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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현 작·연출, 〈스고파라갈〉: 동시대인의 공백을 노래하기
    REVIEW/Theater 2023. 11. 7. 02:50

    임성현 작·연출, 출연진: 강민지, 김예은, 백소정, 백혜경, 양대은, 이우람, 한혜진 배우, 〈스고파라갈〉[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스고파라갈〉은 창작을 한다는 것, 창작자로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문한다. 하나의 사회 구조 아래 한 몸으로 묶인 듯한 배우들은 경쟁의 일선에 서는데, 이는 진화론을 즉물적으로 대입한 결과이다. “스고파라갈”이라는 제목은 과학자 다윈이 진화에 관한 힌트를 얻은, 에콰도르의 제도 ‘갈라파고스’를 뒤집은 이름으로, 이는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가져온 거북이의 신체가 뒤집히는 이미지를 상기시키면서도 현재를 역사로 객관화할 수 없는, 또는 그러한 현재‘들’의 하나를 선택하는 데 실패한 또는 포기한 동시대 창작자의 현기증 또는 무력감을 자조적으로 드러내는 듯 보인다. 
    거기에는 역사는 참조점이 되지 못하고, 새로운 시대는 이미 도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 관해 연극으로써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어떤 인식이 거기에 자리한다. 여기서 언어 유희적인 전복은 역사를 현재의 참조점이 아닌 기시감 어린 하나의 이야기로 전유하는 극의 구성적 맥락에 상응한다.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찰스 다윈(“윈다스찰”), 자율주행 자동차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크스머로닐”), 사도 베드로의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라는 말이 향하는 예수(“스저지”), 역사는 실제 인물들과 연관된 맥락의 충실한 재현이 아닌, 끝말잇기 식의 서사적 분투 속에 용해되고 무력화된다.

    완결과 완성의 재단을 벗어나는 이 서사는 이야기가 시작된 ‘갈라파고스’라는 모티브를 해명하는 것으로 시작해, 자본주의의 (미래의) 상징적인 인물인 일론 머스크로부터 경쟁 시스템의 현대 사회를 구성하며―물론 자의적이다.―, 그 속에서 방향성을 잃은 현대인의 실존적 방황을 절대적인 것으로 드러낸다. 여기에는 비판이 아니라 현재에 관한 감내와 수용의 태도만이 있다. 곧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 정치의 부재를 고백하는 무력한 비존재들이 있다―그러니까 역사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의 현재화라기보다는 역사의 그림자로서 존재하고 있음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 몸이 현실에 관한 증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이러한 태도는 실상 인간에 대한 자조와 환멸의 정서가 두 다른 층위에서 쓰이고 있음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곧 멸종위기종인 갈라파고스땅거북과 갈라파고스의 주인 없는 땅과 같은 관계가 인간 주체의 탐욕적 착취를 통해 발생했다는 서사는, 실제 사실이라는 점에서, 〈스고파라갈〉은 마땅히 이곳을 누벼야 할 땅거북을 동물화된 인간만 남은 세계로, 진화의 오랜 시간 같은 자연의 경계를 더 이상의 진보가 불가능한 현재의 시간으로 전유한다. 따라서 주체는 사라지는 대상이어야 한다. 그 사라짐을 증명해 내는 대상이어야 한다. 여기 위에 또 다른 서사의 충동이 자리한다. 

    〈스고파라갈〉에서 배우들은 자신의 매력을 선전하며 한 명씩 튀어나온다. 또는 분절된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트랙을 도는 움직임과 달리 이때 배우들은 유일하게 자신의 현존에 다가선 듯 보이며 또 그로부터 곧 미끄러져 내리는 듯 보인다. 거북이 존재들로서 그들은 하나의 말을 끝말잇기 식으로 잇는 말들이 비개체적인 삶의 연결을 보여준다면, 나아가 터전 없음을 공유하는 개체들의 유약한/유령 같은 공존을 보여준다면, 반복하며 물리는 등의 그들의 말들은 현재에 대한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자아의 유약함/유령성을 또한 보여준다. 사실 배우들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솔직하고 아름답다기보다 선정적이고 직접적이다. 그것은 자신에 관한 간략한 홍보문구를 만드는 식이다. 또한 앞사람과의 균형이 뒤틀리지 않기 위해, 그것은 안간힘과 조바심이 동반되며 흥분과 도취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캐스팅 당하기 위해 애쓰는 차원은 후반부에서 이 공연의 가장 괜찮은 리뷰를 관객에게 요청하는 관객 참여의 시간을 도입하는 것으로 연장된다. 이때 관객은 이전의 배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글이 선택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사실 배우의 자질과 고유성을 이야기할 수 없는 문장들과 마찬가지로 그 글이 과연 비평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공연의 미래를 도입하는 것, 바깥과 직접 손잡고자 하는 시도는, 공연이 더 이상 내재적으로 자신을 구성하는 것만으로는 의미를 가질 수 없음을 고백하는 부분이다―내재적으로 자신을 완성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소품으로 깔아놓고 녹아내리는 지구에 대한 직접적 알레고리를 만드는 장면은, 손쉬운 소비의 충동으로서 공연을 본다는 것의 행위로도 연장된다. 

    〈스고파라갈〉에서 기후 위기와 관련해서 온갖 들러붙는 사회에 관한 서사의 조각들은, 자신에 대한 보고와 기록과 같은 차원에서, 본질에 대한 단면으로서 작위적인 외양을 노출하는 것과 어쩌면 같다. 공연의 내재적, 문학적 완성도를 추구하지 않기, 부러 서사를 무너뜨리기의 전략은, 그들의 모습이 과정의 부산물일 뿐임을, 그 안에서 자기 충동과 강박의 부산물 역시 포함됨을 수용하는 것에도 상응한다. 그것은 진리는 아닐 수 있지만, 솔직한 부분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윤리적인 부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수없이 쌓아놓은 책들은 그것을 역사가 아닌 낡음의 물질로 처리하며, 말들의 깊이를 이미지의 표면으로 수용함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일종의 부인되는 대상들이다. 

    결과적으로, 리서치 작업이 지닌 자기 착취적인 과정으로서 예술의 한 단면, 곧 과거의 것들, 지식의 층위들, 서사의 무한한 바깥들이라는 전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 또는 그것이 시작임을 인지하는 것, 또는 그것을 시작하고 난 뒤의 어떤 산출된 이미지를, 이 쌓여 있는 책들이 보여준다. 이는 나아가 진리와 지식의 일방적이고 일반적인 수용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떠도는 서사의 파편을 뒤적이고 취하는 방식으로써 기존의 것들을 열고 다시 덮기, 또는 애초에 열지 않기의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이 오래된 책들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것, 아울러 인류에 대한 근원적인 재사유 속에서 지난날의 지식들이 무용함을 선언하는 것. 따라서 애초에 진리라고 부르던 것들은 진리가 더 이상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완성한다. 

    마지막으로 배우는 자신을 어필하지만, 이는 노동 시장의 임시직의 순환 고리를 끊어내지는 못한다. 그의 절박함은 현재를 겨우 살아내는 데 맞춰져 있다. 곧 망친 역사와 무능한 동시대인 이후에 수동성을 지닌 배우가 역할을 벗어나 자신을 드러낼 때 그 언어는 더욱 정교하고 섬세할 수는 없을까. 자본주의의 경쟁 질서와 강박이 낳는 무한 동력의 현재라는 서사의 강력함은 손쉽게 그 세 개의 범주를 하나의 차원으로 녹여버리고 마는 것일까.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일시: 2023.08.24(목) - 09.17(일) 평일 19시 30분 / 토, 일 15시(월요일 쉼)
    장소: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관람등급: 7세 이상 관람가(2016년 12월 31일 출생자까지)
    문의: 1644-2003 | 국립극단
    소요 시간: 80분(인터미션 없음/변동될 수 있음)
    예술가와의 대화: 08. 27(일) 공연 종료 후 *참석자: 연출 임성현, 배우 강민지, 김예은, 백소정, 백혜경, 양대은, 이우람, 한혜진
    배리어프리 회차: 09.01(금) - 09.03(일) *한국수어통역, 한글자막, 음성해설, 이동지원, 터치투어 운영

    작/연출: 임성현
    출연진: 강민지, 김예은, 백소정, 백혜경, 양대은, 이우람, 한혜진

    ■ 스태프
    무대·소품: 조경훈
    조명: 고귀경
    의상: 우영주
    사운드: 목소
    움직임: 구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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