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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희, 《딜리버리》: ‘수렴’하지 않는 공간REVIEW/Visual arts 2019. 8. 4. 21:23
▲ 구동희, 《딜리버리》 전시 전경 [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이하 상동)
전시는 배달 서비스가 일반화된 한국 사회의 물류 유통 체계를 일종의 알레고리로 가져왔지만, 실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나 해석이 아닌, 일종의 복잡한 구조 자체라는 형상과 체험만을 남겼다. 물론 입구를 인트로로 보자면, 조각은 피자에 들어 있는 여러 토핑을 비롯한 사물들의 일부가 겹겹이 쌓여 기괴한 형태의 구조물로 확장되어 있고, 그 옆의 영상에서 배달원이 아닌 피자의 시각에서 잡은 배달 과정이 나오는데, 이는 직접적인 사회 현상을 반영하기보다 각각 손과 그 밖의 일부 광경만 나오는 이미 해체된 시선과 추상화와 집적을 통해 재구조화된 의사-사물만이 있는 것이다.
공간에 진입하면 실은 그 안과 바깥, 그리고 어느덧 입구와 출구마저 묘연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는 전시장이 한 시각으로 전체를 다 볼 수 없는 공간 구조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관객은 무엇보다 이 공간에서 휘말려 들어가고 휩쓸려 나간다. 이는 동시적이다. 한쪽을 빠져나오면 다른 쪽의 공간을 비스듬하게 마주하게 된다. 또는 등 뒤로 맞닿게 된다―이를 이후 편의상 왼쪽과 오른쪽으로 구분해 보기로 한다. 공간 중간 중간 인트로의 추상화와 집적을 통한 다른 의사-사물들이 있다. 가령 전시장을 들어서서 식판을 뒤집어 놓은 형태인 오른쪽 기둥을 감싼 덩어리, 그리고 공간을 한참 들어선 뒤 만나는 구조물과 맞물린 왼쪽 공간의 휘어진 벽 아래에 끼인 피자 조각들 등등.
이 공간 자체는 이미지와 건축의 어느 사이에서 그 둘 모두로 환원되지 않는데, 가령 전시장 깊숙한 오른 편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계단은 몸의 움직임을 어포던스적으로 구현되어 있지 않고, 마치 그 오르내림의 경계가 일종의 구멍처럼 쑥 들어가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계단이 꺾이거나 끝나는 지점에는 어떤 구멍들이 있고, 그 마지막 계단은 내려갈 수 없고 바로 절벽이 된다. 실제 조명이 없이 이 건축물을 바깥에서 더듬게 되는 이 검은 구멍을 일종의 암점 내지는 블랙박스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드러나서는 안 되는(비가시적인), 그러나 구조물이 둥글게 마감됨으로써 마주할 수밖에 없는 단면은, 이 공간을 일종의 ‘전시장 더하기 설치’―통상의 전시 형태―로 이뤄졌음을 메타적으로 드러낸다.
전시장 중앙 쪽의 구조물 ‘안’에, 시침과 초침이 반대를 가리킨 채 수직으로 물려 돌아가는 작은 시계 형상의 구조물에 그려진 전체 전시장 도면―상하가 반전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이 있는데, 이는 이 전시를 또한 메타적으로 지시하며(전시 그 자체에 대해) 은유한다(조망할 수 없는 전시에 대한). 이 놀이동산처럼 보이는 선분들의 입체적 조합은, 이 공간을 파악하게 하기보다 이 공간이 그 자체로 높낮이의 변곡에 따른 복잡한 얽힘의 건축적 공간임을 인식하게 하는 데 그친다.
전시장 깊숙이 매끈한 유통 구조의 곡선을 형성하는 구조물에 있는 구멍들은 보는 거리에 따라 미세하게 채색된 표면이라는 착각을 안기는데, 이는 구조물의 겉 표면과 안의 벽의 미세한 색의 차이를 통한 것이다. 그중 가장 왼쪽 편 안에는 배달된 상품이 포장째 놓여 있다. 여기서 표면이 아닌 구멍(심연)은 전시에서 쑥 빠지는 계단, 그리고 절벽을 통한 세계의 끝과 같이 매끈한 공간에 오인이나 오류를 일으킨다. 이러한 구멍에서 ‘딜리버리(사물)’는 보이는 게 아니라 ‘들여다봐야’ 보이는데, 전시장 대부분의 사물들이 흐름을 따라가며 보거나 마주하는 방식과 다르게 보게 되며 또 봐야 한다. 그것은 전시되기보다 처박혀 있으며 이 전시가 추상화시킨 유통 체계의 상품이라는 메타포를 즉물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그 포장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것은 전시장에 위치한 수많은 피자의 알레고리로서, 사물이나 건축의 형상과도 다르다. 현실의 진열장 안 상품을 은유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상품은 딜리버리의 흐름 끝이 아닌 ‘중간’에 닫힌 채 있다. 이는 차라리 ‘현실이라는 매트릭스’처럼 보인다. 곧 현실을 그 안으로 수렴시킨다. 결과적으로 이 전시물은 이 전시가 벗어난 현실에 대한 사회적 재현이 시작되는 또 다른 표지로서, 이 전시를 현실로부터 뒤집는다―이는 물론 현실을 전복한 결과로서의 전시와는 다르다. 또는 또 다른 전시의 입구 또는 출구를 판다. 앞선 도면이 전시의 형식, 제도를 메타적으로 반추한다면, 이는 전시의 내용과 컨텍스트를 메타적으로 반-인용하여 발설한다. 전시의 깊숙한 일부로 위치시키며.
마치 복잡한 사회(의 유통 체계)의 구조를 한 눈에 볼 수 없듯, 왼쪽과 오른쪽 각각 아기 천사가 오줌을 눕는 분수대가 있는 계단과 절벽으로 이어져 있는 계단이 전시장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 되는데, 여기서 조망의 시점은 전체를 내려다보는 정도의 시점이 아니라 일종의 겹쳐진 구조물들의 상단 단면들 정도만을 볼 수 있게 할 뿐이다. 계단 하나에 의지한 몸은 불안정하다. 이런 거리 두기의 어려움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간의 수평적 체험의 층위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간의 체험은 미로 같은 건축물들을 유영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전시장의 입구와 출구는 물론 하나인데, 왼쪽 공간에서 볼 때 입구/출구는 막혀 있어 다시 돌아 나와야 함을 보게 된다. 곧 왼쪽 공간의 건축물은 입구로부터 시작된다.
《딜리버리》는 전시장 전체를 재구조화하여 기이한 체험의 공간 혹은 장소로 바꾼다. 사회의 비재현의 장소로서 독특한 공간 구조 내의 감각을 활성화한다. 건축물은 전시장을 꽉 채우고 있고 이 전시장을 벗어나서 이를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조망할 수 없는 건축물인 셈인데, 이 안의 추상화된 피자의 구조물 들은 전시품으로서 분리되기보다 건축의 잔해처럼 형상화된다. 건축물은 온전한 몸의 정주 공간을 형성하지 않고 흘러나가고 들어오는 전시의 흐름을 만들고 동시에 전시의 사물, 조각 들과 온전히 분리되거나(조각들 역시 건축물과 온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또한 조망되지 않는다. 전시는 끊임없이 다른 위치와 잔해와 파편의 시점을 구성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전시 개요]
전시명: 딜리버리
전시기간: 2019. 7. 20 (토) - 2019. 9. 1 (일)
관람시간: 오후 12 - 7시(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아트선재센터 2층
기획: 김해주(아트선재센터 부관장)
제작 진행: 조희현(아트선재센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주최: 아트선재센터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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