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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2018] 졸탄 버쿠여 & 첸 웨이 리 <함께 홀로(Together Alone)>: '나체는 그 자체로 (침묵의) 언어를 갖는가'REVIEW/Dance 2018. 10. 14. 13:20
▲졸탄 버쿠여 & 첸 웨이 리 <함께 홀로(Together Alone)> 공연 사진ⓒPark Sang Yun [사진 제공=SIDance](이하 상동)
관객의 입장 직전부터 나체로 공연 전반을 활보하는 둘의 움직임은 접촉 즉흥(contact improvisation)을 닮았다. 첫 번째로 신체가 밀착돼 자연스럽게 신체의 전면을 무대에 투사하며 두 번째로 수십 분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신체 사이에서의 흐름 그 자체로부터 다시 출현하는 또 다른 흐름이 전적으로 중요해진다. 적확하게 짜인 안무나 서사의 얼개에 포섭되는 변주로서 장식적인 움직임들과는 거리가 있다. 이러한 신체 전부를 드러냄과 지속적인 관계 맺음으로만 짜이는 안무는 생생함을 강조하고 동시에 신체 전면에 대한 변환의 순간들을 주장한다. 이는 즉흥으로 진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는 공연이 '몸들을 지속시키고 계속 변주하며 전면을 드러낸다는 단순한 전제 아래 둘은 서로의 관계 맺음을 자유로운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만을 수호함을 의미한다. 그 결과 형태나 개념, 형식적 틀 자체를 견고하게 가져갈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연습, 워크숍 같은 과정적 시간의 축적만이 늘 생생한 시간으로 공연의 양태를 어느 정도 이루고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둘의 움직임은 자신들의 신체 가용 범위를 넘어선 신체 자체에 대한 모든 부분과 연결 들을 강조하는 것이다.
나체의 신체는 어떤 말을 하는가. 나체에는 어떤 표정들이 분명 발생한다, 이들이 의도하지 않은.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의도되지 않은 신체의 여과 부분들을 나체로써 의도한다. 하지만 그 나체는 어떤 의미나 개념, 상징을 포함하지 않는다. 신체 자체는 지나치게 투명하며 어떤 깊이를 산출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공연이 징후적으로 드러내는 건 신체 자체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신체는 깊이를 담보하는 것도 아니지만 표면의 언어를 생성하는 것 역시 아니다. 오히려 그 의미 없음으로써 공연 외적으로 신체가 갖는 사회적인 의미들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탈락시킨다. 하지만 이들은 그 자연스러운 관계 맺음 자체를 최종적인 장소, 너머의 장소 자체로 둔다. '이곳이 이상향이다!'
어둡지 않은 환경, 구부러진 나뭇가지 같은 네온사인은 나체를 전면에 투사하는 데 지배력을 갖는다. 어슴푸레 비치는 살갗이 아니라 환하게 밝힌 신체는 침묵의 말을 한다거나 시간이 멈춘 영원의 순간이 되는 대신 이것이 나체이며 응당 나체임을 주장한다. 그 과정이 대부분 접촉 즉흥 형태로 진행되고 그 중간에 스윙과 같은 움직임 안에 두 사람이 두 다리를 허공 위로 뻗고, 물구나무 선 남자의 두 다리를 잡는 여자의 움직임으로 두 다리의 갈라진 틈을 중앙에 위치시키는 등 나체의 평등함을 계속해서 주장한다. '어떤 부위도 부끄럽거나 수치스럽지 않으며 모든 부위가 손과 얼굴과 같이 균일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건 금기의 파괴인가 아님 생명의 약동을 전하는가라고 하면 오히려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제반 조건 안에 이러한 움직임은 전자의 캠페인적 성격으로 비춰지는 바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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