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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 이접되는 두 시공간REVIEW/Dance 2024. 12. 6. 21:54
이동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Hanfilm[사진 제공=국제현대무용제] 이동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해부대〉)는 그 제목에서부터 미스터리한 느낌을 만드는데, 이 분위기는 작업에서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완성된다. “해부대”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역시 정확하지 않지만, 처음 군대의 기상나팔 소리로 시작된 작품에서 텐트를 비롯해서 ‘부대’라는 군대의 용어가 현실의 상징적 재현과 함께 장소 특정적 환경을 구성한다고 추정 가능하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와 의상, 텐트까지 모든 것이 분홍색을 이루는 가운데, 움직임에는 물론 표정과 언어가 없다. 그 부재의 강조는 이들의 뭔가 부산스러우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정위되지 않고 투박한 몸짓으로 나타나는 것과 맞물린다. 동시에 단세포 입자들처럼 보이는 구형들의 동시다발적 움직임이 미디어 파사드를 이루면서, 이들은 의식과 자각이 없는 단세포적 생명의 작동 과정을 보여주는 예시로 자리하게 된다.
처음, 텐트의 자리에서 그 앞쪽의 문을 열고 일렬로 들어오는 개성 없음, 보통의 존재들은 각자의 단상에서 활개 친다. 그 누인 단상을 다시 세움으로써 거기에 붙은 입술과 코, 눈 등의 부분 신체 단위들이 드러나는데, 여기에 중복되게 동일한 이미지들을 스티커와 같이 부착한다. 그들로부터 잘려나간 또는 잃어버린, 또는 양도한 그 신체 기호들은 보고 말하고 숨 쉬는 모든 작용이 마스크를 쓴 그들에게는 원활하지 않음을 스스로 적시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가 나오면서 그들 앞에는 무대 위에서 내려온 분홍색 비너스상 하나씩이 놓이는데, 이를 껴안고 보듬고 어르면서 이들은 뭔가 단성생식적 몸부림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무언가 생산적인 역량을 지니기보다는 일시적인 도취, 임시적인 희구 정도로 보이는데, 그것을 깨닫기라도 한 듯 또는 그것의 부정성을 부정하듯 한 명씩 그것을 깨뜨려 버린다. 그럴 때마다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음악이 멈추었다 다시 재생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음악은 당의정같이 세계에 아름다움을 잠시 선사하다가 곧 꺼지는 환상으로 적시된다.
이후, 바닥에 주저앉은 이들이 더 이상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사라지고 나서 스무 명쯤 되는 일반인들이 이 공간을 점유하면서 〈해부대〉는 클라이맥스를 현실의 외양을 한 진공 상태로 연장한다. 이들은 이 공간을 관람하는 구경꾼이 되었다가 놀이를 하거나 춤을 추면서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우산이 주체의 얼굴을 주로 가리는 대상이라면, 그리고 관객의 평범함 자체를 현전시키는 2부의 등장인물들이 주로 여성 출연자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우산”과 “여신”의 만남―실제 만남이라기보다 하나의 공간을 각자의 시간에 점유하는 것에 가깝다.―은 아름다움의 처소를 점유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차원에서 제목의 의미를 해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성적 자각이 없는 단세포적 생명체들의 의미 없는, 의도 없는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지, 또는 관찰의 행위가 매개되지 않은, 가시화되지 않는, 흡사 유사한 세포들의 움직임으로 구성되는 모든 신체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으로 말할 때 곧 생명의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는 것인지 등등의 여러 방향의 추정 속에서 전자의 차원이 아름다움인지의 여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분홍색이라는 일정한 색상의 상정, 그리고 후차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되는 이전의 시공간으로 인해, 전자의 시간 역시 재의미화되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우연한 아름다움은 비켜난 시간의 질서를 통해 확정되는 것이라는 점을 〈해부대〉는 보여준다. 이는 뜻밖에도, 뜻밖의 현재가 과거에 침투하며, ‘역사’라는 매개가 성립된다는 진리를 보여준다.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작품 개요]
축제명 : MODAFE 2024 제43회 국제현대무용제 (The 43rd International Modern Dance Festival / MODAFE 2024)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소극장
일시 : 2024년 5월 8일(수) ~ 5월 26일(일)공연명: 이동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
공연 일시: 2024.05.12
공연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러닝타임: 20분
안무: 이동하
출연: 서보권, 심재호, 박영대, 윤혁중, 김대희, 이동하
의상: 배경술
작곡: 김형민
영상: 이정
드라마투르그‧대본작가: 윤석진
무대 디자인: 조일경
p.s. (이동하 안무가의 공연이 열린, 축제 모다페의 개막공연은 개별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분리해서 보기 힘든 일종의 이벤트성 자리를 공연의 성격으로 진작시켜 보고자 한 전유적 시도였다는 점에서, 예측을 비켜 갔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공연으로서가 아닌, 사건의 차원에서 일종의 단상으로서 기록해 둔다. 참고로, 이동하 안무가의 공연은 “공공기관과의 공동제작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Center Stage of MODAFE’”에 속한 세 작업 중 하나였다. )
2024 모다페 개막공연은 다소 예외적이고 특수한 사례가 될 것이다, 원래 개막 공연을 맡은 팀의 사정으로 인해, 2024년부터 예술감독을 맡게 된 이해준을 비롯해 김혜정, 김형남 3대 예술감독이 토크쇼를 벌이는 것으로 그 무대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는 렉처 퍼포먼스와 같은 하나의 독립적인 공연이라기보다는 개막식의 분위기를 연장하면서 이후 무대의 입구를 만드는 임시 작업의 면모를 띠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일종의 쇼의 형식에 방점이 찍힌 건 지난번 예술감독을 수행한 김형남의 요란한 리액션에 힘입어서 그랬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다페를 분석적으로 비평하지도 않았고―애초에 모터레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제3의 패널이 섭외되지 않았다―, 깊숙하게 회고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각각 메르스와 코로나라는 대표적 재앙을 축제의 대항 인자로 짚기는 했지만, 그 외에 <게코>를 프리미어 공연으로 성사시킨 것의 성과를 이야기한 것을 제하면, 기억에 남는 공연의 예를 든 것도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축제의 방향성이나 개성이 비교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공연 하나가 급하게 취소되었다고 할 때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이냐의 차원에서, 모다페의 사례는 몇 가지 시사점을 주는데, 먼저 축제 상연되는 공연을 하이라이트로 보여주는 것, 토크쇼로서는 곧 말로는 불가능했던, 그동안 상연했던 공연들을 호출해 옴으로써 과거를 현재들로 재활성화하려는 시도는 무용 인류학의 색다른 지형을 만들기보다는 말 그대로 지난날의 감동을 재현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차원의 믿음에 적잖이 기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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