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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다이빙라인’, 〈단델re:ON〉: 시간들의 가상 현전을 향한 시도들REVIEW/Dance 2023. 12. 12. 02:00
극단 다이빙라인의 연극 〈단델re:ON〉은 투어 형식으로써 극장의 전사를 상영하면서 극장에 여러 시간의 지층을 가설한다. 극장이 이제 닫는다는, 마지막 극장의 하루에 초대된 것이라는 시작의 급작스러운 또는 급진적인 가정은 극장이 없는 미래라는 디스토피아적 가정과 지금 여기 존재하고 사라지고 마는 공연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지시 사이에서 모호하게 놓인다. 그러니까 그러한 가정은 동시대의 어떤 개념 혹은 정동이 반영된 것이거나 오히려 시대착오적으로 공연의 현존을 좇는 공연자의 이상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결국, 이곳은 천장산우화극장이라는 상징적 처소이므로, 그리하여 연극이 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무한한 영도이므로, 허구적 세계를 상정함은 그 가상이 향하는 곳을 가리키게 된다. 〈단델re:ON〉은 ‘가정’, 곧 이야기의 한 형식을 통해서만 현재를 변형하기 때문에, 제4의 벽을 허물고 관객을 마주하는 방식을 통해 의사-이머시브 씨어터로서 몰입도를 높이는 것에는 여전히 현실에 대한 잔여 감각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더 정확하게는 거기에는 나와 너 사이의 내부 감각과 다른, 바깥의, 극장이라는 경계와 울타리가 포함되기 때문이다―예외는 관객이 전시장과 같은 관람 환경에 놓이는 중반부에 해당한다.
관객을 구성하는 건 완전한 몰입과 그에 대한 의지라기보다 결국 과거의 미스터리적 서사와 미래의 극장이라는 꿈의 서사 사이에서 극장이 무엇인지를 재정의하는 데 있다. ‘옛이슬’은 극장 대신에 희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1902년 황실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극장인 ‘희대’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무세라’는 극장에 있었던 여러 특수한 경험들을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극장의 가려지지 않은 서사로 ‘정의’하고자 한다.이슬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인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는 과거의, 순수하고도 다분히 의뭉스러운 캐릭터로 자리함으로써 우리가 과거에 귀속되어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한다면, 세라는 극장과 관계가 없는 관객들을 극장의 참여자로, 곧 이 극장의 전사를 가진 이로 치환함으로써 우리가 치렀을 수도 있는 평행우주의 현실을 하나의 익숙한 서사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전자가 역사로 처리되지 않은 지나간 시간 자체의 현현이라면, 후자는 어딘가의 떠도는 스테레오타입으로서의 극장의 시간을 생성하는 데 가깝다. 사실 여기에는 극장을 초월적 존재로서 신비화하여 하나의 생명적 존재라고 가정한다는 전제가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이야기는 극장 괴담의 흥미에 맞춰지기보다는 오히려 극장의 미래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듯 보인다. 가령, 전선과 샤워 호스를 꼬아 만든 꽃이 자라나는 화분은 인공과 자연이 합선된 기이한 미래상의 물리적 구현물로 보인다.
반면, 이는 생태 극장에 대한 정교한 가설을 세우기보다는 극장의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표면을 드러내는 데 가까워 보인다. 지금의 민들레가 흐드러지던 풍경의 단초가 되었던 이슬의 서사는 거의 유일하게 현재의 시간과 맞닿는 부분이다. 둘은 퇴비장을 치루고 그 위에 꽃치자나무를 심으며 미래의 시간에서 죽음이라는 경계를 상정하며 만난다. 이슬은 현재의 다른 자아로 분하며, 세라 역시 그러한데, 세라는 꽃 가게를 가설하고, 이슬은 씨앗을 구걸하는 손님이 된다.처음, 극장 조명과 연결된 극장이 가진 미지의 힘, 그리고 어둠 속 배우들의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바닥에 붙인 야광 테이프에 휴대폰 조명으로 광합성을 시키는 부분은, 애초에 극장을 무언가를 키워낼 수 있는 공간으로 상정하는 동시에, 극장의 경계를 물리적으로 체현시킨다. 여기서 무대의 바닥은 익숙한 자리로서 그 위의 모든 것의 지지대의 기능이 아닌, 그 밑의 땅, 또는 땅으로서의 표면을 가리킨다. 이는 다분히 추상적이고 상상력으로 확장된 세계의 경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령 극장 주변에 만발한 민들레는 이 안의 식물을 심는 것과 직접 연계되지 않음에도 그 환유는 공간을 꿰뚫으며 이 극장의 경계를 바깥으로 확장한다.
〈단델re:ON〉은 ‘역사’에 대한 어떤 관점을 만들지 않는다. 이는 과거에 뿌린 씨앗으로 인해 이룬 현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슬의 사투리는 그가 화석화된 역사를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뭔가 어색한 데가 있다. 극장의 익숙하고도 오랜 전사로서 괴담은 공포나 두려움과는 다른 느낌을 안기는데, 이는 이슬이라는 캐릭터가 그 세계에 대한 거리이기 때문이다. 이슬이 제4의 벽을 없애는 대신에 시간의 인지부조화적인 레이어를 가설한다면, 세라는 극장을 나감으로써 생기는 프레임으로 극장의 경계를 장면으로 바꾼다. 곧 〈단델re:ON〉에서 극장은 오래된 것이 아련한 것으로 부상하거나 연극의 법칙이 지금 생성되는 곳이다.〈단델re:ON〉은 극장 곳곳을 투어한다. 극장을 마지막 순간으로 기억하도록 종용한다. 기억의 서사는 기억으로서의 서사라는 특징을 인용한 것이다. 곧 메타-기억의 서사로서 〈단델re:ON〉은 존재하려 한다. 동시에 새로운 서사는 극장을 생명을 낳는 장소로 상정하는 것이다. 미스터리한 존재인 이슬과 동시대 인물인 세라, 그 사이에서 관객은 여러 지층으로 이뤄진 극장의 현재를 시뮬레이션한다. 결과적으로 〈단델re:ON〉은 무언가 발생하지만 분명해지는 시간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극은 상상되는 바(가설, 假說)를 임시로 설치하는(가설, 假設) 곳임을 드러낸다―일종의 동어 반복적 증명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단델re:ON
공연 일시: 2023년 11월 18일(토) ~ 11월 26일(일) 평일 오후 8시 / 주말 오후 4시 (11/20 월요일 공연 없음)
공연 장소: 천장산 우화극장(서울시 성북구 화랑로 18가길 13)
소요 시간: 러닝타임 60분
출연: 박이슬, 조세라
작/연출: 이수림
구성작가: 김은한
무대감독: 이효진
공간 디자이너: 장성진
조명 디자이너: 윤혜린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
영상 디자이너: 김예찬
움직임: 허윤경
접근성 매니저: 이청
CD: 박은지
PD: 김민수
주최: 이수림
주관: 다이빙라인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문의: orotoro7@gmail.com728x90반응형'REVIEW > D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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