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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아트신 초이스
    Column 2024. 8. 28. 01:26

    2023 아트신 초이스

    2023 올해의 연극: 〈다페르튜토 쿼드〉,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 〈.기다려〉 
    2023 올해의 무용: 〈갈라〉, 〈21°11’〉, 〈사이〉
    2023 올해의 전시: 《슬픈 나의 젊은 날》,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이동성 없는 거주, 거주 없는 이동성: 옵드라데크》 
    2023 올해의 퍼포먼스: 〈강; the river〉, 〈The Skills of Dust〉, 〈극장흉내〉
    2023 올해의 플랫폼: 《옵/신 페스티벌》, 《서울서울변방연극제》


     

    2023 올해의 연극으로, 적극이 콘셉트, 연출, 무대미술을 맡은 〈다페르튜토 쿼드〉, 정진새 작/연출의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 구자혜 작/연출의 〈기다려〉를 꼽는다. 

    적극의 〈다페르튜토 쿼드〉와 정진새의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와 구자혜의 〈.기다려〉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각각 연극의 수행성과 연극의 서사적 상상력, 연극의 태도를 하나의 작업으로 갈음한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어떤 완숙된 자신만의 결정체이면서, 그 작품이 향해 가는 결과의 완성도 차원에서, 나아가 동시대의 극단적인 하나의 사례들로서 하나의 세계를 넓히고 수렴하며 결정 짓는다. 이들은 상호 그 결이 다르면서 (단지) 동시대의 특이한 양상들의 집합체로서 묶인다, 또는 묶일 수 있다.

    적극은 타이핑-자막과 기원의 서사, 놀이, 오브제 장착 등으로써 구성되는 실재로서의 작업을 구성하며, 미시적 시점에서 거대한 공간으로 서사와 관객의 신체를 확장해 감으로써 능수능란하게 쿼드를 전유한다. 이로써 이야기는 짓고 잇고 생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연극의 기원은 늘 새롭게 정립된다는 것을, 그 기원에 대한 갈증이, 이야기의 공백에 대한 갈망이 연극을 만든다는 것을 거꾸로 보여주기에 이른다. 

    정진새는 다양성을 띤 비인간의 존재 양식들로 구성된 새로운 세계의 전제를 SF적 상상력의 차원으로 구성하는데, 이는 해당 장르가 지닌 미래적 약속이나 스펙터클 대신에 일종의 가정법을 토론의 현 대상으로 작동시키는 단단한 실재 안에 자리매김한다. 그리하여 의인화된 존재로서 여러 비인간 인칭의 존재성과 그것의 발화로써 세계가 구성된다. 

    구자혜는 연약함의 실존적 조건을 공통된 우리의 실존과 연극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내기에 관객을 연루시킨다. 자막과 발화의 동시성은 매개 윤리의 한 표본을 넘은 윤리적 주체의 강박적 유희이면서도 창작자의 정체성 자체를 발화하고, 이는 다시 연약한 주체들의 공존으로 돌아오며 일종의 특이점으로서 배리어 프리의 도착 지점을 보여준다. 



    2023 올해의 무용으로는, 배진호 안무가의 〈갈라〉, 노경애 안무가의 〈21°11’〉, 춤판야무의 〈사이〉를 꼽는다. 

    배진호 안무가의 〈갈라〉는 매우 격렬한 신체 표현을 선보인다. 배진호의 연이은 작업을 (신)표현주의 계열의 새로운 도래라고 해야 할지 나아가 무용의 동시대적 하나의 경향 발생으로 봐야 할지는 단정하기 어렵더라도, 분명 신선한 자극점을 준다. 신체적 어그러짐, 극단화된 감정적 진동, 영화적 장면 같은 구성과 시점 등이 진부한 서사나 서사의 진부한 구성과는 다른 감각을 전달한다.

    노경애 안무가의 〈21°11’〉은 뇌성마비 장애인과 무용수를 한데 세우는데, 그 움직임의 공통 원리가 서로의 방향에서 추출된다. 이는 조화가 아닌 조율이, 나열이 아닌 합성을 도출한다. 윤리적 미학과 표현에 관한 미학적 탐색이 대두되지만, 노경애는 전자를 태도보다는 하나의 원리로 둠으로써 곧 비정형과 예측 불가능성과 같은 속성에서 출발함으로써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몸의 작동 원리와 방식을, 하나의 움직임들을 구성적 관점에서 인용하는 것과 같다.
     
    춤판야무의 〈사이〉는 시각에 대한 알레고리를 연기와 행위, 기행과 수행의 어느 사이에서 구현한다. 이는 이 작품의 형태가 현대적 퍼포먼스와 전통적 극의 심원적 세계 사이에 있음을 의미한다. 일종의 몽타주 기법으로 장면들이 만들어진다. 이 장면들은 표면을 구축하는 신체와 오브제의 접합적 서사에 의해 하나씩 연결되는데, 서사의 밀도를, 갱신되는 의미를, 기호로서 신체의 특이성을 보여준다. 




    2023 올해의 전시로는, 부산현대미술관 주최 《슬픈 나의 젊은 날》, 김남수 기획자의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강정아 기획자의 《이동성 없는 거주, 거주 없는 이동성: 옵드라데크》를 꼽는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슬픈 나의 젊은 날》은 세 다른 작가의 작업들을 최대한 팽팽한 균형으로 조립하고자 한다. 나아가 각각의 장을 만들고, ‘부산’과 ‘현대’, ‘미술’의 뒤섞인 범주와 함께 서사(해설 혹은 해석)를 도입하여, 서사의 구조를 만든다. 친절함과 전시적 합목적성이 기묘한 균형을 형성하며, 국공립 미술관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역량의 실현을 보여준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명확한 것으로 가시화하는 과정에는 발굴과 탐색, 연구와 접합 등 여러 층위의 큐레토리얼 전략이 자리한다. 다른 어떤 전시보다 그 언어는 선명하고 또 본원적이다. 그 영역은 다른 서사를 덧붙이며 작가로 환원되기보다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물론, 수직 구조물에 병치한 디스플레이 방식이나 도면에서 연장한 전 작품 리스트에 대한 해설 등의 요소 역시 인상적이다.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는 그 내용에서건 형식에 있어서건 시대착오적인 전시이다. 내용 면에서 동학에서, 그것도 정전이 아닌 소설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하나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구성적으로는 걸개그림을 걸듯 전시장을 도배하듯 다닥다닥 작품들을 덧대어 놓았다. 곧 하나의 이야기에 대한 탐구이자 표현으로서, 여러 형식이 동원된다고 보인다. 이는 그 결과보다 과정과 전시 기간에 특이한 정동과 효과의 차원에서 의미를 얻는다. 작가들은 이야기를 추적하고 매개하는 데 자신을 기꺼이 동원하고 던진다. 끝나지 않는 역사-서사의 연구는 전시 이전에도 전시 과정에서도 계속된다. 기획자는 나비효과와도 같은 끌개로서 김지하 작가의 『수왕사』를 끌고 왔는데, 이는 답사와 세미나, SNS상의 미디어 등을 통해 전시가 하나의 태도로 뒤덮이는 매우 드문 경우로 이어진다.

    《이동성 없는 거주, 거주 없는 이동성: 옵드라데크》 역시 리서치 기반으로 지역을 탐사하고 작업으로 연장한다. 작가들은 리서처이자 연구자이고 매개자이다. 리서치/연구는 전시와 대칭을 이루고, 또 다른 축의 아카이브 공간을 맞는다. 충실한 준비와 오랜 연구를 시각화, 개별화하는 건 전시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동과 거주라는 키워드를 대칭시켜 모빌리티의 지역 세계와 그를 통한 도시 사회에 대한 성찰이 바탕이 되는 전시는, “옵드라테크”라는 특이한 개념을 덧붙여서 예술의 역할을 만들어 낸다. 이는 세계 바깥, 또는 바깥의 세계로부터 오는 힘이기도 하다. 가령, 홈리스와의 교환을 통한 커뮤니티 아트의 특이한 경우로서, 천근성 작가의 작업에서 미술 너머에서 오는 다양한 홈리스가 그린 작가의 자화상은 공통됨과 차이의 특질은 강렬한 정동으로 연결되는데, 보이지 않는 작업, 곧 작가가 작업이 아닌 일상의 회복 차원에서 고쳐 준 여러 사물의 대응으로서 또는 화답으로서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인 동시에, 결과적으로 이러한 실재는 미술과 비미술의 근거를 교착시키기 때문이다. 

    세 전시 모두 지역이라는 의제를 전제하고 있으며, 또한 모두 전형적이지 않은 큐레토리얼의 전략과 힘이 전시를 뒷받침하고 있고, 이는 여느 전시처럼 형식적으로 머물지 않는다. 



    2023 올해의 퍼포먼스는 전환성의 〈강; the river〉, 정지혜의 〈The Skills of Dust〉, 위성희의 〈극장흉내〉를 꼽는다. 블랙박스와 화이트큐브를 벗어난, 각각 360도 유리 창문의 경계를 지닌 문화비축기지 탱크1, 판교역 부근, 통의동 일대에서 열렸으며, 공간 혹은 장소의 특이성이 퍼포먼스와 결부되어 있다. 대부분의 전형적/일반적 전시장에서 작품으로 또는 이벤트로 개최된 퍼포먼스라 불리는 것들은 전시의 특정한, 확장된 시간성과 정동을 결부 짓되 하나의 작품으로 수렴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각된다. 다시 전시의 영역은 고정되고 퍼포먼스는 포스터의 이름으로 환원된다. 

    전환성 안무가의 〈강; the river〉는 여섯 시간가량 동안 하나의 단일 장소에서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며 춤의 사투를 벌이는 작업이다. 거기에는 내장된 강에 대한 이미지, 언어, 움직임이 자리한다. 그와 결부된 훈련, 연습 등이 현장의 시간에 맞춰 적용되거나 때로는 미끄러지며 열린 시간에 대한 몸의 반강제적 또는 의지적 열림이 지속된다. 절대적인 시간과 연약한 신체의 대조, 혹은 시간과 신체의 상응된 과정이 갖는 변화의 흐름은 한시적이고도 발화에 초점을 둔 퍼포먼스라는 전제 조건을 순수하게 투영해 낸다. 

    정지혜 안무가의 〈The Skills of Dust〉는 식별의 불가능성에 기대거나 너무나도 명백하게 가시화됨을 선택한다. 관객이 아닌 시민을 향함으로써 작품이 아닌 홍보의 양식 그 자체가 되는 작업은, 극장이라는 제도를 경유하지 않고, 홍보의 언어 자체를 매개하지 않는 그 바깥에서 극장과 극장 이전의 언어를 시험한다. 시민들은 그것이 작품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 굳이 궁금하지 않다. 형식을 위한 형식이자 형식에 대한 형식으로서 구조적 반복의 양상을 가져가는 작업은, 일상에 남기는 자취이자 사라지는 형식 자체이다. 그것은 식별되지도 가시화되지도 않는 작업인 것이다. 〈The Skills of Dust〉는 일상에서 예술의 메타 의미를 전제함으로써 일상으로 환원되는 작업이다.

    위성희의 〈극장흉내〉(2023.11.22.~11.26. 수·목 13:00, 13:30, 14:00, 14:30, 15:00, 15:20, 15:40, 16:00, 16:20, 16:40 금·토·일 12:00, 12:20, 12:40, 13:00, 13:20, 13:40, 14:00, 14:20, 14:40, 15:00, 15:20, 15:40, 서촌 일대, 스테이션: 더북소사이어티)는 눈을 감고 퍼포머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면서 언어적 정의에 의해 새로운 감각을 인계받는다. 언어와 감각의 분절-접합이 그 사이에 자리한다. 시뮬레이션되는 세계는 언어와 배경―주로 소리―에 따라, 곧 시각 장치의 배제, 대리와 전이를 통해 그것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가늠하기보다 상상하기의 차원에서 가공된다. 관계의 내밀함은 자신의 내부와 그 확장을 향한다. 보기가 아닌 듣기의 방식은, 또 다른 보기와 이미지의 출현을 예고한다. 



    2023 올해의 플랫폼은 옵/신 페스티벌과 서울변방연극제를 꼽았다. 전자는 그간 페스티벌의 작품들을 대거 소환하며 열렸다면, 후자는 지역과 다양한 주체로써 변방의 의미를 상기하고자 했다. 아방가르드 예술의 실험적 형식과 주장을 근간으로 하는 게 전자라면, 후자 역시 그와 비슷하나 주체가 각각 서구와 국내로 주로 분별되는 게 차이라 할 것이다. 전자의 경우, 서구의 이전, 소개, 전이를 전제했지만, 거듭될수록 그것이 주는 파격의 힘은 줄어들며,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이동의 어려움, 불가능성이 전제된다는 난점이 있다. 후자에서 이동은 수요에 대한 충족의 차원과는 다른 성격을 띤다. ‘변방’으로의 이동은 그 이동이 갖는 의미 자체를 부각시킨다. 도시를 벗어나는 것 자체를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극장이 아닌 곳에 있는 이의 존재의 의미를 체현하거나 이동 자체를 작품으로 포함시킨다. 웰메이드, 네이밍, 작품성의 차원이 아니라, 배치와 접촉의 구성적 힘과 시도 자체의 차원을 본다면, 오히려 두 플랫폼 중 서울변방연극제가 더 인상적인 차원을 보여준다. 동시에 옵/신 페스티벌의 정체성 역시 새롭게 점검되어야 할 시점임이 분명하고, 마침 그간의 페스티벌 관련 발화들을 정리한 책자와 자리가 내부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이후, 정비와 정돈을 통한 유일하고 예외적인 자신의 자리를 이어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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