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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북동비둘기, 〈걸리버스〉: 역사의 어떤 형상들
    REVIEW/Theater 2022. 12. 26. 16:09

    성북동비둘기, 〈걸리버스〉[사진 제공=극단 성북동비둘기](이하 상동).

    성북동비둘기의 〈걸리버스〉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브로 가져오되 원작을 해체하고 분해하며 완전히 새로운 작업으로 나아간다. ‘조나단 여행기를 쓰는 걸리버 작가’라는 소설과 현실이 뒤바뀐 세계는, 관객과 직접 닿아 있는 화자의 시점이 화면―제4의 벽―에 자리하는 이미지들을 매개하는 구조에 대한 관점으로 연장되는 것으로 치환해 볼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모든 걸 뒤섞는 다중 초점의 세계상은 각 세계를 하나의 중심적 위상으로 두지 않게 만들며, 종잡을 수 없이 매번 다른 세계를 마주하는 ‘걸리버’의 모험에서 유발되는 감각들을 생생한 차원으로 전이한다. 곧 〈걸리버스〉는 『걸리버 여행기』를 재현하지 않고 현전시킨다―그럼에도 사회 고발 소설의 성격은 연장한다
    이는 영화 〈명량〉을 소위 영화 유튜버가 중계하는 것을 재현하는 장면에 이르면, ‘스마트폰’의 영상과 영상의 개연성 없는 연접을 무대로 구현하는 것과 같은데, 배우들에게는 아무래도 이러한 다중 접속의 현실들의 전환이 가혹한 일일 것이다. 이는 몸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게 되는데, 초반 음악 용어상의 각종 템포에 따른 변주에 맞춰 피아노 건반과 맞닿는 열 손가락의 움직임을 런지 동작을 계속하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각 배우를 미세한 손 움직임과 동기화시키는 고도의 트레이닝이 된다. 각 퍼포머는 하나의 건반으로 환원되고 신체는 화면 안의 이미지로 포획되며 완벽하게 재생되어야 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움직임은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차원의 전개가 되며, 이는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에 맞춰 출연진 모두가 격렬하게 춤을 소화하는 마지막 장면의 노래에 맞춘 춤과 같이 스코어를 법으로 수용해야 한다. 

    〈걸리버스〉는 현실에 가치 판단을 부여하지 않은 채 ‘요지경’의 장면들로 그저 바라보게 하는데, 이는 앞선 〈명량〉에서 콘텐츠로서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화면 안의 세계가 되면서 개입과 비판의 피드백의 연결고리가 일단 의식적으로 분절된 채 진행되는 것을 연상시킨다. 이미지 리터러시의 차원이 강조되기보다는 이미지 소비의 쉬움이 우선한다. 〈명량〉에서 마지막까지 노를 젓는 사람을 클로즈업할 때 역사의 이름 모를 한 개인에 대한 생생한 인터뷰를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 곧 등장한 일본 장군이 내뱉는 대사로 치환되는데, 이는 점점 검사로 속인 자의 보이스피싱의 문구를 전유한 것임으로 드러남으로써 역사 재현의 단편은 (일종의 기믹이며) 다시 광고가 그러하듯 개연성 없이 역사의 외피를 입은 것이 된다―여기서 거북선 조종자는 단지 듣는 자이며, 일본인은 그 외양이 전화상에서 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이미지는 잉여가 된다. 

    이러한 역사를 가상으로 번역, 재현하는 〈걸리버스〉는 비역사라는 실재에 대한 감각을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현실, 나아가 역사에 대해 무비판적임을 인지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곧 예술은 메시지이며 그를 위한 감정적 몰입을 구성하기보다는 철저한 형식을 구축해 내는 효과들이며 이는 이미지나 움직임의 종합이다. 이는 단순히 소비되는 스마트폰의 이미지들의 형식과도 같(아야 하)지만 열화되는 이미지 자체라기보다는 그 스마트폰 자체에 전도된 열 현상과도 같다. 곧 〈걸리버스〉는 배우의 몸과 희생, 연관 없는 장면‘들’이 연극을 회생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미지는 상징성의 연약한 따라서 느슨한 연결을 지향하는데, ‘연약’하기 때문에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종합은 재난과 약자, 혐오의 잘못된 방향성 등을 가리키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세월호와 같은 국가적 참사를 향한다. 거북선 청년의 수난사의 연접은 그 앞에 제시된 사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는 장면의 의미를 발현시키며, 닭장에 갇힌 배우가 구명조끼를 입는 장면에서 비로소 거북선은 바닷속 갇힌 공간의 이미지로 증폭되는 식이다. 여기서 역사의 연접은 이미지들의 연접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의미들을 계열화한다. 사다리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은 청년을 낚는 어른인 동시에 동학농민운동의 잔해 위에 앉아 있거나 그것만큼 커다란 형상의 왜적이며 그것과 상대하는 약자는 일상의 전쟁을 치르는 현대 청년으로 재의미화되었다. 
    또 다른 장면으로는 ‘무대’ 장면에서 쓰러진 배우가 떨어진 조명기로 치환되고, 이는 다시 로드킬 당한 동물로, 중성화 수술의 비용이 우리의 세금이라는 대사에서 동물 전반으로 연장되는데, 〈걸리버스〉는 동물을 인간의 잣대에서 다루면 안 된다는 주의를 가져가는 대신, 그 혐오의 에너지가 어떤 식으로 맞물리게 되는지 자체를 설명하는 것에 국한한다. 닭장의 좁은 영역에 들어간 닭들에 대한 언급과 닭 가면을 쓴 배우들 이후 조용필의 〈친구여〉가 나오며, 이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제시된다고 하겠다―사육장 속의 닭들과 이태원 청소년들의 이미지가 등치된다. 그렇게 느슨한 연결이지만 다른 이미지들에서의 최종적인 마무리가 되는데, 대체 가능하지 않은 이미지로서 오로지 애도의 의미를 담아 오래된 경구 차원에서 대중가요를 호출하는 셈이다. 세월호와 이태원은 양립할 수 있는 이미지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국가의 위기 대응 시스템이 부재하거나 무력한 경우이면서, 이태원의 경우 겪은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세월호에 의해 극이 닫힌다고 하겠다. 

    ‘장면들’, 이미지에 대한 즉자적인 설명 대신에 이미지에 결합할 수 있는 언어를 보류하고 유예하는 차원에서 나열되는 장면은 몽타주적이다. 사실 맨 처음 등장하는 서사는 화산 폭발과 그에 대한 대피 명령이 없이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조나단 여행기〉의 이야기―이는 결국 세월호에 대한 징후로서 제시된다.―로, 배우들이 서로 둥그렇게 모여 앉아 시작하는 첫 장면에서 온갖 소음의 진원지가 한 명씩 퇴장하는 배우들이 에어캡을 터뜨리고 있었음이 드러나는 장면과 같이 먼저 이는 뒤에 연결되는 이미지에 의해 비로소 안정화된다, 마치 참사가 뒤늦게 언어로 결정되는 것과 같이. 하나의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로써 드디어 언어에 안착한다. 

    〈걸리버스〉는 이 둘을 호출하되 어떤 식으로 명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문과 이야기라는 액자 틀 안에 있으며 실재하는 몸들에 의해 재현됨에도 우리는 그 광경을 믿기 어렵다. 배우들은 무정형의 캐릭터, 퍼포머 자체로서의 캐릭터만을 가질 수 있을 뿐이며, 이들은 역사의 이름 없는 약자의 형상들을 주로 연기한다. 장면을 만들기 위한 힘에 이들은 몸을 맡기며 자동인형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땀과 열기, 현존과 같은 연극의 어떤 진정성에 대한 정동은 역사의 이념을 구성하기 위한 효과가 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 공 연 명: 〈걸리버스〉
    ■ 기    간: 2022. 12. 9(금) ~ 12. 18(일)
    ■ 시    간: 평일(화,수,목,금) 7시 30분 / 주말(토, 일) 4시 / 월 쉼
    ■ 장    소: 성수아트홀
    ■ 후    원: 서울특별시, (재)서울문화재단
    ■ 주    관: 성북동비둘기
    ■ 제    작: 성북동비둘기
    ■ 관 람 료: 전석 30,000원 
    ■ 관람연령: 17세(고등학생) 이상
    ■ 러닝타임: 90분
    ■ 예    매: 인터파크티켓, 네이버예약
    ■ 문    의: 성북동비둘기 02-766-1774, 010-6311-5751

    일시: 2022년 12월 9~18일
    장소: 성수아트홀

    원작: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창안.연출, Art-work: 김현탁
    출연: 김미옥, 안수빈, 박유미, 김남현, 박보현, 곽영현, 정서현, 현승일, 
           최민혁, 강진이, 전혜인, 이다혜
    기술감독: 서지원
    조명 디자인: 신동선
    드라마투르그: 황동우
    조연출: 최미현

    문의: 02-766-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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