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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게하 아트 프로젝트의 작가 강영민: 미학과 일상의 재배치INTERVIEW 2023. 12. 10. 00:04
2021년 인제에서 시작된 꼬부랑게하 아트 프로젝트를 3년째 이어오고 있는 강영민 작가를 2년이 지나 인제에서 다시 만났다―2021년에 그 프로젝트를 다룬 바 있다(https://www.artscene.co.kr/1751). 작가는 처음, 인제군문화재단의 문화도시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을 때 일반적인 아티스트 레지던시 말고 작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다시 말하면,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이 작가이고, 꼬부랑게하라는 게스트하우스는 강영민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곧 게스트하우스라는 방식은 새로운 주체에 따라 다르게 매개되고, 예술가의 작업 방식 역시 새로운 형질 전환을 이룬다. 여기서 ‘일반적’인 레지던시라 함은 대부분 경쟁 시스템을 거쳐 소수의 작가만이 사용할 수 있는 통상의 레지던시를 의미한다. 이는 넓게는 예술 지원 제도의 인프라이고, 좁게는 예술상의 상징자본이다. 강 작가의 더 과격하고 급진적인 비판에 따르면, 레지던시 제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신화를 계속 쌓아 올려 가는 ‘휴먼 캐피탈’을 닮아 있다.
“처음에 문제의식은 뭐였냐면요. 전국에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시들이 좀 엘리트주의적이고 폐쇄적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조금 더 저변을 확대하는 꼭 아티스트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여행자의 신분으로 조금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그리고 여기 인제라는 곳이 자연이 좋은 곳이니까 여기서 자연도 즐기고… 어떤 아트에 국한을 안 함으로써 오히려 예술적인 어떤 순간을 맛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창출하고자 한 거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강원도 인제가 설악산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인데, 게스트하우스가 없어요. 한국에서는 제주 올레길로 인해 이런 문화가 전파되기 시작했는데, 한 10여 년 정도 된 거죠. 주로 젊은 여행자들이 배낭을 메고 하룻밤 묵어가는, 접근하기 쉬운 개념인 거죠. 줄여서 ‘게하’라고 보통 부르거든요. 인제에는 주로 중장년층들이 자차를 몰고 오는 데 반해 청년층이 없죠. 젊은 배낭여행자가 없다는 얘기예요.”
늘 언저리에서 강력하게 이야기되는 예술의 지속 가능성, 곧 작품이 아니라 활동의 차원에서 예술, 예술보다 우선하는 예술가라는 존재에 대한 부분, 이 지속 가능성은 제도의 영향력 바깥의 자생성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 제도는 일반적으로 예술계의 독특한 지위를 그 자체로 수용하고 있다면, 강 작가는 그것과 다른, 독특한 제도적 경로에 의존한다. 처음에는 예비문화도시를 준비하던 인제군 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심사에서 탈락하고 난 뒤에도 강 작가는 인제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인제로컬투어’라는 새로운 파트너십을 만드는데, 이 단체는 인제에 있는 몇십 개 마을의 이장님들이 인제 관광자원을 활성화시키고 각종 마을 사업을 함께 추진하고자 만든 민간 단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하겠다. 물론 이러한 교류는 강 작가가 꼬부랑게하를 하면서 지역에서 꾸준하게 눈도장 찍고 발품을 팔았기 때문이겠다―지역은 존재가 갖는, 존재가 자리하는 장소성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곳이다. 작가는 먼저 꼬부랑게하를 지원한 문화재단이 지자체의 탑다운 형식의 기금이라면, 인제로컬투어는 정반대의 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곧 바닥에서부터 오는 돈의 출처가 직접 가늠된다. 이는 예술가에게도 새로운 인식과 과제를 수여할 것이다. 가령 인제로컬투어가 마을 주 생활권에서 만들어진 단체라는 뜻은 예술의 가치 역시 인제의 삶과 결부되며 그 삶의 가치에 따라 측정될 수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는 예술의 절대적 자율성이 침해되거나 부정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신비하거나 투명한 예술의 자리 자체가 그제야 현실로 식별됨을 의미한다. 강 작가는 탑다운 방식의 지자체 기금은 관료주의적인 성과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역시 크다고 한다.
“일단 지역의 과제 중 하나가 지방 소멸이에요. 인구가 자꾸 주니까 지방이 소멸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방 소멸 대응 정책의 일환으로, 귀촌을 장려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어요.그중에 무조건 처음부터 귀촌을 할 수가 없으니까 시골에 한번 살아보기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필을 했죠. ‘청년 작가들도 한번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하면 좋겠다’ 그래서 프로그램으로 들어간 거예요. 보통 레지던시의 목표라고 하면 창작 성과죠. 당연히 좋은 작품을 작가들이 와서 하기를 바라는 마음, 더 나아가서 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거친 작가 중에 유명 작가가 나오고, 그래서 기존 미술계의 어떤 작가로서의 성취 과정 중에 가장 기초적인 그런 단계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거든요. 우리는 목표 자체가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여기는 엘리트 미술인들이 무슨 자기의 미술계의 입지를 다진다거나 이런 목적이 당연히 아닌 거죠. 예술의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지역은 어떻게 하나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까. 작가는 (주체의) ‘욕망을 재구성’한다는 표현을 썼다. 이는 강 작가가 자주 언급하는 정신분석가 라캉의 개념이기도 하다.
“도시로 집중된 한국에서, 지역의 새로운 욕망을 어떻게 개발해 낼 수 있을까라는 목표인 거죠. 서울로 집중되는 욕망의 단일화를 어떻게 다양화하고 지역 고유의 새로운 욕망을 만들 것이냐에 예술적인 개입이 들어가겠다는 거죠. 기존의 레지던시는 좀 수동적이잖아요. 아무래도 자기 작품만 잘하면 되는데, 저는 그 다른 목표를 갖기 위해서는 형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 형식 자체가 메시지인 거예요. 그래서 이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을 해야 하는지는 정해진 바가 없어요, 왜냐하면 초유의 실험이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 실험 중이에요. 첫해는 예술인 아닌 분들도 많이 오셨었는데, 2022년에는 정권이 바뀌고 후원을 못 받았어요. 제가 자비로 그냥 있었고, 올해는 다시 후원을 받고 진행을 하게 된 거죠.”극단 미인의 대표, 김수희 연출 역시 첫해 꼬부랑게하에 참여 이후, 금성여인숙을 배경으로 한 극본을 쓰고, 올해 공연까지 올렸다. 어떻게 보면, 인제라는 곳의 한 장소가 서울의 한 대표적인 극장에서 가시화된 셈이다. 금성여인숙은 꼬부랑게하의 대표적인 숙소로 여러 외부인과 참가자의 아지트로 활용되었다. 강 작가는 금성여인숙의 볕이 잘 드는 테라스 옆에 있는 큰방에 자리 잡고, 이곳에 물감과 이젤 등을 갖다 놓고 인제에 관한 여러 그림을 그리고 또 오픈 스튜디오도 진행했다. 현재의 작업실은 인제터미널이 지척에 있는 곳으로 컨테이너 건물에 방이 양옆으로 2개, 중앙에 비교적 넓은 거실이 있다.
“인제로컬투어의 후원으로 현재의 공동 작업실이 생겼는데, 게스트하우스라는 그 형식이 게스트하우스에 집이 있고 거기에 손님들이 묵는 형식이잖아요. 근데 저는 비물질적인 게스트하우스 프로젝트였어요. 그러니까 따로 게스트하우스가 없는 대신에, 인제 곳곳에 있는 마을 펜션이라든지 대표적으로 제가 거주했던, 읍내에 아주 오래된 여인숙인 금성여인숙을 게스트하우스로 발굴한 거죠. 금성여인숙이 지금 소방도로 문제로, 그 골목에 노포들이 전부 다 철거되고, 금성여인숙도 영업을 종료하는데, 거기가 골목이 좁아요. 인제가 엄청 깨끗한데, 거기는 조금 낙후돼서 좀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좀 기피하는 장소예요. 사실은 그 골목이 미군들이 오래 살았고, 그래서 그 미군들 상대로 하는 업소들이 생겨난 곳이에요. 미군 상대로 하는 유흥업소도 많이 있었겠죠. 사실은 거기가 상권이 형성되게 되는 기원이란 말이죠. 거기에 일하는 아가씨들이 여인숙에 묵었던 거예요. 이런 역사적 맥락을 발견해서 낙후된 골목과 여인숙을 보는 시선을 또 다르게 보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일종의 근대문화유산처럼 우리의 기원을 기려야 되는 유산같이 시선을 바꿔줄 수 있죠. 제가 금성여인숙을 하드웨어적으로 바꾸고 그런 게 전혀 없잖아요. 제가 그 방 하나에 묵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열심히 소셜미디어도 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시선을 가이드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여기 카페가 없어요. 스타벅스도 없고, 도시처럼 멋있는 카페가 없어요. 무슨 ‘~리단길’ 이런 게 없단 말이죠. 그런데 앞강이 있어요. 그래서 캠핑 장비를 가지고 가서 고기도 구워 먹고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근데 여기 사람들은 그런 짓을 안 해요. 그렇게 자연을 재발견하는 거죠. 그러면 문제가 있어요. 왜냐면 시선을 바꾸는 데 돈이 안 들잖아요. 그러니까 산업화될 수가 없고,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거죠. 그런데 바쁜 비즈니스맨들은 이런 프로젝트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물질적인 가치가 아니고 비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건데, 저는 이게 중요하다고 보는 거예요. 아주 물질적인 어떤 생산성이나 물질의 포화 상태에서, 완전히 패러다임을 바꿔서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가 텅텅 비어 있잖아요. 이후 세대에게는 다 놀이터가 될 수 있겠죠.”
강 작가의 작업 방식은 인제를 전유하고 새롭게 매개하는 입장에 가깝다. 거기에는 작가의 지향과 철학이 물론 담겨 있다. 무언가를 변화시키기보다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 고유의 ‘바이브’를 알아채는 것, 이는 지역 내 여러 거점을 만드는 데서 나아가 그곳의 인물이 지닌 아우라를 끌어내는 일로도 연결된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발명되기보다 뭔가 새롭게 발견되고 인식되는 대상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해지는 건 그것이 낯선 것이라는 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중요한 건 곧 지역 자체가 아니라, 지역에의 낯선 주체의 개입, 그리고 지역과의 경계에서부터 시작하기일 것이다.
“보통 전시회를 하고 무슨 센터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하는 게 다 매뉴얼화돼 있고, 기본적으로 창작이라는 게 무에서 유를 만드는 거잖아요. 근데 제 생각은 좀 다른 게 저는 뭘 만들지 않고 관점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약간 이데올로기적인 얘기인데, 똑같은 대상을 보고 이게 낙후되어 있으니 이거를 부수고 리노베이션한다는 발상이 있는데, 저는 그 대상은 그대로 두고 내가 바뀌는 거죠. 내 보는 시선만 바뀌는 거예요. 그러면 대상은 안 바뀌어도 되거든요. 그런데 기존의 문화 정책이나 프로그램 들은 전부 다 뭘 만들어야 되고, 가시적으로 뭐가 바뀌어야 돼요, 없던 뭐가 생기고 이래야 해요. 저는 있는 대상은 그대로 두고, 그 대상을 보는 시선만 바꿔주는 건데, 그 시선을 바꾸려면 낯선 타자의 시선이 들어가야 된다고 보거든요. 그 타자의 시선이 바로 ‘여행자의 시선’이라는 거예요.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맨날 보는 풍경이기 때문에 거기서 새로운 걸 발견을 못 하거든요. 그래서 게스트하우스라는 플랫폼을 만든 거예요.”
시선을 바꿔주는 것에는 역사를 리서치하고 성찰하는 작업 역시 전제된다. 가령 인제와 마릴린 먼로의 접점을 통해 인제가 지닌 역사의 현재성이 입체화된다.
“대표적으로 마릴린 먼로상이 있죠. ‘여기 소양강 앞에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 미국의 영화배우)를 이렇게 못 생기게 만들었냐!’ ‘소양강 처녀를 만들어 놨냐!’ ‘도대체 뭔 의미냐?!’ 일종의 흉물같이 취급돼요. 근데 제가 인제성당 앞에 마릴린 먼로가 서 있는 걸 그렸는데, 인제가 수복 지역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반환이 늦게 됐어요(*작업실에 걸려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미군이 한국전쟁 끝나고 그때 마릴린 먼로가 와서 공연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먼로가 공연한 자리가 바로 인제성당이 지어진 자리고, 저 인제성당에서부터 지금의 인제가 형성된 거거든요. 그런 역사적인 맥락으로 먼로를 다시 보게 할 수 있는 거죠. 마릴린 먼로를 치우고 더 잘생긴 마릴린 먼로를 갖다 놓는 게 아니잖아요. 그거를 보는 시선을 바꿔주는 게 저는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대상을 보는 시선을 바꿔주는 것, 더 풍부한 맥락으로, 열린 시선으로 보게 하는 거죠. 친근한 거를 낯설게 보게 하는 것… 여행자들이 여기 오면 당연히 신기한 것들이 많단 말이에요. 도시에서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 많아요. 문제는 그 새로운 경험을 어떻게 자신의 시선으로 드러내느냐, 이게 관건이겠죠.”
강 작가는 홍천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 《홍천횡단: 생동의 축지법》(2023)에서 홍천 내면과 인제 합강정 사이에 자리한 내린천에 주목한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 작업인 〈내린천 이야기〉(2023,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3분.)로 참여했다. 영상의 끝에는 당시 히트곡인 뉴진스의 〈Super Shy〉라는 곡을 개사해서 노래와 함께, 내린천을 같이 걸었던 홍천 시민 김중엽 씨와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그전에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청년 향토 결사대를 기리는 ‘현리지구 전투 충혼비’나 한국전쟁 당시 주요 격전지였던 매봉·한석산전투를 기리는 ‘매봉 한석산 전적비’를 방문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처럼 역사의 상흔과 현재의 쾌락이 뒤섞인 작업에서 작가의 말처럼 역사를 엄숙한 하나의 틀로 가두지 않으려는 지향이 엿보인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여기서 38선이 그어졌고, 그전에 북한이었던 곳이고, 그래서 저는 이곳이 남북한의 틈새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뭔가를 탐험하는 거는 물리적인 공간만 탐험하는 게 아니거든요, 시간의 지층도 탐험하는 거거든요. 다른 감각으로 접근하는 것! 이른바 분단의 역사나 접경 지역을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천편일률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진지하게 다룬단 말이에요. 근데 그걸 다루는 감각이 굉장히 규범화돼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구체적으로 지역의 욕망은 어떻게 발현될까. 도시와 다른 지점은 뭘까라는 질문은 도시의 힙함, 유행 따위와의 비교를 추동하게 한다. 반면, 강 작가는 욕망 체계의 재배열, 길들지 않은 욕망의 발견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어 보인다.
“참여자 중에 한 분이 이런 체험기를 남겼는데, 요새는 캐리비안 베이나 풀 빌라 가서 노는 것보다 시골 계곡에서 백숙 끓여 먹는 게 더 힙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했어요. 그게 욕망이 바뀌는 거잖아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욕망이 생기는 거죠. 그런데 사실 자신이 있는 이곳이 익숙한 곳이 되면, 완전히 그 지역에 정착하게 되면 사실 본인한테는 새로운 것이 아니게 되겠죠. 그렇지만 이 프로젝트의 공간은 도시와 시골의 틈새 어딘가에 있는 공간인 거죠.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공간.”
익숙해진다는, 소위 관성에 젖는다는 딜레마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거기에는 매개자의 숙명, 굴레가 갖는 일종의 선물 같은 시간이 발생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자연이 주는 쾌락은 언제나 최상급의 행복감을 주는 듯 보인다.
“여기 새로운 여행자들이 계속 오고, 그들의 시선으로 다시 또 보게 되는 거예요. 여름에 덥잖아요. 계곡만큼 시원한 데가 없거든요. 계곡에 가서 도시락을 먹거든요. 거기서 책도 보고, 너무 좋잖아요. 근데 처음엔 좋았는데, 그냥 ‘루틴’이 되죠. 근데 제가 그렇게 노는 거를 보고 따라오는 사람들은 또 새롭게 보는 거고, 그럼 나는 또 새로워지는 거죠. ‘도시인의 어떤 삶을 좀 탈피해서 이렇게 시골 지역의 자연 이런 데에서 뭔가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까지 회복하고 좀 달라져야 된다.’ 여기 오게 되면 반드시 트레킹이나 하이킹을 해야 되거든요.딴 거 할 게 없어요. 도시는 각종 문화시설들, 미술관이라든지 영화관이라든지 각종 문화시설이 많잖아요. 근데 인제의 95%가 다 산악 지역이에요. 사람은 극히 좁은 지역에 몰려 살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자연을 즐기려면 하이킹도 하고 등산도 하고 그래야 되죠. 도시에 있는 문화시설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 되잖아요. 도시에서 삶은 돈하고 직결이 돼 있고, 내 경제 규모에 따라서 누릴 수 있는 대상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어요. 내가 연봉이 얼마면 요 정도 즐기고, 그것도 등급(grade)이 아주 세분화돼서 나뉘어 있단 말이죠. 근데 자연을 즐기는 데 무슨 돈이 필요해요! 지금 다 돈이 안 드는 거죠, 여기서는. 근데 이른바 자본주의는 싫어하겠죠. 오히려 자본주의가 좋아할 수도 있는데, 이런 데서 재충전을 해서 다시 또 도시에 가서 열심히 일하고, 가성비가 커질 수도 있는 거겠죠. 어쨌든 이곳에서는 기존의 경로 의존성이나 획일화된 욕망에서 벗어나 좀 욕망을 다양화하고 다변화하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도시는 선택의 기회가 많고, 여기는 선택의 기회가 한정적이거나 없어질 것 같잖아요. 근데 반대라는 거예요, 제 생각은.”
흡사 작가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주창하고 있는 거 같지만, 가장 최신의 기술이 매개되는 온라인 플랫폼인 클럽하우스와 거의 동기화된 일상을 살아간다. 한쪽은 자연, 다른 한쪽은 클럽하우스인 게 아니라, 자연을 돌아다니면서 클럽하우스가 켜져 이를 매개하는 것이다. 강 작가를 중심으로 클럽하우스를 찾는 이들은 대체로 인제 지역민이 아닌 도시인, 지역의 청년 세대, 예술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그들과의 연대를 통해 마치 예술이 아닌 곳에서 예술을 발명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예술계 혹은 예술 제도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제스처로도 보인다.
“클럽하우스도 저한테는 설악산 같은 곳이에요. 미지의 자연이에요.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잖아요. 정글이잖아요. 내가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튀어나와요. 이곳은 기존의 경로 의존성을 탈피해서 의외성에서 나오는 인간관계에서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는 실험을 계속할 수 있는 곳이죠. 우리 도시의 삶은 커뮤니티가 어떻게 결정돼요? 출신, 지역, 학벌, 경제 규모… 그래서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다른 사람들 배척하고 혐오하고… 능력에 따라서 내가 속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딱딱 정해지잖아요. 그래서 내가 열심히 해서 나를 업그레이드하고 자기 계발을 하면 내가 속하는 커뮤니티도 하나씩 업그레이드되고, 사는 지역도 업그레이드되고 하죠. ‘능력에 따라서 소비한다’ 시티 라이프는 배우자를 찾는 것도 능력에 따라서 찾는 거잖아요. 결혼 정보 업체에 가면, 내 능력에 따라서 그에 맞는 파트너가 정확하게 배치되는 거잖아요. ‘답정너 가이드라인’에 의한 우리의 획일적인 쾌락과 욕망을 개방해야 된다고 봐요. 그걸 개방하려면 일단 획일화된 ‘욕망의 고나리질’로부터 피해야 돼요. 셸터가 필요해요, 우리는! 그 셸터 역할을 이런 게스트하우스가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죠.”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회화란 어떤 의미일지를 물었다. 최근 작가의 브이로그 형식의 연작을 보면, 예술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일상에서 출발하면서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팝아트 작가로 잘 알려진 작가가 어느 순간부터 자연에 들어가서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바다.
“일단 제가 주력으로 하고 있는 거는 일종의 커뮤니티 아트라고 볼 수 있겠죠, 기존 미술 제도권의 좌표에서는. 그런데 회화 작업은 저한테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업이에요. 물론 커뮤니티 작업도 좋아하지만, 약간 그거는 의무감이 있거든요. ‘나 이거 해야 돼!’ 이런 거. 근데 회화 작업은 일단 제가 되게 좋아하는데,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작업은 프로젝트의 성격이 있어요, 던져놓고 내가 따라가는(*프로젝트의 어원적 의미가 ‘앞으로 던지다’라는 뜻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데 회화 작업 같은 경우는, 이른바 수행성이라고 하죠. 그게 좀 더 강조된다고 보죠. 그냥 쉬운 말로 하면, 캔버스에 내가 붓질을 이렇게 하면 약간 수양이 된다고 할까요, 명상이나 운동하듯이. 그래서 저한테는 이거 빼먹을 수 없는 거죠. 제가 등산하면서부터 모든 걸 등산처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회화는 등산에 좀 제일 가까운 것 같아요. 등산은 날아갈 수는 없잖아요. 내 발로 걸어서 가야 돼요. 마찬가지로 회화는 손으로 걸어가는 등산 같은 느낌이에요. 시티 라이프에서는 피트니스 클럽 가서 딱 정해진 대로 하잖아요. 약간 사육당하는 것 같거든요. 가둬놓고 먹는 것도 통제하고,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거든요. 회화는 이렇게 걸어놓고, 조금씩 고치고, 또 볼 때마다 좀 달라 보이고 그러는 게 자연하고 좀 제일 닮아 있다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제가 좋아하고 필요해요, 운동하듯이!”
이야기는 비교적 짧았고, 대부분 여기저기 인제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2박 3일이 흘러 인제터미널에서 강 작가와 인사를 나눴다. 잠깐 남는 시간에 터미널에 붙은 인제 지도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제(麟蹄)’는 기린의 발굽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린은 『산해경』에 나오는 전설의 동물로, 용의 머리를 한 사슴이다. 그전에는 기린이 아닌 돼지 발굽이라고 해서, ‘저족현(猪足縣)’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세로로 긴 지형을 지닌 인제는 앞으로도 가볼 곳들이 꽤 많았다. 속초·양양의 외설악이 아닌 인제의 내설악, 또 내설악의 백담사, 그리고 엄청 호랑이가 많던 대암산, 지리산 둘레길보다 방대한 인제천리길…. 그리고 2년 전 찾았던,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 홀로 백도사가 살고 있던 산 중턱의 마장터의 기원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지금은 백패킹의 성지로도 불리지만, 원래 황태의 연결고리로 작용했다.
“신선봉하고 진부령 사이 쏙 들어간 이곳(마장터)은 보부상들이 건널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리고 이 용대리가 황태 덕장이 되는 거예요(마장터는 용대리와 도원리를 연결하는 샛길이다). 동해에서 잡은 명태를 차가운 계곡 바람을 맞으면서 얼렸다 녹였다 황태를 만드는 거죠. 명태가 뭐 산골짜기에 날 리가 없잖아요. 마장터 덕분에 인제에도 명태가 수급 가능했던 거죠.”
활발하게 팝아트 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삶에서 제도 바깥의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작가가 인식했던 계기는 아마 2014년의 지리산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 더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건 그 제도 바깥의 영역에서 드물고도 귀중한 쾌락, 일종의 ‘신의 물방울’이 있고, 작가는 그걸 향유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 실천은 주체의 변신과 욕망의 재배치를 통한 세계에 대한 다른 관점과 수행이다. 이는 닫힌 자아의 세계로 수렴되지 않는다. 다른 ‘사회’를 위한 특수한 전략이 요청되고, 연대 역시 필요해진다. 작가의 클럽하우스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한 자아의 성찰과 변환은, 그 전략의 주요한 방식이다. 시티 라이프의 닫힌 사이클에서의 해방이 가능할까. 나아가 예술 제도의 견고한 구조 너머의 실험이 가능할 것인가. 그렇지만, 질문은 다시 형질 변환을 이루고 있었다. 곧, ‘예술 제도의 구조 바깥에서 비식별되는 예술의 형태는 어떻게 가시화될 수 있을까?’ 이것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의 엄격한 분별을 재영토화할 수 있는가의 차원에서.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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