다. 하지만 이를 바다로 직접 지칭하는 건 아닌데, 실재하는 대상의 물리적 속성을 판타지로 뒤덮는 대신 오히려 가상의 이미지를 경유해 현재의 이미지로 도달하는 프로세스가 그 안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이미지화된다. 이러한 가상의 이미지는 ‘어떤’ 서사의 조각들이고 온전한 서사의 한 ‘조각’으로만 머문다. 온전한 서사는 구성될 수 없고, 다만 떠도는 기억의 잔상으로 맺힌다는 인상을 준다. 김보경은 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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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김경화, 〈2014년 생〉: 예외적 주체의 탄생REVIEW/Theater 2022. 5. 22. 11:55
제목인 “2014년생”인 백송시원과 이나리 배우가 출연한다. 공교롭게 2014년생이다. 백송시원은 본 작품의 연출을 맡은 송김경화의 딸이다. 이러한 배경은 세월호 참사가 연출에게는 탄생과 죽음의 전이 지대로서 위치 지어졌음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게 한다. 어른으로부터 독립적인, 어른과 같이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집요하게 질문하는 배우 시원은 보호받아야 할 아이로 세월호 희생자를 위치시키는 ‘어른들’의 인식을 전복한다. 수동적이고 성숙하지 못하며, 따라서 의사 결정을 어른으로부터 위임받아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어린이에 대한 주체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연스러운 어떤 질문을 듣는 것은 이나리 배우에 의해 매개된다. 우리는 듣는 위치에 처한다. 시원이 설명하는 ‘시민이 아닌 어린이’. 공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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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룸 〈세월호 학교〉: 타자에 대한 어떤 교육REVIEW/Theater 2022. 5. 22. 11:45
엘리펀트룸의 〈세월호 학교〉는 세월호 참사를 원점에서 복기한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혜화동1번지가 꾸준히 기획해 온 세월호 시리즈의 하나로서, 메타적으로는 그 기획 자체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 공연은 진상 규명(이 되지 않았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국가의 의미를 검토하고, 새롭게 국가의 모습을 재요청하는 민주주의 시민의 몫에 관객의 자리를 대입하고 있다. 따라서 어린이를 상정한 교육의 형식은 관객의 계몽을 구성하기보다는 계몽된 관객의 시점에서 교육이라는 형식 자체를 검토하게 하는데, 이러한 방식이 복기라는 형식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곧 〈세월호 학교〉는 교육의 내용 자체를 전달하기보다는 ‘교육은 왜 필요한가.’ ‘교육은 무엇을 향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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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오브 포겟팅〉: 표현으로서의 재현REVIEW/Theater 2022. 5. 22. 11:36
음악의 전개와 움직임의 긴밀한 협응으로 진행되는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음악이 공간을 장악하며 이미지적인 장면들을 만드는 것으로 점철된다. 이러한 충만한 무대로의 입력은 최소한의 대사를 ‘나지막한’ 또는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로 치환한다. 피지컬 씨어터라는 장르로 명명되는 작업으로, 배우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음악의 거센 파고에 몸을 싣는다―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퍼커션, 루프 스테이션 등의 2인조 밴드―김치영, 조한샘―가 악기를 다룬다. 참고로 영국 프로덕션 ‘시어터 리(Theatre Re)’의 기욤 피지 연출과 알렉스 저드 작곡가 등이 만든 오리지널 공연이 2019년 외국 배우들의 출연으로 같은 장소인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오른 바 있으며, 이번에는 한국 프로덕션의 협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