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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늘 안무·연출, 〈유토피아 - LET THERE BE LIGHT〉: 인류세 이후의 미래 시제에 대한 이미지, 정동, 환경REVIEW/Dance 2025. 3. 4. 22:05
〈유토피아 - LET THERE BE LIGHT〉(이하 〈유토피아〉)는 설치와 프로젝션을 통해 ‘환경’에 관한 상징적 배경을 구성해 낸다. 여기에 쌓이는 또는 연루되는 격렬한 몸짓들은 그 환경에 대한 반응이자 반영의 표현이다. 후반, 총천연색의 자연을 바라보는 여자의 이후 몸짓의 기조 변환은 세계에 대한 재인식이자 새로운 출발점을 노정한 것이다. 여기에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적 장소를 성서적 해석과 겹쳐 두는 제목은 이와 결부된 작품을 해석하는 근거로 적용할 수 있을까.
▲ 정하늘 안무·연출, 〈유토피아 - LET THERE BE LIGHT〉©연인사(이하 상동).
플랫폼엘 플랫폼 라이브홀의 전체 객석을 거둬내고 관객이 공간 양 가에서 마주 보는 대형으로 구성한, 일종의 런웨이이기도 한 공간의 중앙은 허공에 매달린 초록색 도료를 칠한 각목들로 직조한 비정형 입체 구조물들과 의자들로 가로막혀 있는데, 전자를 허공에서 해체하고 후자를 스크린으로 쓰이는 벽의 가로 가져다 놓는 공간 정비로부터, 곧 설치의 연장선상에서부터 공연이 시작된다.
의자 사이에 꽂음으로써 위협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구조물의 여전한 불안정한 이전으로부터, 드러나는 건 수북하게 밑에 깔린 검은색 종이 파편들이다. 이는 검은 혹은 잿빛 흙의 기저를 이루는데, 해체/설치 작업을 행하는 검은 옷의 두 남자(심재호, 박용대)는 그로부터 연장된 죽음의 사신이자 죽음에 대한 상징성을 체현하는 존재와도 같다. 곧, 배경에 대한 접근과 그로부터의 연관성을 통해 움직임이 시작된다.
끈적한 땅에 대한 촉각적 감촉은 종이라는 매체임에도 그것이 검기 때문에, 그리고 밑에 깔린 비닐에 반사되면서, 또한 어느 정도 뭉쳐지고 일정 정도 덩어리처럼 접착되면서 발생한다. 석탄의 지층 같은 표층으로부터 추출되는 더러움과 어둠은 각각 신체적인 끈적거림의 감각과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력을 그들의 신체와 결부시킨다. 한 쌍의 남녀의 뒤엉킴은 다분히 젠더적인 차원의 분화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데, 과잉된 두 존재의 서로를 겨누는/좇는 힘의 극대화된 방향성은 남녀의 현실적 사랑의 층위가 아닌 것으로 그 관계를 각색한다.
그것의 열쇠를 갖고 있는 듯한, 시종일관 투명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김연아)는 탈현실의 분위기와 함께 남자(심재호)와의 포옹을 통해 강력하게 흡착되며 (마치 자기가 아닌 신체를 탈환하는 것처럼) 신체의 연약함을 전도시키는데, 이와 같은 결합의 도상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된다. 그것은 뱅글뱅글 도는 형상으로서 공간 전체로 번져간다. 젠더의 뚜렷한 경계로 분기되는 남녀의 관계는 듀엣의 전형성을 가정하면서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종속된다.
이 미래의 시제는 타자성을 기약하고, 제시하고, 부상시킨다. 검은색 배경이 오랜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자연의 물질인 역청 그 자체를 의미하는지, 그 자연을 인공물로 변환하는 산업 시스템의 부산물이 추출되는 현장을 상정하는지, 석유가 유출된 해변과 같이 인간의 사회로부터 오염된 자연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그 위의 생명체들에게 불길한 환경이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거대한 힘의 자장을 상징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환경과의 조응으로서 자리하는 신체들의 형상화 작업이 곧 〈유토피아〉의 요체인 것 역시 분명하다.
이 미래 시제 속에서 존재들은 현재의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며,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이 두 명제는 상호 교환 된다. 여기서 관계만이 그 존재를 풀 수 있는,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데, 이는 앞선 등장에서처럼 같은 행위를 하는 차원이 아닌, 서로를 지향하거나 부정하는 움직임이 드러나는 차원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랑이 아닌 다른 장력에 의거한 남녀의 관계이다.
여기서 두 남녀의 결정적인 대립의 장면은 작품에서도 결정적인 위치로 차지한다. 그것은 매우 뚜렷한 대립 관계를 표현하면서도 대단히 폭력적이며 신체의 소진을 감수하는 장면이다. 남자(심재호)의 십자가처럼 여자(최예원)를 올려세우고 두 손을 떼서 여자가 추락하는 반복된 행위는 앞선 극렬한 포옹에 대한 반작용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분기되는 관계는 파괴와 재앙의 미래 시제가 겨누는 어떤 힘을 ‘무미건조한’ 정동으로 풀어낸 결과에 가깝다.
폭력을 수용할 수 있는가의 질문을 폭력은 어떻게 가능한가의 질문으로 바꾸는 것, 그것은 미래 시제라는 타자성을 전제함에 따른 것이다. 최초의 두 남자의 구축 행위는 이 환경을 그 시제에 부합되도록 변경하는 수행적 작업이라면, 그 뒤에 남은 건 파편적인 관계의 모습들이다. 그리고 그 의존과 부인의 대립 작용 바깥의 (다른) 관계를 상정할 수 없는 건, 인류의 불가능성으로서 이 미래 시제의 급진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더 구체적인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함에 따른 것 아닐까. 그것은 급박하게 또는 성글게 미래를 상상한 결과 아닐까. 이 관계의, 존재의 불가해성으로부터 이 작품을 바라볼 수 있으며, 또 거기에서 이 작품은 닫히는 듯 보인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UTOPIA-LET THERE BE LIGHT
일시: 2024.10.26(토) 7시 / 27(일) 3시, 7시
장소: 플랫폼엘 라이브홀
티켓: 전석 자유석공연 장르: 무용-전시 인터랙티브 아트
안무·연출: 정하늘
출연: 권은기, 김연아, 박영대, 심재호, 이현섭, 최예원
사운드 디자인: 박준영
무대 디자인: 조일경
의상 디자인: 신호영
조명 디자인: 한희수
영상감독: 권재헌
무대감독: 황익순
프로듀서: 이루희
빛이 사라지기 위해 폭발하듯, 생명의 모든 색을 머금은 세계로 나아간다
꿈틀대는 희망, 요동치는 절망, 이곳에서 우리는 함께 춤을 춘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진실을 향한 탐구의 길을 걸어간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순간, 당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로 속에서 만나는 해방의 순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간다728x90반응형'REVIEW > D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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