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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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송, ‘누가 무엇을 보내는가’의 물음REVIEW/Visual arts 2015. 8. 26. 16:59
장소 특정적인 작업과 공간 임대적 작업 사이의 어떤 파생 지점들 ‘동송’이란 원래의 지명을 새로운 동음이의어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며 재전유한 것으로, 함께 보낸다는 뜻이다. 여기서 그 주체를 무엇으로 상정하느냐는, 언뜻 커뮤니티 아트로도 보이는 이번 프로젝트를 그러한 기준 아래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보이는데, 곧 그 주체가 ‘작가들’이며 그 과정상의 자의적 경험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충분함을) 의미하는지 혹은 마을 전체로 확장된 어떤 이상적 개념을 상정하는지가 이를 통해 드러난다. 한편으로 그 ‘보낸다’는 것이 일종의 매체적 전달 과정을 상정하며 따라서 어떤 메시지를 가정한다면, DMZ를 함축한 동송이라는 지역에 보내는 메시지를 또한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함께’라는 이상적인 의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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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 <평화 가라오케> 구성되며 현동화되는 공연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7. 27. 16:40
ⓒRanda Mirza 는 즉흥 신체 연기를 하는 배우의 존재를 관객에게 체현한다. 관객은 스크린을 보며 동작을 묘사하는 섭외된 배우가 인이어 이어폰에 의한 청취를 모방하는 것까지를 본다. 배우로서는 귀에 들리는 스크린의 소리와 앞 스크린의 반전된 영상을 바라보며, 언어와 행위의 차원에서 그 둘을 합치시켜야 한다. 언어와 행위라는 ‘이중의 따라 하기’는 시차를 생산하는데, 그것은 현재 즉각적으로 벌어지는 것임을 확증하는 중요한 요소다. 모방/재현으로서 연기는 거울 뉴런적, 인지적 반응에 의한 것이고 관객을 그것을 간격으로 감각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곧 ‘연극은 상연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연극은 지연된, 아니 즉각적 반응으로서 신체를 우리가 매우 즉각적인 시차로 그것과 합치시키려는 노력(?)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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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족> 희극적 전략 속 냉소적 우의REVIEW/Theater 2015. 7. 27. 16:30
▲ 포스터 에서 ‘안전가족’은 이데올로기 개념으로 사용된다. 가족이 사는 집이 안전한 만큼 바깥은 불안전함을 시사하고, 그러한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바깥에 나가면 안 된다(는 신화를 구성한다). 단지 가장만이 외부 출입을 할 수 있으며 나머지 가족은 그 선을 넘지 못한다. 그리고 이 가족은 가부장적 위계에 의해 집에서 엄금된다. 밖은 불안전한 것일까. 바깥과 단절됨으로써 언어는 해체·재조립되고 사회의 언어 규약을 따르지 않게 된다. 애초 아이들은 라디오(미디어)를 통해 이상한 언어의 쓰임을 하달 받고 있는데, 우리가 아는 일상 언어에서의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가 전제된다. 가령 ‘오토바이=박수’라는 식으로, 바깥과의 관계 맺기가 부족한 가운데 외부의 생명체로서 고양이 역시 핵폭탄이 된다. 하지만 기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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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희, <감각의 권리>: '감각' 에 대한 (메타) 실험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7. 27. 16:19
▲ 김준희, ⓒ 옥상훈 막에 감싸인 무대는 밀폐된 일종의 실험실이자 하나의 공유하는 환경을 이룬다. 앞에서 모여 숨을 들이마시는 동작 혹은 공동의 안무임을 지정하는 동시에 감각 자체에 대한 분별이다. 곧 춤(이 다할 수 없는 감각에 가까운 무엇)을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 곧 모여 숨을 쉰다는 행위만이 펼쳐진다. 하나의 울타리로 놓인 공동 환경이 여기에 작용한다. 여기에 팬티만 입고 소리를 질러대며 서로를 이유 없이 때리며 뛰어다니는 소극을 연출하는 광경 등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논-댄스로 보이기도 한다. 안무화되지 않는/될 수 없는 움직임들을 전개하는 것, 한갓된 몸(것)이 나타나는 것, 감각의 권리는 그렇게 보면, 보는 것이 아니라 만져지는 것,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으로서 춤이 아닌 것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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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곤조, <아라네스프의 시간>: 주체의 영점에서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7. 27. 15:56
▲ 게이 곤조 ⓒ게이 곤조사각 링 안에서 관객은 일종의 환영을 본다. 주변의 네 개의 천은 바람에 따라 유동하며, 거기엔 조각배를 저어나가며 비치는 네 개의 분절된 입체 풍경이 투사된다. 이 영상은 그러니까 바람에 천의 유동을 반영한다. 영상은 같이 흔들린다. 우리는 영상에서 잠기지 않는 주체의 자리, 흔들리는 지점에 있으며 바람의 기울기가 시각화하는 풍경에 따라 정위할 수 없는 몸을 환영적으로 인지한다. 바깥은 그렇게 담긴 채 열려 있다. 과거의 재현적 시간이 영상으로 인해 현전된다. 여기에 바깥의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가 그 환영적 공간의 틈새를 뚫고 다다르는데 이는 내면의 소리로 전이되기 위한 듯 보인다. 흘러가는 흐름을 통과하는 감각만이 있다. 말은 물결과 바람 속에 휩쓸려 간다. 그러면서도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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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페 2015 리뷰: 특기할 만한 몸짓들, 현재 유효한 질문에 대한 질문REVIEW/Dance 2015. 7. 1. 11:21
스펠바운드 컨템포러리 발레단의 는 하나의 작은 큐브를 가지고 사계절의 변화와 그 속에 존재들의 관계를 구현한다. 커다란 무대는 작은 하나의 무대이자 공간인 큐브에서부터 시작되며 큐브로 돌아간다. 큐브에서부터 확장되며 큐브로 압축된다. 이 큐브는 입체적이고 모서리가 비대칭적으로 깎여 나간 다변형의 구조로, 계절의 분기에 맞춰 위치를 달리한다. 매우 변화무쌍한 건축적 구조물은, 그럼에도 유선형이 아닌 직각적이고 평면적으로 공간에 상정되며 이와 합치되려는 움직임들은 다분히 딱딱해지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이는 수직 축을 유지하며 그것을 은폐하는 유연함의 몸짓들과 전체적인 활강의 동력을 가져가는 발레를 공간 안에 결부 지으며 다소 더뎌지는 흐름으로 인한 탈은폐의 측면일지도 모른다. 개막작인 만큼, 사계절의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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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숙 <Amore Amore Mio>: 반복의 적층과 순간의 영원REVIEW/Dance 2015. 7. 1. 10:12
막이 오르기 전, 전미숙 안무가의 솔로 무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막이 되어 갔는데, 가령 둥글게 말아 흩어지지 않는 무거운 몸짓의 원환은 어떤 하나의 무게이자 몸으로, 막이 오르기 전에 무겁게 어둠으로 녹았다. 이는 이후 펼쳐진, 화려한 무대의 와 대칭을 이루며, 수많은 문들로 이뤄진, 그러나 그것들은 소통 불가능성으로 소급되는 각각의 모나드들로, 그것들이 만든 가상의 세계 그 문을 열었을 때 마치 그것들 모두가 해체되어 산화되는 것과 같은, 그 빛의 심핵을 건드리고 있는 듯했다. 전미숙의 솔로가 삶의 솟구치며 다져진 이야기의 주름, 그 궤적이라면, 는 그 찬란한 표면의 입자들이었다. 이 분자적 진동을 가리키는 가장 명징한 기호는, 결국 처음 무용수들이 들고 온 찻잔 위의 컵이 떨리며, 자신의 움직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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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헨 롤러 <그림문자>, 다만 이것은 하나의 음악-춤의 리듬과 속도!REVIEW/Dance 2015. 6. 20. 13:05
▲ 요헨 롤러 ,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가령 두 사람의 얽힘에서 상하의 위치 전환의 양상과 그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의 판은, 일종의 몸이 시각적으로 드러난 기계 버튼이 된 디제이 믹싱의 변전에 다름 아니었다. 이는 전체적으로 보면 음악과 맞물린 무대가 몸을 촉발하고 움직임은 그 음악에 합당한 지점에 위치함을 의미한다. 음악은 몸을 위한 일종의 수많은 참조자료들의 성격을 띤다. 단지 음악과 춤 그 하나로 합쳐지며 무한하게 달려 나가는 무대가 주는 쾌감은, 곧 변화에 있었다. 어떤 과거나 돌아감 따위는 없다. 의식을 갖춘 주체나 존재 양상도 찾을 수 없다. ‘구성은 없다!’ 다만 뭔가 흘러가는 양태들만이 있을 뿐이다. 이 단순한 무대 구성의, 그러나 화려한 흐름은 감각을 완전히 사로잡기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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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안산 국제거리극축제 리뷰: '시민적 일상 공간의 모색' 그 과도기에서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5. 8. 17:26
▲ 실존하는 거리극 축제로서는 가장 많은 인파를 모은다고 보인다. 일자형 이차선 도로를 모두 축제의 장소로 바꿈으로써 각기 다른 장소를 찾아다니며 얻는 장소 특정적인 경험의 상존 대신, 사이트로서의 구별 가능함으로 일종의 투명한 경계의 부스 형태로 공연들이 시간의 분배에 따라 온/오프되는 것으로 변화되어 있었다고 보인다. 한 마디로 비워진 공간이 도시 질서의 해방 출구를 체현하는 안산 국제거리극축제를, 오랜만에 찾았을 때 느낀 것은 한 마디로 별로 볼 것이 없다는 것. 장소 특정적인 무대로의 전환에 드는 비용은, 몰입의 관객 대신, 평범한 공공 설치물들과 함께 ‘셀카’ 찍는 시민의 관광객들로 수렴되었고, 그것이 붙잡아둘 수 없는 시간의 공연 대신,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의 기념 장소들을 구축하는 것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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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봄 2015] <멈출 수 있는 미래의 환영>, 적나라한 파국에서 시야각 바깥으로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5. 8. 17:14
@ 차지량 119 구조대 공간에 들어서 본 건 ‘여기’가 아닌 ‘저기’, 곧 한강 위 오리 배에 탄 난민들이었다. 미래에서 온 난민의 입국을 허용하는 협상의 자리에서, 그것과 거리를 좁힐 수 없이, 멀리서 중계되는, 매우 미소하게나마 시차를 허용하는 지연을 거쳐 그것과 마주하는 것이다. 구조 보트를 구동시킬 때 흔들림을 경험하고 전체적으로 땅에 뿌리박지 않은 공간에서 관객은 응시 대신 기다림과 지루함을 겪는, 일시적인 폐쇄 공동체의 운명을 띠게 된다. 이러한 답답하고 어두운 공간은 결국 차지량 작가가 미래로 전이한 현실의 알레고리를 실제적으로 체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난민 협상의 타결을 보기보다, 이 화면이 언제 끝날지가 기다림의 끝으로, 그 생명력은 곧 보이지 않는 미디어의 암묵적 권력에 있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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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봄 2015] <필드워크 : 오피스>, '가상 현존의 전략들'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5. 8. 16:58
ⓒHeine Avdal 장소 특정적인 퍼포먼스로 지시된, 공연은 입국 수속 서류를 작성하듯 자신의 정보를 써내어 일종의 통과 의례를 거치며 임시적인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근무하는 축제 스태프 사이에서 이곳을 찍은 주변 광경들을 통한 재현된 내비게이션으로 현재 위치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공연을 관통하는 애니메이션은 지시하는, 현장의 오브제들을 반쯤 덮어 그것의 윤곽으로써 그 사물의 반절을 완성한다. 구성된 현실을 지시하는 에이 포 용지의 불투명한 표식들은 앞서 가는 퍼포머의 흔적으로 들어오는 셈으로, 아날로그이자 재현된 사물의 일부 스케치는 현실을 증강한다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 ‘생기를 띤animated 것’이라면, 동시에 ‘연속성’을 띤 생명체animal라면 이러한 사물-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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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끝-레지던시: 안무가 초청 프로젝트 리뷰REVIEW/Dance 2015. 4. 14. 13:52
언어-움직임-이미지의 균열적 총체▲ 국립현대무용단 끝-레지던시 공연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 (이하 상동)‘짏어’는 ‘싫어’와 ‘질어’(‘짊어’/‘집어’……) 등의 무수한 유사 기표의 착시를 ‘짊어’진다. 이것은 그 어떤 확정/이해 가능한, 단어를 거부(‘싫어’)하며 그것을 포섭한다. 독립적인 단어의 쓰임을 이탈하는 초과된 단어의 전시는 말을, 침묵을 대신한다. 말의 침묵은 침묵으로서 말하기가 된다. 무대의 현존은 그러나 그 앙다문 그러나 비죽 나온 두꺼운 입술에, 그 입술이 지니는 묘한 웃음의 흔적으로 수렴된다. 곧 눈과 입의 다른 층위에서 이 작품은 어쩌면 전적으로 쓰이고 있다. 곧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의 간극이 이 작품을 추동한다. 이 기묘한 마스크의 무용수, 최민선이 갖는 침묵의 말은, 각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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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봄 2015 프리뷰] 상호 참조적 코멘트PREVIEW/Festival 2015. 3. 25. 16:09
9회째를 맞는 페스티벌 봄이 오는 27일(금)부터 4월 19일(일)까지 열린다. 12개국(노르웨이/독일/말레이시아/불가리아/세르비아/영국/인도네시아/일본/프랑스/필리핀/한국/호주) 50여 명의 아티스트들의 참여로, 총 30개의 작품이 서교예술실험센터, 문래예술공장, 인디아트홀 공,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서강대 메리홀 등을 찾는다. 올해 페스티벌 봄의 주제는 ‘상호참조(Cross-Reference, 相互參照)’로, 작가-작품-관객을 레퍼런스로 삼는다. 이는 SNS와 같은 파급력을 지닌 매체 특성에 기인한 작품의 맥락이 재-발현, 재 포맷되는 현상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곧 이를 통해 작품의 맥락이 확장되거나 변형되는 과정까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상정한다. 이승효 페스티벌 감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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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구성되는 연극, 발생하는 행위REVIEW/Theater 2015. 2. 13. 16:13
▲ 연극 [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 (이하 상동) 다섯 개의 장/막/연극으로 이뤄져 있는 연극(들)을 통해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적극)은 연극 자체를 따로 또 같이 말하고 있다고 보인다. 첫 번째 연극()은 양 한 마리를 세며-정확히는 타자打字를 치고- 화면에서 하나씩 증가되는 수열로서, 숫자의 증가로 수식되는 양으로 지정됨을 관객은 인식하게 된다. ‘숫자+양’ 이후 무대의 구멍에서 양으로 분장한, 양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나타난다. 제목을 따른다면, 한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의 꿈속에서 양을 세는 가운데, 각기 다른 기괴한 양이 나타나는 형국이다. 표면적으로 이러한 시놉시스(타자)와 나타남의 시차적인 합치는, 재활용 물품들과 절합된-곧 분장이라기보다 덧붙이고 껴안고 들고 하는 식으로 일시적이고 분절적인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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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디스토피아>, 단순한 부정에의 열망인가REVIEW/Theater 2015. 2. 13. 15:33
▲ 디스 디스토피아_사진 김도웅 [사진 제공=컬처버스](이하 상동) 디스 디스토피아(This distopia)는 부정적인 장소, 디스토피아를 지시한다. 이것은 디스토피아라는 프레임은 무대를 구획한다. 곧 디스토피아라는 세계에 침잠·전염되기보다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인지하는 주체로서 극을 바라보게 된다. 한편 ‘디스-디스’라는 발음/표기가 반복됨은 일종의 언어유희로 이해·인지 가능하며, 두 개의 ‘디스’가 자리바꿈을 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this distopia’는 ‘dis-this-topia’로 볼 수 있고, 그에 따르면 이 부정적인 장소는 부정적인 이 장소로 전치되며, 전자가 저기의 부정적인 장소를 바라보는 이곳의 시선이라면, 후자는 여기 장소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가깝다. 이는 디스토피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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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 춤의 전형적인 재구성과 아카이브에의 열망REVIEW/Dance 2015. 1. 5. 14:25
▲ 국립현대무용단,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는 춤을 보는 것에서 춤의 말을 듣는 것으로 춤의 위치 전환을 감행한다. 그러나 렉처 퍼포먼스의 형식을 차용한 이 작품이 제목에서 가리키는, 이 위치 전환은 추상적이고 비언어적 춤에 대한 구체적이고 언어적인 해설/해석의 차원이 더해지는 것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데, 말하는 주체를 춤에 관련된 누군가가 아닌, 춤 그 자체로 본질적이고 환원적인 차원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곧 ‘춤을 말하다’의 메타 차원이 아닌, 곧 말 자체의 자율성을 가져가기보다, ‘춤이 말하다’라는 그 춤 자체의 신비주의 강령을 온전히 해체/재구성하기보다 춤 그것의 본질에 다시 사로잡힐 공산이 큰 것이다. 여섯 명의 춤꾼/무용가들은 한국무용계를 대표할 만한 다양한 분야에 속한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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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엽 개인전 <춤 그녀 미치다>: 정면을 마주하며, 감각을 의식하기REVIEW/Dance 2015. 1. 5. 14:13
▲ 차진엽 개인전 ⓒKIMWOLF (이하 상동) 한국 춤계에서의 인지도나 나이 측면에서나 여러모로 어떤 현재적 지표가 될 만한 점에서, 그리고 독자적인 안무가-무용수로서의 입지를 시험·시현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차진엽의 공연은 춤계에서 무엇보다 이목이 집중됐다고 보인다. 5시 평일(수요일) 공연에서도 관객석은 80퍼센트 이상 찼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나 명확했고 단단했다. 여러 아이디어와 무대의 짜임을 시험했고, 하나의 춤의 결로 소급되는 움직임을 구축하려 했고, 내용/서사 면에서도 완결성을 갖추려 했다. 시간도 길지 않았고, 각 신들은 모두 정확한 이유를 갖고, 명확하게 감각되는 움직임들로 짜였다. 또한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자기 목소리로써-처음 인사말부터- 기입하는 연출은 개인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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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훈무용단 <씨저테일 서전트>: 파열과 기울기의 연쇄적 안무REVIEW/Dance 2014. 12. 31. 11:36
▲ 박나훈무용단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하 상동) ‘드르륵’의 더딘 가격과 일시적인 파열, 곧 시선을 무력화하는 일시적 멈춤과 굼뜬 움직임을 체현하는 규칙적인 박자가 형성하는 리듬과 그것을 빠르게 재생하며 입체적으로 뿌리고 펼치는 ‘드르륵’ 갈리는 소리의 이어짐, 가령 움직임들의 교차와 반복을 지속케 하는 사운드들이 생생하게 의식을 조인다. 이 우화 같은 반복에의 강박적 리듬은 작품 전체의 리듬의 규격이 되는데, 이 작품이 경사진 탄력적 4면의 정사각형 판에 올라탄 존재자들이 일종의 머릿속을 유영하는 식의 알레고리를 형성하는 부분과도 관계를 맺는다. 이 사각형의 경계에서 잔디를 만지며 이 땅을 하나의 세계로 구성하는 시선, 동시에 그 세계에 파묻히는 시선을 그 사각형의 세계/잔디밭에 세 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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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홍철기 <Defaced>, 빛과 어둠으로 짜인 텍스트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4. 12. 29. 11:03
‘Defaced’의 퍼포먼스는 손전등을 켜고 자신의 책에 나온 단어들을 띄엄띄엄 읽는 조현아와 그 텍스트에 미끄러지며 따라 가는 사운드 재질·표면을 만드는 홍철기, 두 존재의 대면에서 성립되는 말과 응답에 가까웠다. ‘여기’와 ‘저기’ 같은 변별/대립되는 두 단어의 의미 맥락은 스피커의 위치 전환적 변환과 맞물렷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고, 이는 어둠에서 나왔고, 어둠을 나타냈다. 단어들은 어둠 속 미약한 빛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보였던 것에 가까웠다. 이런 저장되지 않는 언어의 망각으로서의 명명은, 작가의 감정이 배이지 않은 떠도는 단어들 그 자체였고, 정확치 않아 어둠의 공간으로 분포, 그리고 곧 사라지기에 전적으로 무의미했다. 사운드의 따라 붙음의 좁은 ‘간격’은 다시 텍스트의 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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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옥무용단 <심청> : 눈-우주의 알레고리, 그리고 미디어를 매개하는 몸REVIEW/Dance 2014. 12. 29. 10:48
▲ 이경옥무용단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하 상동) 은 와이어를 통해 허공에 매달려 공중 회전하는 ‘심청’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바닷가에 굴절된 빛으로 편재된 물의 입체적 폭과 부피를 무용수-퍼포머를 둘러싼 거울들을 통해 무대로부터 그 바깥으로 전달한다. 곧 퍼포머(와 그에 맞춘 거울)의 높이는 폭과 부피감을 도출하는 혹은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 거울의 둘러쌈과 쪼개짐은 바다 공양을 거울(빛-) 제의의 상징성을 드러내거나, 또는 바다 속에 침잠해 들어가며 고요하게 일으키는 물결의 운동성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 바다 속의 신비함이 관객 너머까지 전달됐다면, 곧 일종의 수족관의 생생함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면, 이어지는 검은 땅위의 죽음의 제의와 그 잔영들이 만든 스크린, 그리고 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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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무용단 <계보학적 탐구> '역사 바깥에서'REVIEW/Dance 2014. 12. 29. 10:36
▲ 트러스트무용단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하 상동) 설경 아래 기차 여행의 실제 무대에 트랙을 또는 기차 장난감으로 끝나는, 는 어둠 속 바퀴 달린 이동형 낮은 의자를 타고 등장한 존재자들은 무대 옆에서 물속을 헤치고 유영하며 시작한다. 무대 중심을 차지하기보다 거대한 풍광의 측면을 이루는 인간에 대한 망원경적 시선은 개인이 아닌 인류를, 디아스포라로서의 타자적 주체와 그 삶을 반추하는 듯하다. 그 안에서 발화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이는 어떤 장면의 표면을 이루는 기억들이고 역사의 한 전형에 가깝다. 이들이 군집하는 몇몇의 길지 않은 순간은 무대가 흘러갈수록 탄생을 나타내는 것에서, 역사를 찢고 나오는 인간의 새의 날갯짓을 표현형으로 구성한 것으로 나아간다. 여기에는 과또한 힘이 부여돼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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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안무, <저장된 실제>: ‘편집적 리얼리티의 세 가지 방식들’REVIEW/Dance 2014. 12. 28. 21:59
▲ 황수현 안무, 에서 무용수 강호정 [사진제공=황수현] 세 개의 방에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작품이 이뤄지고, 균등하게 그 수가 나뉘어 관객이 동시에 각각의 방으로 입장한다. 세 개의 방(방1-장홍석, 방2-공영선, 방3-강호정)에는 각기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저장된 기억과 저장된 몸 장홍석은 불이 켜지면 옷을 벗는(그리고 불이 꺼지면 다시 입는) 일련의 움직임을 반복하여 동일한 순간에서 오는 기시감을 준다. 지난 현재가 현재로 재생되는 순간은 시간 축(에 대한 감각)을 이전으로 되돌리고, 시간의 유예, 영원한 현재에의 위태로움 속의 어둠으로 지연되는데, 이 현재가 다시 찾아옴의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가령 그 순간은 현재에서 벗어나며 진정한 ‘미래’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다시 찾아오는 현재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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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민 연출/즉각반응 <GOOD DAY TODAY>: 도시-기억을 유영하다REVIEW/Theater 2014. 12. 22. 13:53
‘연기의 바깥’에서의 양말복 ▲ 하수민 연출/즉각반응 , 출연 이영조(사진 왼쪽), 양말복(오른쪽) © 이재훈 [사진 출처=즉각반응 페이스북 페이지](이하 상동) 은 배우 양말복이 화자가 되어 ‘양말복’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띤다. 이야기와 실재는 서로를 보증하는 듯하지만 실재한다는 통상의 양말복(의 과거)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이야기 속에서 객관화시키는 양말복이라는 배우는 그 이야기에서 허구의 화자로, 파편적 역사의 체험들을 재구성하는 주체로 상정된다. 양말복이 캐릭터로 분함이라는 ‘연기’는 한 인물의 역사로의 편입의 이야기 형식과 구분될 수 없으며 그 ‘형식’을 유지하는 지지물이 된다. 양말복이 ‘양말복’을 이야기하고 그 경험을 입체화하는 방식에서 관객은 그 이야기의 허구성이 자율성을 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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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석 <베이포-X와 홈비디오>: 손을 내미는 거리로부터의 윤리적 연대REVIEW/Visual arts 2014. 12. 19. 16:58
흘러간 시간들의 부상 ▲ 강정석, Simulating Surface B(2014) [사진 제공=인사미술공간] 되는 대로 찍힌 영상은 전시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편집적 재구성의 역학을 거친다기보다 관객에게 ‘내맡겨짐’으로 현상되는 듯하다. 몇몇의 홈비디오들은 카메라와의 거리를 인식·측정하기 어려운데, 작가의 시선을 대변·투영하기보다 작가의 손에 들려 그로부터 시선이 딸려 들어가는 것처럼 감각된다. 곧 에서 비디오의 시선은 엄밀히 목소리를 내는 주체(적 대상)를 향하지 않고 거리를 향하는데, 이 실제의 시선은 ‘안’에 있는 셈이다. 찍는 자와 찍힘을 당하는 이 사이의 경계가 거의 사라져 성립하는 어떤 경계 없음의 상태를 함의한다. 여기서 한층 중요한 건 찍히는 자의 경계가 풀어졌다는 데 그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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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옥, <모험의 편집공학> : 경계를 맞춤 인식하는 편집의 방식들REVIEW/Visual arts 2014. 12. 19. 16:41
유령의 흔적에서 유령에의 기원으로 ▲ 이세옥, 전시 전경 [사진 제공=시청각](이하 상동) 하나의 개인의 방에 들어온 것 ‘같다.’ 이 ‘같다’의 느낌은 그 표현에 있어 정확치 않다(고로 어떤 해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을 일단 하나의 영화이고 ‘영화적 체험’이라 명명해 보자. 두 개의 스크린과 2개의 오디오로부터의 교차 편집된 (목)소리, 그리고 일종의 리듬을 부여하는 ‘배경’ 오디오-사운드. 하나의 스크린이 헤드폰을 장착하며 듣고 본다면-그럼에도 하나의 공간으로 열린 채 듣기·보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외의 나머지는 하나로 맞물려 기능한다. 일상에서 채집한 사운드들-빗소리들을 비롯한 여러 소리들-은 나를 위해 허락된 곳일까. 곧 이 ‘나’를 상정함은 이곳을 누군가의 사적 공간으로 두고 있음을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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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섭 <횡단보도>, 건널 수 없는 도돌이표 정세, 그리고 제도에 쓰는 자조적 편지REVIEW/Dance 2014. 12. 9. 10:29
▲ 금배섭 포스터 한편으로는 한국 근현대사의 대통령(의 계보)의 현전/재현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이 아직 오르기 전의 단계, 지원서 양식의 기획 의도와 작품 구상을 통한 작품의 얼개가 수직적으로 작품을 관통하고, 일종의 단락 지점들로 적용되면서, 그 중간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여러 남녀의 소극(笑劇)적 양상으로 채워진다. 일종의 전자가 각각 역사와 작품을 둘러싼 직접적인 연관으로서 동시적인 부분이라면, 후자는 현실 세계의 이상한 재현이고, 여러 다른 시간/관점에서의 다각적 구성이다. 또한 공시적(일시적)인 삶의 에피소드(들)이다. 삶은 지나가기보다 거의 다시 도래하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명확한 가짜-선언에 이은 반복-움직임의 배치는 역사는 변함없고 안무는 미묘하게 달라질 뿐 그것(역사)을 해체하거나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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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뽑끼 <사소한>, 사적인, 그래서 소중한 것들REVIEW/Dance 2014. 12. 9. 10:20
▲ 프로젝트 뽑끼 중 '사소한 공간' [사진 제공=컬처버스] 용혜련의 몸은 장소에서의 기억을 체현한다. 이는 장소는 기억을 담지하고 있고, 몸은 장소를 구획하는 일정한 움직임을 만듦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한 존재의 삶의 영역, 삶의 물리적·신체적 장이 활성화되는 영역에서의 반복이기도 하다. 세 명이 되기 이전에, 관객의 시점을 반영하면서 무대에 선행하는 인물로서 일종의 주인공 같은 캐릭터로, 그것이 자연스러운 밖의 영역이 교차함을 깨닫게 되는 것은 동선이 방해받아 그의 움직임 영역이 구겨지고 멈칫하게 될 때이다. 김명진, 전지예, 용혜련, 이 셋이 복잡계의 일단을 보여줌으로써 ‘지저분한’ 무대를 보여주고자 하는 듯하지만, 실은 더 이상 삶의 영역의 (불완전한) 상정도 아니고, 즉 개인에서 관계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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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51>, 예술가의 자립·성장 기반으로서의 두리반!?카테고리 없음 2014. 12. 9. 10:04
▲ [보도스틸 제공=인디스토리] (이하 상동) 은 매끄럽게 이어지는 꽤 잘 편집된 기록물 성격의 영화다. 곧 51+의 공연이 이어지는 대를 전후로 주로 ‘두리반’으로 소급/환원되는 대문자 이름을 전제하는 가운데, 그것의 곁에서 속도감 있게 순차적이고 계보적으로 역사의 한 순간들로 바꾸는, 음악과 그 삶을 보여주며, 음악적 화려함으로 그것을 마감하는, 음악의 유려한 동력이 그야말로 역사/현실을 표면화하고 드러내는, (시)청각적 기록물이다. 이것이 극장이란 곳에서 상영됨으로써-곧 앞뒤 타이틀 시퀀스를 가짐으로써 영화가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기록(의 편집)이자 음악적 편집이 가해진, 떠도는/떠돌았던 음악‘들’의 시대적 풍경(, 그 편지) 같다. 이것은 두리반이란 무거운 어떤 정치적-음악적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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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잉여>, 떠도는 시대-이미지/이야기에의 어떤 근접/간접의 시선REVIEW/Visual arts 2014. 12. 9. 09:27
‘청춘과 잉여’라는 제목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세대-주체적 이름의 이상 담론과 취업의 어려움이 동반된, 견고하고 안정적인 삶의 지반을 획득하기 힘든 비주체를 각각 가리키는, 동 세대에 대한 명암이며, 대립하기보다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두 다른 좌표로 보인다. 곧 이 두 이름은 동시대적-세대적 유행하는 이름이며 그렇게 동시대를 호출/호명하는 전시로 느껴질 소지가 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청춘’은 90년대 국내 호황을 맞던, 곧 밝은 시대가 펼쳐짐을 앞둔 희망 어린 청춘의 시기의 한 자화상과 2000년대 IMF사태를 비롯해,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가 지속되는, 가령 겹치는 시기에서 장기하의 한 노래 중 ‘방바닥에 뒹굴다 못해 방바닥과 내가 물아일체된’ 잉여적 청춘의 단절적 계보 양상을 절합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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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트 라디오, 청취의 이미지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4. 12. 9. 09:03
프로스트 라디오Frost Radio(서리 라디오)는 특정 장소에서의 특정 주파수를 라디오로 듣는 관객-퍼포머의 체험으로 완성되는 일종의 장소 특정적 듣기라 할 수 있다. 라디오는 특정(가청) 주파수(영역)에서만 가능한데, 전파 송신의 역량에 따라 그 장소는 무한해질 수 있겠지만, 전파의 이름의 근접과 함께 그 전파가 닿아야 하는 실제적 거리에 대한 감각이 우선하는 특성으로 인해 여전히 장소 특정적이며, 동시에 장소의 연장적이며 동시(다발)적인 특성을 띤다. 현장에 당도했을 때 주파수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건물에 걸려 나오다 말다 그랬는데, 그 정도로 전파가 약했고, 다리 밑에 내려왔을 때 전파(소리)의 끊김(간섭) 현상은 없었다. 그리고 마주한 광경은, 평화롭게 마치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