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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경,《more Light: 향유고래 회로도》: ‘경계에 놓인 관객’
    REVIEW/Visual arts 2017. 11. 20. 16:50

    <I can see your halo #scene02>, 엘립소이드달 스포트라이트, 자개, 황동, 멀티채널사운드, 가변설치, 2017 [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고래 뱃속을 환유하는 3층에 걸친 전시는 어둠에 새기는 빛의 궤적이 표면을 생성하고, 어둠에 잠긴 관객의 몸에서 분기하며 감각적 체험을 전하는 데 집중한다. 3층과 4층에 앞서 2층의 전시, <I can see your halo #scene02>(2017)는 고래의 속을 체현하기보다, 펼쳐지지 않은 하나의 책으로 진리를 예기하고 육화하는 듯 보인다. 자개와 황동으로 만든 빛(엘립소이달 스포트라이트)이 내리쬐는 두 개의 오브제는 엇갈린 층들로 4, 5밀리미터씩 일정하게 배치된다. 클래식의 현은 격동하는 생명의 안을 체현하는 일종의 서막을 가리킨다. 휴지기를 갖는 빛이 드러나는 동시에 3층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I can see your halo #scene03>, 3D 비디오, 사이키 라이트, 멀티채널사운드, 가변설치, 2017 [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막 위에 비치는 빛’이 3층 전시, <I can see your halo #scene03>(2017)를 정의한다. 이는 벽의 표면을 만든다, 일종의 가상-실재. 이는 원근감을 갖는 입체로, 빛(사이키 라이트)은 깜빡이고 반짝인다. 관객은 문을 열고 들어선 후 저 먼 공간과 그 사이의 좁은 ‘입구’(=틈)에 들어갈지 말지의 미결정 상태에 놓이는데, 원근을 가진 공간이 벽에 새겨져 있는 위치에는 상당한 중량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곧 지배적인 공간은 그 앞의 덜 지배적인 공간 앞에서 관객을 분명 주저하게 만든다.

    붉은 방은 유혹과 두려움을 준다. 관람객은 지배할 수 있는 사물, 거리를 둘 수 있는 사물을 볼 수 없다. 고로 어둠 속 관객은 볼 것을 찾아, 아니 볼 것으로부터 멀어지며 새로운 세계 속에 속할 것을 선택해야 한다(사실 붉은 방에는 아무런 사물이 없다). “He goes to the sky.”라는 다소 중의적일 수 있는 문장이 울려 퍼진다. 다시 들어간 안쪽 공간에는 기존 작가의 작업 아카이브 영상들이 자리하는데, 현존의 기조를 유지하는 전시와는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I can see your halo #scene04>, 레이저 라이트, 멀티채널사운드, 가변설치, 2017 [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빛이 나오는 곳은 입구이자 출구가 될 것이다. 4층의 전시, <I can see your halo #scene04>(2017)의 파란 빛의 경계, 곧 레이저(레이저 라이트)에 의해 몸이 갈리고 붙는 경험은 신체에 이는 이물감과 잠겨 있는 듯한 깊은 부피감, 곧 낯섦과 편안함 사이에 있다. 원뿔 모양으로 분기하는 빛은 안으로 더 들어가면서 두 개의 영역이 분기하다 겹치는 부분에서 안팎을 오가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공간은 끝에 다다르면 도형으로 인식 가능하다.

    관객은 고래 뱃속에 있는 것일까. 빛과 어둠으로 분기되지 않는 삶과 죽음은, 전시에서 빛의 끊임없는 점멸(이진법)이라는 끝없는 경계에 위치하는 관객에게 어떤 이념보다는 카오스 상태로 다가온다. 안락한 것도 전적으로 불안한 것도 아닌, 반쯤 공간에 사로잡혀 출구와 입구가 전도되는 전시에서 관객은 질문과 깨달음보다 체험 자체에 방점을 둔다. 스스로가 위치한 곳을 특정하려는 대신 관객은 스스로가 위치하는 곳을 특정할 수 없음에 대한 혼란을 줄이려 한다. 그러한 불온전한 현존으로부터 체험은 안정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고래 뱃속에 있다는 감각은 은유적으로는 성립한다, 물리적 흔들림은 정서적 흔들림으로 변형된다는 점에서.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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