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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티51>, 예술가의 자립·성장 기반으로서의 두리반!?
    카테고리 없음 2014. 12. 9. 10:04



    ▲ <파티51> [보도스틸 제공=인디스토리] (이하 상동)


    <파티51> 매끄럽게 이어지는 꽤 잘 편집된 기록물 성격의 영화다. 곧 51+의 공연이 이어지는 대를 전후로 주로 ‘두리반’으로 소급/환원되는 대문자 이름을 전제하는 가운데, 그것의 곁에서 속도감 있게 순차적이고 계보적으로 역사의 한 순간들로 바꾸는, 음악과 그 삶을 보여주며, 음악적 화려함으로 그것을 마감하는, 음악의 유려한 동력이 그야말로 역사/현실을 표면화하고 드러내는, (시)청각적 기록물이다. 이것이 극장이란 곳에서 상영됨으로써-곧 앞뒤 타이틀 시퀀스를 가짐으로써 영화가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기록(의 편집)이자 음악적 편집이 가해진, 떠도는/떠돌았던 음악‘들’의 시대적 풍경(, 그 편지) 같다. 이것은 두리반이란 무거운 어떤 정치적-음악적 투쟁의 현실, 그 묵직함보다 그저 사운드 스케이프의 순차적 편집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곧 이 영화 같지 않은 영화가 주목하는 바는 무엇일까. 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곧 이 영화는 두리반일까, 음악(가)에 대한 것일까. 


    마치 재현한 것처럼 ‘한받’은 노동절인 5월 1일에 맞춰 51+ 공연을 해보자는 의견을 두리반 회의에서 던지는 순간이 현재에 도착한다. 아니 이 카메라는 그 수많은 시간을 보이지 않게 함께 거기 있었고, 그래서 가능해진 장면이다. 곧 선-카메라, 후(계보학적 시점상의)-편집. 곧 두리반의 실제 주인인 유채림 소설가, 그의 부인 안종려의 투쟁하는 주체가 있었어야 했다면,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인 몇몇의 예술가들의 곁이 있었다면, 51+라는 상징적인 이름으로 맺어진 일시적 연대의 노래가 있었어야 했고, 다시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는 지켜보는 이로부터, 그것이 전제됨으로써 투쟁의 기록과 재생, 나아가 성찰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는 거리 두기가 아닌, 목소리다. 곁을 유지하는, 곁을 유지하기 위한, 곁을 유지해야 하기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거리 두기이다. 



    그러나 이게 결국 투쟁, 곧 정치의 함의들로서의 목소리로만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자립 기반을 마련하기 힘든 가난한 예술가들의 지난한 삶의 비동시적 동시성의 평면이다. 실제 집을 나온 박다함, 카드 빛을 막지 못해 나중에 갚기로 어머님과 잠정 함의(?)한 하헌진, 음악 공연이 곧 생계인 한받의 삶을 돌아가며 보여주고(사실 동시적으로 벌어지는 당대의 일들), 이들이 독립예술을 하지만 그 독립이 완전한 측면이 아니다. ‘독립’으로부터 위태롭게 존재하는, 그것이 오히려 절대적 기준점이 되는, 그래서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예술로부터도 떨어져 나가는 예술을 하는 예술가의 길임을 드러낸다. 


    나아가 두리반 자체가 투쟁의 거점 공간이 아닌, 음악의 유희적 문화 생성의 공간임을 입증(?)해 냄으로써 영화는 두리반에 얽힌 다른 겹(?)을 보여주고 증명하기에 이른다. 주로 밤섬해적단의 키 큰 한 멤버의 이야기를 들어 그러니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실은 그걸 이겨나며 예술가로의 젊은/순수한, 그러나 처절한 삶의 공기를 맡게 한다. 동시적으로 그들의 열정/삶(의 이면)/작업이 자랄 수 있는 두리반 공간의 공연들을 통해, 곧 두리반에서 이들은 용역 깡패에 맞선 유채림-안종려 부부(와 몇몇 예술가의 연대, 그 연장으로서)의 삭막한 삶 속의 우물을 내기 위한 고투의 성격을 띠기보다는, 말 그대로 음악 자체가 지닌 이상, ‘유토피아’를 꿈꾸는, 폐쇄된 유토피아에서의 국가의 거주를 위한 이상 같은 것에 다가가기에 가깝다. 예술을 할 때 마치 그 안은 안전하고 열기에 젖어 있다. 



    이는 무엇을 함의하는가. 곧 예술의 겉은 즐겁고 화려하되 그 밖은 어둠이지만, 실은 이 안 역시 어둠이라는 것을 봐야 한다. 그것 열린 빛을 위한 임시적인 빛의 (언제 꺼질지 모르는) 지속 열망이라는 것. 이는 정확히 이 안의 전기를 끊은 시점에서 발전기를 수동으로 돌려 동력을, 전기를 발생시켜야 했던, 두리반 안의 사람들의 노력이 이어질 때 아이러니하게도 적확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예술가의 청춘 일기와 같은 전기(傳記)의 시점으로 기록된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또는 자신의 공연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또 놀기 위해 그것에서 투쟁을 했다고 (부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일까. 또는 투쟁과 예술이 결합하는 이상적 장면으로 주어 넘길 수 있는 부분일까. 


    좀 더 정확히는 어느 측면에서 몇 명은 투쟁과 기획/음악을 같이 했고, 51+의 연대의 제스처가 이어졌고, 직접적 투쟁이 아닌 그들의 음악을 다른 분위기에서 순간 재현하는 것의 일시적 참여가 가능해졌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곳이 진지한 또는 자연스러운 음악 공연장으로서의 의미가 생겨났던 적도 있다. 다른 입장과 시각이 이 두리반을 너르게 구성했고, 그런 여러 가지가 맞물려 정확히는 중첩된 중층 결정되었던 순간‘들’이 이 두리반을 둘러싸고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나아가 이 느슨하거나 긴밀한 연대를 통해 두리반의 어떤 승리의 지점을 낳았음을 영화는 투쟁 불가의 상황에서 전기 생산과 함께 비로소 생겨나는 무대와 사람들과 목소리와 이야기들의 연장으로 지속될 수 있었음을 증명한다. 


    무엇보다 이 전기(電氣) 생산과 같은 내부 동력의 생산이 곧 음악 공연, 유희에 가까운 예술, 관객과의 공모가 이뤄지는 예술의 거리 ‘없음’에서 또한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곧 이 안에서의 음악들은 투쟁이 아닌 자신들의 존재 근거를 입증하고, 지켜내는 매우 자연스러운 ‘상상적’-내가 무대에 선다는-이고도 ‘상징적’-예술가의 정치적-예술적 투쟁으로서-이며 ‘물리적’인-실제적인 무대 그 자체로서- 거점이었으며, 이 투쟁의 공간(안)이 아니었으면 역설적으로 지속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예술가들의 삶의 일부로서 이 공간은 매우 따뜻하고 친근한 공간으로 기억 속에서는, 재생되는 것이(아닐까 싶)다. 


    또한 야만과 문명(문화)의 어떤 양면을 벗기며, 전기를 돌리는 것과 같은 발전기로서의 음악 생산-가장 음악과 멀어지지 않았기에 투쟁일 수 있었던 역설적인, 곧 단순한 제스처로서가 아니라 추위 안에 뛰기, 그럼으로써 지속이기도 했다. 이 투쟁은 삶의 바깥으로부터 안으로의 접기이며 다시 안에서부터 불 지피기, 그리고 삶에의 상징적 투쟁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건 하나의 그냥 음악, 예술가의 자위였었던 순간들이 일부를 이루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 투쟁이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곧 모든 게 투쟁 또는 예술로 환원될 수 없 점철되지 않는다는 것, 그 조심스런 긴장에서 예술가의 투쟁, 수행의 바에 있지 않은 예술가를 그리며 투쟁의 바깥일 수 없는 예술, 곧 현실의 착종 관계로서의 (투쟁이 아닌) 예술을, 아니 그것의 곁을 어둠이 쌓인 안으로 그려낸다.



    이 더러운 현실로부터의 투쟁은 피해를 입은 처절한 유채림의 목소리로, 순수한 투쟁‘적’ 음악의 표지로, 다시 음악적 어떤 악전고투의 삶 이후의 어떤 회고, 그 젊음 자체의 한 부분으로 영화는 자리를 옮긴다. 곧 두리반 ‘승리’ 이후의 회고의 시점으로. 


    어쩌면 그래서 이 영화는 사실 우리가 더럽게 잠식한 절대-현실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단지 용역깡패의 험악한 꼴, 면담을 거절하는 공무원의 두꺼운 낯짝을 제한다면- 내부 동력을 생산하며, 한 때의 삶, 구체적으로는 젊음을 소진했던 예술가의 부조리한 삶의 근거로부터 구현하는 예술(가)의 프레임에 집중하여 그래서 예술적 투쟁으로 현실의 이면을 가늠한다. 그런 영화다. 곧 시대와 불화하여 그 시대를 기입하는 사운드 스케이프는 성장하는 음악가들의 현실이 아닌, 현실의 이면의 곁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음악은 주로 신나고 유쾌하지만 웃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아니 그 웃음 자체가 하나의 역설적인 그런 자조적인 것에 가까운 것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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