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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벨 ,〈제롬 벨(Jérôme Bel)〉: 제롬 벨, 그리고 제롬 벨이 누락한 것들에 대한 질문REVIEW/Dance 2023. 12. 12. 00:29
제롬 벨의 〈제롬 벨〉은 렉처 퍼포먼스로, 환경오염에 악영향을 끼치는 비행기를 거부하는 생태적 실천에 의해 한국에서는 대리자인 이영준 기계비평가를 내세워 이를 수행한다. 사실 이영준은 그 직함은 물론 존재 자체가 무색한 상황을 맞는데, 일종의 배우로서 그것을 최대한 몰입해서 읽는 것 외에 다른 해석적 관점을 투영해 주석을 달거나 자신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다소 현학적인 문구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제롬 벨의 습관적 언어 사용을 제롬 벨, 곧 이영준으로서 수용함을 인지하고 있음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깨어버리는 순간, 곧 실수 혹은 실패의 순간이 첫 번째 공연――에서 발생하고야 말았다는 건, 이 위임 방식의 공연이 그럼에도 존재 자체의 현존을 의도치 않게 가져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생태를 위한 윤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발화해야만 하는 진정성의 윤리를 쉬이 초과할 수 있는 것일까.
제롬 벨의 수행적 발화, ‘이영준은 제롬 벨을 대신해서 읽는다’를 수행하는 이영준의 읽는 행위 자체는 제롬 벨의 위임을 상기시키고 성립시킨다. 분명 읽는 것만으로 제롬 벨이 이영준에게서 체현된다. 글은 편지 형식으로, 목소리는 이미 비가시적으로 작동되었었다. 편지가 시간을 건너띌 수밖에 없듯, 거리를 가정하고 쓰일 수밖에 없듯 편지의 저자가 편지를 읽더라도 그 거리가 상쇄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상 이영준은 대독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편지의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과 존재 간의 간극은 서로를 상쇄하지도 반격하지도 않는다. 편지를 쓰면서 읽는 것과 편지를 읽으면서 쓰는 걸 상기하는 것 사이에서 저자는 적잖이 겸연쩍거나 민망할 수 있다. 따라서 실패의 순간은 대리자의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시에 〈제롬 벨〉이 대리자의 특성을 고려, 관찰, 면담 등을 통해 섬세한 지시나 세공이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다. 매개는 아마 축제의 몫이었을 것이다. 공교롭게 이영준은 옵/신 페스티벌의 전신인 페스티벌 봄에서 〈조용한 글쓰기〉(2010)로 참여하여, 자신의 라이브 글쓰기를 스크린으로 투사하는 퍼포먼스를 한 적 있다. 아마 비슷한 연령대였음이 고려되었을까―이영준이 3살 많다. 이영준은 누군가를 대신하거나 구현하는 배우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이영준’이라는 상징성은 요철을 지닌다. 동시에 저자라는 지위와 이영준이라는 무의식적 주체성이 상호 진동하는 자리를 마주했다는 점에서, 이 공연의 대리자로 호출된 것은 아닐까.〈제롬 벨〉에 씌인 이영준이라는 가장 명백한 이미지를 적당히 잡아둘 수 있다면, 이후 〈제롬 벨〉은 제롬 벨의 연대기적 작업 아카이브를 통해 안무가로서의 정체성과 고민, 안무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는 작업임을 쉬이 간파할 수 있다. 안무가의 의도와 사회의 반응 사이의 간극은 안무의 이념과 이미지에 대한 실제의 이해의 거리로 나타난다. 따라서 제롬 벨의 작업들은 안무가 가야 할 길, 그리고 안무에 대한 질문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작업으로 구성되기에 이른다.
〈제롬 벨〉은 제롬 벨의 작업을 분석하고, 그 흐름을 고찰하는 데 유의미한 시간을 제공한다. 물론 그 자체가 흥미로울 수는 있어도 유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또는 온전하거나 합목적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롬 벨의 정전화에 대한 비판, 제롬 벨을 경유한 이념적 과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롬 벨이라는 기표는 제롬 벨의 작업들을 가로지른다. 반면 그 작업들은 제롬 벨을 초과하거나 이탈한다. 제롬 벨은 트라우마나 과거의 기억과 자신의 작업의 시작점을 연결하고는 한다. 이는 자전적 서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 나아가 정신분석적 간격을 만드는 일이다.
우선, 제롬 벨은 초기에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하고, 이를 작업으로 녹인다. 두 번째로 한 사람의 자전적 서사를 바탕으로 음성 언어를 도입한다. 세 번째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작업, 나아가 연관 없는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것으로 작업을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타인에서 자신으로 돌아온 〈제롬 벨〉(2021)이 첫 번째 안무의 종착지가 된다. 세 번째 단계에는 형식적, 방법론적 유사성은 있지만 변증법적 전회가 있다. 그에 따르면, 배우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든 하나의 정체성으로 특정화된다는 점에서 공통되며, 하나로 묶일 수 있다. 제롬 벨은 그 바깥의 존재들을 묶고자 한다.
첫 번째 안무 작업인 〈Name given by the author〉(1994)는 제롬 벨의 집에 놓인 일상의 사물들만으로 안무를 구성한 작업이라면, 〈Jérôme Bel〉(1995)의 경우, 나체로 무용수들을 무대에 세워 자본주의적 이미지 질서를 벗어나고자 한 작업으로, 〈Shirtology〉(1997)는 자신의 셔츠에 쓰인 글자―자본주의적 문구―들을 가지고 퍼포머가 수행하는 작업이다.
두 번째로, 2010년 페스티벌 봄에서 상영된 〈Véronique Doisneau 베로니끄 두아노〉(2004)는 주역이 아닌 쉬제로 〈백조의 호수〉에 군무로 참여하며 어둠 속 멈춘 채 있는 베로니끄 두아노를 비춘다. 이는 같은 해에 초청돼 상연된 〈Lutz Forster〉(2009)와 동일선상에 있는 작업으로, 실제하는 무용수의 서사와 몸짓에 집중한다.
세 번째로, 페스티벌 봄 2013년 초청작이기도 한 〈장애극장 Disabled Theater〉(2012)은 장애를 지닌 호라 극단의 10명의 배우를 무대에 세운다면, 〈Gala〉(2015)는 연관 없는 커뮤니티를 구성하는데, 한 명씩 돌아가며 춤을 추고 서로를 모방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 모두에 대해 2005년 국제현대무용제에 오른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2001)는 그 전신 격으로 보인다.사실 제롬 벨의 그간 방대한 작업에 비해 작업은 일부만 다뤄지고 있다. 거기에 적용된 유형학적 분류는 비슷한 내용들을 최대한 줄여서 지루함을 줄이고 적당한 러닝타임을 도출하고자 하는 공연으로서의 욕망이 분명 반영되었을 것이다. 〈제롬 벨〉은 그 대상을 타자에서 자신으로 돌아와 치루는 ‘마지막 공연’을 닫는 시점으로 향하지만, 그 이후에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생겨났다는 말로 황급하게 공연을 닫는다. 그 무거운 말에 대한 옅은 웃음의 휘발 작용을 가하는 것이지만, 약간의 밝은 미래로의 입구가 열리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는 타자의 작업들만으로 작업을 만드는 것이 초기에 저작권 문제로 난항을 겪었던 사실이 빠르게 처리되는 것과 같이 렉처 퍼포먼스는 현실 재현 차원에서의 언어의 한계, 발화의 한계를 드러낸다. 어떤 설명을 가할수록 명확해지거나 핵심을 취득하는 대신 구차해지거나 지지부진해진다. 동시에 작업의 어려움과 작업의 의미 사이에서 〈제롬 벨〉은 후자를 쉬이 선택함을 의미한다. 아마 가장 큰 인지의 변곡점이 발생한 순간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관객을 응시하는 행위가 관객을 보는 퍼포머를 다시 보는 관객―둘의 절대적 거리를 통해 이는 지지된다.―이라는 분절과 변증법적 종합이 발생하는 유일한 장소로서의 극장이라는 개념을 도출하는 것과 같이 제롬 벨은 극장이라는 관성적 공간을 재정의, 재구성, 그리고 여전히 수행성의 미학이 횡행하는 공간으로 만든다라는 것.
결과적으로, 〈제롬 벨〉은 제롬 벨이 직접 출현하지 않는 형식으로 열렸다. 여기에는 비유럽에 대한 차별적 대우는 없는가. 비행기를 타지 않고 사는 세계는 전근대의 시간대에 접근하게 하는가. 다시 놓인 간극에는 어떤 사유의 가로지름을 바라볼 수 있을까. 이영준이라는 대독자의 존재는 제롬 벨을 대신해 〈제롬 벨〉을 전유해 그리고 제롬 벨의 문제의식 바깥에서 또 다른 장소에 대한 질문을 품는다. 설사 재현되는 공연일지라도 모든 공연은 똑같지 않다, 게다가 관객의 수행성을 강조한 공연이라면, 그 차이는 궁구되고 배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제롬 벨은 관객의 차이에 대해, 거기서 문화 다양성이 기여하는 바에 대해, 재현이 제곱근의 양식으로 반복되어 감에 대해 대답해야 할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제롬 벨
공연 일시: 11.14.화 19:30, 11.15.수 19:30
공연 장소: 김희수아트센터 Space 1
소요시간: 120분
텍스트·영상: 제롬 벨
어시스턴트: 막심 쿠르베
연출: 이영준
번역: 이영준
번역 감수: 조화연
함께: 이영준, 프레데릭 쉬게트, 클레르 에니, 지젤 펠루주엘로, 이졸트 호슈, 올가 드 소토, 피터 반덴벰트, 소냐 오가르, 시몬 베르데, 에스더 스넬더, 니콜 보틀러, 에바 메이어 켈러, 제르마나 시베라, 브누아 이자르, 이온 문두아테, 쿠키 헤레즈, 후안 도밍게즈, 카린 샤레르, 에스터 반 하셀트, 디나 에드 딕, 아마이아 우라, 카를로스 페즈, 엔리케 네베스, 요하네스 순드럽, 베로니끄 두아노, 다미앙 브라이트, 마티아스 브뤼커, 레모 뷔게르트, 줄리아 오저만, 티지아나 팔리아로, 미란다 호슬, 피터 켈러, 지아니 블루머, 마티아스 그랑장, 사라 헤스, 로렌 메이어, 시몬 트엉, 아키라 리, 알도 리, 후다 다우디, 세드리크 앙드리외, 키아라 갈레라니, 타우스 아바스, 스테파니 고메즈, 마리 욜레트 쥐라, 니콜라 가르소, 바시아 샤바호슈, 마갈리 사비, 료 벨, 쉴라 아틸라, 디올라 지바, 미쉘 바르그, 라 부헤트, 카트린 갈랑
이미지: 에르만 소르젤루스, 마리 헬렌 르부아, 알도 리, 피에르 뒤포에, 올리비에 르베르, 끌로에 모세시안
예술자문 및 총괄: 레베카 라셀린
프로덕션 매니저: 산드로 그란도
영상 프로덕션: CND 국립무용센터, R.B. 제롬 벨, 파리오페라/ France2 채널, 메쪼TV , 프랑스국립영화센터가 연계한 텔몬디스, 시어터 오라, 알리앙스 프랑세즈
공연 프로덕션: R.B. 제롬 벨
공동 제작: 메나쥬리 드 베르(파리), 오베르빌리에 국립드라마 센터, 파리가을축제, R.B. 제롬 벨(파리)
도움: 카롤린 바르노, 다프네 비가 와낙, 졸렌트 드 키어스마커, 조에 드 수사, 플로리안 가이테, 키아라 갈레라니, 다이넬 레네, 자비에 르 루아, 마리 조세 말리, 프레데릭 쉬게트, 크리스토프 웨블렛
현지 프로덕션: 옵/신 페스티벌
제작 인턴 | 리허설 진행 보조: 강민정, 배윤주, 유여일, 이지은
“이 공연의 텍스트는 케이티 미첼, 제롬 벨 및 테아트르 비디 로잔이 고안한 지속 가능한 연극의 창작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했으며, 유럽연합이 자금을 지원하는 ‘녹색 환경 변화’를 위한 ‘지속 가능한 극장 연합’*의 공동제작으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스웨덴 왕립극장, 타이페이 국립극장, 겐트 시립극장, 밀라노 피콜로 시어터-유럽 극장, 리스본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 리투아니아 국립 드라마 시어터,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마리보르 슬로베니아 국립극장, 부다페스트 트라포, MC93 센생드니 문화의집
“R.B. 제롬 벨은 일드프랑스 지역과 프랑스문화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단체입니다.
제롬 벨은 브레스트의 르 쿼츠와 국립무용센터의 협력 아티스트입니다.
R.B. 제롬 벨 컴퍼니는 생태학적인 이유로 더 이상 항공 이동을 하지 않습니다.”728x90반응형'REVIEW > D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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