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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실에 있어 '컨템퍼러리성'이란? : 2010년까지의 서울국제공연예술제(김철리 예술감독)는 어떻게 판단/고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REVIEW/Theater 2011. 9. 13. 18:47
컨템퍼러리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예술에 있어, 나아가 정치에 있어 유럽중심주의의 그늘 하 시선의 재편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예술의 발전 속도 흐름이 뒤쳐져 있다는 것은, 곧 이들의 현재가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하는 묘한 불합리한 뉘앙스를 남기고 있다.과연 컨템퍼러리성은 무엇인가, 동시대의 시각, 이 동시대가 누구의 것인가의 문제는 역설적으로 해외 컨템퍼러리라는 것을 이식해 들어올 때 생겨난다.
컨템퍼러리성은, 동시대성은 곧 시간이 우위에 있는 개념이지만, 장소‧문화 그 공고한 사람들의 의식과 사고방식 삶의 터전에서 유리되어 조각될 수 있는 개념인가.
그렇다면 컨템퍼러리성은 우리의 동시대성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이 하나의 컨템퍼러리성으로 지칭되는 것 같은 이 양태/흐름의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 컨템퍼러리성에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꺼내고 섞고 또 전복할 수 있는가.
우리 현실의 문제들도 짚지 못 하는 미학적 지점의 양식 아래 고착된 많은 예술의 흐름들, 과연 우리는 9.11테러, 쓰나미를 겪은 일본 동시대적 국제적 흐름의 맥락을 예술에서 전유하여 어떤 의제나 이슈를 던질 수 있는가.
그러니 장소가 갖는 고유의 컨템퍼러리, 우리의 감각 세포를 깨우는 신선함이 있는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이 컨템퍼러리성 자체에 우리의 예술은 기꺼이 또 매우 적극적으로 섞일 수 있는가.
안애순‧서재형 예술감독에게 전하고 싶었던 질문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의 컨템퍼러리성이다. 과연 이 시점 이 장소에서 컨템퍼러리성으로 위치하는 화두는 무엇인가, 작품은 무엇인가라는 점, 그 컨템퍼러리성이 장소를 떠난, 최첨단의 미학 조류라고 할 때 또는 세계 시민이 절대 되지 못 하는 우리들이 그 담론이나 의제를 소화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것들의 매개 장치를 걸어주며 이것들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것, 아니 그것까지를 과감히 품고 가져올 수 있느냐의 여부.
예술 감독의 판단 일종의 표현, 주관적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반면 수억이 오가는 또 국제 공연의 대표적인 흐름(이 말은 정말 우스운 말이기는 하지만)의 작품들을 선별해서 가져올 때 이 기준과 과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공유되고 명확하게 밝혀질 필요가 있지 않은가?
아니 우리 중에 누구 한 명은 질문을 할 권리가 없단 말인가?
이 과정은 조금 더 투명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작년 김철리 예술감독의 시스템(과연 이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거나 또 많은 비판적 시선을 보낸 사람이 비단 개인 혼자만의 시각이었을까)에서 실제 「도시발레」라는 작품을 본 사람이 있다면 이 작품이 어떻게 국제 컨템퍼러리성을 가진 작품이라고 납득할 수 있었을까, 무용을 잘 모른다고 공공연히 말하는(이것이 솔직함이라고 인간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것은 우리나라의 합리성의 부재, 정에 호소한 뭔가 아주 심각히 잘못된 부패와 연결되는 그 거대한 구멍을 뜻하는 것이란 것을 조금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가 단지 그의 판단으로 가져온 작품이란 것.
지금 무용과 연극으로 나뉘어 예술감독이 작품을 들여왔지만 연극쟁이 인생을 산 사람이 무용까지 작품을 선별해 가져왔다는 것의 현실(연극과 무용 그 경계를 딱 긋거나 그 둘을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시선의 존재가 없음을 부정하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통합적인 시선을 구현하지 못 하는 연극쟁이라는 말의 함의, 하지만 무엇보다 그 작품이 그러한 모든 것을 뛰어넘는 정말 작품답지 않은 작품이었다는 것), 이것이 결국 이 작품을 본 사람 그리고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만을 위한 협소한 근거가 될까?
도대체 이 컨템퍼러리성이 무엇인지, 과연 우리는 무엇을 겪고 감각해야 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이들 위에서 새로운 공연 문법을 짤 것인지 이는 공개토론이든 방청회든 전문가 포럼이든 한 번은 공개하든 안 하든 정리되고 공유되어야 할 과정 아닐까!(?)
도대체 지금껏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분명한 콘셉트는 있었는지.
김철리 예술감독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그가 아쉽게 떠난 마당에 열심히 하고 박수칠 때 떠난 자라고 말을 한다면, 그래서 인간적으로 다 끝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는 개인인 동시에 한국에 가장 많은 해외 대표작품이라고 소개되는 작품들을 가져오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상징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일까.
과연 지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무엇을 남겼고 무엇이 기록되었는가?(!) 우리는 하나의 기획 그 불분명한, 그렇지만 분명히 기획이라는 개념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한 명의 작품 선택들에서 합리적으로 그것들을 판단하고 다시 검토하고 의의를 산출할 수 있는가, 아니 그 과정은 이제 임기가 끝났기에 같이 사라졌다고 판단하고 말아야 하는가!
오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두 예술감독의 혜안을 믿어보는 동시에 과정의 투명성과 합리성과 공공성은 어쩌면 이후 숙제일 거라 생각하는 바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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