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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미숙 <Amore Amore Mio>: 반복의 적층과 순간의 영원
    REVIEW/Dance 2015. 7. 1. 10:12

     

    막이 오르기 전, 전미숙 안무가의 솔로 무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막이 되어 갔는데, 가령 둥글게 말아 흩어지지 않는 무거운 몸짓의 원환은 어떤 하나의 무게이자 몸으로, 막이 오르기 전에 무겁게 어둠으로 녹았다. 이는 이후 펼쳐진, 화려한 무대의 <Amore Amore Mio>와 대칭을 이루며, 수많은 문들로 이뤄진, 그러나 그것들은 소통 불가능성으로 소급되는 각각의 모나드들로, 그것들이 만든 가상의 세계 그 문을 열었을 때 마치 그것들 모두가 해체되어 산화되는 것과 같은, 그 빛의 심핵을 건드리고 있는 듯했다. 전미숙의 솔로가 삶의 솟구치며 다져진 이야기의 주름, 그 궤적이라면, <Amore Amore Mio>는 그 찬란한 표면의 입자들이었다. 이 분자적 진동을 가리키는 가장 명징한 기호는, 결국 처음 무용수들이 들고 온 찻잔 위의 컵이 떨리며, 자신의 움직임을 공간적으로 초월하며 분절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사운드적으로 또 하나의 안무적 분진으로 미세하고도 커다랗게 무대를 점유했다. 또 하나는 그 찬연한 무대의 빛들에서 하얀 옷과 느린 발걸음들이 마치 공기와 시간을 어루만지듯 순간의 영원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곧 무한한 시간이 짧은 시간의 공기로 미분되고 있었다. 물론 이 무대에서 이미 너무나도 유명해진 또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유명 무용수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의 놀라움 따위 역시 있었을 것이다. 이는 그 무용수들의 각각의 개성이 살아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곧 현대인의 시간, 실존 따위를 구현한 듯한 이 작업은, 사랑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현상하기보다 그 사랑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관념을 현상하는 데 가까웠다고 보이는데, 이는 하나의 몸짓들이 하나의 말이나 조각 같은 떠돎으로, 곧 이어지지 않고 다만 그 스스로에게만 하나의 몸짓으로, 또한 명명되지 않는 시간으로 난해하게 귀착되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남성의 여성 되기, 아니 그보다 양성성을 지닌 인간의 두 모나드의 양상의 교차 불가능성과 같은 측면을 유머로서 끌어낸 부분 역시, 관계가 아닌, 즉자적인 한 명의 신체 각각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각자의 시공간 속에서, 무용수는 또 다른 개성을 연출할 필요가 없었다. 더 정확히는 각자의 개성으로 그 시간들에 맞서고 있어야 했다. 사랑이라는 어떤 관념에 발가벗겨진 상태로. 최수진의 경우, 상대 남자 무용수의 손아귀에서 점프를 할 때 그 머리카락을 정확하게 흐트러지지 않고 앞뒤로 젖히는 어떤 테크닉적 묘를 보여주었다. 김보라의 존재가 두드러진 것은 뽕짝과 같은 음악에 맞춘 기괴한 표정과 스테레오타입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비정형적 몸짓의 트위스트가 꽤 인상 깊었던 부분과 피아노 위에서 마구 말들로부터 말을 끌어내며 앞서가는 말이 계속해서 미처 뒤따를 여유 없이 미시적 신체를 낳고 멍한 신체를 꾸역꾸역 추동해 가는 과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노래, <sinno me moro>(죽도록 사랑해서)를 위해서, 그 노래를 현상하기 위해 무대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 노래가 향하는 어떤 지나간 물리적 시간, 곧 옛 분위기에의 흡착에서 거대한 시간의 흐름들은 적층되며, 아니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마치 그 살아있게 만드는 라디오 속 음악처럼 기시감 어리게 반복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재현으로부터의 재현쯤이 아닐까. 어쩌면 김보라의 그토록 기괴한 꾸물거림의 트위스트는, 그녀가 곧 오르골인형의 자동 기계와 같이 움직임을 태엽처럼 감아 가는 가운데 펼쳤던 것 아니었을까.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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