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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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th LDP 무용단, 시선에 대한 두 가지 방식REVIEW/Dance 2017. 4. 4. 17:58
김동규, : 타자의 시선에 사로잡힌 타자 ▲ 김동규 안무, ©BAKI_2084 (이하 상동) 주렁주렁 꼬여 달린 옷들은 마치 오랜 동굴의 종유석들 같다. 이에 대한 최초의 물음은 마지막까지 어떤 해석을 유보하며 의미를 해명하지 않는다. 바닥 역시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다. 얼굴 전체를 얇은 천으로 싸고 각기 다른 화려한 원색 또는 패턴을 지닌 옷 한 벌을 맞춰 입은 존재자들이 꿈틀거리듯 움직인다. 시선이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같이 정위되지 못하는 신체 움직임은 자율적이지 못하고 구속된 익명의 존재자들의 삶을 가리킨다고 할 것이다. 작품의 주제와 형식을 결정짓는 얼굴을 가린 결정, 그리고 옷의 색과 무늬에 시선을 온통 뺏기게 한 결정, 그 대가는 그러나 개별 무용수들의 개별적 움직임들을 무화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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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실천>: 전시로서 비평! 플랫폼으로서 비평?REVIEW/Visual arts 2017. 3. 22. 00:52
▲ 전시장 전경 [사진 출처=산수문화 페이스북] 전시장에는 단 두 권의 책만이 진열돼 있다. 그리고 이는 전시장 내 그것을 가지고 읽는 또는 복사하는 단 두 사람(청중)만의 권리로 복속된다. 일견 복사는 소유의 자율권을 허하는 듯하나, 복사를 하는 것은 재현 가치를 증폭시키는 대신 오히려 책이라는 원본의 가치를 승인하는 데 그친다. 그것은 나눌 수 없는 견고한 하드커버가 주는 물신적인 성격을 완전히 벗겨내지 못한다. 전시는 굳이 수많은 의자들을 뒤로 하고 두 권만을 볼 수 있게 진열했는데, 그 아래 쌓인 몇 권의 책 역시 만질 수 없는 물신 오브제로 기능한다. 이 두 책은 일견 이 전시장 내 전시 기간 동안만 허락되는 것처럼 전시되는데, ISBN이 찍혔다거나 표지에 어떤 내용이나 장식도 없다─곧 그 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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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중 안무 <지평선 아래 솟구치는 것들>: '안무의 사운드적 확장'REVIEW/Dance 2017. 3. 22. 00:30
▲ 김희중 안무 [사진 제공=컬처버스] (이하 상동) 3명의 사운드를 다루는 이들은 무대 뒤편에서 은폐되지 않고 오히려 디제잉 부스처럼 위치하며 따라서 작업은 움직임에 피처링을 하는 사운드적인 실험에 가깝다. 책을 쌓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허물 것을 전제한다. 이는 유기적 짜임의 구조를 이루는 대신 엔트로피적 발산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면모에 의거한 것이기 때문으로, 강박적이고 제의적으로도 보이는 이런 '행위'는 안무의 체계적 질서를 보여주는 대신, 하나의 명령에 따른 프로그램화된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는 사운드 디제잉의 실험 자체의 단면으로 소급된다. 이 책을 펼칠 때 허약한 구조를 쌓고 허무는 일시적 건축 행위는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이의 자동 기술적 의식의 흐름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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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송은미술대상 리뷰REVIEW/Visual arts 2017. 3. 22. 00:12
▲ 그들이 온다. 은밀하게, 빠르게, 2016, 단채널영상, 사운드 염지혜의 스크리닝 (2016)는 짧은 시간에 부여되는 리듬과 일정 단위의 구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후 김세진 작업과의 비교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비규격화적인 표현 형식은 소급되지 않는 이상한 차원/레이어로 빠져들며 해독 불능, 판단 유예/불가의 상황을 초래한다고 보인다.). 여기에 감상적이지 않고 유희적이고 장난스러운 말이 헐겁게 화면에 드러난다. 곧 그것은 목소리에 입힌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는 결코 견고한 하나의 내레이터로 수렴되는 대신 일정하지 않은 인격체, 가상으로 형성된 캐릭터에 애매하게 부착된다. 사실 그러한 필연적 균열은 드러나기보다 전체적으로 헐겁다는 인상을 주는 정도에 그치게 한다. ▲ 열망으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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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 야무 <섬>: 행위로써 구성되는 시간과 존재REVIEW/Dance 2017. 3. 21. 23:36
▲ 춤판 야무 포스터 무대 바닥, 각목들을 쌓아 놓은 가변 구조물은 금배섭과의 거리를 두는 섬의 좌표로서 의미를 함축한다. 이는 제도라는 것의 미약한 울타리를 두른 불안전한 자기 지시적 경계를 나타내는 듯하지만, 이는 후반에 신체의 지지대로 사용된다. '예술로써 생존하기'는 예술계 내 하나의 화두로서 가끔씩 드러나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작업 에서 안무가 금배섭은 이미 작품의 지원서를 읽는 등 제도와 결부된 기록과 경험 차원을 복기한 바 있다. 이번 작업의 모티프는 사실상 탈북자이고, 그를 향해 가상의 실제 같은 편지를 전단에 기록했는데, 타자를 향한 제스처와 함께 단순히 타자적 형상을 그대로 취하거나 하는 것이라기보다 상호간섭적으로 파생되어 가는 타자와의 섞임을 드러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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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혜중공업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 '시적 알레고리와 리듬 문자, 그리고 사운드'REVIEW/Visual arts 2017. 3. 21. 23:27
▲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2017, 사진: 김상태 [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이하 상동) 시각적 제스처로 한정 짓기에는 화면 안 글자의 폰트, 형태, 배치 들의 궤적은 지연되지 않으므로 일종의 시간예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화면 밖 공간을 채우는 재즈 풍의 연주는 그것과 싱크를 맞추며 화면의 전환과 시각적 리듬에 더해 끊임없는 자극을 준다. 사실상 언어의 장르적 특질은 1층의 가 주로 대화체로 구성된 인터넷 소설의 외양으로 판소리 사설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2층의 는 한국 사회의 대타자적인 기호이자 동시에 모든 고급적이고도 매력적인 장소로서 '삼성'―삼성이라는 고유명사에 대한 직접적 언급으로서 삼성이라는 상징 자본의 고유한 위치를 비판적이고 적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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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SIDANCE] 카롤린 칼송 리뷰REVIEW/Dance 2017. 1. 13. 11:43
건강상의 이유로 한국에 오지 못한 칼송의 작품 는 일부 축약한 영상으로 선보였고, 이는 추상표현주의 회화 작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 대해 영감을 얻는 칼송이 직접 구성한 텍스트의 내레이션이 나오는 가운데, 여러 심리적이고 미니멀한 동작들이 출현한다−물론 이는 짧은 비디오 단편들로 분절된다. 춤에 대한 내적 동기, 곧 불가해한 작품이 놓이고 이를 마주하고 생겨나는 감상을 춤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내면적 욕구, 그리고 작품에 대한 심리적 대화가 안무를 구성하게 된다. 시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주의적 안무의 심상은 구체적인 작품, 물질에 대한 것에서부터 출발함으로써 동시대의 춤에 대한 래디컬한 질문을 정초하지 않고서 춤의 유인과 안무의 합목적성을 얻는다. '침묵의 사물'은 춤이라는 매체와 적절히 상응하며 또한 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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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말볼리오> 리뷰, '극에 참여하고 있다'REVIEW/Theater 2016. 12. 5. 12:17
공연은 현대인을 대표하는 관객을 상정하고 그런 의식화된 관객을 끊임없이 조소하고 비판하며 진행된다.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관객에게 말을 걸면서 무력하게 앉아 있는 수동적인 관객의 의식을 깨우는데, 이러한 직접적 인터랙션과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의 말볼리오라는 캐릭터가 희곡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거의 반반으로 나뉜다. 극에 참여한다는 의식으로부터 극을 본다/듣는다는 의식으로 넘어감은 후자를 일종의 극 중 극 차원으로 볼 수 있는 메타 의식을 갖게 한다. 두 부분은 엄밀히 구분되는데, 전자가 후자의 주석이 아니라, 후자가 전자의 인용 차원이 된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궁극적으로 극은 말볼리오라는 불운한 캐릭터에 대한 해설이자 현대적 주석쯤이 된다. 한편으로 연극은 기본적인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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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프린지페스티벌 5작품 리뷰REVIEW/Theater 2016. 12. 5. 11:41
이지현, ▲ [사진 제공=2016 프린지페스티벌](이하 상동) '요정'(이라고 소개하는 아티스트 이지현)을 따라 가상의 공간('이곳은 일본 해안가')을 상정하고, 신문지로 사람을 빚고 또 욕조에 담가 신문지를 찢어 만든 물에 씻기고, 신문지를 찢어 손으로 뭉쳐 거품을 뿌려준다. 신문지는 생명과 물질의 매체가 된다. 예약을 통해 일 대 일로 진행되는 퍼포먼스는, 역할놀이를 한다는 점에서는 어린 시절 소꿉놀이와 비슷하지만 레디메이드 사용을 가급적 줄이고, 인형('자신이 돌연 생각한 사람')을 실제 제작하고 그에 생명을 불어넣는 극을 가정한다는 점에서는, 접촉을 통한 몰입으로써 일종의 원시적인 형태의 염원의 주술적 미디어를 구현하는 바 있다. 지성은, 관객은 일시를 선택해 스테레오타입화된 이상적 신부를 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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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판타스틱영화제 2016 작품 리뷰REVIEW/Movie 2016. 8. 9. 11:09
▲ (사이먼 카트라이트Simon CARTWRIGHT 감독) [사진 제공=부천판타스틱영화제(이하 상동)] '부천 초이스: 단편'에서 단연 돋보인 건 (사이먼 카트라이트Simon CARTWRIGHT 감독)으로, 이는 마노맨의 중반 이후의 등장부터의 빠른 전개와 긴 코와 플라스틱 질감의 피부 등의 특이한 신체 재현과 손목에 건 조종 막대가 그대로 드러나는 구조의 특색 있는 인형들의 마감과 그것을 생생하게 비추는 카메라 때문만은 아닌데, 무엇보다 주인공에게 드러나며 주인공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로 나타나는 기이한 마노맨이란 존재의 타자성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몸은 벌거벗음과 불구성-지나치게 짧은 다리와 인형의 특이한 신체 구조 자체를 벌거벗음 자체로 드러나게 하는-의 신체처럼 보이나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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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안무다: 윤자영 <금박의 춤>REVIEW/Dance 2016. 6. 28. 21:59
텍스트와 등가하는 몸!, 너머 텍스트-감응? 윤자영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경마로 8,000만 원으로 빚은 진 중년 남자가 영웅의 동상이 된다라는 짤막한 인물에 대한 배경 및 그들의 수행적 변환의 예측을 담은 텍스트 제시 이후, 덥수룩한 수염에 배불뚝이와 벗겨진 머리 두 남자의 팬츠만 입은 몸은 하나의 포즈와 그 변환에 따라 순차적으로 제시된다. 앞을 응시하는 전자의 남자의 시선이 뒤늦게 무대에 들어오는 후자의 남자 몸에 닿으며 시선이 몸에 인계된다. 시선의 안/바깥을 교차하는 식의 시선'의'/'과' 배치는 헐벗은 몸을 대하는, 마주하는 하나의 방법론쯤으로 자리한다. '여기 몸이 있다!' 그러한 시선, 특히 전자의 시선-그리고 후자의 몸이 가진 헐벗음 역시 그 매개를 통해 과장되게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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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죽고 싶지 않아>:청소년극의 불안정한 좌표REVIEW/Dance 2016. 6. 27. 01:45
공연 사진[=국립극단 제공] 청소년극이 함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청소년을 소재로 하여 청소년을 향한 이야기를 하며 청년으로부터의 시선을 창출한다, 정도가 될까. 절반이 노출된 정육면체 검은 큐브의 4면은 칠판을 대신해 빼곡이 낙서가 자리한다. 이는 복잡한 청소년의 머릿속을 은유하는데, 곧 정리되지 않은 분열된 언어의 카오스에 휩싸인, 온전한 신체가 아닌 오로지 가득 찬 머리를 가진 이라는,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인공적 공간의 형상화인 셈이다. 이는 한편으로 초반에 교실로 자리하는데, 빠르게 가속하는 일과의 여정이 적당한 춤으로 재현된다. 여기서 '적당한'이란 춤의 테크닉을 현실적 몸짓으로 다듬어 내는 일이다. 재현과 표현의 중간쯤에 위치한, 곧 현실의 묘사를 통한 공감과 춤이란 예술의 폭력이 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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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안무다-장치: '여전한 안무 이후 혹은 현재'REVIEW/Dance 2016. 6. 27. 01:39
(이 글은 공연 실제 진행 순과 달리 관련 작업들을 연계하며 쓰였고, 마지막에 약간의 제언을 담았다. 첫날 프로그램인 윤자영, 오설영의 작업은 기술하지 않았다.) 공연 사진[국립현대무용단 제공](이하 상동) 에서 무대 위에 걸린 줄과 그 위의 봉지들은 얼굴의 (비)현상으로서 무대와 일상의 접면을 상정하는데, 그 경계로부터 위치한 여자, 곧 선-행위를 하고, 그 주위를 떠돌며 현장을 배치하고 '잉여'들은 그것을 수습하며 무대가 끊임없이 재생/소거된다. 곧 있는 것이란 그러한 사라진 행위 자체에 대한 기시감과 피로감 정도로, 매개자적 퍼포머와 현실 속 캐릭터의 접면에서 무대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서 퍼포머들은 직접적으로 관객에 접면한다. 그렇지만 무대라는 게임의 규칙 안으로 계속 소급시키며 이 작업을 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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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페 2016 리뷰REVIEW/Dance 2016. 6. 10. 13:01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무용단, Dreamers 클래식 음악은 몸의 충동을 묶어두는 데 부족하며, 따라서 몸은 그것을 초과해 그에 적응하려 하는 듯하다. 이는 한편으로 클래식에 대한 일반적인 적응이라 할 수 있는 유연함의 안무 동작들에 대한 벗어남을 의도하는 것으로, 과잉된 움직임으로 음악을 전유하며 기존의 춤에 비평적 시선을 덧댄 것으로도 읽힌다. 또 한편으로는 음악은 강박인 동시에, 그 강박으로부터 분열되는 몸이 하나의 메시지로 드러난다. 샤론 에얄과 가이 베하르, Process Day 테크노 사운드에 따른 움직임은, 어떤 메시지를 담아내려는 의도가 없으며, 음악의 파장에 대한 움직임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려 밀도 있게 움직임을 그에 적응하며 나타내는 간명한 안무의 방안이다. 테크노의 분절된 사운드가 몸의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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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숨 쉴 구멍이 없다'REVIEW/Theater 2016. 4. 29. 16:20
작품의 제목에서 방점이 찍히는 건 '모든'이다. 거기에는 군인이라는 특정 계급/신분에 따른 명명만 있을 뿐, 결국 그것을 말하는 이까지 불분명하게 흐트리며 포함한다. 다만 피해자(에 대한 탄식과 연민)만이 존재할 뿐이다. 극 속에서 유일하게 아들과 같이 자리하는 (탈영병의) 아버지는, 탈영을 한 아들과의 대면에도 태연하다. 아들이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는 것, 코너에 몰렸다는 것, 그가 잠시 사회로부터 이탈된 채 공기처럼 부유하고 있다는 것에 맞서 어떤 초조함도 없다는 것은 어떤 사회의 외부도 상정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자신이 하나의 매체로서 전화를 받고 그것을 매개하는 것, 층간소음이 발생했을 때 으레 그에 대한 불만이 접수되고 나서 그것을 다시 전달했음을 알리는 것으로 사건을 종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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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나이> 시선의 정치학/미학REVIEW/Dance 2016. 4. 29. 13:04
▲ [사진 제공=국립극장](이하 상동) 공연은 호세 몽탈보의 시선과 몸이 겹쳐져 있다. 이는 국립무용단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로부터 포착된, 그리고 몽탈보의 움직임을 무용수들이 전유한, 두 가지 결은 시선의 층위를 각각 몽탈보와 관객으로 달리 분배한다. 그 결과 몽탈보의 시선에 딸려 들어갔다가(소환됐다가) 몽탈보가 머금지 못한 (몽탈보로부터 비껴난) 시선의 나머지를 보게 된다. 이런 측면으로 인한 문화 차이의 간극은 어색한 옷을 입은 것 같다는 느낌을 언뜻 주는 일면이 있다(어떻게 우린 몽탈보를 통과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이 관문을 몽탈보는 통과할 것인가의 물음을 낳는다). 여기에 영상과 음악이란 레이어는 움직임을 이미 선취하거나 다른 차원에서 개입한다. 가령 대도시의 삶을 떼를 지은 새들의 모습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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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침묵과 어둠의 말-짧은 노트REVIEW/Theater 2016. 4. 29. 12:53
▲ [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시종일관 전면에 투사되는 영상은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도시 풍경을 비춘다. 그것과 대비적으로 회색빛 무대와 인물들의 의상은, 건조한 사무 공간, 그리고 그것에 연장돼 그 속에 위치한 텅 빈 공간에는 말의 자리가 주어진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은 인물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말을, 또 영상을 관찰하고, 그 말은 청자를 비껴나며 공허하게 공간에 울린다. 도입부에서 나온 샤워 실에서 이를 닦는 모습에서 소리는 영상의 바깥, 소리가 울리는 공간의 크기를 상정했다. 그러나 이후 영상의 소리는 단락되고, 다만 그건 여느 일상의 이미지 정도의 지위로 추락한다. 거기엔 관찰하는 이의 거리 두기와 함께 반복의 영원이라는 숙명이 쓰인다. 영상은 말이 없는 한편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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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바키 <그녀를 말해요>, '입체적인 복원과 정치적인 호명 사이'REVIEW/Theater 2016. 4. 29. 12:43
크리에이티브 바키, 대화의 기술/정치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라고 했다. 이는 에서는 윤리적 심급으로 적용된다. 배우들은 세월호 유가족을 보고 들으며 그들을 우선적으로 연극적으로 '체현'하는 한편, 죽은 아이들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그들의 말이 아닌, 유가족을 통과한 목소리에 '접근'해 간다. 처음에 유가족에게 던진 다양한 질문을 답변에 대한 시간 없이 계속 이어 붙이는 장면은 유가족에게는 대단히 폭력적이고 무식한 행동인 듯 드러난다, 그들이 경황이 없는 가운데 그러한 생각을 종용하는 것과 같은. ▲ 공연 사진[사진 제공=남산예술센터](이하 상동) 마치 세월호 유가족을 연극을 위한 소재적 착취로 가져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 행동 이후, 곧 이어 장수진 배우가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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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봄, <셰익스피어 니즈유>(빌리 코위); 제작 방식 자체의 구현REVIEW/Theater 2016. 4. 7. 07:21
_공연 ⓒBilly Cowie 빌리 코위의 공연은 사실 하나의 공연 형식으로 엄밀히 파악되기보다는 하나의 공연을 만드는 과정의 방법론 자체에 더 방점이 찍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유럽 컨템퍼러리의) 좋은 작품을 들여오(고 이로 인해 예술 담론도 함께 주장/선언하)는 데 방점이 찍힌 초기 페스티벌 봄에서 어떤 작품을 콘텐츠화하는 데 있어 국내 예술 환경과 결부해서 그러한 작품의 살아남기 자체를 시험/실현하는 방식 곧 마치 지금 페스티벌 봄의 전혀 다른 기조가 징후적으로 이 작품에서 체현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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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P무용단, <Nerf>/<나는 애매하지 않습니까? 당신에게>REVIEW/Dance 2016. 3. 22. 18:32
▲ ⓒBAKI "인간의 두려움을 인지하는 뇌와 그 인지 내용을 근육에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신경'"을 뜻한다고 하는 '네흐'를 제목으로 한 는 '두려움'이라는 생래적 감정을, 그러한 상황에 놓인 인류를 괄호 친 뒤, 체현한다. 감각적인 몸의 표출과 그것의 내용이 갖는 합목적성을 합치시키는 차원에서 인간의 시초와 변천사가 두려움이라는 하나의 전제를 가정하는 가운데 펼쳐진다. 이는 개인의 복잡다단한, 감정과 관계의 측면에 집중을 요하는 대신, 파국적인 상황에 몰린 각자 도생의 인류 차원에서 절박한 몸짓의 표현이 눈앞에 펼쳐짐을 가능하게끔 만든다. 긴장 어린 사운드는 이내 군중 속의 한 명으로, 군중 자체의 무의식으로 빨려 들어가게끔 한다. 군중에는 개인 내재적인 파열이 모두의 이름으로 쓰이는 상황이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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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정 <스폿>: 선명한 체험은 어디에 놓이는가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6. 3. 22. 18:24
공연의 무대는 전시가 열린 우정국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관객은 무대와 공간 사이의 틈에 끼인 형국이 된다. 공간 활용도가 매우 높은(?) 무대 세트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한 관객의 체험은 매우 직접적이며 무대와의 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게 만든다. 비계 구조로 짠 견고하고도 임시적인 설치 구조물은 뒤쪽에서 앞쪽으로 급한 경사가 지어져 있고 전체를 나무판자로 감싸 퍼포머들이 위아래로 급격히 또 빠르게 오르내리는 흐름을 만들어 낸다. 작가의 유년기 어떤 원장면적인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작업임이, 작가가 관객을 등지고 관객과 괴리되며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대리하는 중후반 지점에서의 작가의 대사로부터 비로소 드러나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빠르게 무대를 뛰어 내려오는 그리고 이어서 한 명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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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붙박인 공간에서의 영속된 현대인의 흐름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6. 3. 22. 18:18
▲ [사진 제공=Beta Project] 극 초반 일상을 포착한 풍경들과 극이 끝난 이후 사람들을 인터뷰한 영상이 수미상응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곧 이 작품은 삶으로부터 튀어나온 것들을 재료화하며 그 결과 삶의 목소리와 얼굴로 극을 전경화하며 삶과 다시 작품을 결부시키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삶의 재현이라기보다 삶에 틈입하는 시선 자체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대는 여러 일상 공간의 레이어가 연결되어 중첩되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우에서 좌로 이동하며 단계적으로 일상의 제의들을 밟아 나간다. 그러한 시간의 경과에서 행위들은 매우 너저분한 일상 풍경을 만들어낸다. 불특정한 인물의 유형들로 현대인이라는 하나의 전형들을 만드는 묘사적 풍경은 공간의 중첩을 통해 지속되는 동시대의 솔기를 보여준다. 극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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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페스트 '퍼포먼스의 유동적이고 느슨한 짜임의 플랫폼'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6. 2. 4. 18:45
하루 동안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나인페스트'는 '1'이란 시리즈 첫 번째로서 이후 잠재된 기획의 기표와 함께, '서바이벌'이라는 부제가 더해져 있었다. 9팀이 협업을 통하거나 전체적으로 맞물려 진행되는 상황이 '서바이벌'에서의, 경쟁보다는 생존의 의미를 존속시켰는데, 여기서 '서바이벌'은 하나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관객 전체로의 확장적 경험의 의미로 재전유된다고 볼 수 있었다. ▲ 나인페스트 공연 ⓒ박수환[사진 제공=아이디언](이하 상동) 가령 이로경 작가의 은 입구 반대편에 설치되어, 물 웅덩이에 발을 담군 성수연 배우가 간헐적으로 즉흥적 대사를 쏟아내거나 했고, 이로경 작가는 초반 이후 투입되어 이를 영상으로 매개하는 과정이 3시간 내내 진행됐다. 그리고 물과 연결된 음향을 공간 전체로 분사하는 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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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진 <안무사용법>, '기본'의 의지적 적용REVIEW/Dance 2016. 1. 29. 02:00
▲ 조용진 안무 공연 모습 [사진 제공=국립무용단] (이하 상동) '기본'을 '현재(라는 의식)'에 출현시키고 음악에 적용하며, 또 춤을 추는 과정 자체 안에서 발현되게 하는 과정으로서 안무를 '사용'하는 법은 주로 따라 하기라는 중간 단계를 거친다. 선글라스를 낀, 표정을 소거한 존재들로부터 상호 닮음이라는 기초적인 동작들이 나오는 긴 인트로 쯤을 지나, '기본'은 매일 익히고 반복 숙달하여 이미 몸에 익은 것으로 기호화되며, 이는 중간 중간 출현하며 그 사이를 메우는 따라서 그것을 분절하는 따라 하기를 비롯한 수많은 동작들이 존재하고, 또는 '기본'을 한 사람이 수행하는 가운데 다른 한 사람의 빈 시간은, 상대방의 몸짓을 잇고 자신의 몸짓으로 기본을 궁구하고 새로운 동작들로 그것을 연장하는 과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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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현 안무 <칼 위에서>: 제도-현실 비판의 외양 아래 이는 파열음REVIEW/Dance 2016. 1. 29. 01:57
▲ 류장현 안무 공연 모습 [사진 제공=국립무용단] (이하 상동) 검은 옷으로 얼굴부터 전신을 가린 개성을 탈색한 이들은 관객 한 명 한 명을 객석에서 무대 위로 소환해 이 시대의 캐치프레이즈들과 대면시키고 그것을 들고 있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들이 좇는 건 잡히지 않고 달아나는 달(스포트라이트)인데, 이는 객석에 흰옷을 입은 이(무용수)를 무대에 불러내 신성한 제물로 삼고 그녀가 광기로 폭발하는 가운데 모두가 검은 옷을 벗어 하얀 옷으로 한판 굿을 크게 하는 것까지가 비교적 단순한 공연의 전반적인 구성이다. 피켓 시위와 밑에 길게 늘어뜨려진 걸개그림은 이곳이 원래 열린 극장이라는 사실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는 각자의 춤에 자율성을 안긴 안무 방식인 동시에 공간을 최대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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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SO TIRED>(아임 쏘 타이어드), '비주체들과 주인공'REVIEW/Dance 2016. 1. 22. 10:34
공연 사진후반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보컬 남상아의 거의 독무대로 기록할 만한 '스모우크 핫 커피 리필' 부분은 기존 연주와는 달리 특이하게도 밴드가 어느 순간 개입되지 않으며 마치 하나하나의 음절이 드럼부터 시작해 베이스, 기타로 나아가는 단계들을 누락하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난다. 곧 보통 음악이 무용 작업에서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데서 벗어나서 이 무대의 수많은 움직임들에 대한 주체의 서사를 주인공으로서 그제야 기입한다. 마치 그녀가 커튼콜에서 다른 무용수들과 한 무대에 서서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이유다. 수열로 이뤄진 장애물들을 뛰어넘기라는 정형화된 공식으로부터의 이탈과 그와 동시에 생겨나는 결과물인 환락을 무대 중심에 올린 이후, 음악은 무대 전체에 스피커를 통해 투과하는 한편 마찰음들을 통해 그 자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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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치>, '분배된 주어라는 문제'REVIEW/Visual arts 2016. 1. 22. 10:24
포스터 [출처: 가변크기 페이스북] 제목이 가리키듯 이번 전시는 결과의 제시 측면보다는, 과정에서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 대한 초점을 묘사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사실상 우정을 전제로 한 여러 명의 논의자가 하나의 합의로서 전시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크레디트의 명기와 드러나지 않는 아티스트 피의 합리적인 적용의 합목적적인 과정의 일환으로 수렴된다. 어떻게 보면 작업의 결과는 이미지가 아닌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것의 결과이자 작가의 이름값에 다름 아니다. 거기에 더해 작가의 참여했다는 나아가 합의했다는 의식이 결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의 합리적인 분배로서, 노동과 역할에 대한 정당한, 동시에 모두가 납득/이해 가능한 비용 산출/책정은 지원금 내에서의 삶/생존의 모색이란 하나의 전제에 포섭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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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비워진 전시장을 채우는 퍼포먼스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6. 1. 22. 10:13
지하의 정세영 작가의 냉장고 폴 댄스는 우스꽝스러움과 숭고함을 기이하게 엮은 작업이다. 냉장고를 통해 들리는 소음을 증폭해, 일상 감각을 이화시키는 한편, 계속적으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래서 사실상 반만 열린/닫힌 냉장고의 빛은 온전하지 않은 시각으로 거대한 소리의 몸체 일부를 이루며 (그 시각을 비롯해) 파악되지 않는 숭고함/기괴함을 이룬다. 정세영 작가는 전시에서 마치 작가로서의 지위 자체까지를 소거하는 듯하며 이는 일견 최승윤 퍼포머를 송주호 작가의 작업과 잇는 영상으로 수행적 과정물의 일환을 담당하는 것에서 완결되는 듯 보인다. 일층 최승윤 안무가의 작업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증여받은 옷들을 늘어놓고 관(람)객이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탈의실 용도의 간이 시설에 들어가 갈아입고 10초 타이머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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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고전을 더하고 빼며 현재에 비뚤어매기REVIEW/Theater 2016. 1. 10. 14:46
▲ 공연 모습 [사진 제공=산울림소극장] (이하 상동) 이 극에는 두 가지 응결 지점이 있다. '힘과 폭력의 시대에 미래의 정의가 그것을 심판할 것이다' 하고 곧 이어 등장하는 '이 모두는 흙으로 뒤덮이게 될 것'. 전자가 지금 현 시대를 반영하며 그에 대한 무력함을 은폐하고 저항의 기치를 올리며 쾌락을 관객에게 수여하는 전언 형식의 너무 가까운 말이라면, 후자는 모든 존재를 필멸의 삶으로 바꾸는 불멸의 역사라는 존재에 맹목의 심판을 유예하는 너무 먼 말이다. 역사라는 평평한 땅에서 모두는 평등한 이름으로 묻힐(호출될) 것이라는 이상은 (민중을 가로지르는) 정의의 심판론보다는 오히려 더 낭만적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프로메테우스의 본질적 존재론이 자리한다. 곧 그는 역사에의 어떤 의지 그 자체다. 순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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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황주 안무 <Contact변태>: 시선과 말의 부재 혹은 과잉REVIEW/Dance 2016. 1. 10. 14:22
'몸의 새로운 내러티브' 공연은 작은 삼각형 바닥으로부터 점점 넓어지는 식으로 또 조명의 변화에 따른 어둠에서 빛으로 공간의 감각적인 부분이 확장되며 열려 가는 구조를 띤다. 세 퍼포머의 구도는 대칭적으로 짜이는데, 이는 작은 삼각형 구도를 하나의 유일한 움직임 공간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상징적인 도상 기호로 작용하거나 오직 미적인 안무 기호를 창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마찰은 그러한 셋의 움직임 도식이 원활하게 작용하지 않음을 가리키며 그것은 다시 이 공간의 협소함, 그리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암묵적 규칙에 따른 비평적 시선이 곁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의식 없는 신체들의 마찰과 그로 인해 촉발되는 단말마적인 신음이 보여주는 무의식적 저항의 기제가 곧 각자의 공간 속 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