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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2122.21222〉: 미장센, 매질, 진동하는 신체 양식들REVIEW/Dance 2024. 10. 18. 10:29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2122.21222 ⓒ김하몽(이하 상동).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의 〈2122.21222〉는 제목이 아닌 그룹명을 말 그대로 돌려주는데, 일종의 영화적으로 펼쳐지는 장면이자 그 장면이 갖는 일상의 기괴함과 거리감, 그리고 그 내용을 구성하는 몸의 극렬한 떨림과 진동은, 각각 요철이 있는 무대라기보다 매끄러운 풍경으로서 신(scene), 현실 층위의 전복적 코드, 해부학적 몸의 단면들을 상정한다.
이 풍경, 곧 장면은 장막이 걷히면 시작된다. 무대, 곧 장막이 열리기 전, 헐벗은 두 다리의 배배 꼬는 장면, 미시적 틈새가 거대한 무대 전반의 이미지로 확장되기 직전의 순간은, 그 무대를 향한 하나의 끌개로서 유예되며 잠재된 것으로 지속된다. 이는 ‘장면’의 예외적 순간이다. 장면으로 끌고 오려는, 하지만 그 장면과의 거리감으로 인한 균열과 실패의 지점까지를 희극적으로 집어삼키려는 사운드, 곧 성행위에서 나오는 신음이 그 신체가 아닌 이질적인 다른 신체의 출처에서 비롯된 소음의 양상으로 덧붙는 가운데, 그 신체는 여전히 우리 일상의 몸과 같은 신체의 나열로서 하나의 실재적인 틈으로 장막(장면) 바깥에 있다.
장막이 걷히고 누운 여자와 서 있는 남자의 춤, 후자에 대칭되는 남자는 중앙 가의 테이블에서 몸을 유사한 형태로 몸을 흔들고 있다. 테이블 주변의 여자들은 가만히 앉아 있음을 유지하며, 이는 누워 있는 여자와 대칭된다. 이를 통해 시선의 확장과 접합, 복제가 이뤄진다. 막이 걷히고 발사된 이미지의 탄환은 되돌아오며 연속된다. 무대를 삼각형이라는 범주로 물리적이고 구조적으로 썰어 놓은 채, ‘복제’라는 형상은 이제 형태적인 것보다는 심리적인 것의 범주를 형성한다. 곧 유사한 움직임의 계열은 표현의 외부보다는 표현의 내부를 향하는데, 심미적 스타일의 동기화된 적용은 각 개인의 심리적 기제가 발현된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몸짓들, 두 사람이 짝지어서 골반의 큰 축을 기준으로 몸을 상하로 수축, 이완시키는 행위의 집합은 무대 곳곳에 이어진다. 이는 무대라기보다 ‘현실’ 자체를 상정하면서 일상적이지 않은 현실, 그 현실 이면의 적나라한 모습을 상기시킨다. 무도회의 복장, 구두, 테이블, 웨이트리스의 샴페인 잔들을 올린 쟁반의 이동, 이 현실을 하나의 장면으로 동결시키는 건, 거기에 집중된 에너지의 무게로 절여 내는 건 더디고 힘준 분절된 각 신체 동작들의 연결, 종합이다. 하나의 밀도를 시간으로 분쇄해 내는 또는 하나의 시간으로 밀도를 연장해 내는 일정한 동작들의 흐름이 하나의 장면을 만든다.
이 하나의 기조, 사운드-공간 안의 신체 움직임의 힘과 역학적 관계로 식별되는 무대는 그 소리가 베어짐에 의해 끝이 난다/날 수 있다. 어둠 속을 향해 기어가는 남자와 섹스를 벌이는 남녀의 대조 장면 이후, 여자의 옷과 구두를 챙겨주는 어둠에서 돌아온 남자, 그리고 무도회의 집단 섹스에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우발적으로 저지른 부정을 목격하고 질시하는 남자의 폭발은 심리 드라마의 서사가 녹아나는 부분이다. 일종의 영화적 장면 아래 개인 내면의 전개 양상이 극을 휘감는다. 이러한 부분은 짧고 급작스러운 전개이며, 이후 연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렬하고도 다분히 휘발적이다.
무도회 이후에 횃불들 같은 무대 가에 정렬된 개별 조명들과 함께 나타난 사람들의 모습은 사회적인 치장을 뒤로 한, 더욱 원시적인 세계, 신비한 미지의 공통 영역으로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차이보다는 공동의 질서가 강조되고, 통일감 있는 양식이 요청된다. 그들이 거대한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장면, 앞서 어둠을 향하던 남자의 원시적 행위가 징후적인 것이었음이 드러나는 이 마지막 장면은 무대의 닫힘이라는 수미쌍관의 양식을 선택하는 대신에, 극단적 정점의 결여를 통한 해체, 폭발에 대한 멈춤의 이미지로 상기된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은 하나의 압력 아래 자리하므로, 아마도 그러한 뺄셈의 양식, 하나의 힘에 대한 수축을 통해서만이 그 끝이 가능했었을 것이다.
무도회 이후의 명확한 서사의 분기 아래, 폭발적 힘의 양식은 분산된 파편들의 개별성에서 집단적 생체의 에너지로 전환된다. 코드화된 사회와 몸짓, 그리고 사회 너머의 또 다른 사회라는 역시 탈코드적인 코드 모두 영화적 이미지에 가깝고,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을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의 풍경에 동화된 신체로서 압도됨을 향한다.
다시 첫 장면, 또는 예비적 장면으로서 예외의 성격을 띤 장면에서, 장막 너머로 삐져나온 신체가 실재의 이미지로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를 언급하면서 이후 온전한 하나의 신체로 나타나며 무대 전체의 신체로 드러남으로써 그 세계의 다른 양상으로 인도했던 장면은, 이 무대의 시간을 절대화하기 위한 장치였고, 속임수였으며, 결국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자, 관객(의 일상적인 신체) 자체에 대한 언급이 아니었음이 명확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대는 장막 너머의 것을 보여주는 것임을 주창한다. 그것은 예외적이지만, 메타적으로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의 철학을 노출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09.03(화) 8:00pm
공연 장소: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
소요시간: 50분
관람연령: 15세 이상
〈크레디트〉
안무: 배진호
출연: 최호종, 윤혁중, 현준범, 서이진, 유재성, 민경원, 이지수, 안유진, 배진호
음악편곡: eov
영상: 권재헌
사진: 최랄라
매니저: 방주련, 서이진
리허설 디렉터: 서예진728x90반응형'REVIEW > D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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