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신세대 담론의 작은 역사: 2013-2016
    Column 2019. 2. 12. 14:25

    안대웅

    이 에세이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벌어진 세대 담론을 살핀다. 여기에 관해서는 다양한 논평들이 이미 나왔지만, 나 또한 여기에 일정 부분 가담한 자로서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럼에도 이 주제를 굳이 다시 꺼내든 것이 개인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세대 담론이 출몰하게 된 배경은 여전히 미술계에서 문제적이며, 이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주목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다고 본다. 이 글을 통해 살피고자 하는 것은 그 배경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살필 수는 없으므로 중요한 세 장면을 꼽았는데, 그것은 2013년 미술생산자모임의 토론회, 2014년 홍태림의 공장미술제 비판, 2015년의 굿-와 신생공간이다. 앞으로 이 글은 세 장면의 연관 관계를 검토하면서 세대 담론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소 두서없이 앞뒤를 왔다 갔다 할 텐데, 난삽함에 미리 양해를 구한다.

    세대교체 이론?

    <청년 작가로 사는 길은 멀다>, 더무브, 2014.[각주:1]

    2013년 통의동 시청각에서 미술생산자모임의 공개 토론회가 열린다. 미술생산자모임은 2012년 총파업 퍼레이드의 참가자 일부가 만든 단체로, 미술창작환경과 미술제도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삼는다.[각주:2] 이 행사는 그들의 첫 번째 공개토론회로, 좁은 장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를 모았다. 현장의 작가뿐만 아니라 공립 미술관 큐레이터, 대안공간 및 큐레이터, 심지어 예비 작가나 비미술계 인물까지 몰렸다는 것은 이들이 내세운 주제가 사회적 인식 어딘가를 찔렀다는 것을 분명하게 방증한다. 발표는 경제적 곤궁에 관한 젊은 작가의 경험담으로 포문을 열어, 문화 행정의 부조리를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을의 분노를 쟁점화하려고 했는데, 그중 여러 번 반복됐던 화두 하나는 아티스트 피(artist fee)’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었다.[각주:3] 요컨대, 국공립미술기관의 전시 참여 시 정당한 사례비를 요구하자는 것이다.

    이 도발적인 화두는 당장의 큰 반향을 이루어 내는 대신 유령처럼 미술계를 떠돌았다. 그러다가 다시 공론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듬해 4회 공장미술제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하여라는 홍태림의 글에서였다. 이 글은 날림 기획을 통해서 학생 작가들에게 좋지 않은 무대를 제공했으며, “참여한 학생 작가에게 사례비를 주지 않은 점을 들어 공장미술제가 작가를 착취했음을 통렬하게 비판했는데, 그가 참여 작가에게 촉구한 제안은 이런 것이다. “회화작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그 자리에 뒤집어서 놓아버리고, 비디오 작품을 출품한 작가들은 자신의 비디오 전원을 꺼버리자. 설치작품을 출품한 작가들은 자신의 설치 작업을 걷어버리자.”[각주:4]

    홍태림의 비판은 SNS상에서 공감을 얻으며 당시 현대미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당시 총괄 디렉터였던 서진석은 토론회를 열어 급한 불을 진화하기에 나선다. 하지만 이것이 외려 불쏘시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토론회에서 사회자로 나선 미술비평가 임근준은 현대미술계에 대안공간 세대로부터 공공연한 청년 착취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대안공간 시대를 종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각주:5] 이로써 미술생산자모임이 한 차례 제기했던 젊은 작가의 현실적 곤궁의 문제는 세대 갈등으로 번지게 된다.

    실로 임근준은 독특한 세대론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위기의 한국현대미술계와 청년 세대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2013년의 글에서 이미 그는, IMF 금융 위기 이후 유학파와 대안공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2000년대 미술 현장을 한 세대적 특징, 심지어 한국당대미술의 황금기로 간주하고, 2006년 미술시장의 버블이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와해되는 과정에서 88만원 세대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각주:6]

    2013년 현재, 그들은 마땅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가난에 허덕이며 국공립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돌며 간신히 창작을 이어나가고 있다. 정치적 세대화의 기회를 잡지 못한 그들은, 구세대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무한 반복하며 양질의 전시 기회가 오길 갈망하지만, 구원의 손길은 나타날 기미가 없다. / 국내의 힘 있는 큐레이터들의 면면을 보면, 대개 1950년대 후반생, 1960년대 초중반생이기 때문에, 아랫세대에겐 여간해선 좋은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동년배 작가들과 작업하기에도 바쁜 기득권자들에겐, 197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작가들에게 애정을 표할 의지나 여력이 없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88만원 세대에서 그에 대적할 만큼 힘 있는 큐레이터나 평론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이러다 대가 끊길 판이라는 한탄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젊은 세대의 작가 일군은, 386세대들이 일군 담론적 얼개에 맞춰 창작하는 몹쓸 경향을 뵈기도 한다. 주류 미술계의 말단 자리에라도 앉고 싶은 것일까?[각주:7]

    기실 정체성 정치와 세대론을 합쳐 놓은 듯한 이런 관점은 우석훈과 박권일이 쓴 2007년의 화제작 88만원 세대의 요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각주:8] 두 저자가 보기에 IMF 경제 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급속도로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속으로 편입되며, 그 후 10, 무한대의 경쟁과 유래 없는 승자독식제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이때 벌어지는 배틀 로열은 이들이 보기에 세대 내 경쟁이기도 하지만 세대 간 경쟁이기도 한데, 여기서 20, 88만원 세대는 부모뻘의 유신 세대와 삼촌뻘의 386세대 사이의 경쟁에서 필연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점한다.[각주:9]

    오늘날 대부분의 조직에서 인사권을 가진 세대는 유신 세대이지만, 곧 그 권한은 386세대로 넘어갈 것이다. 이 상황에서 별도의 그룹을 만들지 않을 확률이 높은 20대의 아주 일부가 윗세대에게 포섭되어 대다수의 20대를 소외시키는 일들이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 이걸 밖에서 보면 ‘20대가 20대의 적이라는 상황으로 해석될 것이다. 20대에게 주어진 승자 독식 게임은 사실 세대 간 경쟁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매우 거칠고 불행한 승자 독식 게임이다.[각주:10]

    임근준이 말하는 대안공간 세대는 거칠게 두 저자가 말하는 (아마도 X세대를 포함하는) 386 세대에 해당할 수 있으며, 얼핏 20대에게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고 권유하는 우석훈, 박권일과 대안공간 루프의 운영을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임근준과, “회화작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그 자리에 뒤집어서 놓아버리고, [...] 설치작품을 출품한 작가들은 자신의 설치 작업을 걷어버리자고 문제제기하는 홍태림의 모습은 기묘하게 겹친다.

    하지만 그럼에도 88만원 세대의 임근준 판본에는 더욱 비관적인 의식이 깔려 있는데, 2009주간 한국에 기고했다는 글은 이를 다소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한국 현대사를 10년 단위로 끊으며 세대전쟁의 서사로 나열하는 이 글에서, 임근준은 88만원 세대에게 386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 판도를 전복할 힘이 없으며, 이들과 386의 자녀 세대, 88년 유학 자유화 이후의 조기유학세대와의 경쟁에 관해서도 글쎄라고 진단하고 있다.[각주:11] 임근준은, 또한 이 글에서, 자신이 이 세대 간 전쟁을 엘리트 사이의 전쟁으로 본다는 점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큐레이터를 작가의 대변자로 위치시키며, 88만원 세대 작가가 대변자를 갖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논리와 거의 같다.[각주:12] 이렇게 우월한 개인을 우월한 세대와 동일시하고 세대 사이의 생존 경쟁을 자연법칙화함으로써, 임근준 버전의 ‘88만원 세대는 보수 우파의 논리와 가까워지며, 그런 의미에서 그가 자기계발 담론에 관심을 둔 것은 필연일지도 모른다.[각주:13] 실로 한 때 굉장한 유명세를 탄 그의 대학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에게배틀 로열에서 승리하기 위한 실용적인 병법서이자 88년 태생의 세대에게 보내는 구애이기도 한 것이다.[각주:14]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세대 내/간 갈등을 유사 우생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공장미술제에 매끄럽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알다시피 공장미술제는, 좋든 싫든, 젊은 작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기획이었다. 만약 이 싸움이 세대 간 갈등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88만원 세대 담론이 세대 간 이기주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서진석은 루프 세대의 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줬어야 말이 되지 않을까? 이런 견지에서 보면, 서진석의 제4회 공장미술제는, 성공적이었든 그렇지 않든, 386세대가 보유한 자산을, 자신의 세대가 공유하는 어떤 윤리관, 아마도 연대의 미덕을 경유해 아래 세대를 향해 확대한 결과일지도 모른다.[각주:15] 유진상의 말처럼, 오히려 기성세대라고 토론에 나선 서진석, 김노암 등은 사용자라고 하기엔 턱없는 개인이고, “지난 15년여의 기간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안공간을 묵묵히 꾸려온 자원봉사자같은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각주:16] 그렇다면 두 세대가 경험하고 있는 미술계 내 조건이 크게 다른 것일까?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기회특정적 세대

    여기에 답하기 전에 빠르게 이후의 상황을 갈무리해 보도록 하자. 새로운 세대의 호명을 향한 응답은 2014년 말 나와 내 동료가 조직했던 좌담회 안녕 2014, 2015 안녕?가 처음 시도했고, 2015년의 이른바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이라는 슬로건으로 본격화된 이후, 굿-를 필두로 신생공간으로 짧게 형상화된 다음,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2016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서울 바벨과 함께 상징질서 내 어떤 위치를 점한 것과 동시에 일단락 된 것처럼 보인다. 내가 궁금한 것은, 무엇이 그들 자신을 (대안공간 세대에 비해) 새로운 세대라고 인식하도록 만들었는지다. 권시우는 동세대의 일원으로서 안녕 2014, 2015 안녕?좌담회 이후의 새로운 세대의 움직임에 관해 주시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의 글은 대체로 일관되게 대안공간 세대로부터 새로운 세대를 분리해 내려고 노력한다.

    안녕 2014, 안녕 2015?에 패널로서 참석한 이들이 운영하고 있는 대안공간들은 90년대 후반에 성행했던 대안공간들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미술계 키드로서 상징되는 90년대 후반의 대안공간들이 키드 이후의 키드들을 재생산하기 위한 일종의 인큐베이팅 구실을 했다면, 2010년대 이후의 대안공간들은 일군의 젊은 작가들을 특정한 전시 담론 안으로 소급해내더라도 그 이후의 경로에 대해선 제도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상태다.[각주:17]

    이 글에 따르면 90년대 대안공간과 2010년대의 대안공간은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서, 90년대 대안공간이 작가를 제도에 링크시키는 기능을 했다면, “2010년대 이후의 대안공간,” , 이후 신생공간이라고 불리게 될 세대적 조건은 그것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권시우는 단호하게 문화적 불모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제 청년세대 미술에 남은 유효한 전제조건이 그 불모 자체를 의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상태참조에 관한 그의 독해는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상태참조는 엄밀히 말하자면 작가 아닌 이들이 최소한의 여건만을 갖춘 공간에 모였을 때, 외려 어떤 작가적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지에 대한 모의실험에 가까우며, “임대라는 성질을 작업과 병행하며 의식화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러고선 이렇게 덧붙인다. “이때의 임대는 굳이 상태참조가 무대로서 삼은 임대공간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작가 역시 기성 미술 제도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라는 제도를 경유해야만 하고, 이때 촌각을 다투며 경연되는 작업들의 개요는 각자가 선점한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작동되기 때문이다.” 권시우는 신생공간, 더 정확하게는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임대적 네트워킹 방식 자체가 세대적 습성과 가장 부합되는 지점에서 마련된 공론장,” 다시 말해 대항제도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했지만, (권시우 자신이 지적했듯이) 상태참조의 모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기성 제도를 향한 세대적 강박 역시 역력하다. 아니라면 상태참조의 형식이 오늘날 관례화된 커리어의 프로토콜, 다시 말해 작업계획서를 쓰고 프레젠테이션하고 선발되어 전시하는 임대적 과정을 굳이 모방할 필요가 있었을까? 거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관 신설을 요구하는 행동주의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그것이 비록 액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어떠한 망령에 사로잡혀 있을까? 의태라는 전제 조건이, 거듭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전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만약 이들에게 세대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실로 양가적으로 보인다. 표면 위로는 제도를 향한 냉소를, 표면 밑으로는 제도를 향한 열정을 동시에 깔고 있으며, 이 둘은 기회를 계기로 이따금씩 서로 교차하거나 반전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 88만원 세대 담론이 형상화하고 있는 20대의 모습이 겹쳐진다. 희망적인 판본을 보자면, 당시 프레젠테이션의 장소에 진입할 커리어도 지니지 못했던 이름 없는 젊은 작가/지망생은 (교역소 같은 신생공간의 경우처럼) 그들만의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거나 (청년관의 경우처럼) 짱돌을 든다. 하지만 다소 암울한 판본 역시 존재하는데, 여기서 젊은 세대는 여전히 개미지옥 게임을 냉혹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다.[각주:18] 이것을 극명히 보여주는 한 가지 예는 다음의 문답이다. 안녕 2014, 2015 안녕?좌담회에서 임근준은 상태참조를 만든 교역소를 기회특정적이라고 부르며, 현대차 프로젝트 같은 거액의 기회가 오면 어떻게 할지를 물었는데, 김영수가 대답하길, “저희는 2억 받으면, 꼭 똥을 싸고 싶진 않겠죠, 똥을 싸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받으면 합니다. 저희 아까 얘기했, 기회 특정적? 이런 이야기 하셨는데. 사실 여기 공간도 그렇고 그게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기회가 오면, 합니다 저희는.”[각주:19]

    대안공간 이후

    다시 공장미술제로 돌아오자. 이 전시와 관련해 90년대의 기성세대와 2010년대의 신세대 사이에는 어떤 인식차가 있을까? 같은 글에서 홍태림은 공장미술제의 문제를 두 가지로 꼽는다. “첫 번째는 날림 기획을 통해서 학생 작가들에게 좋지 않은 무대를 제공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참여한 학생 작가에게 사례비를 주지 않은 점이다.” 그런데 그는 이어서 꼭 돈이 아니더라도 기획을 하는 주체들이 좋은 기획을 통하여 작가와의 신실한 만남을 추구한다면,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도 의미 있는 창작문화를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재차 주장한다. 요컨대, 돈은 중요하지만 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좋은 기획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장미술제가 만약 서진석의 기획의도대로 흘러가 온전히 양질의 기획/기회를 제공했다면 문제는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큐레이터의 역할론이다. 동시대 미술에서 단연코 큐레이터는 작가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일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이 효과일 수는 있다.) 큐레이터 역시 미술계 내 창작 행위에 종사하며 제 나름의 예술적 가치관을 (주로) 전시의 형태로 제시하려는 욕망을 가진다는 점에서 작가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창작자의 위치는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하지만, 분명한 것은 두 창작자가 같은 전시를 위해 모였다고 하더라도, 가장 성공적일 때도, 가장 실패할 때도, 두 작가가 서로 다른 만큼 큐레이터와 작가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좋은 기획이란 무엇일까? 창작이 그렇듯이 이 정의는 실로 모호해서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고 의도와 결과가 반드시 일치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 관계는 토의되어야 하는 미술과 미학의 주제이고 나는 이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홍태림의 글에서 좋은 기획의 정의나 공장미술제의 기획적 실패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홍태림은 우회를 시도하는데, 사례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 작품 명제를 작가가 직접 제작하고 붙이게 했다는 점, 작가에게 지킴이를 요청했다는 점 등을 들어 기본적인 과정이 누락된 이런 기획전시에서 생산적인 그 무엇도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 홍태림에게 기획력은 좋은 행정력과 동일하거나, 최소한 좋은 행정력이 없다면 좋은 기획도 배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각주:20] 따라서 앞서 한 차례 살폈듯이, 홍태림은 돈보다 좋은 기획을 주장했지만, 역설적으로 좋은 기획은 진행비를 갖춰서 원활하게 돌아가는 행정력에서 나오며(진행비가 없는 원활한 행정력은 곧 행정 인력의 착취를 의미한다), 사례비는 그런 점에서 기획의 실패 후 나중에 되찾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근본적인 차원을 가진다. , 일을 제대로 하려면 돈과 제도적 기반부터 준비하라는 것이다. 아니면 시작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홍태림의 돈보다 좋은 기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아시아프와 상업 갤러리의 100만원짜리 대관 전시를 냉소하고, “작가와의 신실한 만남을 강조하는 것으로 봤을 때, 홍태림은 기획자에게 전시의 순수성/비상업성과 참여 작가가 인정할 만한 진정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순수성과 진정성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알 수 있는 것은 홍태림이 사례비를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계속해서 좋은 기회/무대를 동어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잠깐 홍태림이 순수성과 진정성의 반대말로 사용한 동원이라는 말을 잠깐 곱씹어 보는 것은 유용할 듯하다. 일상적 감각에서 동원이란 말은 어떤 집단에 비자발적으로 예속되어서 권력 관계에 의해 원치 않는데도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용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분명해 보이는 것은, 젊은 작가/세대에게 비친 미술계는, 유진상이 본 것과는 다르게, 개별화된 창작 행위자의 우연한 조합이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업장이라는 사실이다.[각주:21] 여기서 젊은 작가에게 기성 큐레이터/세대는 이 업장의 권력으로 비친다. 즉 거칠게 말해 그들에게 선택되면 출세하고 찍히면 이 업장 내에서 매장된다는 것. 이 틈에서 노오력하면서 기회를 엿봐야 한다는 것. 이것은 여전히 한국의 거의 모든 조직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자연 법칙으로, 과거 미술계에는 ‘10년만 버티면이라는 신화가 있었다. 하지만 신세대가 보기에 업계의 주기는 훨씬 더 짧아졌으며 좀 더 확실한 미래적 절차가 없다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다. 기회특정성의 담론이 발생한 것은 여기가 아닐까?

    이런 견지에서, 젊은 작가/세대가 인식하는 몇 가지 전제, 첫째, 젊은 작가는 나를 알아봐 줄 좋은 무대가 필요하고 둘째, 미술계는 출구 없는 거대한 업장이며, 셋째, 서진석/기성 큐레이터는 업장의 권력이다가 사실이라면, 공장미술제야말로 (최소한 표면적으로)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좋은 기회이기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서라면 동원에 의한 내 개인의 노력과 손실은 감수할 만한 일종의 투자이기도 한 셈이다. 이 지점에서 홍태림은 물음표를 친다. 서진석이 대안공간 루프에서 동료 작가와 함께 신(scene)을 만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공장미술제는 젊은 작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능력함을 판단한 근거가 한 차례 살폈듯이 작가적 대우의 부실함이며, 이것의 근본적인 문제는 행정력에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젊은 작가는 너무 앞질러 갔다고. 실로 공장미술제에 참가한 작가는 프로라기보다 아직 아마추어에 가까운 학생이며 이들은 앞서 살핀 것처럼 소위 인큐베이팅을 원하는 처지에 있다. 그럼에도 공장미술제에서 주요 비판 중 하나는 프로에 준하는 작가 대우에 관한 것이었다. 사례비를 지급하지 않고 명제판을 붙이게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참여자를 작가 대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기획자가 보기에 현실적으로 아마추어/신진 작가에게 그런 일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제대로 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작가이고 싶기에 공장미술제에 참가했으나 작가 대우를 받지 못해서 이들은 화가 난 것일까?

    여기에 인식차가 있다. 기성세대는 공장미술제를 작가의 예비 단계의 어디쯤으로 생각하지만, 신세대에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커리어다. 그 당시 우후죽순 생긴 국공립과 민간의 인큐베이팅/지원 프로그램은 어떤 과정을 거쳐 작가가 만들어지는지를 미술계에 다소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또한 이 제도에도 분명히 질적인 차이가 있으며, 좋은 프로그램에 선정되는 것이 나중에 좋은 기회로 이어진다. 예컨대, 인사미술공간에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거기서 개인전을 개최한 다음 국공립/해외 레지던시와 그룹전을 돌다가 혹시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모색의 라인업에 들어간다는 꿈 같은커리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공장미술제도 신세대에게는 자신이 실험성을 시험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의 장이라기보다 수많은 인큐베이팅 제도 중 하나의 옵션이다. 갓 미술계를 향해 발을 디딘 신세대에게 비친 미술계는 이미 이렇게 만들어져 있는 업계라고 봐야 한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다름 아닌 대안공간 세대가 미술계에 갓 나왔을 때 경험하지 못했던, 하지만 그들이 이후에 미래 세대를 위해 구축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론은 다소 싱거운데, 서진석이 공장미술제를 통해 야심차게 제시했고 홍태림이 그것을 비판하고 또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모두 동일하게 (제대로 된) 새로운 작가 발굴, 인큐베이팅 시스템이다. 여기서 좋은 기회란, 나를 미술계에 제대로 부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의미하며, 이것이 가능하다면 사례비는 무시해도 좋다는, 어쩌면 90년대 대안공간이 만들어온 잔해를 그대로 반복하는 주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들이 동원되는 줄 알면서 전시에 참가한 이유는 어떤 점에서 제대로동원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서진석은 자신의 미술계 내 권력으로 동원의 결과를 보증해야만 했다. 문제는 한 차례 살폈듯이, 더욱 좋은 조건의 지원제도가 많은 시점에서 공장미술제는 그리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는 사실에 있다. 때문에 서진석의 입장에서 공장미술제는 여전히 신진작가 발굴을 의도한 대안적 지점에 위치한 기획이지만, 홍태림이 보기에 그 대안성이란 이미 실효성 없는 제스처에 불과하다. 또한 바로 그런 의미에서 공장미술제를 향해 터져 나온 신세대의 불만을 유진상이 일종의 노사 관계로 보거나 임근준이 갑을 관계로 본 것은 어떤 의미에서 타당해 보이지만, 서진석이 진정한 사용자나 갑이라고도 볼 수 없다. 홍태림 현상에서 볼 수 있듯, 공장미술제가 이미 철지난 시대착오적인 무용한 대안이라고 비판받은 그 지점에서 이미 최소한 레임덕에 진입해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임근준의 지적은 지나가면서 한 말임에도 의미심장하다. “서진석씨가 보다 심각한 비도의 인물들에 비해서 비판하기 쉬운 상대이기 때문에 비평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각주:22]

    그렇다면 서진석은 이 시점에서 왜 여전히 이런 공회전전시를 강행했을까? 어떤 이익을 위해? 여기에 관해 임근준은 관례화된 지원금의 문제적 사용을 명쾌하게 지적한다.

    내가 알기론, 지원금에 의존하는 대안 기관과 대안적 페스티벌의 기획에서, 이런 문제는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지원금에 기획비가 포함돼 있지 않다보니, 왕년엔 의욕적인 독립 큐레이터들이 사비를 탕진해가며 전시를 강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옛말이고, 이제 지원금의 중복 수령, 지원금의 변칙 운영은 상식처럼 미술계에 떠돌고, 반복되는 일에 지친 기획자들은 타성에 젖어 젊은 작가들과 큐레이터 지망생들을 소모품처럼 다루기도 한다. 작가가 개인 자격으로 받은 지원금을, 기획자 측이 마치 제 덕에 받은 돈인 냥 행세하며 예산 집행에 관여하는 경우도 있다. 약자의 위치에 처한 작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기획자의 지시에 따르거나, 아니면 초청 수락을 취소하고 지원금을 반납해버리기도 한다.[각주:23]

    사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의 동시대미술 현장에서 대안공간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도 기회특정성이 강력하게 개입해 있으며, 이것이 지원금과 시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끝내 대안성이 몰락하게 된 근본 원인일지도 모른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갤러리 킹을 운영했던, 스스로를 대안공간 세대 중에서도 중간 세대라고 칭하는 바이홍은 사단법인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가 설립된 2005년을 의미심장하게 지목한다. 그는 이 법인의 발족에서 두 가지 의문점을 떠올리는데, 그중 하나는 사단법인 전환을 통해 드러났던 그간의 어떤 필요성,” 다른 하나는 “‘비영리라는 문구가 내비치고 있는 지향성이다.[각주:24] 바이홍은 전자를 20005월 문화관광부가 수립한 대안공간 지원책으로부터 시작해, 노무현 정권의 문화예술정책 기조인 사단법인 요청의 흐름으로 본다. 반면 후자의 경우, ‘비영리는 그즈음부터 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대안공간이 스스로의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레토릭이다.[각주:25] 다시 말해, 결과적으로 대안공간은 비영리를 표방하면서도 국가재원을 조달해 작가를 키워 시장으로 내보내는 창구로서 기능했다는 것이다. 2005년 아라리오 갤러리가 대안공간 작가를 대거 영입한다. 바이홍이 박진감 넘치게 묘사하는 이후의 상황은 파란만장하다. 길게 인용해보자.

    2000년대 중반까지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그 어느 때보다 잘 판매되었고, 팽배한 기대감이 그들을 벅차게 했다. 이러한 열기는 전세계 주요 미술시장의 흐름과 동일선상에 있었다. 미국 학부 졸업생들의 포트폴리오가 바로 주류 상업 갤러리에 넘겨져 전시/판매된다는 소식은 동시대 한국 미술작가들에게 더 큰 영역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었다. 당시 아라리오갤러리 전속이 된 모 작가의 영문 홈페이지는 그런 현상의 반영이었다. / 작가뿐만 아니라 대안공간 운영자들에게도 일거리들이 넘쳐났다 국가와 지역을 기반으로 한 행사들이 곳곳에서 펼쳐졌고, 대안공간은 컨텐츠의 주요한 인적 인프라가 되었다. 대안공간의 재정 상황이 나아지며 운영이 수월해지는 듯도 보였다. 또한 일반 대중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극대화되었다. 그림 가격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가끔은 구매로 이어지기도 했다. 전에는 없던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홍대 앞은 그런 여러 가지 분위기를 복합적으로 지닌 지역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 가장 많은 수의 대안공간들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전시를 위해 벽면이나 주차장 등을 내어주는 카페와 술집 등이 곳곳에 들어섰다. 그런 흐름을 따라 2008년 카페 아트마켓이 기획된다. 신생갤러리와 카페들이 연합해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했다. 몇몇 콜렉터들이 소위 갤러리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하였다. 젊은 작가들은 그런 콜렉터들과 자주 만남을 가졌고, 대안공간의 디렉터와 큐레이터는 그들의 선생님 역할을 겸했다.[각주:26]

    여기까지가 행복한 서사다. 하지만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미술시장의 버블이 급속도로 꺼지면서, 대안공간의 큐레이터와 작가는 갈 길을 잃는다. 이들이 찾은 다음은 어디일까? 이 시점부터 미술계는 공공영역 의존도를 급속도로 높여간다. 국공립미술관에서도 동시대미술 (신진)작가의 소환이 잦아지며, 동시에 대안공간의 주요 작가는 하나 둘씩 제정된 미술상을 연달아 수상하기 시작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잠깐 주목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달라져 있는 (대안공간) 큐레이터의 위상이다. 바이홍의 묘사에서도 간간히 드러났던 것처럼, 이 시기를 거치면서 선생님 역할을 했던 큐레이터는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한다. 대규모 예산을 조직하고 집행할 수 있으며, 전시라는 플랫폼을 통해 작가를 이리저리 키워낼 수도 있다. 심지어 전시마다 작성되는 서문은 잡지 등 제한된 지면을 가지는 비평가보다 훨씬 폭넓은 비평의 기회를 큐레이터에게 허락했다. 더군다나, 지원금 제도 인프라가 더욱 활성화되면서 이들은 주요 심사위원 풀을 구성하게 되었다.

    큐레이터와 대안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공공영역의 보조금 장악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제 공공기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심사까지 하는 대안공간/큐레이터는 마치 국가가 보증한 준 공공기관 격의 위상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공장미술제가 조잡한 무대임에도 불과하더라도 신세대가 간과하지 못하고 동원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홍태림이 벗어나자고 주장했던 권력 관계다. 또한 보조금은 대안공간의 운영 면에서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는데, 임근준이 앞서 설명했듯이, 앞선 호황의 시대에 감수했던 도약의 반동을 보상하기 위해서 좋든 싫든 지원금을 통해서 재정난을 해소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서 공공영역의 보조금이 문화생태계의 진흥, 공장미술제의 경우 신진작가 발굴도 그렇지만, 부실한 공간 자체의 구멍을 메우고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여기가 홍태림이 그 무대의 비효능을 비판하는 지점이며, 그럼에도 서진석이 그 무대를 끈덕지게 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를 통해 진정한 사용자/, 열망과 냉소의 대상이 사실 서진석이나 90년대 대안공간이 아니라 (물론 둘이 종종 겹쳐 있더라도) 지원-제도 담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장미술제의 서진석을 홍태림은 갑으로 놓았지만, 서진석 역시 지원-제도 속에 예속되어 있다. 세대 이론은 이 지점을 흐릿하게 만든다. 임근준이 함영준과 현시원에게 노골적으로 요청했던 것은 말하자면 세대 내 대표성을 가지고 세대 간 전쟁에서 이겨 기성세대의 권력을 아래로 내리자는 것이다.[각주:27] 그런데 이때 권력은 지원-제도 담론 내부에 얼마만큼 관여할 수 있는지라서, 사실 그 주장은 둘에게 서진석의 역할을 빼앗아 서진석이 되라는 말과도 비슷하게 들린다. 그런데 세대 간 전쟁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해서 세대 내 경쟁의 갈등도 해소될까? 임근준은 여기에 대해서 별다른 흥미가 없는 것 같다. 어짜피 미술은 잘될 놈들만 하는 엘리트 사이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피와 틈새시장의 변증법

    다시 2013년의 미술생산자모임 토론회로 이동해 보자. 이후의 일군의 젊은 작가가 신생공간이라는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고 서울관에 청년관이라는 짱돌을 던졌다면, 2013년의 이 시점에서, 미술생산자모임은 아티스트 피라는 짱돌을 꺼내 들었다. 살펴봤던 것처럼, 미술시장이 대다수 현업 작가와 거의 무관하게 작동하는 상황에서, 공공영역에서 제공하는 활동은 작가 커리어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원하든 그렇지 않든, 얼마만큼 권위 있는 제도의 커리어를 많이 보유했느냐에 따라서 작가의 레벨도 대우도 정해진다. 이렇게 얼마 정도 상징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는 공공영역에 여전히 있지만(혹은 더욱 많아졌지만), 공공영역의 지원이 원칙적으로 사익 추구와 연결되어서는 안 되며, 이로 인해서 공공영역으로부터 보증되는 예술적 커리어와는 별개로, 작품이 판매되지 않는 한, 경제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은 사실 국공립 미술관과 그 언저리를 제외한, 대안공간과 소위 독립큐레이터, 작가 모두가 시달리고 있는 문제였지만, 당면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최우선시된 것은 공히 최고은법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였다. 관례적으로 활용되었던 수법은 공공기금의 카드깡이지만, 예술가는 이제 정당한 복지와 권리를 말한다. 왜 작가는 작업하기 위해서 범법 행위를 해야만 하는가? 전업 작가는 왜 고유의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위협을 겪어야만 하는가?

    여기서 작가 측은 고질적으로 예산 난에 시달리는 대안공간을 일단 차치하고서, 국공립미술관을 자신에게 서비스를 의뢰하는 소비자(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소비자는 컬렉터였다)와 비슷한 자리에 위치시키며, 예술 역시 노동인 한, 정당한 대가로서 아티스트 피라는 사례비를 여기다가 요구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고용계약의 관계냐 아니면 특수한 다른 관계냐를 따지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토론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작가가 국공립미술관을 작가 활동의 비교적 안정적인 주 무대로 인식했다는 사실과 함께, 또한 이것을 그들의 생존의 문제와 연결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런 움직임은 거듭 미술시장의 붕괴 이후 공공영역을 향한 미술계의 의존도가 급속히 높아졌다는 것을 상기해볼 때 전혀 특별하거나 놀랍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그들의 눈에 국공립 큐레이터가 수퍼갑처럼 비쳐졌으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 가능하다. (미생모 토론에서 당시 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였던 안소현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럼에도 여기 논의가 굴절되는 것은 문제 제기를 하는 작가의 위치 자체로부터인데, 아니나 다를까 문제 제기하는 제도에 기민한 작가는 대다수 알 만한 미술관이나 아트 레지던시, 지원이나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제도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이른바 나름 알려진 잘나가는 작가였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티스트 피를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미술생산자모임의 몇몇 작가는 88만원 세대에서 묘사하고 있는 매일 출근해서 8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90만원을 받는 통계 전문가와 비슷하다.[각주:28] 이 책에서 내세운 20대 당사자 운동의 모티베이션이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 쌓았음에도 잉여가 된 어느 명문대생의 억울함이라면, 이 문제는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아티스트 피의 문제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 내 질문은 이렇다. 이 전선에 들어서지조차 못한 작가는 어디에 있을까? 이 경우 아티스트 피란 정식 예술가 자격에 대한 상응물이라도 되는 것일까? 아티스트 피 담론은 이 문제에 관해서 특별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듯하다.

    이렇게 한쪽, 말하자면 나름 잘나가는 작가측에서 제도적 파이를 분배받는 투쟁 방식이 아티스트 피라면, 여기에 못 끼는 자격 조건의 작가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다. 나는 이 집단이 앞서 살펴봤던 신생공간의 주역이라고 생각하며, 세대론적 관점을 피하는 동시에(이들은 무엇보다 세대의 대표성을 지니지 않는다) 이들이 시장과 제도 모두로부터 소외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제부터 장외집단이라고 부르겠다. 이들은 작업 생산 이상으로 생존 신고 격의 네트워킹을 중요한 활동으로 생각했다. 교역소처럼 아는 사람을 그러모아 일시적 카니발을 열든, 아니면 반지하처럼 작가의 이름조차 숨긴 채 언더그라운드적 활동을 진행하든, 장외집단은 기존의 전시 프로토콜을 파격적으로 무시한 채, 그들 나름의 알쏭달쏭한 소통 방식으로, 모호하지만 분명히 실체는 있는 연대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들이 전시나 이벤트를 구성하는 대강의 방식은, 큐레이토리얼 리서치보다는, 알음알음 지인과 지인 추천을 기반으로 하며(함영준의 오늘의 살롱이 이 증상의 원조일까?), 대부분 큐레이터가 쓴 서문이 아주 짧거나 존재하지 않고, 도록도 만들지 않으며, 종이 포스터나 홍보 엽서 대신 일회용 스티커 등과 같은 소위 굿즈라고 부르는 기념품을 만들었다.

    이들이 기존의 큐레이토리얼 절차를 몰랐을 리는 없다. 차라리 그것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고 봐야 할 텐데, 그렇다면 이들은 스스로를 미술계 공중에게 어떻게 보여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들의 네트워크, 권시우의 용어로, 대항제도는 글 대신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말하자면 장외집단은 자신을 디자인했다. SNS 타임라인에는 전시의 정체를 표현해주지 않는, 예쁜 포스터가 간단한 전시 정보와 함께 폭발적으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포스터를 디자인한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이 마치 흥행 보증수표처럼 크레디트로 들어갔으며, 공간 구성조차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맡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는 주요 미술관급 전시에서 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SNS 타임라인에 흐르는 전시 리뷰는 비평적 응답이라기보다 재밌었다,’ ‘좋았다같은 단발성 취향 공유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런 찰나적 알아봐 줌이야말로 장외집단에겐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많은 신생 논자가 이야기한바, 있는 그대로를 관심 가져주고 지지해달라는 것. 조금이라도 비판적 의견이 개진되면, 그자는 일부 이너서클에게 사이버 조리돌림을 당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했다. 그렇게나 이미지가 중요했기에, 그들이 무엇보다 참지 못한 것은 공들여 디자인한,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 집단이 새롭게 보이는 것은 일정 부분 이들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제도 내에서 경쟁하는 대신 새로운 길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겨레의 노형석 기자는 대안공간 세대의 이젠 우리가 알아서 뜰거야!”에서 이젠 우리끼리 터 잡고 놀거야!”로 변화된 양상을 관찰했다.[각주:29] 이는 제도로부터 소외된 젊은 작가가 점점 히키코모리가 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 섞인 논평이지만, 순진한 생각이다. 이는 기성세대가 SNS에 익숙하지 않으며, 신세대가 무작정 기성세대와 분리되고 싶어 한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엇보다 기성세대, 특히 대안공간 세대는 SNS 활용에 있어 신세대와 별다른 정보 격차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장외집단 역시 자신의 네트워크 활동이 이들에게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의식하며, 여기서 자신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보여줘야 해 보이는지, 또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는 장외집단이 소위 말하는 인터넷 친목질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시하고 있었고, 그 독자가 세대 내 집단 구성원으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형석 역시 세대 내 구성원은 아니지 않는가? 또한 히키코모리가 어떻게 주요 일간지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박권일은 오래된 한 칼럼에서 주목경쟁이라는 말을 썼다. 요는, 주목과 관심 그 자체가 중요한 목적이 되어 버린 문화가 사회 현상이 되었다는 것이다.[각주:30] 왜 다른 목적을 위해 주목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주목 자체가 목적이 되었을까? 주목을 상회하는 값어치를 지닌 다른 목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지의 흐름과 평판이 지배하는 미술계 같은 생존 게임판에서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다. 가령 교역소의 <상태 참조>와 심사에 올라온 작업 포트폴리오나 프레젠테이션을 겹쳐 놓고 생각해 보라. 관람과 판단의 시간은 점점 짧아지므로 찰나 안에 진정한 나의 모습을 모두 보여줘야 한다. 흘러가면 끝이다. 그 전에 어떻게든 주목을 끌어내야 한다. 1초의 승부. 이것이 기회특정성을 구성하는 진정한 동기인 셈이다. 또한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주목경쟁이 순수하게 주목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목경쟁에서 일단 우위를 점하고 나면 2차적 이익도 따라붙는다. 수많은 광고주가 인플루언서에게 목을 매고 수많은 인스타그래머와 유튜버가 광고를 의식하고 사진을 찍고 클립을 만들 듯이, 주목경쟁에는 주목경제라고 부르든 경험경제라고 부르든 간에 매력적인 이미지의 소비를 둘러싼 경제학적 관심이 작동한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주목경쟁에서 장외집단이 진정으로 의식하고 있는 경제적 관심은 이제 인큐베이팅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지원-제도 담론일 것이다. 거의 모든 장외집단의 행사가 지원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다만 이들은 아직 국공립미술관이나 문예위 같은 기성급 제도라기보다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시혜성 제도, 청년 예술가 지원이나 미술시장 지원, 메르스 보조금 같은 비주류 보조금에 의존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뿐이다. 포퓰리즘의 시대에 주목할 만한 것을 보는 관객에는 당연히 제도도 포함된다. 장외집단의 셀프마케팅은 그런 점에서 가히 대성공을 이루었다. 머지않아 이들 중 몇몇은 셀럽이 되어 비주류 지원 영역에서 기성급의 제도 영역으로 진입한다. 강정석의 미술상 수상 같은 예도 있지만,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무래도 서울시립미술관의 결산 전시 서울 바벨이다. 미술관은 주지하다시피 미술현장이 역사화되고 역사가 미술현장이 되는 중요한 상징적 문턱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논의에서 더욱 중요해 보이는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여기서 홍태림이 말한 돈보다 좋은 기회가 무슨 의미인지 다소 분명하게 알 수 있는데, 사례비를 당장 받지 않더라도 좋은 기회를 얻는다면 미래에 사례비를 요구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 즉 미술관급 작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비하면 서울 바벨로 인해 신생공간 담론이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미술관급 작가의 아티스트 피와 장외집단의 대항제도는 결국 같은 곳, 지원-제도 담론을 맴돈다. 이는 그 장소를 경유함으로써만 불안정한 예비 작가가 안정적인 작가로 이제서야 생존할 수 있다는, 어떤 면에서는 순진한 믿음이자 절박한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굿-의 생존 게임

    신생공간이 장외집단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공유할 수 있는 대항제도로서 기능했다면, 다음으로 이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말하자면 장외시장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시장적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미술관급 작가가 최소한 국공립기관에게 아티스트 피를 주장할 수 있었다면, 장외집단에게 아티스트 피는 아직 가까운 이야기가 아니었고,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장과의 링크 말고 뾰족한 답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티스트 피가 미래를 위한 당위적 운동처럼 시작됐듯이, 장외시장 역시 진지하고 진정한 시장 개척을 의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작품을 유통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가지지 못한 그들이 보기에, 논리적으로 요청된다는 것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2015년 장외집단 네트워크가 모여 굿-를 열었다. 여기엔 작가가 만든 아트상품부터 진지한 작업, 퍼포먼스,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굿즈 등이 일관성 없이 디스플레이되었는데, 굿-기획팀은 이 아이템을 포괄하는 용어로 제시한 굿-를 애초부터 제대로 정의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기획노트를 보면 굿-즈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강조하고 있을 따름이다. 다만, 젊은 작가라고 부르든 장외집단이라고 부르든, 그들 사이의 끈끈한 연대와 이제 갓 시장의 규칙을 학습해 나가는 그들의 태도를 다소 겸손하게 제시하며, 그들 역시 굿-즈가 무엇인지 배워나가고 있음을, 일종의 노력하는 모습을 강조했다.[각주:31] 하지만 이런 심리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굿-개막 두 달쯤 전에 윤율리가 써서 화제가 된 하나의 유령이 미술을 배회하고 있다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굿-마니페스토급의 글에서 윤율리의 전략은 일종의 예방접종, 나날이 굿-에 부과되고 있는 기대심리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다른 정치적 목적을 위해 멋대로 신생공간에게 정체성을 부과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러나 어느날 무언가가 우리들 사이에 나타났다고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청년이라는 뜬금없는 자의식이나 신생공간 같은 것이 아니라, 기실 청년을 긴급히 호출해야만 하는 어떤 다급한 요청이나 그에 투사된 또다른 기성의 욕망들이지는 않았을까? 이렇게 정정해 말해볼 수도 있겠다. 누군가의 작은 월셋방에서, 작가들이 아름아름 모여든 작업실에서, 명시된 이름의 어떤 유/무용한 공간들에서, 청년들의 신생공간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늘 꾸준히 존재해 왔다. 다만, 이제 그것은 그들을 신생공간으로 명명하고자 하는 몇 가지 요구에 의해 이종의 전류처럼 서로를 간섭하게 되었다.[각주:32]

    이는 88만원 세대 담론에서도 일찍이 제기된 일종의 당사자주의다. 그렇다면 윤율리가 말하고 싶었던 당사자성이란 무엇일까? 그는 글 말미에 전혀 새롭지 않음에 관해서 말한다. 다시 한 번 인용하자.

    우리가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새롭지 않음에 대한 것이다. 이 어려운 숙제는 세대라는 주어를 동시대로, 신생이라는 시선에 담긴 특별함을 보편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 우리는 왜 하나도 새롭지 않은가? 우리는 무엇의 연속인가?-물론 뭐든 새로워보이는 신입생이, 제일 따끈따끈할 때의 졸업생이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라는 사실은 자명한, 약간은 슬픈 진실인 것이다. 흑흑.[각주:33]

    윤율리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 풀자면 이런 것이다. 청년 혹은 신생공간은 너무도 다양해서 하나의 정체성으로 불릴 수 없으며, 원래부터 있었기에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을 향한 호명을 거부함으로써 청년 담론을 잘 팔리는 상품으로 소비하도록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장외집단이라고 부른 특정 청년집단 스스로가 청년이라는 따끈따끈한 상품을 마치 보편인 양 독점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결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청년 호명을 향한 윤율리의 불만은 진정으로 PC하다.) 하지만 그런 매너는 윤율리 자신이 의도했던 바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어떤 점에서는 실로 음흉한 처리이기도 했다. 이런 선언으로 인해 장외집단은, 보편의 일부인 개별자로서, 윤율리가 그랬듯, 청년 보편을 호명하는 기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보편을 호명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전시의 구성원이 청년 일반으로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렇게 굿-의 장외집단은 모호한 정체성 전략 가운데 청년 보편을 안전한 방식으로 견지함으로써 실로 다음 세대의 대표 격으로 부상했다는 것은 굳이 부연하지 않겠다.

    굿-에 출품된 모든 굿-즈는 욕망함직함(desirable)을 규준으로 삼았기에, 매출이 얼마였는지 보다 판매/소비 경험 자체가 그들에겐 중요했다. 무엇보다 굿-즈의 가격과 크기, 형태가 일반 작업과 비교해 어포더블한 수준으로 맞춰진다. 모 참여 작가는 팔리지 않는 굿-즈를 전량 폐기처분하리라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굿-에서 판매 자체가 굿-즈의 존재론적 차원에서도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려주는 사례다. 굿-가 끝난 후 돌아다닌 항간의 소문은 매출이 얼마이며, 누가 누가 와서 누구 작업을 사갔으며, 누구 작업이 다 팔렸으며 하는 얼마간 키아프의 후일담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장외집단에게 이 경험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소비의 총량은 곧 경험의 총량이고 소비가 많았다면 그만큼 많이 주목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동시대 미술계 전체를 놓고 봐도 드물어서, 장외집단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아도, 알아서 미술계의 입이 예술과 상품 사이의 오래된 논쟁을 늘어놓았다. 또한 누군가는 이 세대의 특징을 정의하려고 골머리를 앓았다. 장외집단은 여기에 관해서 침묵을 지키거나 쿨한 태도로 일관했지만, 이후 미술계의 변화된 지형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호명되는 기회를 스스로 거부하지는 않았다. 굿-에서 도드라진 몇 작가는 이내 미술제도에 들어갔고, 윤율리는 이러저러한 세미나와 좌담회에 불려 다니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그가 거기서 했을 이야기는 대략 짐작이 가지만, 어쨌거나 그를 불러주는 곳은 항상 호명의 장소였다. 어쩌면 그런 면에서 정의하지 않고 놔둔 용어 굿-즈는 히스테릭하긴 해도 주목경쟁이라는 마케팅 면에서 최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굿-이후에 발견된 신생공간은 하나의 현상이 되었고 앞서 언급한대로 서울 바벨을 기해 제도권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총평은, 장외집단은 결과적으로 윤율리가 그토록 경계했던 청년세대 담론으로 소급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이들은 세대 간 경쟁에서 기회를 잡았다는 것. 그러곤 무엇이 남았나?[각주:34]

    내가 보기엔 여전히 제로섬과 불균형이다. 세대 간 갈등으로 촉발된 이 생존 경쟁은 시장이 기적 같이 소생하지 않는 한, 제한된 지원-제도를 여전히 겨냥하고 있으며, <상태참조><청년관>의 임대적 모의실험과 같이 강박적으로 반복되고 또 미끄러지는 프레젠테이션과 선별의 무한 반복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있다. 2010년대 중반의 신세대 담론은 들끓었고 마치 한국의 모든 청년 작가에게 제도적 주목을 요구하는 듯했다, 살펴봤듯이 물론 이는 착시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누군가는 청년 대표로 불려 나갔지만 대표자가 아닌 누군가는 그럴 기회조차 없이 유령이 되기도 했다. 2015년과 2016년 즈음,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같은 작가의 전시를 대체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또 끊임없이 지원서를 써도 떨어져서 절망하는 작가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르겠다. 이 중 다수는 작가이기를 포기했다. 누군가는 지원서용 스테이트먼트를 전문가에게 의뢰하고 달달 외운다. 그럼에도 떨어진 경우 작가적 자존심은 땅 밑으로 꺼진다. 이 가시성의 불균형에는 될 놈을 밀어주자라는 유사 우생학적 선별 논리가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이 선별 제도가 오늘날 커리어의 동기와 미래를 동시에 심급에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굿-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5년부터 시작한 작가 미술장터 지원 사업에 선정된 지원작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서문에 밝힌 것처럼 기금에 의탁하지 않고 생존하는 법을 찾아가는 일을 생각하는 일도 선별된 이후에야 가능하다면, 의문이 드는 것은, 지금 미술현장에서 과연 보조금 밖이란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 내가 계속해서 상기시키려고 했듯이, 결국에 미술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과 갈등 구조는 제한된 보조금을 차지하기 위한 개미지옥 게임일까? 만약 그렇다면, 개미지옥에서 승리한 몇몇이 미술관급 작가로 성장해서, 다시 아티스트 피를 요구하게 될까? 그렇다면 거기서 소외된 또 다른 장외집단은 또 다른 굿-를 만들게 될까?

    스캔들이 사라지고 있다.”[각주:35] 심보선은 이 말을 그을린 예술에서 예술상을 거부한다는 비판적 제스처마저 점점 희미해지는 동시대적 상황을 우려하며 썼다. 나는 지금껏 지원제도에 스캔들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왜 미술계의 거의 모든 이는 지원제도를 놓고 서로 경쟁해야 하는가? 왜 이것이 그토록 중요한 문제가 되었을까? 혹은 당연시 되었을까? 누군가는 이것이 지원제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능률이 제로에 수렴하는 대다수 예술가의 창작 환경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있으며, 여기서 지원제도는 오히려 바람 앞의 등불 격인 그들의 생존을 위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왜 다른 것도 아닌 유독 예술을 그렇게 지원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예술이 인류 공동체에 기여하는 계산 불가능한 가치를 들먹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을 지지하고 물론 그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실제로 그런가?

    단언컨대 한국에서 창작부터 전시에 이르는 거의 모든 미술 행위 역시 극도로 제한된 내부 관객만을 염두에 둔다. 또한 한국의 미술 지원제도는 관객의 향유보다 작가의 창작 중심으로 짜여 있다. 이는 전문가 중심의 집단 공동체에 대한 낙관적 확신을 기반으로 하는데, 여기서 관객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잘해봤자 모더니스트 계몽주의의 낙수 효과이며, 이를 위해선 무지한 대중과의 차별성을 강조함으로써 제 우위를 정당화하거나 재생산하는 분리주의적 태도도 감수해야만 한다. 미술계가 좋다고 하는 것은 왜 좋은 것인가? 왜냐면 전문가 집단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문가 집단에서 또 다시 전문가를 선별하는 것이 지원제도다. 또 이 선별을 위해서는 더 상위의 전문가를 선별해야 한다. 여기서 심사위원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심사위원이 지원자의 점수를 매기고 선별하는 것만큼의 역방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전문가 피라미드야말로 현재 지원제도를 작동시키는 근거이며, 넓게 봐서는 미술계 전반에 퍼진 인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계몽주의적 엘리트주의가 공동체에 무언가 기여할 거라고 믿는 데 내기를 걸어야 할까?

    물론 미술계가 지원제도에 매달리는 이유는 당장의 창작 환경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하지만 지원제도가 근본적으로 전문가적 선별 체계인 이상, 그럼에도 더 이상 지원제도 밖이 없다고 믿는 이상, 누군가의 운 좋은 생존은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고, 이런 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현실이 된다. 이 상징적 죽음에는 심사에서 떨어져 낙담하는 내 동료부터 미술의 미 자도 모르는 내 가족, 전시장에서 우물쭈물하는 관객에 이르는 광범위한 타자가 포함될 수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생존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꽤 괜찮은 질의 예술 작품이 생산될 수 있다면, 지원제도로서 이것은 충분한가? 혹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현재의 미술 지원제도가 신자유주의적 경쟁 체제보다 훨씬 더 중성적인 보호 공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커리어와 성공의 경로를 이미 촘촘하게 설정해 놓은 매트릭스로부터 예술의 위치를 재정위한다는 것은 이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일까?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삶과 예술을 맞바꾸라는 무책임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의도는 그 반대다. 제도에게 맡겨진 모두의 삶의 권리를 되찾아 올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상상력이 필요하다면, 예술은 실로 가능성의 장소로 기능할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이쪽에 내기를 걸고 싶다.


    *지난 시간, 두 번에 걸쳐 연재된 안대웅 미술평론가의 '헬조선의 탄생부터 《굿-즈》까지'를 최종 수정해 하나의 글로 다시 게재합니다.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게재되었습니다.”


    1. 1) 2014년 4월 21일,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hemove99&logNo=90194398817&referrerCode=0&searchKeyword=%EC%B2%AD%EB%85%84%20%EC%9E%91%EA%B0%80%EB%A1%9C (접근: 2019년 3월 2일). [본문으로]
    2. 2) 미술생산자 모임은 2012년 5.1총파업 퍼레이드에 참가한 현대미술가와 디자이너 중 일부가 조직했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미술하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문제, 미술제도 내의 불합리한 구조에 부딪히는 문제, 국가예술정책의 비정상성 등을 함께 얘기하고 활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미술생산자모임 웹사이트≫, https://artworkersgathering.wixsite.com/arts/about?fbclid=IwAR108h3vytujbzNMVNdqIxIu8r8w_lVfEtC48pVDl2H6BE5ZUrSHdx2fLRU (접속: 2019년 3월 2일). [본문으로]
    3. 3) 미술인생산자모임 편, 「2013 년 12 월 17 일 미생모 첫 공개 토론회 녹취록」, ≪미술인생산자모임 웹사이트≫, p. 10, 12. https://docs.wixstatic.com/ugd/98610d_eec01719d0bf42a1856395495cdebc6e.pdf (접속: 2019년 3월 2일) [본문으로]
    4. 4) 홍태림, 「제4회 공장미술제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하여」, ≪크리틱-칼≫, 2014년 1월 14일 https://blog.naver.com/redzzongr/221081551222 (접속: 2019년 3월 2일). 이후 홍태림의 인용은 모두 여기. [본문으로]
    5. 5) 이후에 그가 쓴 글의 한 문장은 이런 입장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서진석씨가 그만 파산 신청을 통해 대안공간 루프의 운영을 중단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임근준, 「공회전의 한국현대미술계: 윤리 의식의 저하와 을의 분노」, ≪임근준 블로그≫, 2014년 3월 11일, http://chungwoo.egloos.com/4011393 (접속: 2019년 3월 2일); 전체적인 세대론 기획에 관해서는 그의 많은 글 중에서도 다음을 볼 것. 임근준, 「한국현대미술의 당대성과 세대 변환: 1987-2008」, ≪임근준 블로그≫, 2013년 11월 15일, http://chungwoo.egloos.com/3936373 (접근: 2019년 3월 2일); 미술인생산자모임의 토론회에서도 임근준과 유사한 비판이 제기됐는데, 조은비가 대안공간의 고질적인 예산 부족 현상 때문에 현실적으로 급여를 제대로 줄 수 없는 형편에 관해 이야기하자 김화용은 이렇게 말했다. “포기하는 방법이 전시나 프로젝트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저는 더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미술인생산자모임 편, 「2013년 12월 17일 미생모 첫 공개 토론회 녹취록」, p. 22; 유진상 역시 이 사건을 세대 갈등으로 보았다. “기성세대, 나아가 사회 전체가 체계적으로 젊은 세대의 예술가들을 착취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좀 더 광범위한 이슈가 제기된 것이다.” 유진상, 「후배 미술인들에게」, ≪월간미술≫, http://monthlyart.com/06-people-info-etc/컬럼-후배-미술인들에게/ (접근: 2019년 3월 2일) [본문으로]
    6. 6) 임근준, 「{한겨레21 기고문} 위기의 한국현대미술계와 청년 세대의 새로운 도전」, ≪임근준 블로그≫, 2013년 11월 15일, http://chungwoo.egloos.com/3991889 (접근: 2019년 3월 2일) [본문으로]
    7. 7) 위의 글. [본문으로]
    8. 8) 88만원은 “비정규직 평균 임금인 119만원”에 “전체 임금과 20대의 임금 비율인 74%를 곱해서” 도출한 숫자다. 우석훈, 박권일,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7,) p. 20. [본문으로]
    9. 9) 위의 책, pp. 18-22. [본문으로]
    10. 10) 위의 책, p. 192. [본문으로]
    11. 11) 임근준, 「1988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들의 세대적 의미」, ≪임근준 블로그≫, 2009년 6월 24일, http://chungwoo.egloos.com/1921086 (접근: 2019년 3월 2일) [본문으로]
    12. 12) 임근준이 세대 경쟁을 엘리트 사이의 경쟁으로 보고 있다는 관점은 국내외 대학의 우열을 매기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조기유학생의 변화된 위상을 설명하면서 말하길, “MIT와 스탠포드, UC 버클리 등 3곳까지 포함하면 3,200명을 넘어선다. 올해 서울대 학부 입학생이 3,100여 명 가량이니, 농반진반으로 말하자면, 이제 서울대는 예전의 연세대, 혹은 고려대인 셈이다.” 위의 글, 주석 6. [본문으로]
    13. 13) 88만원 세대의 보수 우파 버전의 대표적인 예는 변희재의 실크세대론이다. 다음 글을 참고할 것. 변희재, 「실크세대론과 88만원세대론의 소통을 위하여」, ≪조선일보≫, 2009년 1월 27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26/2009012600182.html (접근: 2019년 3월 2일). [본문으로]
    14. 14) 임근준, 「대학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에게」, ≪임근준 블로그≫, 2010년 2월 10일, http://chungwoo.egloos.com/2651702 (접근: 2019년 3월 2일). [본문으로]
    15. 15) 우석훈과 박권일은 386세대가 “가슴 속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묻고” 살아가며, “경쟁이라는 단어를 생경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경쟁 대신 연대와 협력 같은 것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20대에 생각했던 사회적 꿈이 일종의 변혁 프로그램이 되지 못하고 망가진 것이 지금의 20대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에 그들끼리 단결하고 연대를 공고히 만들어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위의 책, p. 190. 그런 면에서 공장미술제가 386세대 내 결속을 공고히 하거나 이권을 배타적으로 점유하려고 했다고 보기는 힘들며, 그 규모로 봤을 때 세대 내 경쟁을 부추겼다고 보기도 무리가 있다. [본문으로]
    16. 16) 유진상, 「후배 미술인들에게」. [본문으로]
    17. 17) 권시우, 「동‘세대’ 미술, (괄호)로부터의 호명」, ≪집단오찬≫, 2015년 3월 26일, https://jipdanochan.com/43?category=590139 (접근: 2019년 3월 2일). 이후 권시우의 인용은 모두 여기. [본문으로]
    18. 18) “명주잠자릿과의 애벌레를 ‘개미귀신’이라 부르는데, 이 개미귀신은 모래땅에 개미지옥을 파놓고 숨어 있다가 그곳에 미끄러진 개미 등의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패자부활전이라면 개미지옥에 떨어졌다고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패자들끼리 게임은 일단 개미지옥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일종의 자리 잡기 싸움에 가깝다. 이는 개미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누구를 밀어 넣느냐, 즉 ‘누가 가장 먼저 잡아먹힐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면 눈치 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서로 싸우는 대신 협력해서 개미귀신과 맞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미지옥 내부에서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모두 목숨을 걸고 개미귀신과 싸워야 겨우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몇몇이 방관할 경우 싸우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일일 뿐이다. 결국, 다들 목숨을 걸고 싸우는 대신 조금 늦게 잡아먹히길 원하게 된다.” 우석훈, p. 198. [본문으로]
    19. 19) 「〈안녕, 2014, 2015 안녕〉 송년좌담회 미공개 녹취록」, pp. 34-35. [본문으로]
    20. 20) 홍태림은 여기서 전시의 하향평준화 문제를 거론한다. 이는 전시와 참여 작업 모두를 아우르는 말로, 곧 전시가 작업의 질적 상태까지 결정한다는 주장처럼 보인다. 이는 큐레이팅의 미적 권력을 작업보다 우위에 놓는 것으로, 임근준이 (젊은) 큐레이터를 (젊은) 작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놓는 것과 동일한 시각을 보인다. [본문으로]
    21. 21) 유진상, 「후배 미술인들에게」. [본문으로]
    22. 22) 임근준, 「공회전의 한국현대미술계: 윤리 의식의 저하와 을의 분노」, [본문으로]
    23. 23) 임근준, 「공회전의 한국미술계」. [본문으로]
    24. 24) 바이홍, 「대안-공간인가?」, 『메타유니버스』, 윤율리 편, (미디어버스, 2015,) p. 153. [본문으로]
    25. 25) 위의 책, pp. 154-155. [본문으로]
    26. 26) 위의 책, p. 156. [본문으로]
    27. 27) 임근준은 「{한겨레21 기고문} 위기의 한국현대미술계와 청년 세대의 새로운 도전」에서 현시원의 시청각과 함영준의 커먼센터를 새로운 세대의 대표자로 점찍고 있다. [본문으로]
    28. 28) 우석훈 외 1인, 『88만원 세대』, p. 20. [본문으로]
    29. 29) 노형석, 「이젠 우리가 알아서 뜰거야!」, ≪월간 미술≫, http://monthlyart.com/01-special-feature/special-feature-광복-70주년-한국미술-70년-5/ (접근: 2019년 3월 2일). [본문으로]
    30. 30) 박권일, 「주목경쟁의 시대」, ≪한겨레≫, 2014년 10월 13일,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9525.html (접근: 2019년 3월 2일). [본문으로]
    31. 31) 굿-즈 기획팀, 「기획노트」, ≪굿즈 웹사이트≫, http://goods2015.com/text_01.html [본문으로]
    32. 32) 윤율리, 「하나의 유령이 미술을 배회하고 있다」, ≪반지하 웹사이트≫, 2015년 8월 3일, http://vanziha.tumblr.com/post/125734241117/하나의-유령이-미술을-배회하고-있다-윤율리-신생공간에-대한-어떤-소문이 (접근: 2019년 3월 2일) [본문으로]
    33. 33) 위의 글. [본문으로]
    34. 34) 이 결과는 기묘하게 대안공간이 겪었던 과정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안공간은 정부보조금으로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 새로운 작가를 가치화하고 시장에 유통시키는 첨병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실로 신자유주의적 정부의 에이전트였을지도 모른다. 신생공간과 ≪굿-즈≫가 혹시 그것의 새로운 (모의적인) 판본은 아니었을까? [본문으로]
    35. 35) 심보선, 『그을린 예술』, (민음사, 2013), p. 182.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 아트신 초이스  (0) 2022.01.01
    지역 예술의 이념  (1) 2021.12.31
    ‘투명한 플랫폼’으로서의 공간  (0) 2021.12.04
    퍼포먼스는 무엇의 이름인가  (0) 2021.11.21
    예술과 디자인  (0) 2021.11.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