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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알이 춤뵈기] '정치적, 사유적 테제로서 몸' <리볼버를 들어라>REVIEW/Dance 2012. 10. 21. 23:19
우선 빠르게 무대 둘레를 도는 브릿 로드먼드(Brit Rodemund)의 일련의 동작들은 무성영화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연상케 한다. 발레를 메타 비평적 접근으로 해석해 놓는 가운데, 음악은 하나의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자신의 몸을 때리며 소리를 냄으로써 역사의 고민이 온전히 해결될 수 없는지의 질문을 던지며 움직임 자체의 미학적 완결 대신에 음악 안에 있는 여자의 상황으로 귀결된다.
메마른 거친 소리를 내며 호흡을 들이마시며 나오는 발레 동작은 동작을 채집하는 것에 가깝거나 미가 아닌 어떤 기억들과 몸에 밴 습관들을 밖으로 드러내는 잠재된 것들의 표현을 의미한다. 움직임은 언어가 부착되는 의미를 일으킨다. 몸은 스스로에 의해 대상화되며 어떤 맥락을 주는 사유의 측면을 입는다. 명확한 인식을 주지만 재미는 없다.
달 착륙에서 다른 중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구부정하게 걸으며 현재적 인식의 조건을 해체하거나 왜곡되는 투명 아크릴판을 그녀의 얼굴에 씌우며 신체를 단편적으로 만들어 비-인간의 존재에 가깝게 된다. 신체는 움직임으로 잡을 수 없이 유동하는 대신 대상처럼 분배되는 파편적인 감각에서 맺힌다. 보이는 것 자체로 완결되는 미학의 방식에 반기를 들며, 보이는 것이 다른 매개 장치에 의해 달라짐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볼록거울 역할을 하는 판을 통해 확장된 눈과 얼굴의 웃음의 표정, 그리고 얼굴과 그 뒤 몸에서 나오는 목소리의 시차가 언캐니(uncanny)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의 베이스는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상황이며 그로 인한 불안과 함께 자아의 충족감을 점증적으로 제시하며 렉처 퍼포먼스 형태로 공연을 완성해 간다. 기억 상실을 인식할 수 없음이 치매의 비극이자 선물이라는 점에서 치매는 역설적인 면모를 가진다 할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의 물리적 간격이 늘어난 인류의 과제가 된 치매라는 현상을 춤을 통한 인문학적 진단으로 접근해 보는 것은 꽤 영리한 선택일 것이다.
<리볼버를 들어라>는 춤의 자족적인 미학을 탈피해 추함과 몸의 감각 자체에 대해 접근함으로써 감상주의적 미학에 반기를 들며 몸의 정치적인 측면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텍스트를 품고 콘텍스트로 기능하는 몸의 형식은 삶의 문제를 껴안는 주제의식과 맞물리며 정치적인 것과 미학적인 것을 결합하는 데 성공한다.
[사진 제공=서울국제공연예술제]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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