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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어터 RPG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게임, 군중, 재현'의 엮음
    REVIEW/Theater 2013. 7. 30. 00:38


    ▲ 2013 마로니에여름축제 포스터, 씨어터 RPG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은 마로니에여름축제의 일환으로 열렸다.  [제공=한국공연예술센터]


    관객은 입장하는 게 아닌 한 군데 ‘모인다’, 이는 다시 흩어질 것임을 그리고 다시 모일 것임을 전제한다는 의미를 가리키고 있고, 한편으로 여기에는 군중 내지 무리의 어느 한 부분의 속성을 띤, 관객의 재전유된 위치를 상정한다. 


    곧 입장하고 연극을 보는 하나의 집단이되 개별적인 감상자로 자리하는 기존의 연극에서 관객은 주체로 호명되며 그룹화의 선택의 기로를 겪게 된다. 먼저 시작 전 반복되는 매뉴얼을 접하며 공연이 아닌 잉여 시간에 공연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전자음(이를 화면에 나타나지 않되 그 내부로부터 그 존재를 가정하며 흘러나오는 ‘아쿠스트메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으로 표현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관객은 환호하기 시작한다. 곧 문이 열리고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환상에 대한 도취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이제부터 할 것이라는 목소리(의 사라짐으)로부터 온다.


     네 그룹은 각기 다른 미션을 만나기 위해 ‘출발’하지만(흩어지며) 결국에는 사실 모든 그룹은 순서를 분배하며 같은 미션들을 하나씩 해결한 이후 모인 것과 같다.


     그러니까 각 그룹에게 있어 그들을 인도한 조연출의 매개 역할의 차이들, 그리고 각 구성원들의 차이를 제한다면, 공연은 그룹의 분배를 통해 하나의 공연을 네 번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연극인가, 이 연극이 연극이 되기 위한 하나의 선택은 각 미션을 치루는 장소들에서 연극이 재현되고 있음을 먼저 보여주고 미션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과연 연극이 오를 수 있을까의 연극의 전 단계, 작업의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듯한 부분을 연기하고 있음은 정확히 연기(연기)된 연극의 연극이 아님의, 연극을 향한 조야한 여정의 재현이고, 이는 이 ‘실험적인 연극’(미션 수행이 최대 목표인 것처럼 과정을 꾸미는 부분에서)이 과연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이들의 실제 고민이 (꼭 이 연극만이 아니더라도 겪게 되는 내지는 될 법한 연극의 외적 모양새를 보여주는 측면에서의 메타 연극의 지점을 의도한 것 외에도) 징후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같다.


     물론 이러한 기시감 어린 연극 외부의 재현은 마치 드라마를 보듯 하나의 현실-장면들을 보는 것 같고, 짜인 텍스트로 소급되지 않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연극이 되는 최소한의 이러한 장치는 곧 이 작품 자체가 연극으로 의심받을 수 있음에 대한 두려움, 나아가 그에 대한 자기 검열로도 비치는데, 연극이 만들어지며 겪는 갖가지 갈등은 실상 각 그룹의 조연출의 지도에 이끌려 ‘막내’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므로 심리적인 폭력의 일부로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한편 이는 흘러가는 장면을 마치 관객 스스로가 소거된 채 ‘안전하게’ 그것을 본다는 점에서 환영적이다.


     마치 실제적인 무대 바깥의 삶의 모습을 역할 자체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며 낳는 시차(이것은 ‘실제’의 재현이자 그와 같이 보이게끔 구성된 것일 것)는 연극 바깥을 가리키고 있었던 한편 생생한 장면 그 자체로 남았다. 후자는 조연출이라는 직접적인 인도자가 어느새 제3의 입장에서 관객을 대리해 안전막이 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연극이 추구하는 완성은 미션 수행 직전의 그와 결부된 상황으로서만 의미를 갖는 것일까. 곧 이 연극은 이 작품 전체를 은유하고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단지 그 부속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까. 이 부분은 물론 별 생각 없이 미션들을 완성해 가는 관객의 끝이 어디를 향할지 모르는 것, 나아가 이것이 어떤 의미를 도출할지에 대한 의문의 지점과 관련되어 있다.


     마지막에 모였을 때 스크린의 숫자만이 자리하며 텅 빈, 그러나 충만한 의미의 지평이 열렸을 때와 같이 관객은 박스로 쌓인 벽과 그것이 가린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보게 된다. 양 옆에는 관객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두 개의 연극을 만드는 것으로 상정된 그룹(배우)이 자리한다. 이제 그 갈등의 제작 과정이 그 내려다. 보는, 그리고 스크린 앞 보이지 않는 시선 아래 생성되는 연극의 결과물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이 초자아적 시선 아래 관객은 점프, 그리고 6층 스튜디오 하이에서 배운 율동, 공 던지기 등을 수행하며 매우 흥분하며 군중이 된다. 


    애초 관객을 배제하고 내재적으로 진행되어 온 갈등의 과정에서 ‘벽’wall이라는 키워드는 여러 차례 튀어 나왔고, 공을 던져 벽을 무너뜨리는 것도 수행된다. 곧 관객을 군중으로 바꾸는 힘은 곧, 난제였으나 아직 상정되지 않은 공연의 시작 지점 내지 공연으로의 도달 지점이라는 대타자에 대한 압박, 또 연극이라는 것 자체의 어려움 등의 보이지 않는 적의 쌓아 나감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활력적인 운동의 형태로 표출된다. 


    한편 미션에서 벽이 갖는 키워드를 내재적으로 끄집어 낼 것을 관객은 요구받기도 했던 것이다. 이는 곧 극복해야 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으로 바꿈으로써 이 가능함을 자연스럽게 수행하게끔 만들었다.


     공연은 미션이라는 형태를 통해 철저히 수행적이었고 또한 관객의 완전한 아니 과잉의 참여로까지 막바지에 도달하게 했다. 이는 분명 사실이다. 아마도 대학로예술극장 전체를 다 사용한 유일한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잘 짜인 연극이 갖는 흥분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한편, 이 활력은 단지 그 자체를 증명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곧 그 자체로 소급되고 마는 것은 아니었을까.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는 게임의 입구를 따라, 어느새 군중의 물결에 휩쓸러, 연극이 재현되고 있음에 숨죽인 관객이 됐다가, 관객과 배우의 전도된 위치에서 퍼포머로 스스로를 발현했다. 꽤나 많은 것들이 절합된, 그리고 분산된, 그리고 연결된 공연인 것.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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