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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는 당연히, 극장, 〈.기다려〉: 배우 혹은 언어의 존재론
    REVIEW/Theater 2024. 2. 5. 20:00

    여기는 당연히, 극장, 〈.기다려〉ⓒ 혜영[사진 제공=여기는 당연히, 극장,  성북문화재단](이하 상동).

    〈.기다려〉는 연극을 하는 것에 대한 윤리를 사유한다는 점에서, 제도 비평적인 작업이며, 연극이 시작되는 물리적 경계를 관객의 승인 아래 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윤리를 확언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연극이 시작되는 건 누군가가 화장실에 모두 다녀온 후에 시작된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의 안전수칙 공지와 배리어 프리 버전의 설명은 연극을 순전히 대체하고, 그 비가시적인 ‘모두’에 대한 재현으로 향한다. 연극의 태도와 정신이 연극을 지배한다. 올바른 연극이 (시작)되기 위해서 필요한 도덕적인 혐의 차원의 언어는 극단적인 과잉을 향해 감으로써 비로소 순수한 형식으로서 연극의 내용이 된다. 
    기어이 한 명의 배우는 화장실에 갔다 옴을 보여준다. 연극이 현실의 시간을 끌어들인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작위적인 장면은, 그랬어야만 했다. 〈.기다려〉는 “기다려!”라고 관객을 길들이는 수행사를 즉물적으로 구현한다. 거기에는 무대 바깥에는 현실의 시간이 있고, 모두의 삶이 평등하게 존재한다는 가정이 있다. 기어이 배우가 관객과 대등한 관계를 형성할 때 연극은 지연되며 관객은 경우의 수로서 온전히 연극에 포함된다. 
    무대감독 역할의 배우는 마구 떨며 배우가 아닌 사람이 배우의 역할을 수행함을 재현하는데, 거기에는 두 배우가 반려 존재처럼 양옆에서 지지한다. 이러한 함께함을 경유하며 이 모든 공지의 도덕적 필요와 연극을 한다는 것의 현존에 대한 심각한 부담은 서로를 지지하게 된다. 연극의 합목적성은 당위의 대상을 ‘바깥’으로 확장하는 대신 당위 자체를 안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출현한다. 여기에는 ‘안’의 연약함이 자리한다. 연약함의 연극은 자신의 연약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그 기반을 내용으로 구성한다. 

    〈.기다려〉는 자막과의 공진화를 통해 또는 자막에 배우의 언어가 기생함을 통해 수없는 언어가 꽃꽂이 머리를 세우고 줄달음질치는 가운데, 연극을 언어가 실천되는 장소로 정의한다―자막은 배리어 프리를 위한 당위의 장치이지만 실은 연극을 이루는 지지 기반으로, 관객을 지지한다. 언어가 치환하는 세계의 물리적 공간을 끊임없이 경계 짓는 과정에서 배우들은 관객을 둘러싸는 동시에 곁에 두고 관객을 마주 보며 출발해서 공간의 가에서 곧 뒤에서 또 옆에서 울리는 소리로 존재한다. 그들은 하나의 언어적 신체의 현상이다. 
    자막은 언어가 차이를 두고 반복됨을 가시화한다. 구자혜 작가는 발화적 단위상에서 분절되는 언어, 공간에 잔향적으로 기입되는 언어, 연극의 이념이 실천되는 언어를 쓴다. 나아가 배우의 존재론을 통해 나와 너의 관계, 너를 대신할 수 없는 연극의 비윤리에 관한 발화를 반복함으로써, 곧 어떤 피드백 고리 안에 갇힘으로써 윤리적인 연극을 구성하고자 한다. ‘너’를 어떻게 다른 이로 재현할 수 있는가.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에도 ‘나’는 그것을 실천해야만 하는가. 나는 어떻게 나를 속이며 다른 너를 다시 속여야 하는가. 연극을 하는 것의 회의가 전면화된다. 

    〈.기다려〉는 연극의 곁에 있지만 전면화되지 않는 두 가지 차원을 가시화한다. 연극의 바깥에 있거나 연극의 심층을 이룬다고 여겨져 온 것들. 공교롭게도 같은 공간에서 열린 〈beingbeingbeing〉(2023)이나 극단 ‘다이빙라인’의 〈단델re:ON〉 역시 극장의 안팎을 오가고 연극 자체를 이야기함으로써 극장의 경계를 끊임없이 지시하거나 재상정하고자 한다. 전자가 극장의 규칙을 허물어뜨리고 계속 쌓는다면, 후자는 극장의 시간을 가로지른다. 각각 실재적 허구와 허구적 실재로써 연극이라는 실체를 가시화하고자 한다. 

    〈.기다려〉는 실재와 허구 사이에서의 정공법을 취한다. 모든 것이 연극의 한 장면인 것이 아니라, 그 한 장면을 향해 실재가 얼마나 기울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허구적인 것이 된다. 언어를 말하는 배우가 감각되는 (게 다인) 연극. 곧 〈.기다려〉는 배우의 연극을 내세우고자 한다는 점에서 실재적이며, 결과적으로 언어가 그것과의 간극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허구적이다. 곧 배우의 실재적 존재론과 현존에 다가서기 위해 언어에 고랑을 파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실재를 다루는 것의 불가능성 자체를 드러낸다―거꾸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 곧 실재를 다루는 것의 한계를 지정하는 언어가 배우의 현존으로 연장된다. 그렇지만, 그럼으로써 언어는 그 자체로 어떤 실재를 향한다. 언어는 과잉이자 공백이다. 거기에 언어의 불투명한 투명함이 있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여기는 당연히, 극장
    천장산우화극장×미아리고개예술극장 협력 기획공연 〈.기다려〉
    공연 일시: 2023년 12월 20일(수)-24일(일) 평일 20시 / 주말 16시
    공연 장소: 천장산우화극장 

    〈출연진·제작진〉
    출연: 최순진, 최승미, 전박찬, 조경란, 장윤실, 이효진, 이리, 박수진, 박경구, 김효진
    작/연출: 구자혜
    연출부, 무대감독: 이효진
    사운드 디자인: 목소
    조명 디자인: 노명준
    수어통역: 명혜진
    자막제작: 류혜영
    그래픽디자인: 임민정, CL 
    실황영상: 유니온 씨
    프로듀서: 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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