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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알이 춤뵈기] '유동하는 강의 흐름', Compagnie 7273 <Nile>REVIEW/Dance 2012. 10. 21. 21:26
일종의 안개 속의 대기를 휘젓는 몸짓이다. 좌우로 몸을 살랑대며 휘젓고 몸을 돌리며 아래로 모은 손을 활짝 벌리며 서는 동작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네 개의 연이은 움직임이 반복되며 여섯 명의 무용수들에서 공간을 젖고 간다.
여기에는 바다 속 어떤 힘의 재분배의 흐름이 만들어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동작은 변형이 없지만 이들이 강이 흐르듯이 내부에 따라 어떤 무형의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생물 같은 것은 유기체로 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멈춰 서서 움직일 때는 같은 동작으로의 주파수가 맞춰지는 듯한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됐다.
고개를 돌리거나 아래로 내리며 침잠하는 에너지를 형성하거나 하늘거리는 몸짓들이 출현하기도 했다. 기타는 밝게 변하며 마치 환영의 실재에서 투명한 현실이 드러나는 듯 곧 이 안개에서 벗어난 한층 맑은 공간에 위치하게 했고, 그래서 이 현실이 마치 실재의 환영처럼 느껴졌다.
정처 없이 흘러가는 몸의 숨을 이 몸 안에 흘려보냈기 때문에 몸은 숨의 혈관처럼 그려냈고 어떤 잉여도 부족분도 없이 내재적 층위에서 움직임을 쌓아 같다. 아니 흘러갔다.
단체로 숨결을 입는, 분할 없이 곧 그 안에서 분해되어 단지 잉여적 군무들을 만드는 하나의 도저한 흐름으로부터 미세한 몸짓에 시선이 갈 때 대상과 그것을 추동하는 힘, 곧 대상과 주체의 경계 사이의 무용하고도 도저한 흐름에서, 몸은 하나의 대상(thing) 차원을 넘어서는데, 여기에 따르는 내밀한 호흡은 스스로를 탈각하는 어떤 경계를 어렴풋이 인식 또 망각하는 것에 가깝다.
이들의 춤은 언어 이전의 것, 무의식의 지점 속에서 탄생한 (비)언어임에 틀림없다. 반면 둘의 안무를 이룰 때는 에로틱한 측면이 발생한다. 이는 무의식적인 결합이라기보다 뚜렷하게 집단적 의식에서 갈려 나오는 측면이 강한데, 서로 간의 접촉이 무언가를 발생시키기보다 상대에 대한 인식을 그 전반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시선에 포착된(지배되는) 어떤 관계 맺기, 틈을 벌릴 때 간격을 넓히며 무대 전체가 하나의 바다 속을 환유케 했다. 뒤섞음의 흐름이 마찰 없는 섹스가 되었고, 동시에 ‘간격 없는 크나큰 간격’을 배가했다. 이는 이전의 간격을 시차로 응축한 환영적 순간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음악은 빨라지며 빈 공간에 울려 퍼지는 음향으로 인해 이는 다시 하나의 재현적 대상이 된다. 거리두기가 발생하며 호흡의 가빠짐으로 인해 움직임은 시각에서 간접적으로 비껴 나 있고 몸은 그 소음이 사라지고 온전하게 음악과 결합된다. “띵~”하는 긴 여운의 음악은 손을 위로 뻗는 움직임과 하나가 되어 사라졌다.
반복의 구문을 황홀함의 지경으로 이끄는 가운데, 착시적인 환영의 순간들을 일으키며 약간의 변화들을 주었지만, 전체적으로 도저한 강의 흐름 속에 움직임 자체를 보이지 않는 힘에 가닿게 하는 안무의 정중동식 표현은 꽤나 흥미로웠다.
[사진 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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