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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 프로젝트,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 존재들의 성좌, 그리고 진동카테고리 없음 2025. 3. 11. 23:46
이무기 프로젝트,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 [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사진 좌측부터) 미래, 색자, 미란. 이무기 프로젝트의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에서 색자, 미래, 미란, 세 등장인물은 트랜스젠더 클럽의 초창기를 연 대표적인 세 개의 클럽, 1978년 열매, 보카치오, 1984년 여보클럽의 시작을 알리며 등장한다. 세 명의 존재는 연표적 기입을 통해 그 공간을 대표하게 된다. 곧 그 공간을 존재에 일임하면서 역사의 기원을 선취하는데, 공간의 개별 역사적 특징을 기록하는 대신에 존재의 서사를 체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 존재는 그 스스로를 정의하기보다는 다른 공통 존재의 식별에 의해 기입되며 “언니” 혹은 “이년/저년”이라는 호명에 의해 세계의 일원이 된다.
‘미래’가 경험한, 구별 짓기의 시선에 의해 세계 바깥으로 밀어내는 또 다른 식별의 행위 바깥에서, 그러한 호명을 통한 수렴, 구분 짓기는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차라리 역사는 공간에 선행한 개인에서 출발하는데, 이는 ‘파싸롱’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색자를 “저게 나와 똑같은 인간인가”라는, 구술 인터뷰에서의 또 다른 트랜스젠더, 춘자의 물음이 무대 위의 색자를 ‘응시하는’ 가운데, 재현의 매체는 현전을 초점화하며, 공통됨의 세계와 연대/유대를 향한 최초의 식별이자 고유한 존재의 존재론적 구성, 나아가 존재의 의미를 구성하는 순간을 재기입한다.
그것은 퀴어, 다른 성으로서 자신을 자각하는 존재, 그리고 그 자신을 아직 (또 다른) 사회 안에서 정체화하지 못한 자의 세계가 확장되며 존재의 고유성이 자신으로 다시 되먹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파싸롱은 이전에 극장을 살롱으로 부르던 문화적 관행에 의한 파고다극장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인데, 색자는 대신 이를 피카데리극장으로 지칭한다. 이는 두 극장이 종로에 자리하며, 피카데리극장이 게이들의 은밀한 만남이 공공연했던 장소로서 파고다극장에 대한 오인의 대상이 되었던 사실에 더해, 그들이 자신을 정체화할 수 있는 미지의 공간을 탐문하던 행위―기웃대고 어슬렁거리던―의 출발 지점을 상기시킨다. 곧 이러한 오인은 현재의 무지나 실수로 결정되는 대신에, 특수한 문화 집단 내의 비가시성의 약호, 그리고 거기서도 변별되는 존재들의 사이 공간을 비추어내는 실마리가 된다.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미란.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는 색자, 미란, 미래의 당시 클럽에서 행하던 무대를 주로 가시화한다―원래는 로즈마리 역시 출연자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인터뷰 영상으로 무대를 갈음했다. 이는 특정한 시간의 규격을 상정하며 공연 전반의 시간을 차지하게 된다. 여기에는 당대 대중문화를 엿볼 수 있는 팝송이나 국내 대중가요를 비롯해, 일본 가요 역시 등장한다.
대부분은 립싱크 무대이며, 이는 익숙한 문화 향유물을 라이브로 수행함으로써 복제를 통해 그 정동의 차원을 이전시킨다. 그것은 차이를 드러내기보다 기존과의 차이를 소거하는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원본의 질서를 창출한다. 이는 무엇보다 그 소리가 아닌, 그 소리와 분리된 신체의 고유성이다. 그 소리와 들리지 않는 목소리 사이의 간격을 노정하는 신체의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의 진정성은 관객을 열광과 환호의 역할로 이끈다. 색자는 립싱크 무대에서 실제 목이 아팠던 후속 경험을 전하면서, 그 립싱크 행위의 진정성과 실재의 효과를 증명한다.미래의 무대. 미란의 최신 발표곡도 라이브로 연출되는 한편, 마지막 무대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를 개사해 유일하게 셋이서 부른다. 가사가 적힌 종이를 받아들고 부르는 유일한 장면이기도 한 이 무대는, 이들의 고유성의 발화가 무대 위의 배우가 행하는 가장이 아니라 존재론적 수행임을, 그 존재의 고유한 발현을 기꺼운 운명으로 수용하며 ‘나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와 정념, 셋의 공통됨으로부터 파생되는 또 다른 세계의 구축에서 오는 정동을 함께 드러낸다.
셋은 후반에 자신 주변에 머물던 트랜스젠더들이 하나둘 사라져 감을 증언하며, 비가시화된 역사의 적층을 드러낸다. 이는 존재들의 성좌를 구성하는바,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는 존재의 특이성과 함께 존재들의 호명과 인식에 바탕을 둔 특별한 연대와 인정이 구성하는 공동체를 가시화한다. 이는 클럽이라는 공간을, 공연의 제목을 물론 경유하면서, 화려한 모습 뒤의 이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이 소수자나 비정상의 영역으로 위치하는 정상의 사회가 아닌, 특별한 존재로 각인되는 무대 위의 모습을 꿈꾸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심에는 색자가 있다.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은 것, 온전히 여성이라는 독립적 존재의 범주에 속하고자 하는 존재론적 차원의 열망은,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수동성을 상정하는 페미니즘에서의 비판적 반경을 비켜난다. 사랑을 받고 싶은 이들의 욕망은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수용의 차원을 전제한다. 무대는 어쩌면 그 차별적 존재의 소수자적 위상을 다른 곳으로 전위시키는, 그 차이를 소거할 수 있는, 동시에 그 욕망까지도 분출할 수 있는 예외적 장소로서 가장 적합했던, 적합한 곳이 아닐까.
그 가운데서도 독보적으로 많은 무대의 방식으로, 원본과의 닮음을 좇는 립싱크가 한편으로 그 원본이 지닌 안정적이고도 익숙함의 힘과 효과를 현장으로 가져오는 것에 그 의도가 있음에 착안한다면, 이들은 그와 같은 성취의 자장을 향한, 공존을 향한 불안정한 경계이자 틈으로서, 그 빈 성대의 진동과 소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사진 왼쪽부터) 미래, 색자, 미란.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
공연 일시: 1.9(목)~1.11(토) 목금 7시 30분 토 3시 *아티스트 토크 1.11(토) 공연 후
소요 시간: 쇼케이스 90분
구술: 로즈마리, 색자, 미란, 미래, 춘자
기획: 이무기 프로젝트(김수영, 김일란, 문상훈, 성재윤, 여름, 한솔)
작: 문상훈, 한솔
연출: 문상훈
드라마투르그: 김수영, 영이
출연: 색자, 미란, 미래 외
작품 소개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은 1970년대부터 발전해온 이태원 트랜스젠더 클럽의 공연예술과 그에 얽힌 성노동자 트랜스젠더 여성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실제 이태원 트랜스젠더 클럽들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가 함께 생존을 도모하고 공연예술을 발전시킨 주요 무대였다. 그리고 이들의 공연은 동시대 유행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트랜스젠더 창작자는 그 시대의 문화와 자신만의 이야기를 결합시켜 당대 유행가를 독창적으로 해석한 독특한 무대를 선보여 왔다. 이번 공연에서는 당대 유행가들을 중심으로 실제 트랜스젠더 창작자의 목소리를 통해 애환이 어우러진 그들의 무대와 삶에 대해 들어본다.
창작자 소개
이무기 프로젝트는 ‘이태원은 무엇일까 기록하기’라는 이름으로 이태원 지역 트랜스젠더 성노동자 커뮤니티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수영, 김일란, 문상훈, 성재윤, 여름, 한솔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자 영역에서 활동하던 퀴어 예술가, 여성 연구자, 성노동자 인권활동가 등이 모여 만든 창작집단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 속에서 망각의 위기에 있는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끄집어 내어 무대를 통해 이야기한다.728x90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