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7.11.02 14:15

《포스트모던 리얼》전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2부의 작업들이 주로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 다루는 리얼(리티)에 대한 질문을 근거로 한다면, 1부는 90년대 이전, 60년대 이후부터 주로 70, 80년대의 ‘포스트모던 리얼’의 전거가 되는 대표적인 작업들을 다룬다. 2부의 배경이 된 기술 매체의 발전 양상은 예술의 감각/작업하는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이에 대한 부분을 전시에서 살필 수 있다.

1부, 물리적 실재의 침입

▲ 이종상, <장비>, 290x205cm, 종이에 수묵담채, 1963 [사진 제공=서울대미술관](이하 상동)

이종상 작가는 <장비>(1963)로써 소를 노동자들이 묶는 광경, 곧 소의 생명력을 포획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용하는 ‘장비’를 제목으로 둠으로써 소가 아닌, 테크놀로지의 힘을 지시하는 기괴한 명명으로 작업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한다.

▲ 김홍주, <무제>, 60x52cm, 문틀 패널에 유채, 1980년대 초반

김홍주 작가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이르는 ‘오브제 회화’(모두 ‘무제’라는 이름들로서, 컨텍스트에 대한 초점을 두지 않는 동시에 규정될 수 없는 사물을 지시한다)를 통해, 크게 두 가지 방식의 실험을 보여주는데, 이미지 위에 겹쳐진 얼룩 같은 물감의 흔적들을 나타내거나 이미지를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물질로 싸거나 결합시키는 행위가 그것이다.

첫 번째 방식으로는, 가령 여자의 얼굴 위에 하얀 물감이 떨어져 응고된 이미지는, 이미지와 물감이라는 물질 자체를 결합시키며 두 층위를 의미적으로 전복하는데, 곧 전자는 단순한 이미지로 전락하고, 후자는 이미지임을 드러내는 실재의 얼룩으로 그것에 침입한다. 두 번째 방식으로는 모자나 문고리 등 오브제가 이미지와 결합된 작업들을 보여준다. 또 얼굴이 가로로 눌려 홀쭉해진 얼굴과 같은 이미지의 왜상이라 할 작업도 일부 예외적으로 드러난다.

▲ 안상철, <영(靈)-71>, 62x122x15cm, 종이에 돌, 채색, 1971

안상철 작가는 부채꼴 구조물 위에 돌이 파고드는 작업 <영(靈)-71>(1971)으로써, 구조물의 평면적 표면을 입면적인 실재(의 침입으)로 바꾼다.

 

▲ 한운성, <국산 콜라>, 75x56cm, 애쿼틴트와 실크스크린, 1980

한운성 작가는 판화 형식으로 된 찌그러진 코카콜라 캔이라는 레디메이드 이미지로써 대표적인 자본주의의 상품을 일종의 유물[<욕심 많은 거인>(1974), <거인 1>(1981), <거인 2>(1981)에 비해 <엔조이 코크>(1980)나 <국산 콜라>(1980)과 같이 표면이 네모났게 다듬어져 있는 작업들에서 더욱 공고하게 드러난다]처럼 박제화된 ‘거인’으로, 또 기소비된 쓰레기로 각각 기의와 기표의 간극을 접합시키는 가운데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물신주의, 곧 내재화된 신념체계를 체현하는 듯 보인다.

▲ 한운성, <판타지랜드>, 162.1x227.3cm, 캔버스에 유채, 2012

또 다른 작업 <귀로>(2013)나 <판타지랜드>(2012)와 같은 근래의 작업은, 이미지의 허구와 실재성을 하나의 회화 작업 안에서 탐문하고 있는데, 빽빽하게 건물들이 들어찬 도시 이미지를 보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그린 전자나 놀이공원 배경막 이미지와 그곳을 보고 있는 또는 그곳을 등지고 이동하는 이의 모습을 중첩시키는 후자는 재현된 배경과 현재 진행형의 실재를 대비시키며 기묘한 뒤섞임을 만드는데[가령 <판타지랜드>에서 좌측에 있는 검정 점퍼를 걸친 남자는 그림을 보는 바깥 여자의 옆에 붙어 있는데, 곧 그림 바깥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듯해 혼란을 준다], 이는 이미지가 실재를 제시하는 순간이랄까.

▲ 김차섭, <Triangle with Square>, 41.5x41.8cm, 에칭, 1976

김차섭 작가의 1976년 당시 조약돌 밭을 묘사한 동판화 작업들은 얼핏 흑백 사진으로 보이는데, 대략 1미터 정도의 거리가 그것을 보장한다. 즉물적 도상들과 마주함은 현존적 지각을 산출하는데, 즉 물질들이 덮인 세계는 어떤 배경도, 거리 두기도 불가능하다.

▲ 김호득, <폭포 이미지>, 650x1100x700cm, 혼합재료, 2017

김호득 작가의 <폭포 이미지>(2017)는 바닥에 먹물이 비춰내는 건물의 조감 시선의 반전된 이미지를 우선 제시하고, 허공에 선 한지가 너울대며 ‘폭포’라는 정중동의 의미를 띤 상징적 개념과 동양 회화의 주요한 대상 중 하나였던 재료로서의 관념을 공간의 실제적 배치와 체험으로 변환한다.

▲ 황재형, <자화상>, 72.7x60.6cm, 캔버스에 유채, 2013

황재형 작가는 <자화상>(2013)에서 자신의 얼굴을 일종의 양각처럼 물감을 입체적으로 두껍게 덧대면서 동시에 배경과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어둠 속에 눈에 뜨인 실재의 얼굴 같은 감각을 준다. 관람객은 가깝게 다가온 실재에 대한 놀라움을 갖는데, 이는 어두침침한 듯한 이미지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섰을 때 이미 거리가 생략된 결과에 의한다(이는 탄광촌을 그리기 위해 직접 광부로 일하며 나온 그림이다).

▲ 황재형, <낙오자>, 104x290.4cm, 장판지에 유채, 지푸라기, 1983

한편, <낙오자>(1983)는 다섯 개의 프레임을 이어붙인 작업인데, 맨 왼쪽의 얼굴 다음은 지워진 얼굴과 몸 전체가 구성된다. 이 그림은 실재 같은 얼굴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지워진 또는 생략된 얼굴이 하나의 분절된, 곧 결합할 수 있는 부분 이미지(그리고 그 옆의 배경을 지운 몸통의 이미지 역시 그러하다)라는 데 그 작품의 초점이 있는데, ‘낙오자’가 갖는 정동은 이미지로서 무력화되고 분절된다. <고(故) 성완희 열사 추모도>(1988)은 투쟁하는 이들의 여러 이미지들이 세로로 경합, 결합하고 있는데, 엄숙하고 숭고한 이미지라기보다는 일견 B급 이미지들의 족자쯤으로 보인다.

2부, 실재의 질문과 확장

▲ 정연두, <Location #1>, 122x153.5cm, c-print, 2005

정연두 작가는 영화 촬영 용어로 흔히 사용되는 제목과 같이 눈에 띄는 장소를 섭외, 연출한다. <Location #1>에서 막이 쳐진 무대 바닥에서 펼쳐진 산의 사진이나 <Location #25>에서 목욕탕의 타일 바닥으로 연결된 개울에서 나체로 목욕하고 있는 여자들의 사진은 사진을 공간적 반향 아래 살피게끔 하는데, 모두 공간으로부터 원근법적으로 확장(수렴)돼 연결되는 이미지는 실재로서 기능하며 입체적 공간을 구성하게 된다.

▲ 윤동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크기 가변적, 혼합매체, 1995(2017 재제작)

윤동천 작가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1995)에서 하얀색 불투명 패널들로 구축한 입구가 열린 공간의 중앙에 구두 닦는 연장통을 놓고, 그 주변 바닥에 새 구두에 넣는 얇은 포장지들을 수없이 구겨진 채 배치하며, 미학적 개념/요소로서 ‘형태’를, 구두를 습기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포장지의 ‘기능’에 따른 사용자/구두의 몸을 일정 부분 체현하는 ‘형태’(이를 기능으로부터 나온 형태라고 할까)로 전환하며 ‘기능을 따르는 형태’를 즉물적인 미적 대상으로 재조직한다.

▲ 김원화, <잠실 우주센터 전망대 2>, 크기 가변적, 3채널 서라운드 영상, 인터랙티브 비디오, 3D게임 프로그래밍, 2012-2017

김원화 작가는 <잠실 우주센터 전망대>(2012-2017)는 3D 게임 프로그래밍을 사용해 조이스틱으로 화면의 지구를 위치로 지정하고 확대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비디오, 그리고 그에 관한 기사 등의 아카이브를 옆에 전시해 가상-실재를 구성한다. 비디오는 우주로부터 지구로 향하는 시선을 통해 현실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위치 지정과 상관없이 시공간이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는데, 따라서 우리는 제3의 관찰자로 구경만 할 뿐인 것이다. 비디오는 서울 롯데타워가 중심 좌표로 기능하며 우주탐사 로켓으로 변신하는 상황을 담고 있는데, 한국의 개발지상주의는 미래의 욕망을 소환하고 전지구적으로 확장된다.

▲ 전준호, <Hyper Realism(형제의 상)>, 53초, 디지털 애니메이션, 2007

전준호 <형제의 상>(2007)은 용산 전쟁기념관에 설치된 동명의 철모를 쓴 작은 전쟁 조각상들을 개별적으로 해체해 하나의 투명한 배경의 공간 안에서 장중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재배치하여 흐느적거리는 안무적 사물로, 미학적 오브제로 치환한다. 조각상들은 개별적 실존을 간직한 채 부딪히고 미끄러지고 끊임없이 출구 없는 세계 안에서 뱅뱅 돌기만 하며, 시대적 상황의 부조리를 아이러니로 알레고리화한다.

▲ 이용덕, <giggling 110681>, 83x200x17cm, 혼합매체, 2011

이용덕 작가의 <giggling 110681>(2011)은 중앙이 움푹 파인 얼굴을 감싼 두 손을 음각으로 만들었는데, 튀어나온 것처럼 얼핏 보이는데, 소실점이 전복되며 이미지의 실재성을 의심하게 한다. 이는 왜상을 주는 건 아닌데, 두 손 끝쯤에 있는 흐릿한 눈은 오히려 가짜같이 채색됨을 보여주지만, 현상학적인 눈으로 인지하게끔 하는 반면 전자의 현상은 환상에 가깝다. 그것은 시선의 왜곡 현상으로 붙박이지 않는 이미지의 교란을 거듭한다.

▲ 이용덕, <동시성-4장소>, 235x105x30cm, 4개 조립, 구조물, 혼합매체, 2017

야외 작업 <동시성-4장소>(2017)는 실내 작업과 같이 기본적으로 중앙의 입체 부분이랑 아닌 옆의 평평만 두 면을 경계로 연결하는데, 그 둘을 오가며 역시 혼란을 주는 한편, 평면에서 입체로 연결되며 곧 입체로 가는 과정에서 물리적으로 덜 파인 부분에서 더 파이면서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4개의 그림은 다른 그림을 보기 위해 바깥으로 돌며 움직이는 존재로 현현된다. 작가의 작업에서 이미지는 환상적인 것으로 놀라움을 준다. 
 

▲ 정흥섭, <디지털 포실>, 27.9x42cm, 연속재생, 디지털 프린트, 싱글채널비디오, 2009

정흥섭 작가의 <디지털 포실>(2009)과 <포테이토스>(2009)는 3D 모델링으로 가상의 대상을 만들고 2D 프린터로 분할된 면의 이미지들로 출력(하거나 후자의 경우 다시 입체로 조립)하는 작업이다. 전자에서 컷들은 전체의 한 부분으로 함몰되지 않고 고유성을 띠지만 하나의 이미지 자체로서 온전히 기능하지 않는 계열성의 층위에서 다뤄진다. 디지털 이미지를 실물로 출력하면서 디지털상의 실재를 구현하는 데 실패하는 오류는 이미지와 실재의 간극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공성훈, <버드나무3>, 227.3x181.8cm, 캔버스에 유채, 2015

공성훈 작가의 <A Dog>(2000)에서 어둠 속 개는 마치 붉은 불의 잔상과 한 몸으로 뒤섞여 있는 인상을 준다. 2015년의 ‘버드나무’ 연작은 얼핏 사진 같다. 극사실주의에 가깝게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유화의 두께는 실재 나뭇가지들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데, 대략 1미터 정도의 간격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 김범, <볼거리>, 20분 9초, 싱글채널비디오, 2010

김범 작가의 <볼거리>(2000)는 치타가 영양을 추적하는 우리가 흔히 보던 푸티지 영상의 위치를 뒤바꿈 하는데, 언뜻 그 위치 전환을 파악하기 어렵게 하며(가령 비슷한 이미지 계열이 반복되는 따라서 하나의 비슷한 이미지들로 수렴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쳐 지나가게 한다), 그럼에도 당연히 그것을 사실로 판단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상 실재는 인지 부조화의 간극을 안긴다. 이런 이미지의 힘과 그것이 주는 현실과의 간극이 작업을 관통한다.

▲ 고승욱, <노는땅에서 놀기3>, 1분 31초, 비디오 레코딩 퍼포먼스, 2001

고승욱 작가의 도시재개발 사업 현장의 버려진 땅에 맞닿는 무용한 몸짓들로, 또는 무용한 사물이 되며 미약한 존재의 광대한 외침으로 허우적거리는 <노는땅에서 놀기 1, 2, 3>(2001)은, 골목 집 옆에 세워진 자전거 위에서 헛발질을 하거나 역시 재개발 지역의 자투리땅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자맥질을 하는 행위 등으로 이뤄진 <철인삼종경기>(2005)로 이어진다.

▲ 고승욱, <엘리제를 위하여>, 6분 27초, 비디오 레코딩 퍼포먼스, 2005

한편으로 <엘리제를 위하여>(2005)는 동명의 곡을 연주자가 피아노로 연주하는 가운데 그것 아래 깔린 바퀴 달린 구조물을 끌며 악을 쓰는 작가의 모습인데, 일반적인 연주가 진행되는 가운데, 그것의 토대가 일그러지는 시각적 상황과 맞물리며 작가의 소리가 일으키는 파쇄적 현상은 이 셋의 균형을 맞추는 듯하다(연주는 일종의 맥거핀으로 현상과 실재의 간극이다, 곧 악을 채우는 역할로 시각과 등치되거나 시각과 더해지며 악과 등치된다). 세 작업은 일렬로 전시되어 있는데, 특별한 사운드가 없는 두 작업 역시 소리 없음을 듣는 작업이라면, 재개발 지역의 무용하나 처절한 몸부림을 육화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조습, <습이를 살려내라>, 151x116cm, 디지털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2002

조습 <습이를 살려내라>(2002)는 고 이한영 열사의 보도사진을 패러디한 것으로, 한일 월드컵의 응원 복장의 도상과 겹쳐 표현하며 역사의 정동을 제하고 현재 남은 부재하는 정신을 현상시킨다. <네이션: 검은밥>(2015)은 6.25 때 패전 병사들을 모두 웃는 연기로써 희화화시킨 사진 연작이다. 로케이션 장소가 현재 서울의 자국을 그대로 드러내는 한편, 일종의 역할 놀이로도 볼 수 있을 연극은, 시대적 상황을 환락과 같은 정동으로 치환해 애도와 우울의 이념을 지우며 단지 하나의 존재(관객과 역사적 이름 없는 이의 합치), 하나의 순간(역사적 현재)만을 간직해 낸다.

▲ 백승우, <리이스타블리싱샷 RS-#001>, 150x202cm, 디지털 프린트, 2012

백승우 작가의 서울, 부산, 동경 등 국제 대도시 전경들을 조합해 만든 2012년 작 ‘리이스타블리싱샷’ 시리즈, 북한의 평양 건축 선전사진 방식을 차용한 <Utopia-#32>(2011)는 허구를 실재화한 셈인데, 익숙한 내지는 기시감을 주는 도시 전경의 위용이 일차적으로 실재로 다가온다는 것이 중요하다면, 곧 사진 매체가 갖는 사실적 재현성을 일종의 트릭으로 사용하며 사진에 대한 비판적 사유로 나간다는 점에서, 매체에 대한 탐문에 가깝다. ‘리이스타블리싱샷’ 시리즈의 경우 하나의 도시 풍경으로 보이지만, 여러 다른 풍경의 프레임들을 이어 붙여 구성한 작업(결코 매끈하지 않은 절단면들을 중간 중간 갖는)이고, <Utopia-#32>의 경우는 하나의 사진을 여러 프레임으로 잘라내고 흰 여백을 그 간극에 부여해 실재의 간극을 발견하도록 사진 자체에서 이미 유도되고 있다.

▲ 임동승, <세바스찬씨의 열반>, 190x190cm, 캔버스에 유채, 2015

임동승 작가의 전시된 작업들은 흐릿한 시각 체제로 구성된다. 이는 시각의 왜상을 입은 어떤 순간을 체현한다. 얼룩들이라 할 점들은, 특히 정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세바스찬씨의 열반>(2015)에서 두드러진다. 색들은 불투명하게 비친다. <달에서 보낸 시간>(2016)의 경우, 미술관의 물리적 배치(조명)의 영향 아래 위쪽 숲 풍경이 잘 안 보이고, 이는 가시성의 경계를 시험하는 걸 넘어 비가시적인 실재를 드러내는 듯하다.

1부에서 사물이 현현되거나(한운성 작가의 ‘코카콜라 캔’) 물리적 오브제가 표면에 삽입되는 작업들로서 실재를 보여주는(김홍섭 작가의 ‘오브제 회화’) 등의 작업들은, 실재의 침입을 재현의 방식으로 달성한다. 반면 2부는 실재를 가상의 범주로 끌어들이며 실재에 대한 인식을 탐구한다. 여기서는 재현의 과정이 매체의 다양한 방식과 맞물려 제시된다(대표적으로 정흥섭 작가의 작업). 가상은 실재로 재설계된다. 크게 보면 실재는 미술에서 어떻게 다른 것이 되었는가, 즉 다른 방식으로 다루게 되었는가를 전시는 보여주는 듯하다. 여기서 작업들은 그 자체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보다, 큐레이팅에 의해 동시대적인 위상에서 징후나 기원으로 처리된다고 하겠다.

김민관 편집장 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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