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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이다은, 《보편타당한 숲》(2025): 장소의 교환 혹은 교차로서 확장된 숲
    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6. 1. 27. 21:10

     

    《보편타당한 숲》전시 전경, 2025, 전시 전경 2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21트랙); 스피커, 마이크로컨트롤러, DFPlayer Mini, 트랜지스터, 채집된 자연물, 종이에 인쇄, 원목, 합판, 50분, 79x79x115cm. [사진=이오아카이브서비스(eoarchiveservice)]

    심이다은의 《보편타당한 숲》은 서울 용동근린공원에서 시작해 인근 플랫폼 팜파에서 끝나는데, ‘보편타당한 숲’으로 가정한 공원을 한 시간 정도 거닌 후에, 마지막에 도착하는 장소인 플랫폼 팜파는, 개인 주택의 주차장으로, 그 내부에서 백두대간의 필드트립의 결과물 아카이빙을 확인하며 종료되는 장소이다. 지리산의 반달곰, 소백산의 붉은여우, 설악산의 산양을 각 산의 수호신으로 가정하고 이를 만나는 과정으로, 심이다은은 사적이고 내밀한 자신의 주거지 반경에 백두대간을 불러오고 대입해서 필드트립의 목적성을 희미하게나마 부여한다. 

    따라서 백두대간의 상상적 전유로서 물리적 장소인 용동근린공원과 작가의 사적 반경의 실제적 전유로서 백두대간은 교환되는데, 그것은 물리적으로 체현되면서 상상적으로 연접된다. 백두대간의 축소판으로서 이곳을 설정함은 필드트립을 요약하거나 재현하려는 의도보다는 그것에 접근하거나 접속하려는 시뮬레이션 차원의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함으로 보이는데, 따라서 일종의 ‘동네 뒷산과도 같은 장소를 산책함’의 여정은 필드트립에서 갖추어야 할 태도, 의식, 준비의 대부분의 영역을 생략하고 간소화하고 전이시킨다. 

    이를 산책으로 불러야 할지, 투어에 가깝다고 할지, 필드트립의 시뮬레이션으로 보아야 할지, 아님 공연으로 그중에서도 거리극으로 명명해야 할지, 임시 설치 전시의 일환으로 또는 퍼포먼스 전시로 보아야 할지는 의문인데, 이는 장르나 매체 차원에서의 근본적으로 나타나는 모호함 때문이 아니라, 선행된 작가의 필드트립 자체가 목적이자 결과이며, 그것을 보여주는 프로토타입 차원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작가의 표기에 따르면, 겹화살괄호를 사용했다라는 점에서 전시의 개념이 전제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전시와 퍼포먼스 모두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퍼포먼스가 전시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겠다

    《보편타당한 숲》, 2025, 퍼포먼스 전경 [사진=이오아카이브서비스(eoarchiveservice)](이하 상동).

    여기서 세 동물은 각각 그 산에만 있는 존재들로, 그것에 적합한 환경 조건의 특징을 찾아내고 복원함으로써 그 산으로 한정된 영역을 확장함을 꾀하고자 함은 본격적인 여정에 앞서 심이다온이 전하는 바다. 연구와 운동 차원의 성격을 지닌 이 리서치 양식은 ‘보편타당한’이란 또 다른 개념을 옮겨 오는 가운데, 실제 과정에서 이 같은 수렴-환원의 개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마도 보편적이고도 타당한 또는 보편적이어서 타당한 생명 존재의 질서를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이는 순수한 원형에 가까울까, 아님 실천적 윤리의 태도에 가까울까. 

    어쩌면, 백두대간을 용동근린공원으로 옮겨오는 것 자체가 그 보편타당함에 대한 주석인 듯 보이는데, 그렇다면 용동근린공원의 고유한 차원은 이로써 특정될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여기서 각 산의 수호신은 이 셋이 분기된 환경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기반이 되는 전제로부터 그 동물 자체에 대한 토착적 문화로 소급되는 대신에, 그 동물 자체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연장된 ‘온건한’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듯 보인다. 

    우리는 세 다른 영역을 만난다기보다는 세 영역을 잇는 과정을 통해 그 경계 없음을 체현하는 존재가 된다. 짧은 경로는 이 통합에 대한 환상을 추동하고 그 틈새를 환상적으로 봉합한다. 마치 셋은 구분되지 않고서 하나의 존재인 듯 혼동된다. 짚으로 엮어 만든 모자 탈을 쓴 이들은 그 스스로는 언어가 없이 언어를 두루마리 종이에 적힌 종이를 보여주는 것으로써 단지 매개만 할 뿐인데, 그들이 가진 상연성 역시 입구와 출구의 경계를 표하고 시간을 셈하는 기능적 차원에서 특별히 더해지는 부분이 없다. 

    우리가 감각하는 것들을 적는 작은 엽서가 필드트립의 기록일지가 되는 것이라면, 일차적이고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건 바로 이 같은 감각을 체현하는 것, 곧 현장의 것들을 채집해 오는 것이 된다. 따라서 마지막 관문은 아카이빙된 나무 곽 안의 흙과 그 위에 세로로 쓰인 얇은 종이 위의 문장을 확인하는 것이 되는데, 이는 다각형의 돌아가는 나무 구조물 안에 서랍 안에 넣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나무 상자는 현장에서 마주칠 수 있는 설치 오브제였는데, 코스 C에서 세 개의 상자를 관객이 들고 함께 팜파에 이르러 그것을 꼽아두게 된다. 보편타당한 숲은 하나의 구조적 원형이며, 다양한 숲들의 조각들은 마치 완전체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되는데, 그렇게 숲과 숲의 마주함은 섞임 없이, 숲이 아닌 도시 일부로 환원되는 듯 보인다. 

    따라서 궁금한 건 필드트립 그 자체의 과정과 시간인데, 《보편타당한 숲》은 이 지점에서 필드트립의 현장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두지도―가령 심이다은은 공연 전에 이 전체를 기획한 자의 입장을 노출하는데, 그건 앞으로 진행될 절차적 정의 차원의 소개에 힘이 쏠려 있다.―, 공연의 유기적인 타임라인과 뚜렷한 메시지를 만들고자 하는 것 역시 아니다―수호신들은 일종의 현장 스태프나 안전 요원의 캐릭터화된 버전에 가깝다(여기에 부여된 타자성은 친근함과 안전함의 차원으로 각색된다).

    곧 어떤 여백과 진공의 시간들, 그러니까 이곳을 산의 시간으로 점유하며 그리하여 필드트립의 어떤 순간들이 각자의 순간으로 체현되도록 했다고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가 점유하는 건 장소 특정적 장면일까, 아님 장소 너머의 누군가의 기억일까. 이는 물론 그 너머의 시간에 도달하는 전시로 되돌아오는데, 전시는 다시 각각의 장소와 특정하게 결부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건 이 필트트립의 경험으로서 산물―‘현장’에 연루된 자아―이며, 그 산물이 (재)경험을 보증하거나 재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편타당한 숲》은 다소 모호해진다. 

    또는 필드의 증거와 트립의 결과가 경험의 차원으로 증폭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편타당한 숲》은 그 경험 자체에 대한 재현을 벗어나 오히려 그것의 유예 혹은 단편적 선취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예술이 윤리(적 명제)와 자연(의 경험)에서 추출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장소의 확장, 혹은 더 크고 내밀하며 어렵고 두려운 어떤 경험의 차원을 함께하는 것일까. 곧 그것을 기획하는 것일까[각주:1]

    사적 기억으로서 용동근린공원에 대한 장소적 문맥은 《보편타당한 숲》에서 언급되지는 않는데, 이는 플랫폼 팜파라는 작가의 개인 집을 예술 공간으로 전유했던 지난 10년의 경험과 연관 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과정에서 1조의 세 명만 채집 상자를 들고 이곳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때 어쩌면 가장 주요한 의례로서 행위가 공연 절차의 너머에서 이뤄지게 된다. 따라서 아쉬운 건 이 옮김의 행위, 들고 걸으며 장소 자체로만 특정되는 부대의 시간을 겪는 수고로움의 행위가 사실상 어떤 서사의 차원에서 자리 매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곧 이 역시 전시장에 도달한다는 목적성 너머, 숲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동과 풍경, 장소의 의미를 체현했던바, 결국 《보편타당한 숲》이 숲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그것에 대한 감각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기억으로부터 온 것이었다면, 작가의 총체적 기억이 어떻게 관객에게 재접지될 수 있는지, 또 그것은 어떤 언어로 번역될 수 있는지의 차원에서 서사를 구성해 나가는 작업이 (사전적 토대로서 또는 제3의 참조점으로서)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김민관 편집장

    1.                                                                                                         이는 강원도 인제에서 금성여인숙을 거점으로 해서 이곳에 들른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꼬부랑게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각종 트래킹 코스를 이끌었던 강영민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이 프로젝트는 거대한 예산과 일반적인 예술 지원이 투입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예술계 내에서 기입되지 않은 대상으로 남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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