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향 작/이인수 연출, 〈간과 강〉: 언어의 꿈과 해제

동이향 작/이인수 연출, 〈간과 강〉[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사진 좌측부터) L 역 송인성 배우, 소년 역 최정우 배우.

〈간과 강〉은 증상과 징후로 가득하다. 재앙과 종말의 기후와 분위기가 몸에 치밀어오르고 파고드는 주인공 L의 증상은 ‘간과 강’이라는 각각 몸의 장기 일부라는 개체의 내장 감각과 흐르고 흘러가는 것으로서 인류에 내속되는 역사적 힘에 대한 이미지, 그 두 단어의 유사성의 결합이 지닌 어떤 양상에 상응한다. L은 일종의 알레고리로서 질병에 걸려 있으며, 그것은 〈간과 강〉이 쌓아갈 언어의 세계가 언어를 정초하고 언어의 사이를 매만지고 헤집는 과정으로서 존재함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 이 언어는 대중문화적 재현을 경유한, 도시의 풍광 이미지에 의해 절대적으로 지지되는데, 언어의 토대를 불확실한 것, 아니 부조리한 차원으로 이끌고 가는 차원에서, 현실의 빈틈을 메워 현실의 토대를 무의식적인 진공의 토대로 연장하지 않는다면, 극을 지탱할 수 있는 의식적 역량이 실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대와 일종의 동적 이미지의 정지 화면으로의 변용으로서 배경막이 단순히 서사를 보충하기보다는 새로운 토대로서 잠식함을 의미한다. 아니 어쩌면 그 의존을 통해 언어의 공백과 결여를 버틸 수 있음을 의미한다―이것이 핍진하든 가상에 대한 어설픈 재현이든 간에 그 형상이 지탱하는 막은 현실의 연장으로 언어를 수용한다. 

여기에 객석과 멀어질수록 급격히 상승하는 무대는 불균형적인 균형, 현기증 나는 현실에 대한 감각을 선사하며, 사실상 이후 등장하는 싱크홀의 감각을 예기하는데, 이는 이미지의 핍진성을 보완하고 지탱하며, 그 좁다란 폭의 위험을 그 이미지와 결부시켜 역설로 승화한다. 실제 집 근처, 집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영역에 싱크홀이 생겨났다는 건, 그리고 그것이 어떤 위험과 균열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모순은 나아가 어떤 위험으로도 연결되지 않는 일종의 맥거핀으로서 싱크홀, 곧 싱크홀이 커다란 암흑과 같은 구멍으로서 언어적 알레고리이며, 소외와 고립의 세계와 착종된 언어의 징후임을 보여준다―이는 L의 통증이 그러한 알 수 없는 심연을 가리킨다는 것에 상응하며, 그 두 개의 사건은 비슷한 시점에 발생한다, 또는 발견된다. 
투사된 영상 이미지, 다리 밑이라는 배경이나 싱크홀과 같은 이미지가 대중문화가 낳은 뚜렷한 배경 이미지와 결부된다면, 실제 기울어진 무대가 주는 신체의 변이되는 감각과 시각적 기울어짐은 불안정한 언어가 집산되지 않는 언어의 차원이기도 함을 어느 정도 상쇄한다. 재현(무대화)의 몫은 한편으로 또 다른 익숙함의 재현의 영역을 불러오며(전자), 다른 한편으로 무대라는 매체와 연결되며 새로운 감각을 구성함을 보여준다(후자). 

L은 집에서보다 집 바깥에 존재하는데, 그는 좌측의 실내 이미지가 아닌, 주로 우측 편에 한강 이미지를 등지고 자리한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좌측으로 올수록 객석과 가까워지는 가운데, L의 등장은 우측에서 사선으로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성거리는 몸짓과 하늘거리는 검은 원피스와 샌들, 이따금 맥주를 따서 마시는 L은 한강 자체의 환유물이다. 그가 마시는 건 맥주인 동시에 공기이며, 커다란 다리와 한강은 오로지 그의 몸을 경유해 무대에 안착된다. 맥주 캔을 따는 소리는 무대를, 연극을 지배하는 중심적인 기표가 되는데, 이는 찰랑거리는 그 안의 내용물보다는 비어 있는 전체 공간을 포획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누비는 세계

(사진 좌측부터) L 역 송인성 배우, O 역 강현우 배우.

〈간과 강〉은 언어를 실재의 차원으로 전제하는데, 이는 곧 언어 바깥에 다른 무엇은 없다, 또는 언어 바깥에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은 오로지 언어를 통해서만 구성 가능하다라는 사고 체계를 드러낸다. 언어는 무의식의 잔여이며, 상상의 감염된 흔적이며, 나아가 문화의 하부 구조와 집단 무의식적 광경의 파편이다. 코로나19의 고립과 밀폐의 신체 체현의 서사, 기후 변화가 앞당긴 지구 재앙의 소문적 서사, 도시의 하부 토대를 드러내는 다리 밑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도시 괴담의 서사는 〈간과 강〉을 구성하는 하부 구조이며, 언어의 토대이다. 앞서 L의 신체적 증상, 발작적 증상이 신체적이기보다 언어적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자. 

L의 신체는 언어를 지탱하는 기관이다. 이는 위태롭거나 불안정한 서 있음 그 자체의 실재적 몸짓으로 보증된다. 증상은 언어적인 차원으로 발화되지만, 발작은 예측할 수 없다. 그 신체가 아래로 고꾸라질 때, 언어는 파괴되고 해체된 또 다른 언어가 등장한다. 그것이 오로지 신체로 환원되는 실재의 (비)언어라면―마찬가지로 맥주 캔 따는 소리는 비언어의 작동이며 나아가 사물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비의식의 세계, 의식 너머의 세계의 언어는 타자(로서)의 언어이다. 이는 인어의 실제 등장, 카프카적 우화를 체현하는 두 낚시꾼(구도균, 신강수 배우), 순순하게 칼에 찔려 죽는 소년 등으로 나타난다. 

L에게 동반되는, 이유 없는 어깨 통증은, 그 여유와는 상반되지만 그만큼 가볍게 안착한다. 그 고통은 내 몸이 구성되는 세계에 대한 통증의 전이라는 일종의 비유이다. 이유 없이 주어지는 것, 몸이 아니라 마음의 구멍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암시하는 것은 일상의 부조리함을 발화하며, 이는 과거의 기억과 존재에 대한 방어 기제로 자리하는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사실상 그가 아픈 것은 그가 고통이라는 언어적 분자를 발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고통은 언어가 가리키는, 그 언어의 고유한 내포적 의미를 향하는, 언어 자체로의 닫힘이기도 하다, 마치 동이향 작가의 작업의 본질은 그것의 현실적인 연장이 아니라, 언어적 세계관의 충실한 지속 자체를 향해 있는 것처럼. 

희곡은 동이향 작가가 지닌 언어 중심적 세계관이 만드는 독특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간과 강’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인간, 동물의 간과 인간, 동물을 둘러싼 환경으로서 강의 언어적 유사성은 두 전혀 다른 단어의 역학 관계를 사유하게 만들면서 그 둘을 증폭시키며 새로운 세계를 건져 올린다. 실제 물고기의 회를 뜨거나 칼에 찔려 피를 흘리는 인간이라는 각각 동물과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환유적 연접 관계는 그 둘의 종을 하나의 생태계를 공유하는 대등한 관계로 전제함을 드러낸다. 
물고기의 죽음으로부터 인간의 죽음 역시 자연스러운 것으로 끌어내는 부분은, 죽임이라는 살해 행위의 (비)정당성을 그 언어 체계의 작동 기제 안에 고립한다. 이러한 과정이 결과적으로 제유로서 간이라는 개념을 성취하는 것이면, 한강의 배경은 주인공 L의 정서를 직조하고 좌우하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스스로가 한강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는 문명적인 부분과 그에 들러붙는 자연적인 것이 겹쳐진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게 본다면, 자연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인간 세계의 확장―또는 자연의 인간의 침범―이 〈간과 강〉의 하나의 중심축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부로 향하는 고통의 감각과 외부로부터 오는 기이한 정서는 이렇게 양극단에 자리하면서 순차적으로 나열되면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극은 부조리함을 알 수 있다. L의 소명되지 않는 고통이 그렇고, (그럼에도) 그의 알 수 없는 여유가 그렇고, 그를 둘러싼 모든 인물이 그렇다. 그의 내면이 고통과 그 고통을 뺀 나머지라면, 그 주변의 인물들은 대부분 어떤 행위자 자체이며, 그들의 내면 역시 소명되지 않는다. 그렇게 드러나지 않고 기괴한 인물로서 그 행위 양상만이 강조된다. 따라서 관계의 측면이 아닌,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현실의 부조리함 아래 깔린 배면의 정서만이 남는다. 

〈간과 강〉은 그 언어의 묘연한 탐구와 여정 자체를 향하며, 언어가 만들어내는 세계 너머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호기심을 동반하며 극을 추동한다. 그리하여 언어가 반증하는 비루함의 세계를 끝으로 사라진다―‘그 언어가 실재이다!’. 인어에 대한 단서는 중간중간 흩뿌려지며, 실제 등장하는 인어―V―는 그 언어의 환상을 쫓아내며 현실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전복시킨다―인어의 환상은 환상으로서 언어를 뛰어넘지 못한다. 더군다나 L의 첫사랑으로 지시되는 그 인어는 매우 아름답고 멋진 존재로 기대감을 증폭시키지만, 그는 분절된 언어와 어색한 언어로 언어적인 분기와 변환의 과정을 통해 특이한 존재로 굴절된다.

(사진 좌측부터) 의사 역 김시영, L 역 송인성 배우.

인어와 L 사이에는 ‘첫사랑’이라는 사라지는 매개자가 자리하며, 그 소년은 이전 L과 종말론자 카페에서 함께 활동했었고, 소년은 첫사랑으로 L은 생식왕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었다. L의 칼에 찔려 죽는 소년의 정체는 모호하고 그에 따르는 L의 윤리 역시 모호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L의 첫사랑은 인어가 되어 나타났고, 곧 언어의 경계를 뛰어넘어 존재하게 되었다면―더 이상 ‘첫사랑’의 그 모습이 아니게 되었다면, ‘과거’에 잔존하는 첫사랑은 즉자적으로는 소년이 되어 이미 나타난 것이 된다. 
의미심장하게도 소년은 L이 그에게 스스로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첫사랑은 ‘첫사랑’에게 달라붙었고, ‘첫사랑’이 나타남으로써 첫사랑의 부재는 증폭된다. 여기서 L의 살인은 내재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곧 그것은 자신의 과거의 청산이며, 자기 자신의 기억, 신체를 소거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차라리 자신의 해소할 수 없는 고통을 향한 것이 된다. 
그가 자신의 어깨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어깨를 찌르고 나서 소년을 찌르는 것처럼, 살과 살은 연속되어 있고, 구분되지 않거나 해체되는 무엇이 된다. 소년은 L이 준 약에 의해 마취되어 갈 즈음에 그 연장선상에서 고통받지 않고 영원히 잠드는 형식으로서 죽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첫사랑’의 반대편에서, L의 옛 이름, 그의 은밀한 자아명은 왜 생식왕이었던가. 무언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생명을 낳는 존재의 의미는 V의 실제 등장으로서 성취된다. 

그 전에 반대로 ‘첫사랑’은 왜 그 같은 이름을 지었던 것일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무언가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반면, 누군가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그 이야기를 유도하기 위해서, 그러한 매개 절차를 작동시키기 위해서 이 이름은 반대로 유효하다. 곧 이 이름은 자신의 진실이 아니라 상대방의 진실을 유도한다. 그리고 그 상대방의 진실에 위치한 첫사랑, 곧 순전한 이상적인 자아의 모습은 이야기를 듣는 ‘첫사랑’에게 전이된다. 그 자리에 스스로를 올려놓으면서 ‘첫사랑’은 L의 과거를 향해 스스로를 투자한다. 그것이 첫사랑이 아님을 알기에, 그리고 그 첫사랑이 실제 등장해야 하기 때문에, L의 살인은 이른바 그를 첫사랑이 아님을 기각하였던 것은 아닐까. 

L의 기억은, L의 과거는 타자성으로 분화된다. 그는 무언가를 잃어버렸고, 그것은 결여로서의 통증으로 찾아온다. 자연의 무한한 힘을 동경했던 과거가 우중충한 현실의 자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된다. 반면, 싱크홀과도 같은 도시의 심연은 또한 과거의 본질적인 자리 그 자체가 결여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철저한 부재이다. 유일하게 고통을 겪는 L은 그 부재에 항거하는 유일한 존재로서의 자기 증명을 그 고통을 통해 보여주고 있지만, 과거와의 단절로 인해 그는 ‘첫사랑’도 잃었고 그의 지향과 가치도 잃었다. 반면, ‘첫사랑’의 등장은 그것을 매개하며, 그것이 무의식에 잔존했던 것을 증명한다. 

L 역 송인성 배우.

〈간과 강〉에서 L이 반복해서 따는 맥주캔은 음미되는 그 안의 맥주보다 그것을 딸 때 공간에 울려퍼지며 공간을 채우는 소리(유난히도 크고 청명하게 들린다.)―‘공간을 나타내는 소리’로 존재한다. 그 맥주캔이 실은 보이지 않지만, 가득 차 있었던 것처럼, 이 충만함은 공허와 우울의 도시 이미지에 작은 충격을 가한다. 싱크홀이 그곳이 비어 있었음을 가리키는 실재라면, 맥주캔은 L을 통한 유일한 반격이다. 마침내 L은 첫사랑을 만난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기억―그것은 ‘첫사랑’의 몫이다.―이 아니라 그가 잃어버린, 그의 무의식의 다른 이미지가 실재로 침입하는 것일 뿐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4.09.27 ~ 2024.10.19. 평일 19시 30분｜토·일·공휴일 15시 (화 공연없음) ※ 접근성 회차: 10.12.(토)-10.14.(월) / 음성해설, 한국수어통역, 한글자막해설, 무대 모형 터치투어, 이동지원
공연 장소: 명동예술극장 
소요시간: 100분(인터미션 없음) 
관람 연령: 16세 이상 관람가(2008년 12월 31일 출생자까지)
자막: 영문자막 매주 목요일, 일요일 / 한글자막 매주 월요일, 금요일, 접근성 회차 3회(10.12.(토)-10.14.(월))

만드는 사람들

작: 동이향
연출: 이인수

무대: 송지인
조명: 김형연
영상: 이수경
의상: 이윤진
소품·분장: 장경숙
음악·음향: 이승호
움직임: 이윤정
조연출: 송은혜
컴퍼니 매니저: 오성경

출연
L 역: 송인성
O 역: 강현우
소년 역: 최정우
노인 역: 지춘성
의사 역: 김시영
카운터 직원 역: 유재연
낚시꾼1 역: 구도균
낚시꾼2 역: 신강수
V 역: 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