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구자하, 〈Cuckoo〉: 압력 사회를 바라보는 법
    REVIEW/Theater 2023. 11. 15. 16:45

    구자하, 〈Cuckoo〉 2023 SPAFⓒ Sang Hoon Ok(이하 상동).

    구자하의 〈Cuckoo〉는 압력밥솥 브랜드 “쿠쿠”를 전면에 내세운다. 쿠쿠를 존재화한다. 무대에는 세 개의 쿠쿠가 있고, 두 개는 해킹돼 두 다른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쿠쿠에 체현된다. 나머지 말을 하지 못하는, 하나의 쿠쿠 밥솥이 밥을 하는 과정은 한국 사회에 관한 비유, “압력사회”를 재현하지만, 유학 시절 한국에서 가져갔던, 쿠쿠의 상투적인 멘트는 구자하에게 친구 혹은 동반자의 감정을 체현했었을 것이다. 그것이 구자하라는 인물만에 대한 것임이 아님에도 그 멘트는 오직 ‘구자하’만을 경유하기에, 이것은 타지에 온 이에게 들리는 듣기 쉽지 않은 모국어이기에 구자하에게는 매우 특별한 것이 된다. 구자하의 하마티아 3부작 중 하나이자 가장 앞서서 만들어진 〈Cuckoo〉는 다른 두 작업과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의 어떤 심연을 다루려는 제스처로부터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충동을 보여준다. 

    〈Cuckoo〉에서 IMF는 가장 강력한 맥거핀이다. 친구 제리의 죽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그보다 사실 가장 강렬한 사회적 체험은 친구의 죽음 앞에 ‘막연히’ 있다. 곧 개인의 죽음과 사회 구조적 문제의 결부는 가능한 것이고 무난한 것이지만, 전자를 후자로 환원시키는 것에는 문제가 따른다. 구자하는 결국 친구의 죽음을 미스터리로 정체화하지 않고, 친구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기억들, 그리고 그와 결부되는 다른 누군가의 죽음에서 어떤 출구를 찾는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기억)을 연장하면서 독특하게도 사회로 확장되는 순간을 가져온다.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군이 열차에 치여 숨진 사고(2016)를 〈Cuckoo〉는 미처 작업을 다 마치지 못한 가운데 반복되는 또 다른 업무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김군의 절박하고 몽롱한 현재의 사투로 재현한다. 

    창문으로 뛰어내린 친구의 죽음과 창문 바깥에서 들어오지 못한 김군의 죽음이 이미지적으로 겹쳐진다. 물론 구자하는 그 틈을 체현하기보다 그 둘의 틈 사이에 존재하며, 그 틈의 재현 가능성이 아니라, 그 둘의 유사함 속에서 “고립무원”에 처한 청년 세대라는 공통됨의 틈으로 확장한다. 그것은 각각의 사례를 더 큰 무엇으로 수렴시키려는 것이라기보다 더 큰 구멍에서 비로소 그 볼 수 없는 틈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곧 구자하는 메타포의 적확함을 추구하는 대신, 유사한 메타포와의 연결성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접점을 모색한다.

    구자하는 나중에 다 된 밥솥을 뒤집어 밥을 꾹꾹 눌러 쌓는다. 구자하는 밥과 거리를 둔다. 두는 게 가능하다. 곧 우리의 무의식에는 먹는 거 갖고 장난하는 거 아니다라는 언설이 무엇보다 밥에 가장 강렬하게 각인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 사회는 밥심으로 산다는, 그것을 뒤집은 어떤 말이, 압력 사회에 대한 허울 좋은 명분이 되는 것과 같이 구자하는 엄숙하고 부정의 태도로써 밥을 누르고, 그것을 먹는 것과 다른 위치에 둔다. 일자로 포섭되는 한국인에 대한 해체, 압력 사회를 지시하며 그것을 부정하기. 여기에 어떤 애도가 있을까. 

    친구의 죽음에서 사회적 죽음으로 나아가기, 동시에 사회적 죽음을 개인화하기, 곧 앞선 확장적 메타포의 도입은 동시에 그것이 시작되는 대상에 대한 고유성을 해체하는 부분 역시 있지 않을까. 〈Cuckoo〉는 다른 이후 두 작업에 비해 자신의 무의식이 드러나는 대상과의 관계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모색되거나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친구의 죽음이 초반에 등장하는 반면, 반복의 강도가 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비극적인 죽음을 다루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금기로서 발화의 급격한 전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두 죽음은 카테고리가 다르다. 죽기 직전의 어떤 순간의 절박함의 공통됨이 있더라도 그것을 선택한 것인지 선택하지 않은 것인지는 차이가 있다. 곧 후자를 말함으로써 전자는 연장되지만 다시 그것으로 소급해 들어갈 수는 없다. 〈한국 사회의 역사〉나 〈롤링 앤 롤링〉에서 각각 할머니와 영어 과외 선생과의 관계는 그 자체로 따스한 기억으로 이전될 수 있는 공간에서 상기된다. 그렇다면 〈Cuckoo〉는 다른 두 작업에 비해 더 한국 사회를 본격적으로 해부한 작업이라 할 수 있을까. 

    〈Cuckoo〉에서 애정 어린 관계는 무대로 직접 투사된다. 그것은 밥솥이다. 말을 하는 두 밥솥은 인간을 체현하고 비가시적 존재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것은 다른 존재의 독특함으로 출현하기보다는 인간스러움에 가까워지며 동시에 인간과 다른 무엇이면서 그러하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그것은 전형적인 기계의 목소리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목소리는 결국 구자하의 발화를 강화하기 위해 추후 재인용된다. 이들은 구자하와 대화하기보다 서로를 향해 침투하며 그 행위의 속성을 지닌 두 대상으로 유사해진다. 

    다성부의 목소리는 1인극을 해체하기보다는 해소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에 닿는 지점에서 효과를 창출하고 사라진다. 그것은 캐릭터로서 지속성을 획득하기보다 빈 무대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인간에게 낯선 경험을 제공하지만 근원적인 타자를 체화하지 않는다. 말없이 ‘압력’이 가해진 쌀, 그 원자들을 짓이겨 압축하는 구자하의 공정은, 자동적이고 의식 없이 주어지는 쿠쿠의 수행과 유사하다. 

    침묵에는 한 개인의 애도와 복합적인 정서가 전제된다. AI의 캐릭터가 독특한 것으로 차별화된다면, 그것의 목소리는 독특한 것으로 부상하지 않는다. 그 낯선 실은 익숙함의 소리 가운데, 쿠쿠의 소리는 침묵하는 행위자와 같이 실재한다. 곧 빈 공간에 울려 퍼지는 비의식적이고 비주체적인 소리, 여기서 죽음의 자리는 생명과 연관된 기호와 자리를 바꾼다. 바로 그 지점에 구자하의 수행이 갖는 의미가 있지 않은가.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쿠쿠 Cuckoo

    공연 일정: 10.12. THU7:30pm / 10.15.SUN 7pm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접근성:(전 회차) 안내보행, 한국어, 영어 자막

    장르: 다원 ●●●●●, 연극 ●●●●, 영상 ●●●●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중학생 이상)

    소요시간: 60

     

    제작진

    콘셉트·텍스트·연출·음악·영상·리서치: 구자하

    퍼포먼스: 하나, 두리, 세리, 구자하

    쿠쿠 해킹: 이델라 크라독

    시노그라피·영상 오퍼레이션: 정은경

    드라마터지: 드리스 두이비

    기술: 코닐 코센스, 바트 허이브레흐트, 톰 다니엘스, 넬레 베레이켄, 얀 베르크만스

    제작 관리: 빔 클랩도르프

    제작: 피아노파브릭 (벨기에)

    제작책임: 캄포(벨기에)

    공동제작: 바타드 페스티벌 (벨기에)

    레지던시 지원: 캄포 (벨기에), 아트센터 스툭 (벨기에), 아트센터 부다 (벨기에), 노더존 / 그랜드 시어터 (네덜란드)

    제작지원: 다스 시어터(네덜란드), YAA (네덜단드), 벨기에 플랑드르 정부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