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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눈부신 미래》: 눈에 대한 보고서REVIEW/Visual arts 2021. 11. 15. 13:04
제목 “눈부신 미래”는 즉자적으로 ‘눈’이 부신 ‘미래’로 분쇄된다. 〈백내장〉(2021. 싱글 채널 비디오, 6분 17초.)의 한 구절을 가리키는 이러한 알레고리는 미래로 수렴하지 않고 눈이라는 매체로 다시 회귀한다. 구와 돔은 눈의 수정체와 도상학적으로 닮았으며, 리서치 슬라이드에 의해 그 유사성의 형태들에 대한 몽타주가 이뤄지는 가운데, 그 옆 〈구, 돔, 파이프〉에서 언어적 결합을 이루는 것으로 연결된다.
한 면으로 펼쳐지는 병풍형 구조의 책인 〈구, 돔, 파이프〉에서의 “빛나는 구체가 비추는/미래 도시/를 이루는 구, 돔, 파이프”(p.1-3.)에서 “머리에 구를 뒤집어쓴 사람들”(p.10.)의 “안구/를 덮는 콘택트 렌즈.”(p.12-13.)로 이어지는 일련의 문장/과정/서사는 ‘구’라는 이미지 계열체에 눈과 건축 환경을 모두 포함시키며, 그 두 개념의 순환 구조를 만든다.
근본적인 건 건축이 구라는 사실이 아니라 눈이 구라는 사실이다(작품에서 대부분의 메타포는 눈의 알레고리를 띤다.). 이러한 유비를 문학적 유희―끊지 않고 이어가며 하나의 중심적 단어로 이 모두를 꿰는―로 보여주는 게 〈구, 돔, 파이프〉(2021. 종이에 인쇄, (100~2400)×198mm.)라면, 〈백내장〉은 눈이 부신 즉자적인 증상의 사례이면서 눈과 세계를 연결하는 하나의 이미지 세계를 논증한다. 곧 거대한 이미지를 매우 작은 이미지로 포함시키는 과정같이 〈백내장〉에서의 시각으로 수렴되는 세계와 시각에서 확장되는 세계는, 눈이라는 이미지를 보는 감각과 눈이라는 도상적 형태로 치환된 세계의 질서, 곧 이미지로 연장된다.이미지의 순환 질서에서 미래(시간) 역시 포함된다. 〈메리-고-라운드〉(2021. 싱글 채널 비디오, 11분 21초)의 세계관은 미래와 과거가 원환으로 엮여 있음을 전제한다. 미래는 또 다른 반복의 시작이거나 끝일 뿐이다. 상하 반전 시킨, 회전목마 주변을 뱅글뱅글 도는 영상 작업 〈메리-고-라운드〉는 우선 아마도 예술공간의 야외 건물에 놓이며 따라 오는 햇빛에 대응하는 뿌연 화면으로, 화면 안의 야외 환경과 실제 상영 장소의 환경을 동기화하는 일면이 있다. 사실 이 영상의 지지체는 캔버스, 나아가 그림인데, 상단에 “Do you see?”가 하단에 “What a blind seer sees?”가 쓰여 있다. 이 문장은 또한 〈구, 돔, 파이프〉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단의 문장은 자막의 위치를 비켜나는데, 두 문장은 영상의 영구 박제된 자막으로 발화하는 셈이다.
수정구슬 안에 또 다른 세계의 시작과 끝을 볼 수 있다면, 곧 온전한 과거의 원환이 구성된다면, 현재는 역시 또 다른 과거가 될 것이다. 〈구, 돔, 파이프〉와 〈백내장〉에서 눈과 세계의 반영 관계가 시차를 갖지 않는 이미지로 수렴한다면, 〈메리-고-라운드〉에서는 무한한 반복이라는 영겁의 시간관으로 확장된다. 물론 여기서 현재는 또 다른 수정구슬 안의 세계로, 이는 돔이라는 세계 안에 사는 인간, 눈에 모든 것이 담기는 이미지로서의 세계(를 지시하는 작업)이 연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메리-고-라운드〉는 그 서사를 따른다면, 미래에서 온 화면으로 전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미래를 재현하기보다 현재의 이미지를 표피적으로 굴절시킨 것으로, 현재를 과거로 볼 수 있는 미래적 시점을 전유하게 하는 것에 더 가깝다. 현재는 과거로 향하고, 미래는 현재가 될 것이다. 〈메리-고-라운드〉는 A와 B의 대화로 진행이 자막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시간이 계속 반복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게 있어?”와 같은 냉소주의로 비치는 물음을 경유한다.〈AIR〉(2021. 싱글 채널 비디오, 17분 28초.)는 배에 구가 하나 있다는 상상을 함으로써 죽음 직전의 순간을 추체험을 하게 하는 일종의 명상 유도 영상인데, 우리가 죽기 전에 남은 숨을 카운트다운하는 것을 통해 미래의 시점을 동기화한다. 〈백내장〉이나 〈AIR〉는 검은 화면과 흰 화면이 교대하는 양상을 가진다. 이는 빛에 대응하는 눈의 동공을 표현한 것이다. 중앙에 위치한 문장은 중앙의 점에서부터 사방으로 확장되는 동공에 의해 중간 부분부터 벗겨지면서 출현하고 그 반대로 동공이 수축하면서 흰색 화면이 출현한다. 결과적으로 흰색과 검은색 두 가지 레이어가 순환한다.
지하층에서 가장 구석에 자리한 그림들은 〈백내장〉에서의 이미지가 신체에 각인되는 보이지 않는 일면―카메라 옵스큐라로 연장되는 눈에서의 이미지 형성―이나 눈을 관통한 화살과 같은 불구의 눈이라는 알레고리를 다루거나, 〈AIR〉에서 구(짐볼)에 허리를 기댄 명상의 자세를 선취하는 세 점의 드로잉이다. 이 관통하는 빛 혹은 화살 같은 직선의 선분은 빛 갈라짐과 동시적으로 명상적 효과의 사운드가 증폭되는 동명의 영상 작업의 빛으로 연장된다.
여기서 〈구, 돔, 파이프〉는 핸드아웃에서 겹낫표가 아닌 홑화살괄호로 표시됨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구, 돔, 파이프〉는 책의 독자적인 지위가 아니라, 다른 작품과 동일선상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펼쳐진 이미지 조각으로 전시되거나 비닐에 쌓여 투명 아크릴 박스에 놓여 가져갈 수 있는 사물/오브제가 된다. 따라서 이는 펼쳐져서 입체적 면이 되거나 펼쳐지지 ‘않는’ 입체로서 책을 가로막는다. 또한 아마도 ‘파이프’에 해당할 문자와 책의 이미지는 다른 영상들과 공간―2층의 전시가 시작되는 방에 자리한다―을 잇는 중간자적 기능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곧 눈의 존재 방식과 다른, 눈과 이미지의 관계 사이에 그어진 빗금으로서 파이프라는 알레고리가 〈광선 드릴〉(2021. 싱글 채널 비디오, 2시간 19분 52초.)에서부터 〈구, 돔, 파이프〉로 연장된다.
〈백내장〉과 〈AIR〉는 《눈부신 미래》에서 가장 몰입감을 주는 작업일 것이다. 물론 〈메리-고-라운드〉의 미래의 시점은 백내장 걸린 눈의 침침한 증상과 동기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메리-고-라운드〉가 다소 문학적이고 공허한 면이 있다면, 〈백내장〉과 〈AIR〉는 매체로서의 눈(깜빡이는 눈)과 시각에 대한 사유를 접붙인다는 점에서 조금 더 밀도가 있다. 나아가 〈AIR〉가 수행적 효과를 얻고자 한 데 반해 실제 이를 시각으로만 수렴시켜(요가 매트에서 시작해 끝맺음을 초반에 지시하고 있기도 한 작업에서 관객은 요가 매트 대신 투명한 의자에 앉을 것이 권고된다.) 몸과 시각의 경계를 확인하게 하는 작업이었다면, 〈백내장〉이 담론 차원에서 가장 압축적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돔의 형상을 지닌 것들은 시간을 공간화한다. 시간은 공간에 담긴다. 반면 이미지는 공간을 결정화한다. 이미지로서 압축된 세계와 시간의 형상을 통해 시간의 간격을 지우는 어떤 세계관 자체를 지시한다는 점에서, 《눈부신 미래》는 삶을 관념의 차원으로 질료화하는 데 가까우며, 이는 이미지 탐구의 시점을 절대화한 어떤 결괏값을 보존하는 데서 연유한다. ‘눈부신 미래’는 구조적인 차원에서의 과거의 재현이거나 열화된 이미지이거나 백내장 걸린 눈이 맞는 물리적 빛이거나 명상을 향한 일시적 동기화의 효과이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거나 어떤 물질적 토대와 연결되지 않는다.여기에 〈메리-고-라운드〉의 냉소주의 역시 존재한다. 이미지로 수렴하는 역사, 구조적으로 닫힌 역사, 죽음과 동기화될 수 있는 신체와 같이 ‘눈부신 미래’는 백내장에 걸려 흐릿해지는 신체의 덧없음으로부터 미래의 상이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없음, 또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데 가깝다. 《눈부신 미래》는 흥미로운 시각 연구에서 탐사의 다매체적 결정(結晶)들로써 입체적으로 서사를 연결해 나간다. 반면 냉소주의의 태도 또는 질문이 어떤 현실적 근거를 얻을지, 어떤 세계관으로 발현되어 갈지는 또한 질문이 드는 부분이다.
[전시 개요]
장서영 개인전, 《눈부신 미래》
전시기간 2021년 10월 15일(금) ~ 11월 11일(목)
참여작가 장서영
운영시간 오전 11시-오후 6시 /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아마도예술공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54길8)
그래픽디자인 정사록
공간디자인 및 가구 최조훈
사운드 정상인
미디어설치 올미디어
후원 서울문화재단작가 및 작업 소개 장서영은 영상과 입체를 주요 매체로, 관측하는 상태에 따라 가변적으로 변하는 존재감과 신체적 상태-노화, 질병-에 따라 축을 달리하는 가변적인 시공간에 주목하며 작업해 왔다. 본 전시에서 장서영은 이상적 미래 사회를 상징하는 동시에 그것을 보전하는 구체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으로, 수정체의 단백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질되고 퇴화되듯 점차 선명도를 잃어가는 화면과 텍스트, 특정 동작을 수행 중인 신체와 미묘한 엇갈림을 만들어내는 지시문의 홈트레이닝 영상, 찰나에 사라지는 스파클러의 시간을 관측가능토록 연장시킨 작업을 선보인다. 각 작업들은 전시공간 안에 스크리닝됨으로써 영상과 영상, 영상과 텍스트, 자막과 이미지는 서로를 언급하고 참고하기를 반복한다. 이는 수정체의 섬유붕괴로 빛을 더욱 눈부시게 받아들이고 사물에 대한 인식이 어려워지는 신체의 노화와 눈부시리라 믿었던-예언되었던 미래상을 병치시키며, 이미 그러하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하듯 하루하루 불투명해질 시간선을 연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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