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배
-
국립극단 「주인이 오셨다」 리뷰, 검은 빛과 삶의 어둠의 부인否認과 부상浮上REVIEW/Theater 2011. 9. 19. 01:45
주인이 오셨다는 존재/역할보다는 사건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 있다. 곧 어머니의 등장 자루의 출현 죽이는 자의 소문(으로서 사건, 죽임의 발생)이 모든 것이 하나의 존재로부터 나오는 양태, 그로써 구성되는 세계가 아닌, 오히려 세계는 불투명하고 또 그래서 획정 지을 수 없고 무한한 양태를 띠는 가운데, 존재는 분석할 수 없는 세계/사회의 징후들을 안고 남길 뿐이다. 이는 정서적인 측면의 고양, 동정심과 안타까움의 카타르시스로는 이 작품이 주는 폭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이야기는 연결되거나 흐르지 않고 (뜻밖에) 출현한다. ‘오는 주인’은 주종 관계의 구조적 선분을 그리기보다도 오히려 버려둔 것들의 귀환, 억압·방기된 것들의 아가리를 펼치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는 표면적인 권력 주체가 아..
-
「주인이 오셨다」,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REVIEW/Theater 2011. 5. 2. 10:18
「주인이 오셨다」,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간 공동체적 ‘온정 주체’, ‘버려진 타자’의 이야기이자 ‘우리 안의 타자’ 간의 멀고 가까움, 원형질적 본능인 선과 악의 양면적 특성. 신경증적 자기 영역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원시적 삶과 치유. 이 작품은 매우 많은 알레고리들이 대구를 이뤄 줄달음질 치고 있다. 순수한 영혼의 주인공 자루가 악의 화신으로 변하는 장면에서 전과 후의 인격은 크게 우리가 공감이 가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하나의 단독자적 주체로 위상 지어지는 것이 아닌, 어쩌면 우리였거나 우리가 버려둔 것, 우리 외부에 밀쳐둔 것이자 우리 내부의 타자로서의 영역들이 줄다리기를 하며 그를 밀고 당긴다. 이른바 집단을 이뤄 주인공을 배척하고자 하는 것은 계급적 층차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