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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브 앤 인포메이션〉: 재현 체계 혹은 재현 방식의 사이에서
    REVIEW/Theater 2023. 12. 11. 17:25

    〈러브 앤 인포메이션〉[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짧은 에피소드로 점철된다. 맥락을 형성하는 인지 단위로서의 불충분성이라는 하나의 공통됨은 정보의 과잉들 혹은 그로 인한 소통의 단절 현상을 묘사하는 메타포라고 의미화할 수 있을까. 그것이 쇼츠건 릴스건 어떤 짧은 구문의 재기발랄함으로 부상하는 즉시 사라지는 이미지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은 어떤 유의미한 지점으로 부상하는가. 시대에 관한 적확한 차원의 은유로서 나아가 극장의 공백이 불가능해지는 임계점에 대한 탐문으로서?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일종의 ‘지시’로서 장면들이 추출됨으로써 이입에 대한 당위를 벗어난다고 할 때 그와 같은 나열의 방식은, 희미한 맥락들의 접합까지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미궁이라기보다 미로로서 작품은 일종의 퍼즐과 동기화된다. 등장인물들은 기억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일변한다. 마치 이전의 부조리극처럼 분명한 현실은 그 둘이 서로를 아는 사이라는 것이 전제될 뿐, 대화는 철저히 그 밖의 몸만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서로의 기억은 하나도 공유되는 바가 없다. 
    따라서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아마도 기억이라는 것이 삶 혹은 관계의 지지체로 존립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현실은 하나의 이미지가 되며 개체들의 분열과 고립만이 존재할 것임을 예시하는 듯하다. 이는 일종의 사고실험의 성격을 지닌다. 그에 따르면, 다양한 인격이 지닌 다양한 현실의 재현을 통해 핍진성 있게 세계의 퍼즐을 맞춰나간다는 건 착각에 가깝다. 결국, 나열과 분절의 방식을 통해 맥락을 회피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사라지는 〈러브 앤 인포메이션〉에서 현재의 희미한 틈새를 연결하는 수행적 행위가 그 고정된 파편들을 해체하고 재맥락화하는 유일한 방식일 것이라는 결론이 관객에게 주어진다. 

    사실 매우 빠른 속도 전환의 연극은 이전에도 가능했고, 이는 스릴과 긴장의 형국을 서사의 중핵으로 치환한다는 점에서 관객에게 재미를 준다면―〈노이즈 오프〉가 가령 그러했다.―,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연결의 질서를 방기하고 회피하는 서사의 병렬을 통해 지루함을 선사한다, 일종의 스마트폰의 중독이 도파민 중독의 현상을 통해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 것과 흡사하게도.
    파편으로서 이야기들이 정보로 치환되는 이미지 질서를 갖는다는 점에서, ‘전환’ 자체를 위한 서사라는 점에서, 서사의 공통됨만을 추출하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일종의 구조주의 연극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그 형식을 통해 기억의 기능을 감산 혹은 불안정화함으로써 ‘기억’이라는 서사의 메타포를 구성한다―각 파편이 기억을 이야기하든 하지 않든 간에. 반면, 구조주의 연극은 짧은 파편들이 그럼에도 구조를 이루고 연극의 얼개를 만든다는 점에서 연극의 (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과적으로, 연극의 분열증적 징후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메타-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가장 더디고 느린, 마치 이 현재와 함께 내 몸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감각하는 식의 극장 작업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탐문은 재현의 방식이 갖는 특이성보다는 재현 자체의 의미를 초점화한다. 반면, 망실되는 현재와 현재만을 만드는 SNS 중독과 자본주의의 굴레 속에 자리한 쉼 없는 삶이 엮는 세계 구조의 재현 체계로서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새롭다고 할 수 있는가. 또는 비판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빠른 에피소드 전환 속에서 노동 집약적 공예의 성격이 짙은, 여전히 연극이어서 가능하다고 하는 라이브니스는 또한 역할과 관계의 전사가 없는 주체의 기억 상실로 인한 배우의 기억술로 보증된다. 그럼에도 흐릿한 좌표를 설계하며 파편들을 정확히 수행하는 고행은 배우의 신체적 기억술의 실험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까. 

    전체를 파악할 수 없으며, 전체를 흩트리는 방식으로 지지되는 의미의 분산 작업은 포스트모던 유의 방만한 나열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소극들의 차이라는 지형은 의미의 해체보다는 분쇄될 수 없는 의미를 상대적으로 초점화한다. 결국 명확해지지 않는 의미와 지루함이 주는 쾌감 사이에서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결과적으로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시대착오적인 인상을 주는데, 형체 없는 기표들의 집산이라는 형식은 오래전의 기시감을 남기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재현 체계를 구성하며 부조리함의 상태로서 우리를 체현하는 작업이 비판이나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지 역시 의문이다. 오히려 구조주의적 실험으로서 관객의 인지 단위를 초점화하는 방식이 더 근본적으로 연극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저 앞에 놓인 이미지들은 결국 쇼츠를 보여주는 짧은 시각 예술의 퍼포먼스를 가정해 볼 때 어느 정도 기능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랑’과 ‘정보’는 어떤 연관을 맺는가. 기억으로서 정보가 없으면 사랑은 혼란에 빠지는 양상이 전개된다. 반면, 주체 간의 사랑이 사라지는, 곧 인계되지 않는 지점에서 무력한 제3자의 시선에 비치는 이미지만이 남게 된다. 사랑의 이미지가 곧 정보로 치환되는, 관찰자만이 존재하는 유령 같은 세계의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 아마 〈러브 앤 인포메이션〉의 혼잡도 높은 방기 속에 드러나는 하나의 메시지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일시: 2023년 10월 17일(화) ~ 11월 4일(토) 화수목금 8시/토일 3시 *월 쉼 (총 17회)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기획·제작: 두산아트센터
    작: 카릴 처칠(Caryl: Churchill)
    번역: 김수아
    연출: 진해정
    드라마투르그: 김민조
    출연: 권은혜, 권정훈, 성수연, 이주협, 황은후
    조연출: 이은비
    안무: 권령은
    무대·소품 디자인: 송지인
    조명 디자인: 신동선
    음악·음향 디자인: 지미 세르
    영상 디자인: 고동욱
    의상 디자인·제작: 김미나
    분장 디자인: 백지영

    관람연령: 14세 이상
    러닝타임: 90분(인터미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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