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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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Y, 〈제1강: 거절하는 방법〉: 공동의 이야기로 외전을 이룩하기REVIEW/Theater 2021. 10. 25. 12:04
편지는 늘 미래를 향한다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은 자기계발의 일종으로서 인간관계의 요령 같은 걸 알려주거나 그래서 성공한 삶의 욕망을 추동하는 그런 유의 작품과는 거리가 있다. 그 제목만으로 그러한 시시콜콜한 관계 맺기의 기술을 보고 들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34살의 리아(강서희 배우), 선주(백혜경 배우), 현(강다현 배우), 미소(배선희 배우)가 17살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로부터 〈거절하는 법〉이 출발하며, 거절하는 것에 대한 변명의 궁핍함, 상대방에게 상처를 또는 실망을 안기지 않을까에 대한 죄책감 또는 불안감 등 온갖 걱정이 따라붙었던 존재라면, 곧 그들이 스스로의 언어를 쌓아 나가던 그리고 질풍노도의 성장기에 있던 존재임을 알게 된다면 그제야 제목에 무게가 실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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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야무 , 《오》: 금배섭 안무의 중간 점검 혹은 다시 보기REVIEW/Dance 2021. 10. 19. 17:48
〈?〉, 〈니가 사람이냐?〉, 〈미친놈널뛰기〉, 〈섬〉, 〈포옹〉: 존재의 바탕을 구축하기 금배섭의 춤판야무의 안무 작업들은 퍼포먼스에 가깝다. 극장 공간은 장소의 실천적 의미로 변한다. 금배섭의 움직임은 이 안에서 사물로 연장된 행위의 분명한 단위들을 설정하고 반복하는 것에 가깝다. 그 사물들과의 관계 맺기는 움직임을 제약하는 한편 재분절한다. 이 속에서 금배섭은 어떤 감정에도 휩싸이거나 드러내지 않는, 공간을 측정하고 사물을 제어하며 기계적인 움직임을 구사한다. 가령 〈?〉에서 두 팔을 양옆으로 휘저으며 연장시키는 움직임은 순전히 심미적 차원, 또는 형식적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을 구성한다. 반면, 이러한 움직임은 더 나아가는 대신, 곧 그치고 이후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로서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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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판지》, 극장의 경계를 시험하는 퍼포먼스REVIEW/Performance 2021. 10. 19. 17:29
한국-스위스 공동창작 프로젝트: 돌과 판지, 6편의 솔로 작업 리뷰 극장은 판지의 무게로, 판지의 차갑고 푹신푹신한 재질로, 공간을 메우는 빈 부피로 현상된다. ‘돌과 판지’라는 제목에서처럼 판지가 공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지 그 양적 차원이 아니라, 몇 가지 판지의 특질을 곳곳에서 체현한다. 반면 돌은 정지혜의 무대에서 한 번 등장하는데, 브로슈어에서 판지와 대조적인 재질로서 지시되는 돌이 무대에서 거의 부재한 것은 인공의 특질과 관련을 맺는 공연의 직접적 성격으로 수렴한다. 곧 이 공연은 현재 각종 박스가 뒤덮고 있는 우리의 삶, 그러한 재현 가능한 어떤 삶의 양태를 고스란히 추출하고 있다. 그리고 세 퍼포머의 불연속적이고 단속적인 무대는 어떤 관련을 지시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행위에 대한 질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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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림, 《Night Movers》: ‘바깥’의 기호들REVIEW/Visual arts 2021. 10. 19. 16:49
전시 《Night Movers》는 상징으로 파악되거나 도상으로 수렴되지 않는 기호적 사물들의 불연속적이고 불균질한 매듭들이 점철된다. 이 말이 없는, 또는 말이 되지 않는 엮음에 따라 그 사물의 이름이 지워지며 갱신되는 전시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지웠을 언어, 곧 캡션 없는 이 사물들의 전시에서, 어떤 언어가 있는 세계의 현재를 표상하는, 그 내용을 유추해볼 수 있는 그림이자 가장 거대하게 자리하는, 본문이 없는 책들이 군데군데 있는 이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본문에 해당하는 그림 역시 명확하지는 않다. 우선 기름종이에 그려진 이 그림(〈Recall〉, 우레탄 비닐, 마커 펜, 600×400cm, 2021.)은 도구를 다루는 사람들, 작업하는 사람들을 표한다. 당연히 그것들은 어떤 멈춰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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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연출, 〈순교〉: 폐허의 역사로부터 나아가기REVIEW/Theater 2021. 10. 19. 16:49
SF 서사를 유기적 공간의 아이디어로 실현하다 극장은 중앙과 중앙을 둘러싼 두 원형의 무대와 객석으로 양분된다. 관객이 바깥쪽 원형의 객석을 차지하면, 중앙의 무대는 배우들의 안정된 자리가 아닌 비어 있는 구간으로 주로 놓인다. 호시 신이치의 SF 원작 서사를 바탕으로 한 〈순교〉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한 음습한 느낌의 발명가에 의해 저세상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는 통신 장치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순식간에 온 세상의 사람들이 저승을 향해 목숨을 던지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간결한 공간 디자인의 영역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처음 발명가가 저승의 아내에게 말을 건네는 때에는 무대 중앙 아래로 떨어지는 조명과 의자 사이의 간격이라는, 아주 좁은 물리적 영역으로 한정되며, 의구심과 미지의 영역에 있는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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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 중층의 시간과 시각REVIEW/Visual arts 2021. 10. 15. 11:38
문화연구의 시각을 도입하기 적산가옥이 산재한 동인천 부근에 새롭게 자리한 부연에서 열린 전시 《적산가옥》은 해당 지역의 역사를 현재에 각인시킨다는 점에서 미술 전시로서는 매우 드문 경우다. 세 명의 작가는 이의중 건축가와 같이 현대 미술 작가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는데, 건축사와 근대사를 연결하는 리서치를 작업으로 연장해 온 카마다 유스케와 실제 『신흥동 일곱주택』이라는 책을 이의중 건축가 외에 여러 작가와 함께 만든 오석근 작가가 참여하며, 건축에 대한 전문성과 실제 경험을 공유하며 전시로 연장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레퍼런스가 모인 테이블 위에 함께 놓인 『신흥동 일곱주택』은 전시의 밑거름이자 전시를 참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적산(敵産)은 자기 나라에 있는 적국(敵國)의 재산(財産)을 의미한다. 적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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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set 프로젝트, 〈관람모드-있는 방식〉: 극장으로써 다른 삶의 존재 방식을 자각하기REVIEW/Theater 2021. 10. 8. 16:02
이동―출발과 도착, 그리고 머묾―은 〈관람모드-있는 방식〉의 시작과 끝, 곧 형식적 골자를 이룬다. 출발과 도착의 장소는 같고,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운영하는, 국회의사당역 앞 이룸센터가 그 장소가 된다. 사실상 여기서 무언가가 진행되지 않지만 이 장소는 공연 자체가 장소의 서사라는 전제에서 텅 빈 기표의 공간을 질문으로 채우게 하는데, 공교롭게도 법을 제정하는 의회와 인접된 곳이라는 점에서, “법”을 키워드로 한 페스티벌의 전체 지향점과 맞물린다. 〈관람모드-있는 방식〉은 법이 있기 전의 장애인 시설에 대한 법적 규정이 미흡했을 때부터, 오늘날 법의 탈시설의 수용과 같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변곡점에 새겨진 법의 무늬들을 확인할 수 있다. 폐쇄된 장소에서 이전의 기억을 듣는 것과 탈시설 운동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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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길 ,〈2-1-3〉, 〈1-2-3〉: 허구와 실재 사이에서REVIEW/Performance 2021. 10. 8. 15:14
퍼포먼스는 극장 천장 쪽 양쪽에 달린 스피커 두 대의 음향을 듣는 것으로 진행된다. 무대는 텅 비어 있는 대신, 류한길 작가는 객석 뒤편에 자리한다. 극장은 어둡고, 관객은 어슴푸레한 환경에서 스피커에 가해지는 또는 튕겨 나오는 노이즈의 강도를 그리고 그 끊임없는 변형을 한없이 지켜보게 된다. 온전히 스피커의 소리를 듣는다는 점에서 인천아트플랫폼 옆 동에서 같은 시기에 열리고 있는 전시 《③》의 연장이자 시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었고, 작업자의 존재가 아닌 행위를 비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음이 연원하는 소스를 알 수 없게 하는 일종의 청취 공간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었다. 여기서 작가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일종의 변형들의 흐름을 구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음으로 초점화할 수 있는데, 실재의 음원의 경로를 추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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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진 작, 연출,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현실에 개입하는 목소리REVIEW/Theater 2021. 10. 5. 21:52
정중앙 상단에 십자가가 자리하고 그 아래, 목사의 단상이 배정되는 교회의 물리적 장소성을 극장 전체로 전유한 것은, 이 연극의 언어가 사실임 직한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것과 맞물리는 한편, 장소적 아우라가 한 개인―여성, 청소년, 약자―에게 가해지는 위계와 폭력이 극의 주요한 모티브임을 지시한다. 드라마 연극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극의 드라마는 전개가 빠르며, 최소한의 간결한 전사를 전하는 데 그친다. 다른 한편으로, 일상의 시간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식으로 극은 극사실주의적으로 편집된 것 같고, 이는 특히 라이브 연주와 노래가 나온다는 것에서 그러한데, 라이브 공연의 경우, 장소의 아우라가 단지 무대 세트라는 간극을 은폐하기 위함이거나 공연을 통한 매체적 확장을 전시한다는 것 외에 별다른 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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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형, 〈리허설〉: 정금형의 아카이브, ‘이음매는 끊어져 있다.’REVIEW/Performance 2021. 10. 5. 21:09
〈리허설〉은 정금형의 지난 작업들을 파편으로 가져와 변주하는 퍼포먼스이다. 이는 하나의 빈 공간에서 일어난다. 무대의 스펙터클이나 맥락, 구성 모두를 제한 상태에서 진행되므로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불투명한 계열체로 남고 움직임 자체에 대한 형식적 탐구의 여지도 생겨난다. 반면 기존 작업들에서 움직임의 자료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재현(a)에 대한 재현(b)의 양상을 가지며, 기계와의 섹스를 재현해 온 지난 작업들의 연장/변형/재구성은 여전히 수행적이고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반면 ‘재현(a)의 재현(b)’은 애초 이 작업이 빈 무대라는 지점에서, 그리고 ‘리허설’이라는 유일한, 하나의 맥락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그 목적을 달리한다. 이는 순수한 표현의 양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 양태 역시 달리한다. 리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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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아카이브로서 몸의 정동REVIEW/Theater 2021. 9. 22. 00:55
1992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과 2008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 전자에서 후자로 건너가는 지점에 복수의 김이박, 곧 하나의 김이박들이 있다. 곧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이하 〈김이박〉)의 제목에서의 동어반복의 제스처는 두 개의 다른 시간을 하나의 더 먼 곳에서부터 오는, 그리하여 합쳐지며 다시 과거가 되는 하나의 시간으로 구성됨을 의미한다. 분명 처음에 두 다른 김이박이 전제되지만, 이 둘은 무대라는 하나의 시간대에 있으며, 그러한 흐름 가운데 하나의 김이박과 다른 김이박은 역할을 교환하는 듯 보인다. 둘은 서로의 시간을 구성하지만 실은 거울처럼 상대를 비추고 그 상대에 의해 자신이 구성되는 관계로 엮여 있다. 1992년에서 2008년을 거쳐,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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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최진한, 《Other Ghost Lives》: ‘현실을 머금은 몸’REVIEW/Visual arts 2021. 9. 22. 00:36
밤에 전시 《Other Ghost Lives》를 재개한다는 것은 전시로서는 꽤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여기서는 그 자체의 새로움보다는 어둠 속에서 전시를 본다는 콘셉트가 중요한 전시라는 점에서 그 온당함을 이야기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윈도우가 개방된 Keep in Touch Seoul에 암막 커튼을 달고 관객은 레이저 포인터와 조명이 다 되는 작은 손전등을 받아 들고 벽을 더듬어 간다. 벽에는 하얀 포스트잇 위에 문장이나 단어 들이 있다. 사방의 벽의 중앙에는 높이가 긴 작은 면적의 테이블이 있다. 맥도날드 포장지로 만든 조각을 주로 선보여 온 작가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다. 하얀 포스트잇은 크게 두 가지 서사가 전개된다. 하나는 작가의 현실을 주로 반영하는 말이라면, 다른 하나는 『바냐 아저씨』에서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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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주 작, 이양구 연출, 〈집집〉: 하나의 집(을 지배하는 시스템) 아래 무수한 존재들이 있다!REVIEW/Theater 2021. 9. 22. 00:19
극장에 들어서면 작은 집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낡은 나무로 된 싱크대장 표면에 흰색 패널을 부착하는 것으로 극 중 유일한 사물의 변화가 여러 장면에 걸쳐 단속적으로 꽤 느리게 일어나는 것처럼, 리얼함은 임대아파트를 재현한 이 집 안 곳곳을 지시하는 것으로 드러나며, 마찬가지로 그 사물을 만지고 지시하며 인물의 발화가 구성되듯 일상은 한없이 느리고 세세한 시간성으로 구성된다. 리얼함은 곧 이 집의 외양, 곧 그 속의 사물들, 그중에서도 싱크대가 지지하며, 이 집은 20년의 시차를 둔 두 인물, 박정금(박명신·이윤화 배우_더블캐스팅)과 연미진(이나리 배우)의 삶을 오가는 공간이자 리얼함의 공통된 토대이기도 하다. 곧 그 둘은 다른 시간에서 마주할 수 없는 반면, 이 집은 마치 그 둘을 응시하듯 제 모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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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 〈UNDOIT〉: 행위와 움직임 사이에서REVIEW/Dance 2021. 9. 13. 21:52
행위가 어떤 목적성을 띤다면, 움직임은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있다―움직임은 움직이다의 명사화인 셈이지만 동시에 특정한 시간과 형태로 의미화한다. 행위가 목적에 따라 도구들을 수단으로서 사용한다면, 움직임은 도구를 만지는 몸짓까지도 목적으로 내세울 수 있다. 행위와 움직임 사이의 간극을 임시적으로 구성하는, 이러한 구분 도식에는 물론 예술이라는 지침으로부터 심미화되는 움직임이라는 전제가 있다. 반면 이 예술의 자리, 움직임에 행위를 집어넣는다면, 남는 건 행위임을 지시하는 움직임이다. 또는 행위로서의 움직임이다. 따라서 이 과정은 행위에서 움직임으로의 수렴을 낳는다. 최은진 안무가의 〈UNDOIT〉은 일견 행위의 움직임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행위의 변형과 해체를 통한 움직임의 확장으로 보인다. 행위와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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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문, 〈외로운 개, 힘든 사람, 슬픈 고양이〉: 시대를 말하거나 역사를 구성하는 연극의 언어REVIEW/Theater 2021. 9. 13. 21:33
예술인에 대한 비하 장면을 포함한다고 하는 〈외로운 개, 힘든 사람, 슬픈 고양이〉는 예술을 하나의 범주로 두며, 또 다른 정치의 한 범주로서 동물권이라는 의제를 다루고자 한다. 정확히는 그러한 의제를 다루는 사람들의 재현을 통해 예술에서의 새로운 의제로서 동물권을 내세운다. 여기서 예술은 보이지 않는 현실, 곧 동물권이 법으로 자리하는 데 역할을 했을 사람들의 말과 사유를 구성하고 보여주며, 법이 만들어진 절차와 과정을 인간 다시 배우의 그것으로 전유한다―동시에 법을 인간의 언어로 전유한다. 이러한 역할에는 배우의 기술과 개성이 반영되며, 정진새 연출이 함께해온 극단 문의 연기 양식 역시 살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가시화되지 않은 동물권의 법에 대한 역사의 시공이 그려진다. 이에 따르면, (진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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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기다란 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유동적 언어에서 단단한 언어로REVIEW/Dance 2021. 9. 9. 00:39
〈기다란 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은 언어와 움직임의 교환을 놀이처럼 시험하는 듯 보인다. 화이트보드와 의자, 양말 등 이들은 이미 놓여 있던 사물이나 착용하고 있던 의상을 수행의 근거들로 활용한다. 그리고 정방형에 가까운 공간 사이에 또 하나의 정방형에 가까운 벽이 놓여 통로를 구성하는 공간의 삼면을 이용해 이동의 반경을 그려나가는 퍼포먼스에서, 제목은 장소를 체현하고 있었다―장소는 제목을 구현하는 적합한 장소였다. 여기서 “단단히 고정하세요”는 움직임에 대한 정언명령으로서, 공연 전반을 지배하는 기호로서, 그 자체를 규칙으로서 그 둘이 지정한다는 점에서 재귀적으로 수렴한다―그 근거를 지정할 수는 없다. 첫 번째 장면인, 테이블을 중간으로 두고 서로 마주한 이종현과 유지영은 서로를 복제한다. 거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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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적, 〈햄릿의 비극〉: 독백, 무대, 수행의 조각들REVIEW/Theater 2021. 8. 30. 09:12
〈햄릿의 비극〉은 극 대부분 햄릿(박하늘 배우)과 거트루드(곽지숙 배우), 클로디우스(김은석 배우) 세 명의 인물 간의 발화로써 진행된다. 이는 첫째 마주하는 대신 시종일관 정면을 향한다. 특히 햄릿과 거트루드의 비중이 높다. 어느 정도의 대화가 있지만, 셋 모두 극 대부분에서 각자의 독백의 심리를 전개하는 것에 가깝다―이 셋의 말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독백을 가정하며, 따라서 특정한 수신자를 위한 발신으로 감각되지 않는다. 대화랄 것은 햄릿과 거트루드 둘 사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발생하며 이는 예외적으로 현실의 평면을 구성한다. 특히 햄릿과 다른 둘과의 발화의 간극은 하나의 평면에 이 셋이 속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오는데, 햄릿이 관객석에 더 가깝게 위치한다는 것, 거트루드와 클로디우스는 더 뒤에서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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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연, 《집으로》: 여정을 위한 의식으로서의 퍼포먼스-전시REVIEW/Visual arts 2021. 8. 29. 00:42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하차연 작가의 개인전 《집으로》는 쓰레기를 갖고 하는 행위, 작업, 쓰레기에 대한 관찰 등이 주를 이룬다. 행위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으로 주로 드러나는데, 이는 시각적인 차원과 시간적인 차원에서 퍼포먼스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쓰레기를 갖고 물리적으로 제작한 작업인 〈매트, 보트, 카펫-나의 매트, 가족을 실을 배, 모두를 위한 양탄자〉(1988, 2021)―이 작업의 경우 1988년에 작가가 시도했던 페트병들을 활용해 새롭게 만든 것이다.―는 업사이클링 아트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눈에 띄는데, 이는 심미화되지 않은 각각의 쓰레기를 고스란히 드러낸 바에 따른다. 쓰레기는 쓰레기로서 지시되고, 그 쓰레기라는 기표에 관점이 실리는 방식이다. 〈Balade de Carol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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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P合(힙합)》, 음악과의 관계에서 바라본 세 가지 힙합으로서의 현대무용REVIEW/Dance 2021. 8. 26. 08:04
김설진 〈등장인물〉, 김보람 〈춤이나 춤이나〉, 이경은 〈브레이킹〉의 순으로 진행된 세 개의 무용 공연인 《HIP合》은 모두 힙합을 모티브로 하며 국악을 접목한다. 그럼에도 각각의 다른 공연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모일 때 공연의 순서를 구성하는 건 기획의 예술적 묘가 전제된, 공연 외적인 차원의 언어, 하지만 관객의 경험과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무대 바닥을 하강시킨 상태에서 시작한 〈등장인물〉을 처음으로 한 ‘힙합’의 두 번째 무대는 빈 공간으로서 무대를 활용한 〈춤이나 춤이나〉가 뒤따르는 게 당연한 듯 보인다, 가장 많은 출연진 수와 천장 위의 무거운 투명 오브제 구성의 〈브레이킹〉이 가장 뒤에 와야 할 것임을 상정한다면. 그렇지만 이는 순전히 공연 준비의 효율적 차원으로만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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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람,〈the thin ( ) line〉: 극장이라는 전략과 유동하는 극장의 형식REVIEW/Dance 2021. 8. 25. 12:13
이 공연의 개별성, 구체적 지점들을 자세하게 다루는 대신, 이 공연의 프로세스가 전제한 구조의 동역학에 초점을 맞춰 이를 다뤄보려 한다. 이는 이 공연의 기존 극장 공연과 다른 전략과 그 특이성에 대한 차원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과 관련된다. 소극장은 객석을 치우고 평평한 바닥 공간을 확보하고, 객석 문과 무대 뒤편의 문을 개방해 관객의 들고남의 순환이 가능하게 구성된다. 각각의 퍼포머의 대기 공간은 중앙의 무대와 교환된다. 관객의 자리 역시 재배치된다. 여기서 세 시간의 긴 소요(所要) 시간이 소요(逍遙)를 요청한다는 점은 공연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하나의 축이다. 관객의 자리 유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건 드라마투르그(양은혜)의 몫이다. 극장 전반, 곧 극장 로비와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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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꼬부랑게하’(강영민), 인제를 구성하는 시공간REVIEW/Performance 2021. 8. 10. 00:48
‘꼬부랑’은 할머니의 세월이 각인된 특유의 몸짓이자 인제천리길의 구불구불한 길을 의미한다. ‘게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줄임말로, ‘꼬부랑게하’는 강원도 인제의 천리길로 뻗어나가기 위해 임시로 점유한, 세 곳의 숙소를 의미하며 동시에 세 곳의 숙소 역시 천리길의 일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꼬부랑게하는 작가들이 모여 창작의 모티브를 얻고 이를 자신의 창작으로 연장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고 지시하려는 강영민 작가의 아이디어와 실행으로 지어져 간 일종의 개념적이며 퍼포먼스적인 시공간이라 하겠다. 강영민 작가가 고안하고 제안한, 여러 인제의 트래킹코스는 인제천리길의 다양함에서 연원하는 한편 꼬부랑게하와 인제를 이으며 풍부한 인제에 대한 심상 지리를 구성하게 했다. 여기에 접경지역이자 (주로 군인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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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애도에 관하여REVIEW/Theater 2021. 7. 25. 00:49
‘살아갈, 사라진, 사람들: 2021 세월호’의 일환으로 열린 0set프로젝트의 〈거리두기〉는 4.16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오준영 군의 가족(오민영_오준영 군의 동생, 오홍진_오준영 군의 아버지, 임영애_오준영 군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 그리고 실제 등장한 오준영 군의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그 가족이 남긴 메모를 읽는 것, 그리고 극장 주변을 한 바퀴 도는 투어의 역순으로 구성된다. ‘세월호’라는 단어는 정치적으로든 미학적으로든 너무나도 강력하며 따라서 세월호를 언급하지 않고 그것을 다른 식으로 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곧 세월호를 다루는 작업의 과제는 궁극적으로 세월호와 현실의 틈을 언급하면서 공고한 우리, 곧 공고해질 수 없는 우리를 재정초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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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 코로나 바이러스를 中心으로〉, 효과는 의미를 초과하는가REVIEW/Theater 2021. 7. 22. 10:22
브레히트의 서사극 양식은 어떻게 현재의 연극 메소드로 활용될 수 있을까. 그것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획득하는가. 형식이 내용과의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라면, 그 내용은 순전히 전달을 포기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 내용을 토대로 또 다른 내용을 구성하기 위한 것일까. 비판적 거리는 내용과의 순전한 불화를 구성하는가, 내용 너머 진리의 주체라는 자리를 수여하는가. 물론 이러한 양자택일의 질문은 브레히트의 극작법이 다양한 매체 활용과 유희적인 요소를 근거 삼아 ‘재미’를 주려 했다는 점을 은폐할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 코로나 바이러스를 中心으로〉은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메소드로 활용해 동시대적 의제에 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할 것을 요청한다. 합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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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ŏnans〉, 라이브니스 안에 산포되는 협업의 형상REVIEW/Performance 2021. 7. 22. 08:33
〈sŏnans〉는 「오이디푸스 왕」 이라는 희곡이 가진 서사 전개는 희미한 가운데, 박한결의 여러 작업자와의 문어발식 네트워크의 실현이 공연을 이룬다. 또한 〈sŏnans〉는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음을 전시하는데, 이러한 현재성의 명백함은 그 중간마다 삽입되는 자막을 통한 주요한 「오이디푸스 왕」의 플롯을 일종의 고정된 뼈대로 지시하는 동시에 그 바깥으로 마구 튀어나오는 자신의 위치를 결정지으며 그 둘의 위계를 전도시켜 버린다. 「오이디푸스 왕」 안의 플롯들은 각 장의 창작자들이 등장하는 시공간 사이의 간주 구간이 된다. 실상 이런 어둠 속 자막은 창작자들의 극장 대기 공간에서부터 극장 안으로 그들 한 명 한 명이 등장할 때 카메라로 중계되는 형식인, 각 창작자의 동일한 등장 방식을 통한 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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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빵〉, 징후적 주체, 전윤환의 자기만의 방REVIEW/Theater 2021. 7. 16. 11:47
코인 열풍의 막차에 탑승해 전 재산을 투여한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실제 하루치 관객 수입의 동시 투자와 함께 진행하는 전윤환의 수행적 연극인 〈자연빵〉은, 전윤환의 삶의 불순물들을 매끄러운 짜임으로 구성하는 대신 단순히 시간을 축적하는 식으로 흘려보낸다. 달리 말해 전윤환은 여러 파편적 화두에 관한 자기 생각들을 본인의 의식의 흐름인 양 제시하는데, 이는 하나의 내러티브로, 완결된 인물로 구조화되지 않고, 단지 전윤환이라는 인물의 역사, 곧 개인사로 자리하게 된다. 따라서 전 작 〈전윤환의 전윤환_자의식 과잉〉(2020)은 오히려 혼자 무대를 누비는 〈자연빵〉에서 온전히 수행된다. 엔딩 크레디트는 올라가지 않지만 관객이 자리를 뜨게 하는 마지막 엔딩 곡, 허정혁의 ‘알지 못한 채’의 가사는 이 극을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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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의 ‘그 후 1년’, 팬데믹 이후 어떤 예술의 양상들REVIEW/Dance 2021. 7. 16. 11:34
국립현대무용단의 ‘그 후 1년’은 2020년 국립현대무용단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공연이 취소되고 일 년 후에 재개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제목은 팬데믹이 어느 정도 공연의 판도를 변경시키고 다르게 만들었는지, 1년의 경계가 얼마나 확연하게 관객되는지를 관객 역시 공유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각기 다른 세 개의 공연은 이러한 환경에 맞추어 그 매체 자체가 변경되거나(〈승화〉) 또는 직접적인 팬데믹 환경을 알레고리로 하거나(〈점.〉) 그것과 결부 지어 예술의 조건을 의제화하는(〈작꾸 둥굴구 서뚜르게〉) 등 그 대응의 정도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의 대응들을 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그 후 1년’을 보는 하나의 시점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랄리 아구아데+백종관, 〈승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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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실천+비평(오정은)REVIEW/Visual arts 2020. 8. 20. 16:43
술술+실천+비평(2019)오정은 (미술비평)blog.naver.com/aquablue_0 다른 개인나는 지금 문래동의 한 건물 앞에 서 있다. 「문래 술술랩」(이하 「술술랩」)으로 이름하게 된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건물의 문 앞이다. 용도를 다한 낡은 건물이 영등포문화재단의 으로 한 달여 동안 예술가의 공유지로 사용된 장소가 「술술랩」이다. 나는 한 기획자의 소개로 한 달 전 이 공간을 처음 만났다. 노래방 업소로 운영되던 흔적이 역력한 지하 1층, 남은 간판과 구조로 보아 작은 식당과 주차장이었을 지상 1층, 그리고 고시원이었을 2~5층이 집기류의 온전성과 청결, 수도와 전기를 잃고 예술이라는 국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2층부터 5층까지 기획자 네 명이 한 층씩을 맡아 창작자 몇 명을 공모하거나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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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반, ‘가변적 풍경을 직조하다’REVIEW/Visual arts 2020. 3. 16. 19:02
Intro ▲ 이해반, 한탄강(작업 세부), 2014. 리넨에 오일, 오리엔탈 잉크, 제소, 193.3×130.3cm. 서구/근대의 풍경(화의 탄생)은 대상과의 적당한/안전한 거리를 통한 시선의 지배를 전제한다(‘조망의 시선’). 반대로 동양/전근대의 풍경(화, 가령 산수화로도 불리는 그림)은 대상과의 마주침과 뒤섞임을 가정할 수 있었다(‘함입의 시선’). 풍경에 대한 이분법적 도식은 동시대에는 풍경과 주체의 복잡한 역학 관계, 곧 세계를 보는 또는 세계에 위치하는 특정한 주체의 방식으로 다시 성찰될 수 있다. 풍경으로부터 사라지는 주체(에 대한 비판)이거나 실재로서의 풍경이 주는 기호(에 대한 긍정)이거나 풍경은 이제 투명한 가시성이 아니라 세계를 보는 하나의 알레고리이자 당대(의 시각적 사유)를 일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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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19] 휴먼후드, <토러스>: '공간(에)의 체현'REVIEW/Dance 2020. 3. 16. 16:56
각자의 움직임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무리를, 대형을 그린다. '동류'의 움직임이 시공간의 지시 없이 지속된다. 어슴푸레한 공간에서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것, 가다가 한 번씩 멈추면서 속도를 느릿하게 분배하는 것, 이러한 집단적 에너지는 우주적 공간 외에 다른 메타포를 가리키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움직임 자체가 일종의 전자음악적 공명이 그리는 무한한 시공간의 체현으로 보인다. 일군의 무리는 반복된 동작을 선보인다. 먼 곳을 그리는 사람의 반대편에서 가장자리를 그린다. 이는 겹의 무늬로부터 이루는 간결한 선분(의 유동성)으로 축약된다. 공간은 이 단순한 선분들의 궤적 아래 떨리고 공명하며 여기에 의도적으로 바람을 의태한 사운드, 땅을 두드리는 소리 등 자연의 유사 효과음이 이 공연이 가리키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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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19] 파울라 킨타나, <환희>: 변환으로서 거울 공간REVIEW/Dance 2020. 3. 16. 16:56
어슴푸레한 공간, 밝아지는 스크린, 천장에 매달린 옷, 무엇보다 물을 채운 수조 위에 형체의 비침과 일렁거림 그리고 표층의 소리, 파울라 킨타나는 바닥에 흡착되어 움직인다. 다리를 찢은 채 몸을 땅에 붙여 이동하는데, 처음 어떤 벽이 긁히는 소리 같은 사운드는 물보라를 일으키는 몸과 기이하게 동기화된다. 어느새 더 밝아진 조명으로 인해 아래로 신체는 물에 비치게 된다. 이러한 일종의 스크린으로 기능하는 물의 반영은 신체를 깊이로 잇고 동시에 마주하게 한다. 여기에 미미한 이동이라고 볼 수 있을 동작은 거의 같고, 이는 거의 측정할 수 없는 속도의 양상을 띠므로, 관객이 확인하는 건 움직임의 순간들이라기보다 움직임의 지속이라는 사실 자체이다. 또한 순간의 변화이다. 똑같은 속도와 동작으로 정방형의 공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