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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가>: ‘음악과 함께 하는 판소리’REVIEW/Theater 2013. 8. 18. 03:58
▲ <북극가> 포스터 [=MJ planet 제공]
북극곰이 겪는 재난의 상황이 펼쳐진다. 이는 지구적 재앙의 비가시적 간접적인 영향권 아래 있는 우리의 실제적 무지한 순수한 인식(이들이 그 원인을 모르듯)에 상응하며, 반면 그 이면에는 책임과 결과의 엇갈린 적용 아래 우리가 그 책임을 인식 못하고 사는 것처럼, 그리고 그 환경 파괴의 결과의 시차적인 적용을 인식하는 가운데 인류적 재앙을 미리 목격하는 셈이다.
반면 그 결과 곰돌이의 죽음 및 그의 어미도 떠나고,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가며 ‘끝없는 끝’, 곧 ‘극적인 죽음’ 의 적막한 대기가 이어지며 창자도 떠난다. 그리고 이전의 무대에서의 고수가 피아노를 치고 창자가 되어 노래하며 역할의 전이가 발생한다.
만화적 프레임 안에 담긴 사진들이 컷의 미학으로 나타나며 이야기를 구성해 내고 시각적 재미가 더해진다. 화면 넘기는 속도가 거세지며 음악과 동기화되고 하나의 장은 극도로 고양됨을 이루기도 한다. 각종 추임새를 구체화한 것들, 곧 음악과 동화된 채 “헛헛” 등의 부가적이고 잉여적인 것들이 관객의 몫으로 주어지며 무대의 공명 효과를 더한다.
건반 역시 드럼과 함께 아티큘레이션으로 이 ‘넘어감’의 빠른 속도에 조응된다. 곧 타악화된다. 이는 재즈와 유사하면서도 어떤 건반의 새로운 도약과 변환과도 같다고 보인다.
북극곰이 의인화되어 친숙한 존재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그리고 그 먼거리로의 ‘교신’이 끊어졌을 때, 2장의 입구가 잠시 길을 잃고 유예됐던 것처럼 창자의 일상 곧 아니 화면을 통해, 역할 이전의 또 다른 역할로 옮겨 갔을 때 그는 갑자기 꿈속에서 북극으로 떨어졌을 때 방에서 뒹굴거리는 백수로 변한다.
이 실제와 환상의 이접 내지 횡단으로 궁구함의 상상력의 날개를 펴개 한다. 혼자 남은 곰순이와 대화는 그 죄의 책임의 내면과 동시에 곰순이에게 에코맨이라는 구원의 존재로 상정되면서 결국 ‘인류적 이성’이라는 것, 보편적 존재에 합치되면서 우리는 환경의 일익을 담당해야 할 존재로 변모하게 된다.
‘에코맨’의 불림은 어떤 만화 속 캐릭터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노래의 반복이 점차 정겨워질 때쯤 극은 끝나게 된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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