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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산아트센터(정진새 작/연출),〈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 타자를 향한 언어의 동력
    REVIEW/Theater 2023. 8. 7. 02:09

    두산아트센터(정진새 작/연출),〈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천재 물리학자 메이(황은후 배우).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이하 〈너의 왼손〉)은 과학자-인간과 식물, 동물, 인공물 등의 비인간을 다루면서 그 각각으로부터 파생되는 복잡하거나 현란한 언어, 그 말의 주권에 종속되는 캐릭터의 향연이라는 외양(‘캐릭터<캐릭터의 언어’) 아래  SF적 미래의 시점, 비인간과의 공생에서 연장된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침과 모델, 특정 밈들의 아카이브 등을 구성하는데, 여러 층위의 서사는 ‘다양한’ 입장들의 충돌과 갈등의 차원으로 수렴하기보다는 곧 첨예한 재현-정치로 일단락되기보다는 서사를 구성하는 언어의 전유 또는 서사의 모방이나 재현을 지향하며 이를 통해 서사 자체의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재현 가능성은 인지 불가능한 언어에 대한 접근에서 온다―‘연극은 무대로 확장되기보다 희곡에 쓰인 언어로 수렴한다’. 
     
    그리하여 다양한 층위에 속한 말들에 대한 복기와 과학 언어의 견고함과 유사 과학 언어의 상상력이 합성된 언어에 간한 독해 불가능성은 실은 말이 지닌 가능성의 차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의 인지 가능함 자체가 주는 확장의 쾌감 자체에 기대고 있다고 보인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비판적이고 성찰적으로 현재에 임해야 한다라거나 비인간에 대해 겸손하고 더 나은 앎을 가져가야 한다라는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그래서 당연하게도 도달해야 하는 것 같은) 메시지는, 서사에 대한 서사의 차원에서 온전히 이 작품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너의 왼손〉은 서사를 보여주기보다 서사가 가능할지를 시험한다. 그런 지점에서 메타-서사에 대한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천재 물리학자 메이(황은후 배우), 식물학자 에이프릴(최희진 배우).

    〈너의 왼손〉은 비인간에 관한 새로운 감(수)성의 요청이라는 동시대적 의제를 제시한다. 〈너의 왼손〉은 인간 이전에 식물이라는 세계의 출발점, 그리고 인간 이후에 인간 이전의 역사의 ‘자연’스러운 복원이라는 이념 사이에서, 인간이라는 위험하고 무지한 종의 말살이라는 위태로운 가설을 좇는다. 40일간의 화재는 식물학자 에이프릴(최희진 배우)의 구상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여기서 식물들의 연대, 그 연대를 추동하는 존재가 에이프릴이라면, 그 연대 아래 합의와 수용의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식물의 사유가 본능적인 유전자 보존의 구상을 위해, 곧 보이지 않는 지연된 미래를 향해, 현재 자신의 생명을  일종의 도박으로 건다라는 것, 곧 그러한 일련의 인지의 마디들을 구성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인간의 사고와 식물의 사고가 소통이 되는 것, 동시에 식물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 외에, 식물의 사회에서 미래를 그리고, 그에 맞춰 결연하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가. 인간은 인류세에 그렇게 화답할 수 없고―시뮬레이션을 실재로 믿고 행동할  수 있는가, 대신에 그러한 숭고함이 식물에게서 가능하다는 것이 인간의 비루함으로 다시 수렴하는 가운데, 이러한 설정이 유의미해진다.   
     
    〈너의 왼손〉의 주요한 내용은 암울한 지구의 미래를 예비하는 차원에서, 여덟 대의 크루즈 호가 종자 보관소를 향하고, 거기에 안착될  존재들을 뽑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이 크루즈 판도호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 게임의 참여자는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며, 식물의 씨앗, 캐릭터 인형과 같이 다양하다. 과학보육원인 서울 리틀노벨스의 원장 조킹 박사(김승언 배우)와 천재 물리학자 메이(황은후 배우), 마닐라 클락 공군기지의 악토버(김준우 배우), 그리고 일본 아사히야마 홀로그램 동물원의 비버, 사할린 시드볼트의 에이프릴, 일본 후쿠시마 붉은 숲의 작은 나무, 타이완 디즈니스카이 테마파크 캐릭터 인형인 미치 마우스 디즈니(김정화 배우)까지.  주로 식물과 인간의 대결로 압축되는 서바이벌 게임의 승자는 식물이다. 신경이 전달되는 인간보다 긴 3초의 사고는 인간의 판단을 앞지른다는 것. 
     

    (사진 왼쪽부터) 서울 리틀노벨스의 원장 조킹 박사(김승언 배우).

    공고한 인간 중심의 사고를 지닌 조킹은 인간에 대한 홀대, ‘의지’가 없는 비인간이 탑승하는 것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는데, 사실 이러한 그의 특징이 지난 시대의 관념으로 박제되는 게 관건이다. 그는 특정 차원에서 똑똑하고 권력을 지녔었으며 남자인 데다 나이도 많다. 이것들이 결합해서 소위 다른 이의 의견에 대한 존중 없이 자기의 의견을 절대적인 것으로 내세우는 ‘꼰대’의 전형을 구성하는데, 공교롭게도 자기 스스로를 절대적 고유함과 가치로 승인하는 악토버에게 조킹은 아버지와 같은 남성 존재이다. 이러한 견고한 자의식은 식물이 유대를 통해 개체들의 삶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반면, 후반 에이프릴이나 메이의 히스테리적 폭발은 식물의 자발적 화재와 연동되며 기성 권위의 침몰을 향해 수용된다. 
     

    〈너의 왼손〉은 아버지 서사의 격파를 향한다. 이는 물론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폭력적이고 고압적인 아버지와 최고에 대한 강박을 갖는 아들―의 서사를 전제하며, 이를 독해하고 해소하는 단계로도 드러나지만, 천재 미친 과학자의 전형인 에이프릴이 여자라는 것과 같이 서사의 전형적 이미지에 대한 전복으로도 연결된다. 여기서 서사는 밈의 인용과 뒤집기라는  전유의 기술에 의거한다. 이러한 악인의 역할 자체도 남성들이 줄곧 해오지 않았는가. 
     

    (사진 왼쪽부터) 릴리(유다예 배우), AI 로봇 벨보이(권은혜 배우), 미치 마우스 디즈니(김정화 배우).

    유엔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의 인공지능 의사결정자인 사회자(전선우 배우)나 반은 인간이자 반은 로봇인 에이프릴의 입양 딸, 릴리(유다예 배우), 그리고 다른 비-비인간 역할의 배우들과 대등한 정도의 존재감을 갖는 AI 로봇인 벨보이(권은혜 배우)는 모두 비인간이면서 생명의 차원에서 다른 양상을 갖는데―식물과 인간은 공통된 지점이 있다.―,  이들은 아직까지 인간과 대등한 존재라기보다는 부자연스러운 인간의 형식에 근접해 가는 존재로 보인다. 이는 인간의 (서사가 지닌) 관성적 사고에 의한 판단일 수 있지만, 〈너의 왼손〉은 알 수 없는 존재 또는 알려진 것들의 비결정적 존재보다는 (과학의 언어를 경유하면) 알 수 있는 존재 또는 알 수 있지만 알지 못했던 존재의 차원에 초점을 맞춘다. 곧 앎의 나무를 구성하는 것, 지식의 계열체로 뻗어나가는 것, 지식을 나무의 이미지로서 재구성하는 것을 향한다.
     
    벨보이가 보여주듯 AI나 로봇은 인간과 닮아 있으면서 게임에 참여하는 대신, 인간과 동식물의 세계를 매개하는 역할에 머문다. 반면 식물 존재는 인간으로 실체화되지 않으며 무대에 ‘식물’로서 자리한다. 식물이야말로 타자이다. 일종의 매개 장치를 통해 그 소리를 들으려다 실패하는 것처럼 식물의 언어는 미지의 세계이다―AI 로봇의 언어는 그것이 인간의 신체 기관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앎에도 인간의 언어로서 형태를 가진다. 이러한 영역으로부터 식물과 인간 간의 가위바위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인간 너머의 사고를 유추해 냄으로써 〈너의 왼손〉은 식물의 특별함에 대한 인지를 끌어낸다. 
     
    〈너의 왼손〉은 미래, 비인간, 인간(의 언어) 바깥을 다루기 위해 과학의 언어를 수용하는데, 이는 파악할 수 없는 세계를 온전히 파지할 수 있는 어떤 투명함을 가정해보는 것이며, 동시에 일상의 시점이 나아가 서사 자체가 협소하고 관성적인 인간 중심적 사고로 가득 차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너의 왼손〉은 서사 자체를 다루고 있으며,  서사를 끌어오고 연결하고 비약하며 서사를 다루는 방식 자체를 드러낸다. 따라서 지식의 노드를 있는 독해 방식과 함께 패치워크식 서사의 전개 속에 서사의 동력을 보아내게끔 한다. 
    〈너의 왼손〉이 주체의 지위를 절대화하지 않는 것과 비교해 카입의 음악, 백종관의 영상은 사전 공동 리서치 이후에 대사와 대등한 층위에서 무대 위에 전개되는 듯 보인다.  
     
    4면으로 둘러싼 무대와 이를 객석으로 연장한 극장에서 관객은 안의 무대가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또는 예기치 않게 그 속의 배우들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반면, 음악은 바깥에서 안을 향한다. 스크린은 바깥의 경계선상에 자리한다. 음악이 사실 밈의 문화사를 환기하기 위한 정보값으로 주로 존재한다면, 영상 이미지는 독자적인 이미지 기호보다는 순전히 텍스트의 컨텍스트를 환기하기 위한 배경 차원으로 보인다. 
     

    〈너의 왼손〉의 테제는 곧 윤리이기도 하므로―가령 식물이 배우의 언어를 대체해야 하므로―, 사실상 존재들의 평등함과 존중의 차원을  협업의 차원으로 연장했다고도 보인다―그리고 이는 “과정”의 기표로 초점화된다. 그러니까 음악과 이미지가 텍스트와 결이 다른 언어로 그 자체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긋난 상황일까, 마치 식물이 인간의 자리에 올라간 것처럼,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 이전의 무대를 상상하는 게 너무 어색하게 느껴지던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너의 왼손〉이 갖는 연극에 대한 타자성은 음악이나 영상이 아닌 오브제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그것과 같이 음악, 이미지, 텍스트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차원으로 전개되었다면,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무대에 자리를 잡았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너의 왼손〉은 극 텍스트가 지닌 복잡성의 연결망처럼 여러 매체 요소가 결합하고 또 각자의 위상으로서 자리한다. 마치 정진새가 언어의 미끄러짐 혹은 탈주를 통해 언어 자체의 힘을 믿는 것처럼, 궁극적으로 언어에 대한 천착 및 회귀는 결국 그 외의 다른 요소들이 과잉이거나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아이러니하게도 낭독극으로의 구현이 그 언어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길 아닐까 하는 생각 역시 든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3년 6월 27일(화) ~ 7월 15일(토) 화수목금 8시/토일 3시 *월 쉼 (총 17회)
    공연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접근성 제공사항
    7월 7일(금), 8일(토), 9일(일) 3회차: 수어통역, 한글자막해설, 음성해설
    전 회차: 음성소개, 무대 모형 터치투어(오디오 가이드 포함), 휠체어석, 안내보행, 문자소통

    기획 제작: 두산아트센터
    작/연출: 정진새
    희곡개발 리서치: 백종관, 카입(Kayip)
    드라마투르그: 양근애
    출연: 김승언, 최희진, 황은후, 전선우(목소리), 김준우, 권은혜, 김정화, 유다예
    조연출: 문수진
    무대/소품디자인: 김혜림
    조명디자인: 김형연
    사운드: 카입(Kayip)
    음향감독: 김여운
    영상디자인: 백종관
    영상기술감독: 윤민철
    의상디자인: 김지연
    분장디자인: 장경숙
    움직임: 배유리
    무대감독: 김영주
    접근성매니저/자막디자인: 이청
    수어연출: 김홍남(공인수어통번역 잘함) 
    수어통역: 김정란 문지연 이수현 정지현 조유나
    사진기록(프로필/설정): 전명은 
    사진기록(연습/공연): 서울사진관 
    영상기록(공연): 헤즈스튜디오

    관람연령: 14세 이상
    러닝타임: 120분 (인터미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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