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7.10.13 05:40

▲ 박순호 안무, <경인>[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북청)사자와 겹쳐 있음을 남자는 발견하며 공연이 시작된다. 얼굴께에 꼬리를 확인하며 발버둥 치듯 빠져나온 남자는 발견의 상황에서부터 사자와 한 몸인 상태가 일단락된다. 엎드린 상황에서 상체와 하체를 순간적으로 들어 올리며 점프를 하는 장면에서부터 특이성은, 사자가 아닌 퍼포머에게서 드러난다. 그는 거의 발을 땅에 딛지 않는데, 땅을 구르듯 그리고 발이 아닌 온몸으로 점프하며 자신의 생명력을 구가한다. 이는 네 발을 땅에 닿고 있는 사자와 대조적이다. 

첫 번째 사자와의 분리가 깨어남의 인지로부터 시작된다면, 두 번째 분리는 적극적인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손전등을 사자 속으로 비추며 내장 기관을 가시적으로 만들며 해체술을 시전하고, 위에서 내려온 갈고리들이 사자의 털가죽을 벗기고 두 명의 남자로 현현된다.

자신을 과시 또는 방어하는 듯한 동작들로부터 무대는 상징적인 기호와 몸짓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여기서부터 음악의 지배력이 시작된다). 저울 다섯 개를 갖다놓은 가운데, 누운 한 남자 아래의 저울들의 위치를 다른 두 무용수가 바꿔가고, 그에 상응하는 누운 남자의 몸의 위치 변환이 일어난다. 여기에 가야금의 표면에 허공을 부유하는 듯한 동작과 같이 사라질 듯 환상적으로 깔리는 아날로그 기타가 다분히 서정적인 심상들의 시선을 만드는데, 저울은 상대적으로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몸의 이동을 만들고 지지대가 되는 남은 몸에 대한 주의를 분산/수축시킨다.

세 퍼포머(정철인, 정재우, 류지수)는 저울에서 내려와서는, 한 명을 중앙으로 끌어들이며 띄우고 이동시키는 역할 놀이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한 명의 다리 위에 올라탄 남자가 음악의 고조에 맞춰 입을 벌리며 소리를 지를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은, 그러나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음악과 동작이 완벽하게 상응하는 순간들로 채워져 있음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수직 고도의 물리적 위치와 비가시적 사운드의 상승이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점의 에너지에서 만남을 의미하기에는 충분하다. 쌓고 허물고(한 장이 끝나고) 또는 느슨해지고(다음 장을 준비하고) 쌓는 건축적 알레고리로써 극은 진행되고, 완전히 파열되지도 끝나지도 않고 밀고 당기는 3중주의 움직임이 이어진다.

특히 바깥으로 터져 나가려는 움직임을 끌어당기며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되는 후반의 동작들이 그러한데, 이는 한편으로는 얽힌 관계의 닫힌 장을 상정하면서 다른 한편 장력에 대한 신체의 실험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는 전 작인 <유도>에서 봤던 장면들과 상응되는 부분인데, 전자의 측면이 더 강조되는 건 작업의 전체적 이미지가 감정적인 음악의 힘(은 더 직접적으로 공간에 반향 되는 좁은 소극장의 공간 특성으로 더 강조가 된다)에 좌우가 되기 때문인데, 이는 순수한 물리적 움직임들에 대한 실험보다는 다분히 현 시대/세대 상황의 암울한 면으로 해석이 귀착될 우려가 잔재하는 부분이다.

음악의 사용이 지배적이 됨에 따라, 특히 물리적 허공의 약동하는 몸짓들을 환유하는 기타 외에 가야금의 타악적 공명이 아닌 멜로디적 선율이 갖는 목소리성, 인간주의적인 감정으로의 환원은 다시 재고되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 전의 박순호의 안무가 지닌 밀도 높은 움직임들이 여전하면서도 새로운 의미에서 수렴/수축되고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p.s. 사실상 '서울 사람들'을 뜻하는 경인의 특정 지역/시대의 정체성으로써 추상-구체적 심급의 안무를 의미화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북청사자놀음의 형태로부터 안무를 재구성하는 것이 아닌, 의미적 맥락을 상정하는 것도 이후 다른 막으로 나아가는 것과 상응관계를 맺는지 역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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