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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볼리오> 리뷰, '극에 참여하고 있다'
    REVIEW/Theater 2016. 12. 5. 12:17



    공연은 현대인을 대표하는 관객을 상정하고 그런 의식화된 관객을 끊임없이 조소하고 비판하며 진행된다.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관객에게 말을 걸면서 무력하게 앉아 있는 수동적인 관객의 의식을 깨우는데, 이러한 직접적 인터랙션과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의 말볼리오라는 캐릭터가 희곡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거의 반반으로 나뉜다. 


    극에 참여한다는 의식으로부터 극을 본다/듣는다는 의식으로 넘어감은 후자를 일종의 극 중 극 차원으로 볼 수 있는 메타 의식을 갖게 한다. 두 부분은 엄밀히 구분되는데, 전자가 후자의 주석이 아니라, 후자가 전자의 인용 차원이 된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궁극적으로 극은 말볼리오라는 불운한 캐릭터에 대한 해설이자 현대적 주석쯤이 된다. 


    한편으로 연극은 기본적인 희곡의 줄거리 토대'가 있음'으로부터 현재로 연장되며, 다른 한편으로 연극은 곧 끝날 것임을−이곳은 또한 극장이고 그 극장 안의 한시적 상연임을−또한 관객은 집으로 돌아가 이 연극을 어떤 형태로 기억할 것임을 인식하게 한다. 따라서 게임의 규칙은 투명한 대신, 여전히 확고한데 관객을 자신의 수행권 안에 두는 것은 가령 관객이 그에게 상의를 입혀주거나 신발을 신겨주거나 하는 것과 같이 그 수동성이 극단적으로 실천되면서 매우 능동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이러한 극이 갖는 의식(儀式)적 시간은 그가 자리를 나간 이후에도 관객이 머뭇대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무대 조명을 통한 극적 설계가 아닌, 관객의 입장 단계에서 무대 중간에 자리한 이후, 문득 입을 엶으로써 분위기를 안착시킨 시작과 마찬가지로 결말은 초반 자신이 관객의 단정한 자세의 지속을 요구하고 사라졌다 잠시 후 돌아왔던 이전의 상황이 학습효과를 발휘하며 극은 끝 이후에도 의구심과 기대 속에 분포한다. 혼재된 시간성은 극의 시간을 연장시키며 극과 현실을 뒤섞으며 그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셈이다. 


    사실 그는 극 중반 이후, 세수를 하고 의상을 입으면서 '말볼리오'가 되어 가는데, 이 과정에서 의상을 입을 때 관객을 동원하는 것과는 달리 세수를 하는 동안만큼은 고개를 90도로 돌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는 셈으로, 극적 시간 자체가 갖는 환영성이 짧지만 견고하게 드러난다−이렇게 관객-역할-배우의 순으로 극은 연극의 주요한 3가지 개념을 포섭한다. 


    그것은 하나의 전환의 순간이고, 이는 엄밀히 그가 역할이 된다는 것의 놀라움을 주는 것보다 역할 이전에 그가 배우라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 역할이 주는 환영성은 배우로부터 오며 여기서 배우 자체는 역할로서만 존재한다(배우와 역할은 실은 그런 지점에서 교착되며 소급되는 평행선상의 공허한 개념에 가깝다). 그렇다면 직접 말을 걸며 끊임없이 선동하는 역할의 배우는 이와 어떻게 다른가. 


    그는 극을 끌어오지만 극에 몰입되는 반절의 시간 외에 극 속으로 들어가는 매우 찰라의 시간을 제하면, 전적으로 어떤 현재와 현실로부터 발언한다. 그는 제4의 벽과 극적 현실을 깨고 우리가 그를 보고 있음을 주지시킴과 동시에 그 시선 자체를 '재'형성하고 정의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며 우리에게 세상과 현실에 대한, 그리고 극장의 수동적 관객의 위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체현한다. 


    우리는 그를 역할로 제한할 수 없고 그가 우리를 역할로 형성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그는 시선의 정의를 새롭게 구성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캐릭터로 소급되기보다 수행성을 띤 말의 실천을 하는 선동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이 공간이 삶과 결부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정적이며 또한 삶의 일부로서 특정적인 시간으로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극 안에서 계속 주지시키는 가운데 일어난다. 


    우스꽝스러운 그의 면모를 비웃게끔 유도하며 그러한 태도를 비판함으로써 관객은 이 시대에 접속하게 된다. 일견 그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예의범절쯤으로 번역될 만한 도덕적 규준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쓰레기를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며 버리고 그러한 쓰레기가 계속 모이고 그러한 행위들이 사회의 타락과 파괴를 구성해 간다는 악순환의 연쇄 과정은 태도와 세상의 부조리를 직결시킨 부풀린 회의주의에 불과하지만, 한편으로는 올바른 시민의식과 주체로서의 의식 자체를 관객 스스로에게 체현케 하고자 하는 의도로 읽힌다. 


    선동가와 선동을 당하는 자, 이는 시급한 의제 창안, 동시대에 대한 문제제기의 측면에서 감상의 안위 대신 치열한 삶으로부터 오는 연극에 대한 고투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 연극은 이것 이후의 기억과 이것 이전의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를 각각 물음과 의제로 삼는 것이다. 흩어진 개인들의 공동체로 관객을 (재)구성하는 가운데, 그 안에 대표로서 '배우'라는 위치로 참여하는 그는 안전한 관객으로부터의 거리를 관객 스스로에게 형성하게 한다. 그렇게 연극을 재형성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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