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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개인전 《스키드》 : ‘변경되는 감각의 지도’REVIEW/Visual arts 2022. 6. 7. 00:44
장서영 작가가 아마도 예술공간에서 선보인 지난 개인전 《눈부신 미래》(2021. 아마도 예술공간, 서울.)가 여러 공간에서 작업들이 분절되어 있었다면, 이번 전시 《스키드》는 상대적으로 작은 폭에 비해 기다랗게 일자로 펼쳐진 복도 공간을 따라 일점투시의 빈 시공간으로 수렴한다. 이는 전시의 ‘속도’와 ‘흐름’과 같은 키워드와 맞물리며, 관람객의 동선과 작품 간의 밀접한 연결에 있어 순환의 체계를 ‘매끄럽게’ 구성한다. 일점투시의 끝에는 얼굴 혹은 빨대가 있다. 〈드링크미드링크〉(2022. 단채널 영상, 흑백, 2분 51초.)가 그것이지만, 너무 그것과의 거리가 멀어 관객의 시선은 빈 공간의 떠 있는 파편적 작업들의 양상으로 가라앉는다.
장서영 작가의 개인전 《스키드》(2022. 신도문화공간, 서울.)는 가속되는 속도와 그와 유리되는 신체 감각을 여러 작업으로 연동하여 보여준다―작업 간에는 파편적인 재료의 하이퍼링크적 연결이 있다. 폭에 비해 상대적으로 꽤 길게 일자로 펼쳐진 복도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미지 〈무제〉(2022. 종이에 카본 카피, 19.5×27cm(25ea).)는, 달리는 자동차에 대한 포착을 1초에 24프레임과 같은 영화의 기술로 경유하는데, 이미지의 자동 기술이 아닌, 이러한 분절된 이미지들 간의 ‘연결’은 일종의 트래킹 쇼트를 대체하는 관람객의 이동에 따르는 것이다.
이미지 중앙에 달린 리트머스지 같은 표식은 병 상단에서 떨어지는 ‘수액’(이러한 기호 역시 다른 작업과의 연계성에 의해 구성된다.) 방울로 그 시간을 동시에 측정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곧 이는 레이싱카가 달릴 때의 흐릿한 캡처의 양상에 더해지는, 고정된 시점의 지표이자 비교적 안정적인 시간의 지표이다. 이러한 내용에 더해지는 또 하나의 레이어는 《스키드〉에서 주체의 시각이나 인식을 알리는 부가적인 그러나 중요한 레이어를 구성한다. 그것은 〈스키드〉(2022.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3분 52초.)에서는 내레이션 자막의 형태 역시 포함한다.〈햄버거〉(2019. 단채널 영상, 흑백, 3분 8초.)는 키오스크에 해당하는 스크린을 활용한 영상 작업인데, 긴 메뉴명의 햄버거를 주문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가 아닌 “-” 되어, 종국에는 위아래 패티를 덮는 햄버거 빵만 남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GPS의 지도가 일차 레이어라면, 그 위에 쓰이는 ‘유체’로서의 선분은 이를 따라가면서 정보 값을 담는 이차 레이어인 셈인데, 이 기다랗게 초점화되는, 속도를 갖는 선분은 〈드링크미드링크〉의 출연자가 문 빨대를 지나가는 액체의 흐름과 어렴풋하게 겹쳐진다.
《스키드》는 주체를 기준으로 내외부로의 각기 다른 방향으로의 속도를 전제하는데, 이는 안으로 함입하는 액체―신체 내부가 그 지지체가 되고, 경험의 매체가 된다.―와 주체의 바깥에서 펼쳐지는 또는 주체를 담고 있는 이동―신체가 자동차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에 따른 것이다.―으로, 그 둘은 대비되는 양상이지만 주체의 각기 다른 경험을 이룬다. 곧 《스키드》는 이 둘을 연결하여 외재화된 감각과 내화되는 감각‘의 간극’을 새겨넣고자 한다.〈드링크미드링크〉에서 빨대로 액체를 빨아들이는 얼굴―앨리스의 얼굴로, 이는 〈스키드〉의 참조체계 안에서 지시된다.―은 빨대 안의 가속화되는 액체의 흐름으로 초점이 변경되며 수직으로 하강하게 되고 뒤집힌 얼굴로 이어진다. 주체가 액체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차원에서 주체는 ‘미궁’에 빠지고, 이미지로 ‘역전’되어 소생한다. 여기서 유동하는 선분은 바닥에 놓인 구불구불한 선분의 파이프와 그 끝에 걸린 유린백으로 구성된 〈파이프〉(2022. 알루미늄, 적동, 황동, 철, 1×2×15m(가변설치).) 작업의 실물로 연장되며―〈햄버거〉-〈드링크미드링크〉-〈파이프〉로 이미지의 순환 계열이 만들어진다.―, 물리적인 흐름을 구성하는 〈파이프〉는 전시 공학적으로 〈무제〉에서 자동차의 속도를 분절화한 장면들의 나열에 상응한다.
〈스키드〉는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아서 생기는 노면의 타이어 흔적을 말하는 ‘스키드 마크’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아스팔트”와 “타이어”, “가솔린”의 “삼위일체”가 구성될 때 발생한다―〈무제〉가 사실 레이싱카의 바퀴가 이탈되는 장면을 합산한다는 점에서, 〈무제〉는 〈스키드〉의 드로잉적 ‘재현’으로 기능하게 된다. 자동차의 손잡이를 중심으로 비춤으로써 ‘유령’이 운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화면과 함께, 자율주행 이후, 운전자의 감각이 자동차와 직접 연동되는 것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번아웃”과 스키드 마크 발생의 상관관계, 곧 바깥의 가속도라는 알레고리는 안으로의 “흡입”의 속도를 내는 수액 맞기라는 알레고리에 상응한다. 이 둘은 안으로의 +와 바깥으로의 -는 대립된 기호 쌍을 구성한다. 인간에게 있어 포도당―“모유”―은 자동차에 있어 석유와 같다―“석유는 자본주의의 모유다.”. 일 대 일의 알레고리적 교환은 자본주의 구조와 인간 신체의 상동 관계를 설명하는 듯 보인다. 나아가 자동화 기술로부터 지연되고 유예되는 예외적인 신체 감각으로 수렴되는 듯 보인다.알레고리의 연접과 알레고리 간의 비례 감각은 마찬가지로 〈드링크미드링크〉의 앨리스에게 시공간의 압축술로서 기능하는 “드링크미” 라벨이 붙은 액체에서도 적용되는데, 이는 마치 〈스키드〉의 자율주행차와 〈파이프〉의 수액을 합성한 것의 이상적 모델로, 그 액체의 마법적 효과와 수액과의 간극은 인어공주의 영생과 신체를 놓지 못하는 인간과의 간극으로 치환된다고 할 수 있다. 목소리를 비롯해 몸 전체를 버린 인어공주가 비로소 영생을 얻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신체를 완전히 버릴 수 없기에 곤란함을 겪는다. 또는 그 두 감각의 차이 속에서 살아간다. 결과적으로, 신체의 외화로서 기능하는 자동차(와 같은 기술의 가속화)와 신체 자체의 어쩔 수 없는 노화 내지 소진과 같은 신체 현상의 더뎌짐―영생으로의 더딘 전개 또는 일시적 장애―은 새로운 인간에 대한 진단을 요청한다. 기술의 속도와 신체의 관성적인 특성 간의 간극을 물리적 사건 혹은 충돌로부터 인계하며 시작되는, 장서영의 매체철학적 기술(記述)은 새로운 인터페이스과 맞물리는 인간의 변경‘되는’ 감각을 재현한다.
키오스크에서 지도를 지배하는 유려한 선분의 흐름과 그에 따라 일정한 정육면체의 면적으로서 덜그럭거리는(?) 지도와의 대비―〈햄버거〉―는, 시뮬레이션상에서 비‘인간’의 신체와 이데아적 흐름의 정보량의 차이와 후자의 전자의 매끄러운 조종의 실패, 곧 전자의 일시적 지연으로도 보인다. 〈햄버거〉의 하나의 궤도 안에서 두 개의 레이어로 집적되고 있음으로써 대비되는 두 개의 감각―유려함 혹은 매끈함과 덜컹거림 혹은 지연됨―은, 자율주행 자동차―상정된 매끄러운 유령의 운전 기술―와 번아웃된 인간―운전석에서도 나아가 운전석 바깥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마치 증발된 신체―의 간격을 예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키드》는 인간의 새로운 경험-감각을 영상과 오브제 들로 기입하는 가운데, 파편적 알레고리들의 분배를 통해 그 작업 간의 연관 관계를 구성한다. 기다란 전시장은 수직으로 뻗는 이동의 방향성을 띠며 나아가고, 다시 출구 없음에 부딪혀 입구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전시장의 구조는 재밌게도 키오스크의 지도가 갖는 정보량의 물리적 한계가 곧 우리 삶의 신체적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결국, 정보의 흐름은 나의 신체로, 내가 있는 지도상의 원래 위치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전시 개요]
전시명: 장서영 개인전 《스키드》
전시 일시: 2022. 4. 16 - 6. 12. 매주 토/일 9:00-18:00 (월-금 휴관)
전시 장소: 신도문화공간, 서울
후원: 가헌신도재단728x90반응형'REVIEW > Visual a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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