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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성, 〈세 개의 짧은 연작들-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 주체의 공백에 다가서기
    REVIEW/Theater 2023. 11. 23. 23:10

    이경성 작/연출, 〈세 개의 짧은 연작들-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 © 김남현(이하 상동).

    이경성의 〈세 개의 짧은 연작들-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이하 〈나의 극장〉)은 담백하고 대담하게 연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는 프로덕션이 가진 부피감과 완성도에 대한 강박 너머, 결국 개인의 서사와 수행이 역사와 현재, 현실과 만나 전면에 등장할 때 그 효과가 만듦새를 뛰어넘어 입체적으로 확장, 증폭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곧 작가-연출가로서의 관점이 다른 모든 여타의 것들을 상쇄할 수 있고, 더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이는 구자하 연출에 대한 상찬이 그가 여타의 모든 것을 자신이 한다는 것, 테크니션으로서의 성취만을 향하는 것이 오류인 것에 상응한다. 

    “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의 순으로 진행되는, 〈나의 극장〉에서 이 세 개의 단어는 각각 현실의 표층, 역사의 비가시적 목소리, 기억의 이미지로 치환할 수 있을 듯하다. 신촌극장이라는 장소성은 신촌극장과 접면하는 그 바깥의 장소성이 체현되는 관객의 신체와 만나기 위해 요청된다. 신촌의 동선을 따라가는 영상과 구호를 외치는 이경성은 현란한 광고 이미지와 선동 문구를 재현하고, 이는 거리를 일종의 극장으로 구성했던 〈도시이동연구-당신의 소파를 옮겨 드립니다〉(2010)를 일견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 또 하나의 무대를 현대의 일상에 비가시적으로 침투하되 그것을 일종의 리서치 차원의 재료로 두고 거기에 다른 시각이 파생될 것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발견된 오브제로서, 이정순 열사의 추모비는 이 표층으로부터의 도약을 가져오는데, 이는 한국 근현대사의 공백에 대한 접근이다. 강경대 열사의 노제를 경찰이 제지하던 현장에서 인권을 짓밟은 정권에 항거하며, 이정순 열사는 연세대 정문 앞 철교 위에서 분신 후 투신했다.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은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와 여순항쟁 피해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환경과도 연관되어 이야기되는 부분이다. 전면화된 상징적 죽음을 뒤로 하고, 지리산에 오르는 이경성의 모습은 장기수 김영승과의 만남으로부터 빨치산 운동을 하며 수없이 죽어 나간 영혼들의 자리를 구성한다. 

    이경성의 여정은 무언가를 발화하기보다 차라리 묵묵히 듣는 것 또는 들으려는 것, 나아가 역사의 뒤안길적인 주체를 체현하는 듯 보인다. 이는 〈고랑 몰라〉(2021)[「《2021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바깥, 바깥의 인형」, 출처: https://www.artscene.co.kr/1794]에서 이경성이 유해 발굴을 하는 수행을 직접 하던 것에 상응한다. 비가시적 주체들을 찾는 기약 없는 행위. 말을 의도적으로 지울 수 있는 유일한 방식. 역사의 얼룩을 되짚어 나가는 경로는 현재진행형인 근미래의 이슈를 다루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이는 필연적인데, 곧 시대착오적인 경로만이 동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고, 그 경로는 항시 두 개의 시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하나의 시간이 다른 시간을 비춘다.

    “나의 극장”은 코라로서의 극장, 어떤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기억의 무덤으로서 극장을 이야기한다. 어제 어렴풋이 있었던 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것, 또는 그 자리에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은 무대가 지워내면서 남기는 흐릿하고도 명확한 감각에 상응한다. 이러한 어렴풋함 감각과 역사에의 복기는 어떤 접점을 맺는다고 할 수 있을까. 전자로써 후자를 지지할 수 있을까. 여기서 재현의 질서가 지지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떨까. 오히려 그것을 무력화하려고 한다면 어떨까. 

    신촌극장의 무대를 열어젖히며 바깥의 풍경을 극장으로 인계하는 김연수와 이경성의 관계는 다분히 드라마적인 재현의 코드를 전제한다. 이는 발화하는 자에서 추적하는 자로, 그리고 다시 이경성의 삶의 내밀한 공간으로 극장을 급작스레 변화시킨다. 그럼에도 이는 이경성의 구체적 현실을 반영하거나 재현하지는 않는다. 김연수는 기억을 복기하는 관객의 시점에 다가선다. 이경성은 그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산파의 역할을 할 뿐이다. 곧 연출은 질문으로써 구성하는 매개의 자리를 자처하고, 김연수는 질문을 받고 구술하며 극장의 경계를 정의하는 존재 양식이 된다. 

    결과적으로, 여러 시간의 이격은 사실상 이경성이 주요한 활동의 기반이 되어 온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활동을 집약하거나 연출 이경성의 삶을 축약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단지 이경성이라는 주체의 반성을 위해 삶의 출렁거림 속에서의 한 장면을 우연하게 복기하는 데 가깝다. 사회로 나아가고 들어가며 사회로 다시 빠져나오는 일련의 경로를 통해 이경성은 극장을 맴도는 주체로 결국 남는다. 장소 특정적인 아이디어에서 극장을 확대하고, 역사의 형상으로 무심하게 이탈하며 다시 극장을 열어젖히는 것과 극장의 무시간성과 역사의 비가시성을 겹쳐 세우며 극장의 재현 체계를 전복하려 한다. 이는 그리하여 극장을 정의한다, 곧 사회의 재현이 아닌, 사회의 매개 통로로서의 극장이 가진 의미를.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세 개의 짧은 연작들
    공연 일시: 2023년 11월 03일(금) - 11월 11일(토)
    월-금 20:00. 토·일 16:00
    (80분, 총 9회)
    공연 장소: 신촌극장(서대문구 연세로13길 17 4층 옥탑)

    작/연출: 이경성
    출연: 이경성, 김연수
    영상: 헤즈김
    사운드: 카입
    조명디자인: 권서령
    오퍼레이터: 이예진
    프로듀서: 김남현
    도움 준 사람들: 김영승, 나경민, 성수연, 이홍도

    *신촌극장 라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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