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1.12.11 18:59

 

12월 9일 저녁 7시경 서울 대학로 혜화동 1번지에서 극단 고래의 창단 연극인 '빨간시' 프레스콜이 열렸다.
 
'빨간시'는 이승(생)과 저승(죽음)의 세계를 오가며 의식(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성적 의식)과 무의식(시와 꿈)을 오가는 차원 이동의 과정 속에 삶의 문제를 들추고, 우리가 갖는 사회적인 존재이자 역사적인 존재로서, 현실적인 자아에 대한 성찰적이고 총체적인 사고를 가능케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듯 보인다.



한 여배우의 성상납이 이뤄지는 곳에 있었던 기자인 동주는 그 진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데서 기자의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신의 윤리적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그 바깥 존재이자 실제 존재의 자리를 얻을 수 없는 모순적 자리에 위치한(목소리를 내지 않는) 동작으로만 존재하는 배우, 곧 죽음으로써 나타난 배우의 그림자 같은 움직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동주와 대칭을 이루며 극을 이루는 할머니란 존재는 치매를 앓는데 밝히지 않지만, 아니 밝힐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위안부였던 것이고, 이는 치유와 정화 의식을 감행하는, 그러나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구멍으로서 상처를 배제하고 감추는 동시적인 과정의 작용으로서 치매는 나타난다.


동주와 할머니는 각각 죽음과 삶으로 영역의 단절을 부르면서 오히려 동주는 할머니의 아픔을, 할머니는 동주의 삶(자신의 죽음)을 기원하게 된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만나면서 역사는 화해하고, 숙원宿怨과 숙원宿願은 풀리게 된다. '빨간시'를 일종의 현재적 굿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의 무의식이 오히려 동주의 무의식과 중층되는 측면이, 할머니와 동주의 삶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며 공명을 일으킨다는 점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다룬 여타의 극과는 다른 현재적인 지점에서 그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자 또한 매우 두렵고도 무서운 부분이기도 했다.

역사 속의 문제, 한편 故장자연 사건의 현실의 문제가 드러나는 부분이 우리의 무의식의 지점이라는 것(곧 이는 우리가 인위적으로 기억으로, 의식으로 구성/환기해야만 한다는 '의식적 여론'의 측면과는 다른 지점이다), 따라서 신체성으로 발현된다는 것은 매우 급진적이고도 역동적인 문제제기인 셈.



할머니의 담담한 심경의 마지막 토로와 이것을 다시 예전 유행가로 치환하는 장면은 꽤 슬픈 장면이다. '빨간시'의 포스터 속 할머니는 소녀의 모습으로서 그로테스크한 면모를 띠며 잔혹동화적인 판타지와 이미지적 강렬함을 줄 것 같은 인상인 반면, 극 속에서는 할머니가 현실의 밝은 측면으로서 유행가에 감응되는 것과 트라우마 전의 기억으로 되돌아가는, 어떤 시대와의 화해, 자신과의 조우의 장면으로 읽혔다.

 

 
'빨간시'는 내년 1월 1일까지 혜화동 1번지에서 계속된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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