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무대는 전시가 열린 우정국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관객은 무대와 공간 사이의 틈에 끼인 형국이 된다. 공간 활용도가 매우 높은(?) 무대 세트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한 관객의 체험은 매우 직접적이며 무대와의 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게 만든다. 비계 구조로 짠 견고하고도 임시적인 설치 구조물은 뒤쪽에서 앞쪽으로 급한 경사가 지어져 있고 전체를 나무판자로 감싸 퍼포머들이 위아래로 급격히 또 빠르게 오르내리는 흐름을 만들어 낸다.
작가의 유년기 어떤 원장면적인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작업임이, 작가가 관객을 등지고 관객과 괴리되며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대리하는 중후반 지점에서의 작가의 대사로부터 비로소 드러나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빠르게 무대를 뛰어 내려오는 그리고 이어서 한 명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집단 공격을 수행하는 퍼포머들에 대한 관객의 체험은 작가가 경험한 현존의 감각을 전이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거칠고 야생적이며 폭력적인 하위 문화적 실재에 대한 체험이 곧 작가의 원 장면이었고, 그것은 무엇보다 신체를 묶어두는 어찌할 수 없는 체험이라는 데서 이 공간에 무대가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함을 해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관객은 실재(와)의 틈 자체에 존재한다. 해외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레퍼런스 배경으로 짧게 삽입하며 또 다른 실재로서의 체험이 무대에 부착(투사)되지만 그것이 작가의 발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구체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원장면보다는 덜 지난 과거로서 시간적 간극을 두고 작가의 체험적 경계로 확장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직전, 작가가 '조익정'이라는 지난 인물의 현재적 매개로서 무대에 존재하기 이전에 쏟아내는 중국어와 우리말의 혼용 역시도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다만 그것 자체가 발화에서 랩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측면의 레퍼런스가 됐음 정도만을 분별할 수 있을 듯하다. 전체적으로 <스폿>은 고정된 큰 무대 사이에 고정된 관객을 두고 역동적인 장면들을 펼쳐놓고, 불완전한, 불온한 텍스트들을 군데군데 심으며, 그것을 그저 하나의 기표 차원으로 남을 수 있게 한다(곧 장면 자체로 동결시키는 것을 가능케 한다).
사실상 조익정의 대사만이 있는 공연에서 조익정의 훈련(?)되지 않은 (다른 식의) 발성은 랩으로 연장되는데, 그보다 랩 자체를 배태하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스폿>은, 커뮤니티 아트처럼 보이지만,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랩을 하는 이들의 삶을 가지고 한 경험적 연구에 토대를 둔, 특정한 리서치 형식을 띤, 지난 그녀의 코너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개인전의 암묵적 배경을 흐릿하고도 선연하게 재구성한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측면에서, 그녀의 예술적 자아 자체에 대한 현시이자 해설로서, 그의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극'적으로 연출하고 완성해 나가는 한 과정으로 존립하는 서사로서 이 작업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 작업이 어떻게 연장될지 혹은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단정 짓기엔 이르다. 그것은 툭 튀어나온 작가의 잉여적 부산물이 될지 역시 알 수 없는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