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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판야무, 〈사이〉: 이미지와 행위 사이에서
    REVIEW/Dance 2024. 2. 5. 20:12

    춤판야무, 〈사이〉ⓒ박태준(이하 상동).

    춤판야무의 〈사이〉는 대상과 신체의 연합을 통해 공간을 시시각각 구조화하는, 미장센의 구성적 원리를 구현함으로써 시각에 대한 알레고리를 보여준다. 〈사이〉는 어떻게 춤이 그 자체로서 상영되면서 동시에 영사되는지를 움직임, 구도, 가변적 설치 등을 통해 공간 전체에 가로새김으로써 보여준다. 그것은 원초적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이기도 한 무엇을 펼쳐낸다.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서사가 요청되지 않는다. 몸짓을 의미와 감정의 기표로 치환할 필요 역시 없다. ‘행위’는 공간을 직접 그리거나 공간에 기입되는 대상이 되는 행위이다. 곧 관찰되거나 카메라를 응시하는 대상이 된다. 궁극적으로 〈사이〉는 미장센의 원리를 구현한다. 

    ‘사이’는 하나로 계열화할 수 있는 무엇과 무엇의 틈을 이야기하며, 시간적으로는 연속의 흐름을, 공간적으로는 물리적인 인접을 의미한다. 〈사이〉는 텅 빈 공간 위에 발생하는 물질적인 이미지들이 구성하는 새로운 시공간이 만들어 내는 ‘사이’이며, 역으로 그 사이를 통해 분절되는 구성단위로서의 시공간을 전제한다. 암전‘에서’ 어둠을 보며 시작되는 〈사이〉는 정면에 뜬 두 눈이 된 두 퍼포머의 이미지로 넘어가며, 그것이 땅으로 가라앉고 잠든 육체로 변신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눈을 떴지만 어둠만이 보이는 광경. 거기에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있는데, 공간 전체에 스며드는 이 소리의 정체는 버선발로 좌우를 비비는 소리이다. 제일 위에 달린 무감한 얼굴은 그것과 강력한 대조를 이룬다. 그것과 연관관계가 없는 듯이 고정된다. 신체는 2차원의 평면으로 붙박인 채 바닥에서 소리를 ‘피어’ 올린다. 또 하나의 고정점은 조금 더 통제하기 어려운 눈이다―따라서 그것은 ‘또 하나의’ 것이 된다.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신체는 미세한 진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으므로 이 눈은 하나의 ‘의지’이다. 이 눈은 결국 하나의 거대한 눈으로 재탄생한다. 
    입은 넥타이를 삼키지 못하고 토해낸다. 입 안의 사이 공간에서 넥타이의 운동은 서걱거리는 버선의 움직임에 대응된다. 곧 들리는 소리가 장악하는 대상―그것은 첫 장면에서 보이지 않는다.―과 들리지 않을 소리를 파생하는 대상은 등가 교환을 한다. 무언가는 발생하면서 응축된다. 땅을 디디는 것과 입안에 넥타이를 쟁여놓는 것은 보이지 않는 대상을 감각으로 치환하는 작용이다. 

    이후 등장한 금배섭은 커다란 장대로 천장에 달린 두루마리 휴지를 따고 장대로 스르륵 통과시킨다. 사물이 풀려나가는 해제는 보이는 대신 소리로 남는다. 이 소리 연속체의 총체가 극장을 관통하고 극장에 대한 관통을 추동한다. 장대에 꽂힌 휴지가 덜거덕거리는 소리는 미소하고 급격하게 작은 공간의 사이를 유동하며 나는, 작지만 거대한 실재일 것이다. 두 사람이 붙잡은 장대 사이를 오가는, 두루마리 휴지가 두 사람의 관계 안의 장력에서 벗어나, 극장을 선회하는 움직임과 함께 풀려나가는 것은, 비예측적인 파편들의 물결이라는 의도된 그림을 구성하는 것으로 향해 간다. 이러한 ‘물결’은 공중에 뜬 하나의 이미지의 고착과 흩날림의 경계 너머 지연 작용을 일으킨다. ‘하얀’ 사물을 비추는 조명은 스트로보 조명 효과와 같이 드러난다. 

    암전 이후, 금배섭은 담담하게 바닥의 휴짓조각들을 쓸어 내는데, 그것은 일종의 ‘눈’일 것이다. 이는 별다른 언어가 부가되는 것도 아니고, 맥락을 구성하는 여분의 텍스트로서 성립되는 것 역시 아님에도, 실재적인 기호로 다가온다. 물론 이 장면을 완성하는 건 빗질을 하는 제스처이지만, 하나의 장면이 독립적인 기호로 작용하는 건 그 행위가 오로지 대상만을 순수하게 향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버선이 서걱거림으로, 입 안의 고통이 기능으로서만 기능하는 눈과 하나의 얼굴 안의 전혀 다른 계열로 성립함으로 인해, 어떤 대상과의 긴밀한 관계 그 자체라는 점에서, 실은 고통과 인내의 알레고리가 아닌, 그 수북한 넥타이의 촉각으로, 또 부풀어진 입속에 포만감으로 드러나는 것과 같이. 

    바닥에 놓인 거울지(mirror-紙)에 휴짓조각이 들어차고, 거울지는 신체 기관의 은유가 된다. 더 정확히는 그와 공간에서 접면하는 존재의 신체들이 대등한 신체, 곧 조작 가능한 잠재적 신체로 변환한다. 존재들은 그 안에 들어가 눕기 때문이다. 대상은 신체의 확장이 아니라, 신체의 기관을 재구성한다. 대상은 신체의 외부가 아니라, 신체의 내재화를 구성한다. 이 신체의 뒤틀림은 빛의 확장된 뒤틀림으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다소 긴 적막이 따르고, 이는 공연이 끝났다는 인상과 약간의 소요 비슷한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무대 중앙에 커다란 두 눈으로 거울지에 재접지된 신체 양상이 드러난다.
     

    이 눈은 첫 번째 등장한 고정된 시각이 전면화된 버전일 수도 있다. 눈은 신체 전체로 번져 있거나 신체는 눈에 포획되어 있다. 이는 바닥에 누운 신체와 대비를 이룬다. 잠든 눈과 신체의 유비와 뜬 눈과 켜져 있는 신체의 유비 사이에서, 존재는 바닥의 거울지 안에 들어감으로써 스크린으로서의 표면은 이불이, 공간이, 심층이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조명을 받아 빛-공간을 만든다. 
    배경과 합산되는 눈이라는 하나의 표층과 대상을 좇는 행위의 과정 안에 대상과 긴밀하게 연합되는 눈, 〈사이〉는 이 두 눈을 병치한다. 이미지로서의 신체와 대상을 매개하는 신체는 각각 포착되거나 행위한다. 전자의 응시하며 응시되는 신체는 정면을 향하며 수평면을 구성한다면, 후자의 신체는 행위를 통해 일상의 흐름을 무대와 동기화한다. 신체 일부이자 전체가 되는 눈의 기계적 움직임과 대상을 마주하고 포획하는 기능으로서의 눈은 다른 지평에 속한다. 이 사이에서 〈사이〉는 소위 일반적인 춤의 형태를 벗어나다. 이미지와 행위 사이에 〈사이〉가 구성하는 시공간의 춤이 있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3.12.21 ~ 2023.12.24., 목,금 20:00 / 토,일 16:00
    공연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출연진·제작진〉
    안무: 금배섭
    음악: 옴브레
    조명: 정유석
    기획: 신재윤
    드라마투르그: 김풍년
    포스터: 주용빈
    사진: 박태준
    무대 제작: 오진경
    음향 감독: 남영모
    무대 감독: 원소미
    출연: 김석주, 김계남, 정세화, 금배섭
    제작: 춤판야무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내디내만, 가인기획 

    춤판야무: 
    춤판야무는 2009년부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간 춤판야무의 작업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관계성에 주목하였다. 2019년 작품 〈나로서는〉을 전환점으로 제2의 창작개념인 분리를 통해 해체되고, 여백이 있는 작업을 추구한다. ‘분리의 창작개념’이다. 빈 공간이 생기는 순간 더욱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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