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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하, 〈롤링 앤 롤링 Lolling and Rolling〉: 한국 사회의 어떤 역사REVIEW/Theater 2023. 11. 15. 16:36
〈롤링 앤 롤링〉은 한국 사회에 자리한 영어 교육 강박이라는 무의식을 포착한다. 이는 직접적인 사회 비판이나 풍자로 부상하기보다는 사적 이야기의 맥락 아래 가라앉는다. 후자를 성립시키는 건 자못 비장하고 우울한 구자하의 퍼포머로서의 태도이다. 유럽에 갔을 때 첫 번째 자신의 영어 선생과의 격의 없는 친구와도 같은 관계는 구자하의 경험이다. 이러한 부분은 사실상 미시적이고 잉여적인 부분으로 보이며, 나아가 극의 주제로 보기는 어렵다고 보이지만, 실은 그것이 주는 안온함은 영어 강박을 앓는 한국인의 의식을 대체한다. 곧 한국 사회라는 상징계를 벗어남으로 인해 얻는 어떤 인지의 영역은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것과의 차별화된 기호를 산출한다. 중요한 건 인지의 영역이 아닌, 비-한국 사회에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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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하, 〈한국 연극의 역사 The History of Korean Western Theatre〉: 슬픈 한국(연극)인의 초상REVIEW/Theater 2023. 11. 15. 16:21
〈한국 연극의 역사〉는 제목 “한국 연극의 역사”를 재현하기보다는 지시한다. 서구 연극을 차용하고 모방하며 형성된 표층과 근저의 욕망으로 점철된 ‘한국 연극의 역사’로부터 그 바깥의 전통의 형식을 소환한다. 곧 구자하는 우선 “한국 연극의 역사”와 ‘한국 연극의 쓰이지 않은 역사’ 또는 ‘진짜 한국 연극(이어야 할 것)’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세운다. 그리고 그 둘을 모두 지나친다, 각각 배제하고 아득한 것으로 두며. ‘진짜’라 함은 가치 판단의 범주가 아닌, 연극의 말미에서 제시되듯 ‘역사가 다르게 쓰였더라면’, ‘역사가 다르게 시작되었더라면’의 전제에서 출현하는 자연스러움의 범주이다. 곧 자연스럽지 않음의 현재가 아닌, 그 이전의 역사가 계승되어왔었을 시의 자연스러움이 ‘진짜’에 속한다. 물론 역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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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비그루 Franck Vigroux, 〈플레시 Flesh〉: 분투하는 어떤 몸들 또는 매체들REVIEW/Theater 2023. 11. 15. 16:03
〈플레시〉는 극장에서의 시지각적 환경을 창출하기 위한 조건을 구성한다. 이를 통해 이미지로 덮이고 사운드에 휘감기는 경험이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에서 예술의 언어일 수 있음을 주장한다. 프로젝션을 통한 이미지는 촘촘하게 극장 전면을 가득 채우고, 마침내 그것이 걷히고 무대가 드러났을 때 이 공간이 큐브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관객은 사운드라는 존재가 무대의 빈 곳에 달라붙기보다는 포화된 상태로 공간을 만든다고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과잉된 집적의 경제를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면, 관객은 양적인 증폭의 흐름에 어떤 종류의 이음매를 모두 지우는 것만으로 얻어지는 결과를 단지 수용하면 되는 것일까. 그러니까 입체 서라운드 시스템의 극장용 버전으로서 존재하는 작업의 특징이 가장 우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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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성, 〈강; the river〉: 춤은 무대로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REVIEW/Dance 2023. 11. 7. 03:27
전환성의 〈강; the river〉은 무대와 몸, 사운드, 그리고 보는 이의 관계 양상에서 진행된다. 여섯 시간 남짓의 시간에서 점차 어두워짐을 받아들이고, 퍼포머 둘의 소진됨을 겪고, 사운드는 각각의 단위를 완료하고 사라지고 또 나타나고, 관객의 등장과 퇴장이 일어난다. 이런 단순하고 명확한 개념으로서 안무가 성립한다. 다시 말해, 중간에 깔린 하얀색 무대와 이를 원형으로 둘러싼 가의 관객석 확보, 자연 채광, 음악의 중단과 시작의 중첩된 단계, 퍼포머까지 포함한 자연스러운 등장과 퇴장의 규칙은, 춤이 벌어지고 있음의 현장을 인식하게 한다. 곧 〈강; the river〉은 문화비축기지 TANK1을 장소 특정적인 방식으로 활용한다. 결국 퍼포머는 이 아득하고 투박한 구조 속에서 쉼을 선택한다. 무대를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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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현 작·연출, 〈스고파라갈〉: 동시대인의 공백을 노래하기REVIEW/Theater 2023. 11. 7. 02:50
〈스고파라갈〉은 창작을 한다는 것, 창작자로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문한다. 하나의 사회 구조 아래 한 몸으로 묶인 듯한 배우들은 경쟁의 일선에 서는데, 이는 진화론을 즉물적으로 대입한 결과이다. “스고파라갈”이라는 제목은 과학자 다윈이 진화에 관한 힌트를 얻은, 에콰도르의 제도 ‘갈라파고스’를 뒤집은 이름으로, 이는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가져온 거북이의 신체가 뒤집히는 이미지를 상기시키면서도 현재를 역사로 객관화할 수 없는, 또는 그러한 현재‘들’의 하나를 선택하는 데 실패한 또는 포기한 동시대 창작자의 현기증 또는 무력감을 자조적으로 드러내는 듯 보인다. 거기에는 역사는 참조점이 되지 못하고, 새로운 시대는 이미 도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 관해 연극으로써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