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연극회 : 오픈 오케스트라 쇼〉(이하 〈열린 연극회〉)는 연극(theater)의 정의를 그 어원, ‘보는 장소’, 곧 고대 그리스 극장의 계단식 객석을 뜻했던 테아트론(Theatron)에서 그곳에서 관객이 바라보는 무대였던 원형의 무대, 오케스트라(Orchestra)의 의미로 재정의하기 위해 전자를 소거한다. 관객을 포함한 배우 모두를 오케스트라에 위치시킴으로써 연극을 보는 자가 아닌 하는 자의 몫으로, 보는 것(거리를 두는 것)이 아닌 수행하며 감각하는 것으로 두는 것이다. 관객과 공연자 사이에 놓인 분할선을 물리적이고 장소적으로 재분할 또는 합치하는 전략을 통해, 관객의 장소, 곧 관객은 사라질 수 있을까.
기원적 장소로서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오케스트라라는 연주대로 추후 전의된 오케스트라를 실제 전유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을 오케스트라의 위치로 재소급시킴으로써 〈열린 연극회〉는 연극의 장소를 그리고 연극의 장르를 변용한다. 이어서 실제 무용가의 춤을 삽입한다. 이는 춤과 음악이 분할하지 않은 연극의 기원적 형식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실천이다. 결과적으로, 객석과 무대가 분할되지 않은 장소로서 “열린 연극회”는 실제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며 열린 체험을 하는 “오픈 오케스트라 쇼”의 형식을 차용한다. 반면, 오케스트라와 춤은 ‘오케스트라’ 안의 가상의 오케스트라 영역을 구성함으로써 전자의 오케스트라를 다시 테아트론의 영역으로 재정위하며, 본래의 기원으로 다시 소급된다.
결과적으로, 〈열린 연극회〉는 오케스트라로서 연극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연극으로 이행했다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밟아 나간다. 이를 통해 〈열린 연극회〉에는 연극에 대한 재정의라는 참조적 차원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만, 소거된 테아트론의 유령적 신체의 영역을 온전히 지울 수는 없다. 거리를 지우거나 줄임으로써 보는 것을 듣는 것으로 변환함으로써 관객의 체험적 양상은 변화한다. 그럼에도 훈련된 이 혹은 능숙한 이와 대본을 가지고 그것을 미리 갖고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이의 감각을 섞는 구체적 방안까지는 구현되지 않는다. 다시 오케스트라와 테아트론의 구분이 생겨나게 된다.
그렇다면, 장소적 차원의 기원으로 연극을 정의 또한 변용하려는, 이 오케스트라와 테아트론의 중첩과 간극으로부터 〈열린 연극회〉는 무엇을 시험하는 것일까. 또는 발화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예술을 실현하는 생동하는 몸들로써 희곡을 대체하고, 그로써 재현의 결박으로부터 벗어나고, 동등한 연대의 차원에서 장르와 매체의 벽을 허물기 위해 그러한 것이라면, 이 열림은 이중의 목적을 취한다고 하겠다, 곧 연극이라는 일반적 상과 연극이라는 장르적 경계로부터 탈주하는 것. 따라서 〈열린 연극회〉는 기원이라는 근거를 ‘명목’ 삼아, 연극(에)의 반전을 꾀하는 작업이라 봐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동시에 연극을 무엇보다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진지하게 가리키며 승화시키는 작업으로, 모더니즘의 매체적 성찰을 반동적 차원으로 변주하는 작업이라 하겠다.
김민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