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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극장(임도완 연출),〈우리 읍내〉: 고전은 유효하게 현재에 기입되는가
    REVIEW/Theater 2023. 8. 7. 00:43

    국립극장,〈우리 읍내〉 프레스콜 컷[사진 제공=국립극장](이하 상동).

    〈우리 읍내〉는 원작, 손턴 와일더의 희곡  「아워 타운(Our Town)」의 1900년대 미국 뉴햄프셔주를 배경을 1980년대의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로 설정하는데, 이는 가장 비슷한 인구수를 가진 지역이라고 한다. ‘자동-결정’에 따른 이러한 설정은 표면적으로는 원작에 대한 엄밀한 고증의 명목을 띰에도 실은 원작이 가진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국내 현실에 대한 합목적적 유인 역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이브하다. 게다가 1980년대의 현실은 오늘날의 현실과는 꽤나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는 시대에 대한 재현의 과제뿐만 아니라, 재현이 향하는 이념의 새로움이 요구된다. 
     
    〈우리 읍내〉는  활발하게 국내 무대에 올라왔었지만, 어느 순간 이후에는 소강상태로도 보인다는 점에서, 이번 작업이 동시대성의 차원에 입각해 새로운 지점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꽤 중요해 보인다. 우선 〈우리 읍내〉는 배리어 프리를 전면에 내세운 작업이다. 기존의 배리어 프리가 번역을 통한 매개의 의미라면, 〈우리 읍내〉는 수어 통역사 5명, 음성 해설사 1명이 함께 무대에 올라 배리어 프리의 조건―한글 자막, 음성해설 외에도 무료로 점자 프로그램북이 제공되고, 무대 터치투어 시간도 따로 주어진다.―을 충족하면서 동시에 농인 배우 2명이 무대에 출연함으로써 배리어 프리의 조건이 내용의 실질적 중핵으로 자리하게 된다. 주인공 황현영(박지영 배우)의 가족은 농 가정으로 설정된다―아빠 황혁찬(성원 배우), 엄마 유혜종(이정은 배우), 동생 황현창(임채현)과 그의 남자 친구인 김민규(안창현 배우)는 모두 수어를 사용하며, 배우들은 역할 수행을 위해 수어를 따로 배웠다.  
     

    1막은 〈우리 읍내〉의 마을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주인공인 김민규와 황현영은 풋풋하게 사랑을 키워나가고, 2막에서는 그 둘의 결혼식을 보여준다. 3막은 급작스럽게 망자들이 있는 공동묘지로 옮겨간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현영에게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때 현영은 어렸을 적을 택하는데, 이로써 다시 1막의 풍광이 재현된다. 이때 가정주부로서 열심히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단란한 가정의 모습으로 연장되는데―‘하지만 또 다른 재현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는 절대적으로 그리워하는 그의 삶의 기억을 체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띤 긍정적인 의미를 비판할 수 없게 만든다. 

     

    동시에 이전 시대에 관한 노스탤지어 역시 강화된다. 그러니까 1막이 두 사람의  사랑이 발화되고 결정되는 순간에서 고양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현실화되는 2막의 짧은 순간이 마치 스치듯 사라짐으로써 1막과 접점을 이루는 3막에서 그것은 기억 상실의 단락이 된다. 그럼에도 사랑의 주체가 된 어떤 흥분되고도 위대한 순간으로 그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한편, 이러한 다소 클리셰적인 역할의 재현은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이미지로 변환된다.   무대는 제4의 벽으로 바뀌고, 마치 현영은 관객의 시선을 체현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무대감독(구본혁 배우)이 현실과 무대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과 유사성을 갖는다. 관찰자로서 무대감독의 위상은  극을 이미지로 구성한다. 현재의 시간을 관객과 같이 공유한다는 인상 아래, 이미지가 우리의 현재와 분리된 것임을 그것이 극의 의도에 따른 어떤 전거가 될 것임을 드러낸다. 
    반면, 현영은 우리와 마주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시점에 부합한다. 과거는 하나의 이미지로서, 그가 경계선상에 자리한 것처럼 전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관객의 자리가 인지된다. 그는 이미지를 매개하는 대신 이미지에 사로잡히며, 이는 관객으로 전이된다. 객관적으로 과거를 본다는 것, 그에 따라 현재는 단 한 순간 온전히 그 안에 있을 수 있다는 어떤 깨달음―그는 과거의 한 순간으로 들어가지만 그것으로부터 곧 빠져나와야 할 것임을 알고 있다.―은  현재의 삶을 소중한 것으로 복권하는 듯 보인다. 
     

    3막은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준다. 절대적인 부재의 시간이 영속한다. 현재의 생동감은 사라지고 덧없이 지나간 시간으로 자리한다. 여기서 기억이 어떤 정동으로 연장되어서는 안 된다. 현영은 금기를 깨뜨린 셈이며, 이는 과거의 순간을 마주하며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하는 감정으로 연장된다. 망자들의 조언은 일종의 진리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실재는 그 과거를 지나간 순간으로 놓아주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위해 해프닝 같은 2막이 삽입되었을 수도 있다. 곧 같은 순간이 ‘과거’로 반복되는 체험. 사실상 그것은 다른 현재의 시간일 뿐이지만, 과거가 실재할 수 없다는 진리를 아는 관객에게, 무엇보다 이전의 짧은 단락에 의해 이미 기억 창고에 저장되어 있던 이미지는 과거의 장면으로 전이된다. 
     

    영원한 하나의 현재성만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위해 현영은 1막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보편적 진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반면, 그것은 고답적인 인상을 주는데, 그 같은 보편적 진리는 개별적인 차원으로만 수렴되기 때문이다. 곧 1980년대의 재현―새마을운동의 노래, 상추가 자라는 텃밭 등―이 하나의 이미지 이상의 독해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그것이 단지 ‘누군가의 과거’이기 때문에 가치 평가가 될 수 없다고 전제한다.―은 그것이 현재와의 연관성의 차원에서 질문을 던지지 않으며, 이미지가 전하는 신비함과 무대 자체가 갖는 힘의 차원 역시 기술적인 차원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미지 극을 만들어 온 임도완 연출은 〈우리 읍내〉가 텍스트 위주의 드라마 극을 다루는 것과 다른 접근의 방식이 그의 주제로 연결된다는 사실에 주목했을 것이다. 이미지 극이 유효하려면, 이전 버전으로서의 실험주의의 형태를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이미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맞는 표현 양태를 찾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에서의 새로움 역시 과거가 된다는 사실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읍내〉는 농인 배우 주연으로부터 극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럼에도 이는 현재의 어떤 기류이며, 동시에 ‘국립’이 지닌, 어쩌면 추동하는 하나의 기조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어 표현은 똑같은 하나의 언어의 위상이라는 점에서, 배리어 프리는 내재적으로 극으로 연장되지만, 이 극 자체가 장애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명확하다. 다만 그것은 도시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후자를 배제하는 구조화를 진행해 온 근대의 시스템에 대해 시골이 갖는 고유한 독자성을 증폭하고 있는데, 이는 재현의 구조에 자리하기보다는 무의식의 배면에 위치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우리 읍내
    공연 일시: 2023년 6월 22일(목) ~ 6월 25일(일) 목·금 오후 7시 30분, 토·일 오후 3시 
    공연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주요 제작진〉
    각색·연출·음악: 임도완
    무대 디자인: 정승호
    조명 디자인: 신호
    의상 디자인: 이주희
    소품 디자인: 김소연

    〈출연진〉
    무대감독: 구본혁, 김만석(의사): 권재원, 장정실(의사부인): 김미령, 정효근/무대감독 수어통역: 김우경, 정효석(효근 동생): 김우중, 황현영(혁찬 딸): 박지영, 황혁찬(새마을 회장): 성원, 김민규(의사 아들): 안창현, 김정미(의사 딸): 양주현, 이옥순(천안댁): 윤진희, 배씨(우유 배달): 이상일, 무덤지기/순경: 이승우, 유혜종(혁찬 아내): 이정은, 황현창(혁찬 아들): 임채현, 장정실(의사 부인): 정은영, 황병춘(성가대 지휘자): 한지훈

    관람연령: 8세 이상 관람
    소요시간: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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